218화. 원숭이의 재현(再现)
해수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란 여섯 전주는 각자의 법보와 영기를 날려 해수를 막으려 했다.
쾅!
무서운 기세로 날아간 법보와 영기가 해수의 거대한 몸에 충돌했다. 그러나 그 순간 오히려 여섯 전주의 몸이 충격으로 뒤로 튕겨 날아갔다.
문어는 잠시 멈칫했을 뿐 계속해서 한해거주를 향해 헤엄쳐갔다. 문어의 몸에 새롭게 생겨난 커다란 상처들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지만, 문어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해거주에 다가가게 해서는 안 되네!”
뒤로 몇 장이나 튕겨져 날아간 뒤에야 중심을 잡은 유안이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입가에는 피가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일행의 최전방에 있던 유안은 방금 전의 격돌에서 대부분의 충격을 몸으로 받았고, 그 때문에 체내의 기혈이 뒤틀려 매우 괴로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위급해서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문어가 배에 다가가게 둔다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다.
유안은 상처를 돌보지 않고 곧바로 해수를 쫓아갔다.
다른 다섯 전주도 중심을 잡은 뒤 다급히 그를 뒤따랐지만, 속도는 유안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한편 십 여 척의 한해거주는 해안선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1호 한해거주의 현측에 서 있는 석목의 어깨에는 채아가 앉아 있었다.
문어가 습격하자 잽싸게 도망갔던 채아는 유안 등 전주들이 문어 해수를 붙잡아두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석두, 난 비겁하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놈이 아니야. 방금 상황에서는 내가 남아 있어 봐야 쓸모도 없고, 오히려 너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니 날아간 것뿐이야.”
채아가 석목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그렇게 말한 순간, 석목은 갑자기 뒤에서 몰아치는 강풍을 느꼈다. 그는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거대한 문어가 여덟 개의 촉수로 번갈아 수면을 헤치며 엄청난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괴물이 다시 쫓아온다!”
“어서 도망가!”
다른 사람들도 그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문어의 뒤로 전주들이 필사적으로 쫓아오고 있었으나, 한눈에 보기에도 문어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채아, 먼저 도망가!”
석목이 채아를 잡아 허공으로 힘껏 던지며 소리쳤다.
하늘 위로 던져진 채아는 점점 멀어지는 석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빠르게 헤엄쳐오는 문어를 보더니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열여섯 척의 한해거주에 타고 있는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문어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몇 척의 한해거주에서는 비행법기나 부적을 가졌거나, 혹은 비행술법을 쓸 수 있는 이들이 먼저 배를 탈출했다. 나머지 제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굉장한 속도로 다가온 문어 해수는 제일 가까이에 있는 한해거주를 촉수로 내려찍었다.
쾅!
한해거주는 마치 종잇장이 찢어지듯이 손쉽게 박살이 났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제자들은 다진 고기처럼 으깨져 배와 함께 바다에 잠겼다.
동시에 문어는 다른 촉수 네 개를 마구 휘둘러서 물속으로 뛰어들거나 공중으로 날아오른 제자들을 잡아 입안에 쑤셔 넣었다. 또 남은 세 개의 촉수를 석목이 있는 1호 한해거주를 향해 뻗었다.
하늘을 절반 가까이 뒤덮은 촉수가 다가오며 엄청난 강풍이 몰아쳤다.
그 순간 석목의 가슴이 검게 반짝이더니, 그의 피부에 검은색 비늘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어서 석목의 발아래에 청년 도사에게서 빼앗은 옥 북이 나타났다. 옥 북은 그의 몸을 받치고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영성을 꽤나 회복한 옥 북은 현재 약 오 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사람을 싣고 비행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쾅!
석목이 타고 있던 1호 한해거주가 두 동강나며 백여 명의 제자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간발의 차로 배에서 벗어난 석목은 촉수의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화를 면했다. 그러나 그 역시 촉수가 일으킨 강풍에서는 벗어나지 못했고, 바람이 몸에 닿는 순간 오장육부가 뒤틀리며 입에서 피를 뿜어냈다.
석목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동시에 발아래 옥 북이 뿜어내는 빛도 어두워졌다.
하지만 다행히 석목은 괴수화를 한 상태였고 방어부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어서 중상을 입지는 않았다. 곧 옥 북은 다시 푸른빛을 밝게 빛내며 석목을 태운 채 멀리 날아갔다.
크아앙!
문어는 여덟 개의 촉수를 마구 휘둘러서 방금 한해거주에서 탈출한 제자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때, 문어의 촉수 중 하나가 석목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깜짝 놀란 석목은 즉시 속도를 절반 가까이 높여 필사적으로 달아나려 했지만, 촉수에서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대한 촉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장의 거리를 따라잡았다.
석목은 마치 머리 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급강하를 해서 문어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또 하나의 촉수가 석목의 바로 옆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석목도 도저히 피할 도리가 없었다. 문어의 촉수에 가격당한 그가 입에서 피를 왈칵 쏟아내며 뒤로 날아갔다.
그 순간, 어느새 다시 다가온 촉수가 석목의 몸을 휘감았다.
석목은 촉수에서 가해지는 압력에 다시 한 번 입에서 선혈을 뿜어냈다. 그의 의식이 조금씩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거대한 문어의 벌어진 입이 가까워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곳에서 죽게 되는 것인가?’
‘어머니, 맹세는 지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맹세를 어길 수는 없어!’
순간 정신을 차린 석목은 고함을 내지르며 격렬하게 발악했다.
그의 이마에 파란 혈관이 솟아오르고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힘을 극도로 사용한 탓에 몸이 부풀어 오르면서 상처에서는 선혈이 쏟아졌다.
거대한 촉수가 석목에 의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석목이 몸부림을 치는 것을 느낀 문어는 촉수에 살짝 힘을 더했다. 그러자 방금 전의 몇 배에 달하는 거대한 힘이 석목의 몸에 가해졌다.
아그작!
촉수에 짓눌리는 순간 온몸의 뼈가 부러진 석목은 두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버렸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처럼 별 수 없이 문어의 입으로 삼켜지려는 순간, 석목의 몸이 갑자기 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은색 빛은 옅었지만 거대한 힘이 담겨 있었고, 석목을 휘감고 있는 촉수를 일 척 정도 밀어냈다.
문어는 움직임을 멈추고 놀란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우두둑!
바로 그때, 석목의 몸에서 뼈마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골절됐던 뼈가 전부 붙었다. 이어 그의 몸이 십여 장 크기로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석목의 몸을 휘감고 있던 문어의 촉수가 완전히 벌어졌다.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낀 문어는 살짝 몸서리를 쳤다.
멈추지 않고 점점 커지는 석목의 몸에 거대하고 단단한 근육이 생겨났고, 은색 털이 빼곡하게 자라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은 거대한 하얀 원숭이로 변신했다.
원숭이의 크기는 문어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이전 용사의 문에 나타났을 때보다는 두 배 가까이 컸다.
순간 두 눈을 뜬 원숭이가 금색 눈으로 문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크와앙!
원숭이는 두 팔로 가슴을 한 번 치더니 해수를 향해 덤벼들었고, 날카롭고 긴 손톱이 자라 있는 손을 휘둘렀다.
문어는 석목이 원숭이로 변한 것에 잠시 놀랐지만, 본래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흉포한 해수답게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 문어가 여덟 개의 촉수를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그 순간, 원숭이가 문어의 앞에서 갑자기 멈춰서더니 하늘로 뛰어올라 공격을 전부 피했다. 그 동작은 마치 물이 흐르듯이 부드러웠다.
그때, 유안을 포함한 여섯 전주가 한해거주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두 척의 한해거주가 또 침몰한 것을 본 유안의 얼굴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문어와 원숭이가 싸우는 사이에 남은 한척을 대피시키는 것이 전부였다.
유안은 두 괴수와 거리가 상당히 벌어지자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의아한 눈빛으로 하얀 원숭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유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거대한 원숭이를 보고 있었다.
“저 원숭이는 어디서 왔지?”
유안이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만 가로저었다.
“누구 석목을 본 자 없나?”
유안이 문득 석목을 떠올리고 물었다.
“저 한해거주에 있던 사람은 한 명도 달아나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제자가 말했다.
유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석목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었으나 지계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으니, 문어의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죽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다른 한해거주에 있는 후새뢰는 누군가를 찾는 듯 긴장한 눈빛으로 주위 해역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바다에는 성난 파도만 칠 뿐,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그만 찾아요. 목 형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후 형도 그 문어의 무서운 힘을 보지 않았습니까. 유 전주를 포함한 일곱 전주가 힘을 합쳤는데도 상대가 되지 않았을 뿐더러 육 전주는 목숨까지 잃었어요.”
여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새뢰가 그런 여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원신이 일부 담긴 금신주는 아직 석목에게 있었다. 만약 석목이 죽었다면 금신주 역시 성할 리가 없었고, 그렇다면 그 역시 지금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 사실을 여의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석목이 살아남기만을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얀 원숭이와 검은 문어는 수면 위에서 여전히 오금이 저리는 포효를 지르며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원숭이의 크기는 문어의 일 할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대신 상당히 민첩하게 뛰어다니며 용맹하게 싸웠다.
격렬한 법력의 파동에 원래 거칠었던 수면이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고, 하늘까지 닿을 듯한 높은 파도가 일어 주위 해역을 어둡게 덮었다.
몇 개의 촉수가 공격을 성공하지 못하고 허공을 가르자, 문어는 이어서 남은 촉수를 휘두르려 했다.
그때, 원숭이가 그보다 먼저 문어에게 다가갔다. 원숭이는 두 팔로 촉수 하나를 꽉 안고 전력을 다해 잡아 뜯었다.
촤악!
어마어마한 크기의 촉수가 원숭이에 의해 반으로 찢어졌다. 상처에서 쏟아진 선혈이 주위 해역을 붉게 물들였다.
원숭이는 여전히 꿈틀거리는 거대한 촉수를 끌어안은 채, 허공에서 쏟아지는 선혈로 온 몸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옥에서 환생한 마신 같았다.
크아악!
두 눈이 핏빛으로 붉게 물든 문어가 고통에 찬 포효와 함께 두 개의 촉수를 휘둘렀다. 그 속도는 이전보다 두 배 가까이 빨랐다.
재빨리 몸을 날린 원숭이는 한 개의 촉수는 피했지만, 다른 한 개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촉수는 원숭이의 몸을 단단히 휘감았다.
원숭이는 포효하며 두 팔에 힘을 주었지만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문어 역시 원숭이의 단단한 몸을 으깨지는 못했다.
그 순간, 원숭이의 두 눈이 흉악하게 번뜩였고, 원숭이는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자란 입을 벌려서 자신의 몸을 휘감은 문어의 촉수를 물어뜯었다.
문어가 고통스러워하며 촉수를 풀자, 원숭이는 그대로 문어의 촉수를 안고 수면 아래로 뛰어들었다. 문어는 원숭이에게 끌려서 함께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쾅! 쾅!
수면이 즉시 요동치며 거대한 파도가 일었다. 간혹 문어의 촉수 혹은 원숭이의 몸 일부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했다.
“유 전주, 괴수들이 막상막하인 것 같은데, 가서 도와야 하지 않을까?”
붉은 눈썹을 가진 전주 적봉이 유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안 됩니다. 원숭이가 우리를 도우러 온 것인지도 불명확할뿐더러, 만약 원숭이가 패한다면 우린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유안은 그렇게 말한 뒤 몸을 돌려 배의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명령을 하달하겠다! 모든 선박은 서하대륙을 목표로 전속력으로 전진하라!”
유안의 지시에 따라 남은 열두 척의 한해거주는 해안선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