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요혼부체(妖魂附体)
“채아, 넌 늘 아는 것이 많다고 자랑했잖아. 혹시 나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를 알아?”
석목이 물었다.
채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확실히 드문 일이긴 하네. 하지만 내 깊은 견식으로 봤을 때, 네 상황은 요혼부체와 상당히 유사해.”
“요혼부체? 그게 뭐야?”
석목이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음,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좋을까…. 야만족이 수혼을 봉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을 거야. 나도 우연히 한 번 들은 적이 있을 뿐인데다 당시 주의 깊게 듣지 않아서 잘 알지는 못해. 하지만 분명 그 원숭이와 관련된 무언가가 네 몸에 있을 거야.”
채아가 말했다.
석목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내가 이번에 서하대륙으로 오고자 생각한 것은 지명수배를 피하기 위해서야. 그런데 서하대륙으로 오면 원숭이 꿈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기도 해.”
“그랬구나. 그럼 어서 서하대륙으로 가자! 거대한 문어를 물리치다니, 네가 변신한 그 원숭이는 정말 멋졌다고!”
채아가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아래의 옥 북의 빛이 밝아지더니 검은 선처럼 보이는 해안선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참, 내가 기절한 뒤에 명월교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석목이 비행을 하던 중 갑자기 물었다.
“그들은 네가 문어 해수를 붙잡아두는 것을 봤지만 도와주지 않고 바로 도망갔어. 정말 비열한 놈들이야!”
채아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석목은 눈동자를 돌려 채아를 보고 가볍게 웃었다.
“그들이 내가 원숭이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석목이 물었다.
“아니, 그저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났다고 알고 있어. 네가 타고 있던 한해거주가 침몰하자 상황이 매우 혼잡해져서, 모두 다른 일에 신경 쓸 틈이 없었거든. 모두 네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채아가 말했다.
“잘됐네. 이 기회에 유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어.”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과 채아는 두 시진이 넘게 비행해서 겨우 서하대륙에 도착했다.
석목은 해변의 노란 모래사장 위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초목이 무성한 거대 삼림이 있었다. 그곳의 생물들은 대부분 그가 본적이 없는 것이었으며, 수목은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용사의 문과 무척이나 비슷한 환경이었다.
하늘에는 태양이 눈부신 빛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쏴아아-.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나뭇잎에서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공기 중에 포함된 자연의 기가 동주대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짙었다.
“정말 좋은 곳이구나! 명월교가 이주하려는 이유를 알겠군.”
석목이 두 눈을 뜨며 말했다.
채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즉시 이 대륙을 탐험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석목은 삼림 쪽으로 걸어가서 어느 거목 아래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채아, 나 대신 주위를 좀 봐줘.”
석목이 채아에게 말했다.
채아는 대답을 한 뒤 거대한 나무 위로 날아가서 주위를 경계했다.
석목은 회복단약을 하나 복용한 뒤 천천히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반나절 뒤, 다시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난 석목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연의 기가 짙은 덕분에 그는 반나절 만에 체내의 진기와 법력을 전부 회복했고, 온 몸의 상처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석두, 전부 나은 거야?”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방하게 말했다.
“이제 신대륙을 탐험하러 가자!”
채아는 기뻐하며 날개를 펼쳐 날아올라 석목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 * *
석목은 삼림 속에서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주위를 둘러싼 수목들은 점점 울창해졌다. 이곳에는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았을 지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나무들이 즐비했고,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원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연의 기가 짙어서인지 각종 영초(灵草)도 상당히 많았다. 숲에 들어온 지 반 시진도 되지 않았는데, 석목은 영성이 높은 영초와 영물(灵物)을 두세 번이나 발견했다.
물론 그와 비례해 각종 독충이나 괴수도 많아서, 석목은 벌써 몇 번이나 그것들의 습격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 석목은 조심스럽게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흥분한 채아는 이미 멀리 날아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소통이 가능한 거리에 있어서 서로의 안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석목은 한 쓰러진 고목을 뛰어넘은 뒤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다.
앞쪽의 그늘진 곳에 파란색 풀이 두 포기 자라 있었다. 길이가 오 촌 정도 되어 보이는 그 풀의 잎은 파란색 빛이 감돌고 있었다.
“남락초(蓝络草)!”
석목이 재빨리 그 풀을 향해 다가갔다. 남락초는 매우 진귀한 영초였다. 수속성 단약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되어 값어치가 매우 높았다.
석목이 남락초를 뽑는 순간,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나타난 채아가 석목을 향해 필사적으로 날아왔다.
쾅!
채아의 뒤쪽에서 강풍이 몰아치며 작은 식물들이 갈기갈기 찢어지거나 뿌리째 뽑혔다.
그 뒤를 이어 커다란 진청색 새들이 꽥꽥 울며 채아를 쫓아 날아왔다.
몸길이가 삼사 장 정도인 새들의 입에는 괴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자라 있었다. 몸에서 뿜어내는 강력한 요기(妖气)를 가늠해보니 선천등급의 요수(妖兽)였다.
석목은 채아가 어쩌다가 저것들에게 쫓기고 있을까를 생각해볼 틈도 없이, 즉시 파천궁과 취미전을 꺼냈다.
활시위가 끝까지 당겨진 파천궁의 모습은 마치 푸른색 보름달 같았다.
휙!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검은 화살이 푸른 새의 목을 꿰뚫은 것이다. 단방에 목숨을 잃은 거대한 새는 관성에 의해 앞으로 한참 날아가다가 나무에 충돌하며 멈췄다.
휙!
이어 다시 날아간 취미전이 이번에는 다른 새의 가슴을 꿰뚫었다.
연달아 동료를 둘이나 잃은 새들이 놀란 울음소리를 내며 석목을 피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석목은 파천궁을 만지작거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파천궁은 상급 법기가 된 이후 위력이 대폭 증가했다. 같은 상급 법기인 취미전과 함께 사용하면 지계의 존재마저 위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예전에 통천선교의 지계 도사와 싸울 때 이미 한 번 확인한 바 있었다.
석목은 하늘 높이 선회하는 푸른 새들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거리라면 구 할의 확률로 명중시킬 자신이 있었다.
그 순간 허공을 선회하던 새들이 멀리 날아갔다. 석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느낀 것 같았다.
“살기에 매우 예민한 것 같군.”
석목이 파천궁과 취미전을 저장반지에 도로 집어넣으며 말했다.
청년 도사와의 전투에서 벌써 취미전 몇 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되도록 아껴서 사용해야 했다.
“후…. 위험했다. 덕분에 살았어!”
석목의 어깨에 앉은 채아는 아직도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다가 저것들에게 쫓기게 된 거야?”
석목이 물었다.
채아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재수 없게 날짐승 놈들을 마주쳐서 하마터면 잡아먹힐 뻔했네!”
“너도 날짐승이잖아….”
석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푸른 새의 시체에 다가갔다.
잠시 시체를 바라보던 석목이 수혼 주머니를 꺼내 열었다. 그러자 흡입력이 생겨나며 두 개의 푸른 수혼이 주머니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흥! 감히 이 몸을 먹으려 하더니, 고소하구나!”
채아가 그 광경을 보며 즐거워하며 말했다.
석목은 새들이 도망간 방향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선천등급의 요수를 이렇게 쉽게 마주치다니…. 서하대륙에는 정말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혼자 다니다가 또 요수의 습격을 받으면 그때도 내가 구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웬만하면 떨어지지 않는 게 좋겠어.”
석목이 말했다.
“알겠어.”
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서하대륙의 낡은 지도를 꺼내서 들여다보고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지도는 너무 간략했다. 석목은 현재 뭔가 특징이 있는 지형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해거주의 항로를 감안하면 자신이 대륙 동부의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정확히 지도상에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석목은 지도를 챙겨 넣고 다시 서쪽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지금은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면서, 현지인이나 명월서교의 사람을 만나 자세한 지도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방법밖에 없었다.
* * *
다음날 석목은 여전히 숲속을 걷고 있었다. 이 숲은 놀라울 정도로 넓어서 이미 수백 리를 걸었는데도 끝이 보일 기미가 전혀 없었다.
잠시 후 석목은 커다란 나무 아래 앉아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위협이 될 정도의 큰 위험은 겪지 않았지만, 소규모 전투가 끊이지 않아서 그는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내가 주위에서 먹을 것 좀 찾아올게.”
석목의 어깨에 앉아 있던 채아가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석목이 말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마.”
“알고 있어.”
채아는 금세 숲속으로 사라졌다.
석목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부좌를 틀었다.
잠시 후, 그는 당황한 듯한 날갯짓 소리에 눈을 떴다.
“채아,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석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야! 이걸 봐!”
날아오는 채아의 발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과일이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복숭아처럼 생겼지만 불처럼 빨간 색이었다.
“이것은….”
석목은 눈을 부릅뜨며 과일을 받아들었다. 마치 불타는 숯을 들고 있는 것 같은 열기가 손에서 느껴졌다.
달달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과일에 독이 들어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놀라울 정도로 눈이 좋은 채아에게는 독을 분별하는 능력도 있었다. 애초에 독이 든 과일을 가지고 올 리도 없었다.
이 과일에서는 무언가 사람을 유혹하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잠시 망설이던 석목은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과일의 붉은 과육이 입 안에 들어오자마자 뜨거운 기운으로 변해 체내로 흡수됐다.
이어 단전의 진기가 요동을 쳤다. 이전보다 진기가 살짝 증가한 것이 느껴졌다.
석목은 남은 과일을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러자 불의 기운이 충만한 화령지(火灵地)에서 며칠 수련이라도 한 것처럼 체내의 진기가 단번에 늘어났다.
석목은 몹시 기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채아, 이 과일 더 있어?”
“있어. 바로 저 앞쪽이야.”
채아가 말했다.
“좋아, 어서 그곳으로 안내해줘.”
석목이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채아를 뒤쫓아간 석목은 곧 어느 산골짜기에 도착했다. 그곳은 온도가 상당히 높은 곳이었다. 그 덕분에 공기에 달궈진 돌이 연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산골짜기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간 석목은 특이하게 생긴 붉은색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 나무는 줄기와 가지뿐만 아니라 나뭇잎까지도 붉어서, 언뜻 보면 마치 불에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나무에는 채아가 가져온 것과 똑같은 붉은 과일이 열 개도 넘게 열려 있었다.
석목은 기뻐하며 나무에 다가가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바닥이 갈라지며 푸른 덩굴이 솟아나와 그의 다리를 휘감으려 했다.
놀란 석목은 뛰어올라서 몇 장 밖으로 물러났다.
그 순간 지면이 더 크게 갈라지며 일 장 가까운 크기의 푸른 물체가 나타났다.
“저게 뭐지?”
석목은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푸른 물체에는 사람과 비슷한 머리가 붙어 있었다. 그 머리에는 오관(五官)이 전부 달려 있었으며, 곱슬곱슬한 녹색 머리카락도 자라 있었다. 하지만 피부는 나무껍질 같았고, 손과 발은 모두 나무의 뿌리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나무인간이 말했다. 마치 철판이 마찰하는 것처럼 듣기 싫은 목소리였다.
“야만족? 아니야. 네 몸에서는 명월교의 기운도 느껴지는구나….”
‘말을 할 수 있어?’
석목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소통이 가능한 생물을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