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쓸데없는 참견
“너는 누구냐? 안쪽에 있는 사람들과 동료인가?”
나무인간이 말했다.
“안쪽의 사람들?”
석목이 의아한 표정으로 채아를 보았다.
“안으로는 들어가 보지 않아서 나도 몰라.”
채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누구든, 화원도과(火元桃果)를 탐하는 것이라면 죽여 버리겠다!”
나무인간이 포효하며 두꺼운 나무뿌리 같은 두 팔을 휘둘렀다.
“잠깐만! 공격하지 마.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석목이 몸을 피하며 말했다.
그러나 나무인간은 석목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두 팔을 마구 휘둘렀다. 그러자 녹색의 나무뿌리가 사방에서 몰아쳤다.
나무인간은 보기엔 굼떠 보였지만 선천등급의 요수와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공격 방식이 매우 특이했는데, 지면에서 수시로 가시가 솟아나와 공격했다. 석목이 미리 정신력을 사용해 주위를 탐지하지 않았더라면 상처를 입을 뻔했다.
석목은 지면에서 솟아나온 뾰족한 가시를 피한 뒤 차가운 표정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의 입에서 나온 금전검이 일 장 가까운 길이의 거대한 검으로 변해 나무인간을 향해 날아갔다.
깜짝 놀란 나무인간이 두 팔을 휘두르자 지면에서 수많은 덩굴이 솟아나왔다. 그것들은 서로 얽히며 덩굴의 벽을 형성했다.
하지만 덩굴벽은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는 금전검을 막지 못하고 손쉽게 뚫렸다.
촤악!
금전검은 나무인간의 몸을 어깨부터 대각선 아래로 베어 두 동강을 냈다.
나무인간은 절단면에서 녹색 액체를 뿜어내며 쓰러졌고, 잠시 발버둥을 치다가 움직임을 완전히 멈췄다.
“석두, 저게 뭐였을까?”
채아가 나무인간의 시체를 호기심 넘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조금 특별한 요물(妖物)인 것 같아. 수요(树妖)가 아닐까.”
석목이 금전검을 회수하며 말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금전검으로 수요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채아는 그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이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은 부활 능력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 만일에 대비해 머리를 완전히 부숴놓는 게 좋아.”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채아는 석목을 멀뚱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붉은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 나무의 과일을 전부 따서 진묘계에 보관한 뒤, 산골짜기의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
“가자. 저 수요의 말대로라면 분명 안쪽에 사람이 있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날개를 펼쳐 날아갔다.
석목은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수요가 명월교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설마 서하대륙에도 야만족이 존재하는 것인가?’
어느 정도 숲 안쪽으로 들어가자 전방의 시야가 점차 트였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석목은 더 조심스럽게 이동한 끝에 매우 넓은 평지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방금 전에 본 붉은 나무가 상당수 있었다. 다만 그 나무들에는 열매가 거의 맺혀 있지 않았다.
석목은 나무 뒤에 몸을 숨긴 뒤 앞쪽을 보았다. 그곳에서는 두 무리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쪽은 세 사람의 선천무인으로 구성된 무리였고, 그들은 특이하게 생긴 녹색 옷을 입고 있었으며, 하늘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두 명은 중년의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아름다운 소녀였다.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눈에 띌 만큼 매끄럽고 긴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도검을 휘두를 대마다 도기와 검기가 쏘아져 날아갔다.
이들과 싸우는 상대는 회색 옷을 입은 다섯 사람이었고, 사령생물을 소환해서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다.
석목은 그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녹색 옷을 입은 세 사람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으로 보아 수요가 말한 야만족인 것 같았다.
다섯 사람의 무리가 입은 회색 옷은 유안 등 명월교 제자의 복장과 흡사했다. 그러나 세세한 부분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명월서교의 사람인가보구나.’
석목은 서하대륙에 지능을 가진 종족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들마저 없었다면 이곳에서 적응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명월서교 쪽은 인원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실력도 뒤지지 않았다. 그들이 소환한 요수 모습의 해골과 강시가 상대를 포위하면서, 세 야만족은 점차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
“도가 지나치구나! 이곳은 우리 거목(巨木) 부족의 거점이다. 화원도과를 몰래 따가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대놓고 빼앗아가려 하다니! 이 일을 반드시 족장에게 보고할 것이다!”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사령생물의 공격을 막으며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하, 그것도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야 가능하겠지.”
명월교 쪽의 마른 청년이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세 야만족의 표정이 변했다.
“명월교와 동혁(东赫) 구역의 모든 야만족이 힘을 합쳐 요족과 맞서기로 협약을 맺었거늘, 우리 거목부족의 세력 내에서 살인을 저지르다니! 소문이 퍼져 야만족과 명월교의 맹약이 깨지게 되는 것이 두렵지도 않더냐?”
녹색 옷을 입은 소녀가 소리쳤다.
마른 청년은 표정이 잠시 굳었으나, 곧 다시 차갑게 웃었다.
“처리만 깨끗하게 한다면 우리가 한 짓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느냐!”
청년이 손을 휘두르자 지면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 안에서 살이 썩은 늑대 두 마리가 나타나서 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선천등급의 늑대들은 몸이 단단해 도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가세하자 세 야만족의 상황은 더욱 불리해졌다.
한 늑대가 세 야만족 중에서 가장 약한 소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소녀는 기합을 지르며 쌍검을 휘둘러 늑대의 앞발 공격을 맞받아쳤다.
깡!
쌍검이 늑대의 발톱에 밀려나며 눈처럼 새하얀 소녀의 팔에 긴 상처가 생겨났다.
“소주(少主)!”
그 광경을 보고 크게 놀란 두 중년의 야만족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두 야만족의 몸 주위에 녹색 빛의 고리가 생겨나더니, 몸집이 커지며 피부가 녹색 나무껍질처럼 변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석목이 깜짝 놀랐다.
“토템 변신! 식물의 혼…인가?”
두 남자가 변신을 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지만, 그들의 몸에 봉인된 혼은 조금 특별해 보였다.
변신을 마친 둘의 모습은 조금 전에 석목이 본 수요와 매우 닮아 있었다. 기운이 대폭 강해진 두 사람은 사령생물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들은 사령생물의 무기에 베이는 것이 두렵지 않은 듯, 방어는 완전히 무시하면서 공격을 퍼부었다.
팍! 팍!
사령생물들의 무기가 둘의 몸에 닿았다. 그러나 아주 얕은 상처밖에 입히지 못했다.
두 야만족은 밝은 녹색 빛을 뿜어내는 무기로 사령생물 몇 마리를 연달아 참살했다.
그때,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야만족이 녹색의 가죽 부적을 꺼내 땅으로 던졌다. 이때 부적이 녹색으로 반짝이며 지면 아래로 흡수되었다.
다음 순간, 땅이 진동하더니 날카로운 가시들이 지면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들을 포위하고 있던 명월교의 제자들이 놀라 다급히 몸을 피했다. 그 바람에 포위망에 순간적으로 틈이 생겼다.
“소주, 어서 가세요!”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야만족이 커다란 도광을 날려 늑대와 사령생물들을 뒤로 밀어내며 소리쳤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는 포위망에 생겨난 틈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석목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소녀가 정확히 그가 숨어있는 방향으로 달려왔기 때문이다.
“어딜 도망가느냐!”
명월교의 마른 청년이 화난 표정으로 소녀를 쫓았다.
그가 한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서 회색빛이 반짝이더니, 검은 뼈창이 나타나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소녀가 몸 뒤로 검을 휘둘러 뼈창을 베었다.
깡!
뼈창이 소녀의 검에 절단됐다.
소녀는 다시 달리려는 순간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그리고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진 그녀의 종아리에는 어느새 침이 하나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침을 통해 검은 연기가 체내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하하! 내 쌍비침자(双飞针滋)의 맛이 어떠하냐?”
청년이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소녀에게 다가갔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본 두 중년 야만족이 필사적으로 달려오려 했으나, 명월교의 제자와 사령생물에 의해 가로막혔다.
소녀는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려 발버둥을 쳤다.
“의미 없는 반항은 하지 말고 얌전히 포기하면 얼마나 좋으냐!”
청년이 혀를 차며 빈정대듯 말했다.
소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지만 곧바로 다시 땅에 쓰러졌다.
“나의 음침(阴针)에는 연골음독(软骨阴毒)이 묻어 있다. 한동안은 꼼짝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청년이 소녀를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소녀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예쁜 계집을 그냥 죽이기는 너무 아깝지….”
뜨거운 눈빛으로 소녀의 몸을 위아래로 감상하던 청년이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소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남자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었다.
동시에 그녀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왼손을 허리춤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청년은 그녀의 반응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듯 더욱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소녀의 몸에서 한 줄기 녹색 빛이 청년을 향해 뻗어나가며 폭발했다.
청년은 간발의 차로 뒤로 공중제비를 돌며 몸을 피했다. 그러나 폭발이 너무 가까웠던 탓에 그의 옷은 절반 가까이 찢어지고 피부에 상처가 생겨났다.
“이 년이!”
분노한 청년이 대검을 꺼내 소녀를 향해 거대한 도광을 날렸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본 두 야만족이 격분하여 고함쳤지만, 공격을 막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펑!
그 순간 지면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청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기가 흩어지자 지면에는 도광의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청년은 몇 장 떨어진 곳에 검은 옷을 입은 덩치 큰 청년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석목이었다. 소녀는 그의 바로 옆에 있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본 두 중년의 야만족과 명월교의 제자들이 깜짝 놀라 전투를 중단했다.
소녀도 멍한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누구냐! 감히 명월교의 일에 간섭하다니, 사는 것이 귀찮은 모양이로구나. 몸이 상당히 좋아 보이니 동시(铜尸)로 만들어 써주겠다.”
청년이 눈앞에 나타난 석목을 보며 말했다.
석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죽여주마!”
청년이 눈을 섬뜩하게 빛내며 하얗게 빛나는 대검을 들어올렸다.
바로 그때, 석목이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나타난 금전검이 순식간에 청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영기!”
놀란 청년이 대검을 휘두르며 뒤로 빠르게 후퇴했다.
휙!
그 순간, 금전검에서 분리된 하얀 빛의 사슬이 독사처럼 꿈틀거리며 날아가 청년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몸이 구속된 청년이 움직임을 멈춘 사이 금전검이 밝은 빛을 내뿜으며 그의 목을 내려쳤다.
“악”
금전검이 내뿜는 빛 사이에서 단말마가 들려왔다. 이어 다시 작아진 금전검이 석목에게 날아 돌아왔다.
땅에는 몸에서 분리된 청년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공포에 질린 채였다.
순식간에 우두머리를 잃은 명월교의 네 제자는 놀란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더니 동시에 달아나기 시작했다.
석목이 차가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금전검이 다시 날아올라 네 사람을 향해 날아갔다.
날아가며 몸집이 커진 금전검은 금빛을 뿜어내더니 네 개의 검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