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거목부족
“으악!”
“악!”
두 사람의 비명소리가 거의 동시에 울렸다.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제자 둘이 몸을 꿰뚫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비교적 강한 나머지 두 사람은 각각 법기와 부적으로 금전검의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냈고, 상처를 입은 채 계속해서 도망쳤다.
휙! 휙!
그때, 두 사람을 향해 검은 화살이 날아갔다. 이번에는 그들도 공격을 피해낼 도리가 없었다. 추미전에 몸을 관통 당한 그들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잠시 몸부림쳤지만 결국 숨이 끊어졌다.
세 야만족은 놀란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실력이 상당한 명월교 교도들을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순식간에 처치해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귀하의 도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토템 변신을 해제한 두 야만족이 한 손을 가슴에 가져다대며 석목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별 일 아닙니다.”
석목이 말했다.
야만족 소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 했지만, 그녀는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소주, 괜찮습니까?”
두 중년의 야만족이 그녀에게 다급히 다가와 물었다.
석목은 소녀를 힐끔 본 뒤, 정신력으로 마른 청년의 시체를 뒤져보았다. 그의 시선이 회색 반지가 끼워진 왼손에 고정됐다.
석목이 다가가서 시체의 손에서 반지를 뽑아내자, 그의 손에 하얀 병이 나타났다. 석목은 병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한 번 맡아본 뒤, 소녀에게 다가가 병을 건네주며 말했다.
“이것이 해독약일 겁니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소녀는 힘없는 손으로 가까스로 옥병을 받아들고 단약을 하나 꺼내 삼켰다.
그 사이 석목은 다른 명월교 제자들의 시체에 다가가 그들이 지니고 있던 재물 전부와 취미전을 챙겼다.
그는 그들 다섯 명이 전부 저장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반지의 공간은 넓지 않았지만 안에는 영석이 이삼만 개씩이나 들어 있었고, 영초와 광석도 있었다.
‘서하대륙에는 자원이 정말 풍부하구나.’
석목은 감탄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서하대륙의 지도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때, 체내의 독을 대부분 중화한 소녀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희 세 사람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소녀가 말했다.
“사소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석목은 대답을 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나무 위에는 매혹적인 빛을 뿜어내는 붉은 과일이 상당수 맺혀 있었다.
“화원도과를 원합니까?”
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방금 대화를 들어보니 제가 탐해서는 안 될 것 같군요.”
석목이 말했다.
“저희를 도와주셨으니 그 보답으로 마음껏 따가세요. 화원도과는 양속성 심법을 수련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최상급 영약(灵药)입니다. 체내의 진기를 대폭 늘려주죠.”
소녀가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두 중년 야만족이 표정을 굳히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소녀가 손을 들어 저지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석목은 미소를 짓더니 나무에 올라 화원도과를 따기 시작했다.
그는 근처에 있는 나무의 과일을 전부 따고 손을 멈췄다. 그 수가 벌써 오십 개 가까이 됐다.
두 중년 야만족은 텅 비어버린 나뭇가지를 보며 울상이 되었지만, 소녀는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정도면 됩니까?”
소녀가 물었다.
“한동안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땄습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소녀는 두 뺨을 물들인 채 석목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저희는 이 근처 거목부족의 부족원입니다. 존함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회색 머리카락의 야만족이 소녀의 표정을 보더니 한걸음 다가와 물었다.
“저는 열사부족의 목석입니다. 이곳은 우연히 지나가던 길이었습니다.”
석목이 대답하며 옷섶을 살짝 열었다. 그의 가슴에 있는 토템이 드러났다.
“열사부족!”
두 중년 야만족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는 거목부락 족장의 딸 녹당입니다.”
소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녹당 소주였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급한 일이 없다면 저희 마을에 잠시 머물다가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성심껏 대접하겠습니다.”
소녀가 몸을 꼬며 말했다.
“소주, 열사부족은 흉만입니다. 마을에 데리고 갔다가 어쩌면….”
회색 머리카락의 야만족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직접 아버지께 설명할게요.”
소녀가 말했다.
두 사람은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했지만, 석목의 귀에는 전부 들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체면 차리지 않고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어찌됐든 간에 이것은 서하대륙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럼 저를 따라오세요.”
소녀가 기쁜 표정으로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석목은 그녀를 뒤를 따랐다.
일행은 곧 골짜기의 입구 근처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나무인간의 시체를 발견했다.
“나준수요(萝梭树妖)!”
놀란 녹당이 석목에게 물었다.
“설마 목 공자가 이 나준수요를 죽였습니까?”
“맞습니다.”
석목은 부인하지 않았다.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다른 두 야만족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혹시 이 수요를 죽이면 곤란한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저 줄곧 동혁산맥에서 생활하던 나준수요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 조금 이상했을 뿐입니다.”
소녀가 다급히 말했다.
석목은 나준수요에 관해 더 알고 싶었지만, 무언가 물어보기에는 불편한 분위기였다.
반 시진 후, 일행은 산에 지어진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대부분 목재로 지어진 마을의 건물들은 조금도 낡은 느낌이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특별한 운치가 느껴졌다.
마을의 정중앙에는 주위의 나무보다 훨씬 커다란, 은은한 녹색 빛을 뿜어내는 나무 하나가 있었다.
마을 주위에는 목재로 만든 장벽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 위에서 야만족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밖에서 보니 마을은 크지 않았고, 인구는 천여 명 정도일 것 같았다.
입구에 도착한 일행은 곧 한 무리와 맞닥뜨렸다.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이는 덩치가 크고 위엄이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방대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는 지계초기의 존재였으며, 나머지는 전부 선천무인이었다.
석목은 이런 작은 마을에 지계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아무래도 서하대륙의 짙은 자연의 기는 무인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일행을 발견한 덩치 큰 야만족은 즉시 석목에게 시선을 돌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님.”
소녀가 달려가며 외쳤다.
“족장님!”
옆의 두 중년 야만족도 급히 인사했다.
“영지를 둘러보라 했더니 어찌 이렇게 늦은 것이냐?”
거목부족의 족장이 소녀에게 질책하듯 물었다.
“영지를 둘러보던 도중 명월교의 습격을 받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요.”
소녀가 명월교와 전투를 벌이게 된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빌어먹을! 오만방자한 놈들 같으니라고!”
이야기를 들은 족장이 분노했다.
“원래대로라면 죽음을 면치 못했겠지만, 여기 열사부족의 목 공자가 명월교의 제자들을 전부 죽이고 저희를 구해주셨어요.”
소녀가 석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사부족이라는 말을 들은 족장의 표정이 즉시 굳었다.
그의 주변에 있는 이들도 모두 경계하는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저는 목석입니다. 거목의 족장님을 뵙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내 딸을 구해줘서 고맙소.”
족장은 감사의 말을 했지만 표정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같은 야만족으로서 도왔을 뿐입니다.”
석목이 말했다.
“열사부족은 흉만 중에서도 커다란 부족인데 무슨 일로 이런 외진 곳까지 왔는지….”
족장이 물었다.
“대륙을 여행하다 길을 잃어 우연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아, 여행을 하다가 이곳까지 온 것이군요.”
족장이 전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하더니,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딸을 구했다고는 하나, 우리 거목부족은 평만이라 흉만을 손님으로 받기 힘들다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라네.”
석목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기회에 서하대륙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 했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떠나겠습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인 후 몸을 돌렸다.
“아버님, 저 분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어요. 우리 거목부족은 생명의 은인을 이런 식으로 대하나요?”
소녀가 멀어지는 석목을 보며 초조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이게 부족의 규칙이다! 저 자가 흉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곳까지 데리고 오다니! 규칙을 어겼으니 종묘궤(宗庙跪)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징계하겠다.”
족장이 소녀에게 말한 뒤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 석목이 걸어간 방향을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거목부족의 마을을 떠난 석목은 기분이 살짝 우울해졌다. 누구라도 이런 일을 겪는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을을 떠나 몇 리를 걷다가 작은 산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동안 걷자 마음속의 답답함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본래 대범한 성격을 가진 석목에게 있어서 방금 마을의 입구에서 쫓겨난 것 자체는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어떤 보답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낯선 지역에서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어렵게 찾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배척당하는 바람에 수많은 궁금증을 풀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 답답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대륙에 야만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다시 찾아내면 될 일이었다.
바로 그때, 채아가 날아와서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하하, 석두, 그들에게 쫓겨나서 그런지 풀이 죽어 보이네.”
채아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시끄러워.”
석목이 손가락을 튕겨 채아에게 강풍을 날리며 말했다.
“아야.”
비틀거리다가 어깨 아래로 떨어질 뻔한 채아가 이어서 하려던 말을 집어 삼켰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거목부족의 방향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목부족의 마을로 향하는 길에는 두 중년의 야만족이 녹당의 양 옆에 꼭 붙어 있었고, 그래서 숲에서 나가는 방법을 물어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방법도 없으니, 그저 이전처럼 무작정 서쪽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자.”
다시 고개를 돌린 석목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한동안 걷던 그는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높이가 백 장 가까이 되는 산봉우리의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구름까지 닿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하나 더 있었다. 산봉우리의 정상에는 너비가 수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폭포가 있어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주위 산간에 메아리쳤다.
폭포수는 떨어지면서 사이사이에 솟아 있는 수십 개의 검은 바위와 부딪히며 물안개를 만들어냈다. 산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물안개가 흩날리는 모습은 상당히 웅장한 풍경이었다.
석목은 동주대륙에서도 이처럼 거대한 폭포는 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쪽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건조한 곳을 찾아 주위를 살핀 뒤, 간단한 결계를 설치하고 가부좌를 틀었다.
잠시 후 어둠이 짙어지며 하늘에는 밝은 보름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석목은 두 눈을 감고 탄월식의 자세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