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도왕을 훔치다
석목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흑우부락에서는 일순간 소란이 일었고, 곧 몇 사람이 도원산골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석목의 옥북에 비하면 훨씬 느렸다.
한 식경 후, 석목은 도원산골 입구에 착지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주위에 있는 자연의 기가 격렬하게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졌다. 골짜기 안쪽에서는 보라색 광선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살짝 안심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아직 명월교가 결계를 파괴하고 도왕을 손에 넣은 것 같지는 않았다.
석목은 즉시 자신의 기운을 지우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겨가며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잠입했다.
채아는 석목보다 먼저 산골짜기 안쪽으로 날아 들어갔다.
석목은 채야의 시야를 공유해 산골짜기의 모든 상황을 파악한 덕분에, 지난번 전투가 일어났던 곳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보라색 빛은 그곳보다 더 안쪽에 있었으며,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의 파동이 더욱 격렬해졌다.
석목은 숨을 가볍게 들이마시더니 소리 없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안쪽으로 수십 장 이동하자 골짜기가 더욱 좁아지며 주위 온도가 상승했다.
그곳에서는 명월교의 두 제자가 몸을 숨기고 바깥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위치는 이미 채아에게 발각된 뒤였고, 석목은 그들의 눈을 피해 지나갔다.
산골짜기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서 모퉁이를 돌자 눈앞에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은 수십 장 크기의 원형 공터였다. 길은 이곳에서 완전히 막혀 있었다.
석목은 거대한 돌 뒤에 몸을 숨기고 머리를 내밀어 상황을 살폈다.
그곳에는 붉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으며, 주위에 오륙십 명의 명월교 교도가 있었다.
녹당에게 화원수왕에 대해 들었을 때, 석목은 그것이 굉장히 거대한 나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붉은 나무는 높이가 고작 삼 장도 되지 않았다.
나무의 가지는 구불구불했으며, 줄기는 붉은 옥석(玉石)처럼 붉은빛을 내뿜었고 잎은 매우 적었다.
하지만 나무의 가장 위에는 주먹만 한 자홍색 과일이 세 개 열려 있었다.
나무는 반원형의 보라색 결계에 덮여 있었다. 그 결계는 두께는 얇았지만 굉장히 견고한 느낌을 주었다.
결계 주위에는 명월교 교도 십여 명이 있었다. 그들은 복잡한 진법을 구성해서 보라색의 결계를 공격하고 있었지만, 큰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을 훑어보던 석목은 그중 머리에 둥근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기운을 가늠해 봤을 때, 그 남자는 지계초기의 강자인 것 같았다. 그를 제외한 십여 명은 선천무인 혹은 성계술사였으며, 그 외에는 전부 후천무인이나 영계술사였다.
모자를 쓴 중년의 남자가 한 손에 옥여의와 비슷한 보라색 돌을 들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와 돌에 흡수됐다.
‘저것이 진목석인가 보군.’
그 모습을 보며 석목이 생각했다.
웅!
곧 진목석이 남자의 손에서 떠오르더니 보라색 태양처럼 눈 부신 보랏빛을 뿜어냈다.
순간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진목석을 바라보았다.
중년 남자가 두 팔을 휘두르자 진목석이 보라색 결계를 향해 천천히 날아갔다.
지지직!
결계 근처에서 움직임을 멈춘 진목석이 결계를 향해 보라색 번개를 발사했다.
꽈광!
천둥소리같이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결계의 빛이 이전보다 약해졌다.
중년 남자는 표정이 밝아지며 계속해서 진목석을 사용했다.
지지직!
충격이 계속되자 결계는 아주 얇아졌다.
남자가 엄숙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팔을 휘두르자, 두꺼운 보라색 번개가 마치 창용(苍龙)처럼 매섭게 결계를 들이받았다.
쨍강!
얇아질 대로 얇아진 결계가 결국 깨졌다.
중년의 남자가 기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그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 화살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왔다.
매우 빠르게 날아온 화살은 소리가 들려온 것과 거의 동시에 이미 남자의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남자는 결계를 파괴하느라 나무에 온 정신이 쏠려 있어서 방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게다가 골짜기의 입구에 수하를 배치해놓았기 때문에 습격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놀란 남자가 피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움직이며 진기의 보호막으로 급소를 막은 것이 고작이었다.
푹!
검은 화살은 엄청난 위력으로 진기의 보호막을 깨트린 뒤, 남자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악!”
남자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거대한 힘에 이끌려 멀리 날아가서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진 단주(坛主)님!”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명월교 제자들이 놀라 외쳤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엄청난 속도로 도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 자를 막아라!”
검은 화살에 어깨를 꿰뚫린 진 단주가 쓰러진 채 소리쳤다.
명월교 제자들은 그의 말을 듣고서야 상대를 향해 각자 무기를 휘둘렀다.
“흥!”
갑자기 나타난 그 자는 코웃음을 치며 팔을 휘둘렀다. 한 번에 열 장이 넘는 부적이 뿌려졌다. 화룡(火龙), 번개, 회오리, 얼음기둥 등이 나타나더니 명월교 제자들에게 몰아쳤다.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그 부적들은 대부분 중급 부적이었으며, 상급 부적도 몇 장 섞여 있어서 위력이 무시무시했다. 명월교의 후천무인이나 영계술사는 술법에 즉시 파묻혔으며, 상대적으로 강한 이들도 다급하게 방어를 했다.
기회를 틈타 그들을 뛰어넘은 석목은 나무 위에 열린 도왕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 주위의 지면이 갈라지며 아래에서 붉고 날카로운 덩굴이 솟아 나왔다. 그것은 마치 독사처럼 석목을 덮쳤다.
덩굴은 교묘한 각도로 다가왔고 움직임이 매우 빨랐다. 피하지 않는다면 도왕에 손이 닿는 즉시 몸이 꿰뚫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석목은 몸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는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계속해서 나무로 접근했다.
깡!
금속이 충돌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공격에 맞고 날아간 석목이 몇 장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한 바퀴 구르고 즉시 몸을 일으킨 석목의 손에는 도왕이 들려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그의 피부는 검은 비늘에 뒤덮여 있었지만, 공격에 상처를 입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얕은 외상이었을 뿐 심한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순간 나무 근처에서 키가 이 장이 넘는 붉은 나무인간이 지면을 뚫고 나타났다. 그것은 이전에 석목이 죽인 나준수요와 생김새가 닮았지만, 거목부족장과 진 단주보다도 강력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어 지면이 흔들리더니 나무인간 둘이 더 나타나서 붉은 나무인간 옆에 섰다. 뿜어내는 기운으로 보아 둘 다 선천등급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진 것 같았다.
“나준수요다!”
명월교 제자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나무인간이 나타날 줄 몰랐던 듯, 다급히 중년 남자 곁으로 모여들었다.
“나준수요(萝梭帅妖) 혈규존자(血葵尊者)!”
어느새 어깨에서 화살을 뽑아내고 몸을 일으킨 진 단주가 붉은 수요를 보며 말했다.
진기가 주입된 강력한 화살의 일격에 근골이 상한 그는 왼쪽 팔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하, 본 존자(尊者)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니, 진 단주는 기억력이 정말 대단하구려. 보아하니 귀하도 화원도왕에 흥미가 있는가 보오?”
혈규존자는 사람의 말을 했지만, 그 목소리는 매우 듣기 거북했다.
진 단주는 단약을 하나 꺼내 복용하며 석목을 향해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때 골짜기 밖에서 비명이 들려오더니 스무 명 남짓한 사람이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들은 부족장과 녹당을 포함한 거목부족의 야만족이었다.
그들은 골짜기의 상황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진 단주,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기로 협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부족의 금지(禁地)에 침입하더니, 오늘은 마을에 침입한 것도 모자라 나준수요와 손을 잡고 화원도왕까지 노리다니!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혈규존자를 발견한 거목부족장이 바로 진 단주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하하, 녹림족장, 오늘 이럴 줄 알았더라면 애당초 그런 협약을 맺었겠는가? 오늘 도왕은 반드시 가져갈 것이네! 혈규존자와는 이곳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뿐 힘을 합칠 계획은 없었지만, 그대 말을 듣고 보니 참으로 괜찮은 생각인 것 같군. 혈규존자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진 단주가 고개를 돌리며 혈규존자에게 물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오늘 하루는 힘을 합치도록 하지.”
혈규존자가 괴상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거목부족장이 표정을 굳히며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옆에 있던 녹당이 석목의 손에 들려 있는 도왕을 발견하고 놀라서 외쳤다.
“목 공자,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죠? 그 도왕은….”
분노에 가득 차 명월교 교도와 나준수요에게 집중돼 있던 거목부족 야만족들의 시선이 그제야 석목에게 향했다.
“도왕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참지 못하고 마음대로 하나 따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석목은 사과의 말을 건네며 과일을 진묘계에 넣었다.
그는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듯 쉽게 말했지만, 거목부족의 야만족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상황을 봤을 때 석목이 명월교와 같은 패거리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명월교의 무리 중에는 지계의 존재인 진 단주를 제외하고도 십여 명의 선천무인과 성계술사가 있었다. 게다가 지계중기의 실력을 가진 혈규존자까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왕은 석목의 손에 있었던 것이다.
“네놈….”
분노한 거목부족장이 입을 열려는 순간, 석목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저는 물건을 사고도 돈을 내지 않는 그런 후안무치한 사람은 아닙니다. 거목부족의 물건을 손에 넣었으니 제가 빚을 진 것이죠. 이 빚은 저들을 내쫓아 주는 것으로 갚는 셈 치면 어떻습니까?”
그 말을 들은 거목부족의 야만족들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고작 일개 선천무인이 내뱉는 허언 정도로 치부한 것이다.
그때, 녹당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 묻은 화살과 진 단주의 상처를 발견했다. 그녀는 급히 거목부족장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였고, 그러자 부족장의 표정이 변했다.
그러나 진 단주와 거목부족장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혈규존자가 코웃음을 치며 나무 위의 도왕을 향해 덩굴을 뻗었다.
“건방진 놈! 본 존자가 원하는 물건을 감히 네놈이 어찌하겠다는 말이냐!”
그 순간 석목의 손이 반짝하더니 장궁이 나타났다. 그는 덩굴을 노리고 화살을 쏘았다.
혈규존자가 화살을 피해 다급히 덩굴을 회수하는 잠깐의 틈에, 석목이 어느새 다가왔고, 그가 흑도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베었다.
석목의 움직임이 이토록 빠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혈규존자는 반사적으로 핏빛 옥석처럼 변한 두꺼운 두 팔을 들어 맞받아쳤다.
동시에 옆에 있던 두 수요도 석목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하늘을 가득 덮은 금전검의 금빛 검영에 가로막혔다.
놀란 두 수요가 움직임을 멈추고 공격을 막았다.
“나준수요는 제가 맡을 테니 명월교 사람들을 막으세요!”
석목이 소리쳤다.
“가자!”
거목부족장이 소리치며 명월교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녹당은 복잡한 표정으로 석목을 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술법을 사용하려는 명월교의 한 성계술사에게 달려들었다.
인원수는 명월교가 더 많았지만 진 단주는 석목의 화살에 상처를 입어 제대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기에, 두 세력의 싸움은 호각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