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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26화 (226/916)

226화. 적환요망(赤环妖蟒)

곳곳에 무성한 풀이 자라 있는 어느 광활한 연못 위로, 가끔 새들이 날아서 지나갔다.

연못은 그 위에 끼어 있는 옅은 안개 덕에 매우 몽환적이고 아름다워 보였다.

현재 석목은 어느 고지에서 주위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채아는 그의 어깨 위에 기운 없이 앉아 있었다.

상당히 넓은 이곳 소택지는 사굴소택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석목이 거목부족을 떠난 지 이미 한 달이 됐다. 그는 길을 재촉하지 않고 하루의 절반은 수련에 집중했다.

동주대륙보다 더한 위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서하대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을 키워야만 했다.

녹당에게 받은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사굴소택은 열사부족의 세력 범위 에 포함된 지역이었다. 이곳을 지나면 열사부족이 관할하는 일강성(日康城)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굴소택에는 이름 그대로 뱀 종류의 요수가 굉장히 많이 있었고, 그중에는 극독을 가진 것들도 많아서 위험하기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각종 특수한 효과를 지닌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어서, 영초와 영화를 찾는 이들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기도 했다.

석목은 사흘 전 사굴소택에 도착했다. 그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길을 돌아가지 않고 소택지를 가로지르기로 결심했다.

“석두, 그냥 날아서 지나가면 될 것을 왜 걸어가려고 하는 거야? 이곳은 더럽고 냄새가 나는데다 위험하기까지 하잖아.”

채아가 원망하듯이 말했다.

“최대한 빨리 서하대륙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직접 체험하는 것이 가장 빨라. 그리고 탐험은 언제나 재미있잖아.”

석목이 말했다.

능천봉으로 가는 길에 이런 위험 지역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매번 길을 돌아가거나 날아서 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위험 지역은 날아서 지나간다고 해도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특히 소택지 같이 평평한 지형에서 날아다니면 너무 눈에 띄어서 공격을 당하기가 쉬웠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석목이 고지 아래로 내려갔다.

이런 위험 지역을 지날 때는 조금의 방심도 금물이었다. 소택지의 생물들은 모두 위장에 능했기에, 석목은 이곳에서 사흘 동안 무척이나 애를 먹었다.

쾅!

석목이 검은 풀숲을 지나는 도중, 지면 아래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검은 구렁이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석목은 마치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빠르게 지면을 박차고 뒤로 물러나며 구렁이의 공격을 피했다.

공격에 실패한 구렁이가 풀숲에서 몸을 완전히 드러냈는데 밖으로 나온 구렁이의 몸길이는 오 장 가까이 되었으며, 두께는 맷돌만 했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는 며칠간 이 후천등급의 흑구망(黑蚯蟒)과 이미 여러 차례 맞닥뜨렸었다.

석목이 손가락을 튕기자 금전검이 나타나서 검은 구렁이를 향해 날아갔다.

검은 구렁이의 지능은 높지 않은 듯했다. 날아오는 검을 보고도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아가리를 더 크게 벌리며 달려들었다.

석목이 손가락을 흔들자 금전검이 허공에서 곡선 모양의 궤적을 그렸다.

동시에 검은 구렁이의 거대한 머리가 몸을 떠나 날아가며 사방으로 피를 뿌렸다. 머리를 잃은 구렁이의 몸이 잠시 몸부림을 치다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금전검을 회수한 석목이 구렁이 시체 곁으로 다가가 수혼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자 검은 수혼이 구렁이의 시체에서 날아올라 수혼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석목이 길을 돌아가거나 날아서 소택지를 지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수혼을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토템은 다음 단계로의 돌파를 앞두고 있었다. 동주대륙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수혼을 수집하지 못했던 석목은, 토템 비술의 위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흑구망을 처치한 석목은 바로 출발하지 않고, 그것이 숨어 있던 곳으로 걸어갔다.

요족명록에 기술된 내용에 따르면, 흑구망이 서식하는 곳에서는 풍령인(风灵引)이라 불리는 영초를 찾을 확률이 높았다. 거의 모든 뱀독을 해독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진 이 영초는 매우 진귀한 것이었다.

바로 그때, 앞쪽의 연기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석목을 보고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를 마주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석목은 그들의 옷에 암홍색 구렁이 문양이 자수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열사부족의 상징이었다.

그들 무리 중 대표로 보이는 자는 등에 검을 메고 있는 선천후기의 무인이었다. 그 사내 외에 선천초기의 무인이 두 명 더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후천무인이었다.

석목의 모습을 살펴보던 사내는 그의 손에 끼워져 있는 진묘계, 그리고 허리춤의 수혼 주머니를 보더니 고함을 질렀다.

“이놈! 네놈은 누군데 사굴소택에서 공공연히 수혼을 수집하느냐!”

석목은 그들을 잠시 쳐다보았으나, 이내 무시하고 시선을 돌려 주위를 계속해서 뒤지기 시작했다.

사내는 분노했지만 석목의 태도에 무언가 확신이 서지 않는 듯 그의 옆에 있는 여윈 남자에게 눈빛을 보냈다.

“꼬마야, 등 어르신이 묻지 않느냐? 귀를 먹은 것이냐, 아니면 말을 못하는 것이냐? 그것도 아니면 죽고 싶은 것이냐?”

여윈 남자가 곡도를 뽑아 석목을 가리키며 외치자, 다른 이들도 다가와 그를 둘러쌌다.

풀숲에서 푸른색 풀을 찾아낸 석목은 그것을 한 묶음 뽑아 진묘계에 넣은 뒤, 그제야 고개를 들며 말했다.

“너희야말로 누구지? 내가 이곳에서 수혼을 수집하는 게 네놈들과 상관이 있나?”

“우리는 사굴소택에 주둔하는 열사부족의 순찰대다. 바로 너 같은 밀렵꾼을 전문적으로 잡는 일을 하지. 현장에서 발각됐으니 발뺌할 수 없을 것이다!”

등에 검을 멘 사내가 석목이 외부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아, 순찰대? 다른 부족은 이곳에 들어오면 안 되는 건가?”

석목은 그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수혼 주머니를 보더니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알면 됐다.”

검을 멘 사내가 말했다.

“밀렵꾼이 아니라 나 역시 열사부족의 사람이다.”

석목이 그렇게 말하며 가슴의 열사토템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들은 석목에게는 손쉬운 상대였지만, 막 열사부족의 근거지에 온 참이기 때문에 일단은 조금 참기로 했다.

열사부족 무리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곧 작은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같은 부족원이었군 그래. 하지만 이곳에서는 영석을 내야 사냥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나 보군? 이곳에 처음 와서 규칙을 몰랐던 것 같으니, 수혼 주머니와 저장반지를 내놓는다면 한 번 봐주도록 하지.”

사내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의 표정이 점차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신이 어려보이고 혼자이니 약탈을 하려는 수작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저항이라도 하려는 것이냐!”

사내가 소리를 치자 다른 이들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석목은 푸른색 부적을 한 장 꺼내 사용한 뒤, 순식간에 사내에게 다가가 흑도를 휘둘렀다.

전신에 푸른빛이 감도는 석목의 귀신같은 움직임에 사내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선천후기의 무인답게 재빠르게 등 뒤의 칼을 뽑아 맞받아쳤다.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검을 든 사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고, 두려울 정도의 강력한 힘이 흑도를 통해 전해지면서 그의 몸이 땅 아래로 무릎까지 깊이 파묻혔다.

석목이 바닥에 박힌 사내의 가슴을 강하게 걷어찼다.

쿵!

석목의 발에 차인 사내가 몇 장이나 뒤로 날아가서 바닥에 떨어졌다.

석목에게 달려들던 나머지 사내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처음에 덤빈 사내가 일 초만에 패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석목은 자리에 서서 검은 수혼 주머니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방금 사내가 날아가는 사이에 그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

수혼 주머니에 정신력을 주입해본 석목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사내의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단 한 방에 뼈가 두 대나 부러진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사내를 한 번 본 뒤 자신을 에워싼 무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그들은 다급히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열었다.

석목이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 가지 않았을 때 멀리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싸아악….

석목의 어깨에 얌전히 앉아 있던 채아가 갑자기 소리쳤다.

“석두, 앞을 조심해!”

그 소리에 석목은 앞을 보았다. 넘실거리는 연기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건물만한 크기의 뱀 머리가 짙은 안개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뱀의 눈은 마치 초롱불처럼 붉은 빛을 뿜어냈으며, 머리의 양측에는 뿔이 두 개 솟아 있었다.

이어서 거대한 뱀의 몸이 나타났다. 길이가 삼십 장 가까이 되는 뱀의 몸에는 붉은색 고리 무늬가 가득했다.

쉬익….

검은 구렁이가 붉은 혀를 내밀며 섬뜩한 눈빛으로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그림자가 그들 위로 지나가는 바람에 원래 어두웠던 소택지가 더욱 어두워졌다. 동시에 무서운 기운이 압박해오자 모두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석목의 표정이 살짝 굳었고, 검은 구렁이가 내뿜는 압박감은 혈규존자의 것과 비슷했다. 그것으로 보아 구렁이는 지계중기에 가까운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은 움직임 없이 조용히 구렁이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처럼 침착하지 못했다.

“적환요망이다!”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흩어져 도망쳤다.

그러자 적환요망은 순식간에 십여 장의 거리를 이동하더니 입을 벌려 한 야만족의 상반신을 물었다.

구렁이의 입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오다가 멈췄고, 구렁이는 고개를 들어 한입에 그를 삼켜버렸다.

그 광경을 본 다른 이들이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빨라봐야 적환요망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멀리 도망갔던 마지막 한 명까지 전부 잡아 먹혔다.

그러나 석목은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에서 서서 적환요망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는 연나를 불러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연나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석목도 도주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옥북을 사용한다 해도 거대한 구렁이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전력으로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열사부족의 야만족을 전부 먹어치운 적환요망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느릿한 움직임으로 석목에게 다가왔다.

“요망(妖蟒)의 수혼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네놈도 열사부족이구나.”

적환요망이 말했다.

“마음대로 생각해도 좋다.”

석목이 말했다.

“도망가지 않다니 용기가 가상하다만, 열사부족의 야만족인 이상 살려둘 수 없다!”

말을 마친 적환요망이 즉시 석목에게 달려들며 두꺼운 꼬리를 휘둘렀다.

그 순간, 석목의 가슴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전신에 뱀의 비늘이 돋아났고,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마친 그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석목은 다가오는 뱀의 꼬리를 피하지 않고 진기를 전력으로 주입한 오른팔을 내뻗었다. 그의 주먹은 마치 검은 태양처럼 검은 빛을 강하게 내뿜고 있었다.

쾅!

뱀의 꼬리가 마치 성벽이라도 친 것 마냥 그대로 튕겨나갔다.

동시에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친 석목 역시 탄환처럼 튕겨서 십여 장 밖까지 날아갔다.

적환요망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 비늘이 몇 조각 떨어져나간 꼬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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