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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27화 (227/916)

227화. 흉만의 대성(大城)

“경지에 비해 힘이 강하구나!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분노한 적환요망이 큰 소리로 외치며 석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전신의 붉은 고리 무늬가 강하게 빛나고 있는 적환요망의 기세는 이전보다 더욱 강했다.

적환요망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석목이 떨어진 곳으로 가다왔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순간, 어리둥절해 하는 적환요망의 뒤쪽에서 푸른빛에 둘러싸인 석목이 바닥을 뚫고 튀어나왔다.

석목은 방금 일격에 상당한 충격을 입은 듯 안색이 창백하고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허공에 떠오른 그가 엄청난 힘으로 흑도를 아래로 내려베었다.

적환요망은 흑도를 향해 꼬리를 거세게 휘둘러 맞받아쳤다.

퍽!

적환요망의 몸을 지키던 요기의 보호막이 강력한 힘에 의해 깨지면서, 꼬리에 칼에 베인 상처가 생겨났다.

적환요망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와 거의 동시에 문짝만한 크기의 금전검이 적환요망을 향해 십여 개의 검영을 그리며 날아갔다. 금전검은 대부분의 영성을 회복해 이전보다 더욱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퍽!

적환요망의 몸을 보호하던 빛이 다시 한 번 깨지며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크아악!”

포효를 지르며 석목에게 다가간 적환요망이 입에서 비린내가 진동하는 녹색 액체를 뱉었다.

“극독!”

놀란 석목이 바닥을 박차며 몸을 뒤로 뺐다.

석목이 물러나는 속도는 상당히 빨랐지만,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팔에 묻은 뱀독이 순식간에 옷을 부식시키고 몸을 덮은 비늘에 닿았다. 다행히 삼수흉망의 비늘은 독액에 상당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석목이 수인을 맺자 금전검이 허공을 한 바퀴 돌더니, 다시 적환요망을 향해 날아갔다.

적환요망은 석목이 가진 영기의 위력이 이렇게 강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전환요망의 머리에 달린 뿔이 반짝이더니 금전검을 향해 붉은빛을 쏘았다.

깡!

붉은빛과 충돌한 금전검이 튕겨져 날아갔다.

휙!

바로 그때, 반대편에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적환요망이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푸른 옥북에 탄 석목이 이미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의 두 손에는 각각 흑도와 흑곤이 쥐어져 있었다.

도광과 곤영이 적환요망을 향해 파도처럼 겹겹이 몰아쳤다.

운철흑도와 운철흑곤은 술법진을 잃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날카롭고 단단했다.

도광과 곤영이 몸에 닿으며 적환요망의 비늘 곳곳이 파괴되었다. 이어 적환요망의 몸에 깊게 베인 상처들이 생겨났다.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네놈을 산채로 삼키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겠구나!”

적환요망이 몸에서 붉은 빛을 뿜어내며 꼬리를 마구 휘두르자, 수많은 붉은 꼬리의 잔영이 석목을 향해 몰아쳤다.

“이런!”

놀란 석목이 옥북을 전속력으로 움직여 뒤로 후퇴했다.

하지만 적환요망의 공격을 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겨우 몇 장 가량 벗어났을 때, 어느새 바짝 따라붙은 붉은 잔영이 그의 몸을 가격했다.

푸욱!

적환요망의 꼬리에 두들겨 맞은 석목의 진기의 보호막과 비늘이 전부 부서졌고, 석목은 입에서 선혈을 뿜어내며 뒤로 날아갔다.

적환요망이 꼬리를 길게 뻗어 날아가는 석목의 몸을 휘감더니 아가리를 쩍 벌렸다.

석목은 꼬리에 몸을 휘감긴 채 끌려가면서, 이를 악물고 유일하게 움직이는 한쪽 팔로 수인을 맺었다.

허공에서 금전검이 빛을 뿜어내더니 적환요망의 한쪽 눈을 향해 거세게 날아갔다.

적환요망은 어쩔 수 없이 석목을 물어뜯는 것을 잠시 미루고, 머리의 뿔에서 붉은 빛을 쏘며 꼬리에 강한 힘을 가했다.

꼬리에 강하게 짓눌려 숨이 막히는지 석목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대력마원탈태결을 6단계까지 수련한 석목은 괴수화 변신까지 한 상태였기에 엄청난 압력에도 전신의 근골이 끊어져 사망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강하게 조여 오는 꼬리의 압박을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석목은 적환요망이 금전검을 상대하는 틈을 타 체내의 법력과 진기를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진기의 보호막을 펼친 뒤 기령순을 시전하려 했다.

“헛수고다!”

그의 속셈을 눈치 챘는지 적환요망이 두 배는 더 강한 힘으로 석목의 몸을 조였다. 결국 기령순은 시전할 기회조차 없었으며, 석목이 겨우 만들어낸 진기의 보호막도 힘없이 깨졌다.

뚜드득!

석목의 전신에서 당장이라도 뼈마디가 으깨질 것만 같은 소리가 났으며, 기혈이 들끓고 진기와 법력이 날뛰었다.

바로 그때, 석목의 통제를 벗어나 날뛰던 진기와 법력이 그의 머릿속으로 한 가닥씩 흘러들어왔다.

펑! 펑!

머릿속의 금색 결정과 은색 결정이 흘러들어온 진기와 법력에 닿았다. 그 순간 두 결정이 깨지면서 금색 태양과 은색 달빛의 환영으로 변했다.

반짝이는 두 빛이 하나로 합쳐져 천천히 회전하더니 소용돌이를 이루기 시작했다.

쾅!

순간 소용돌이에서 거대한 열기가 솟아나와 순식간에 석목의 전신 구석구석으로 흘러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전신의 피가 들끓으며 몸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거워졌다.

뒤이어 석목의 몸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뒤에 거대한 하얀 원숭이의 환영이 나타났다.

거대 원숭이의 금색 눈과 눈이 마주친 적환요망은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천적과 마주한 것 같은 강력한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며 바닥에 엎드렸다.

석목의 몸을 감고 있던 꼬리가 풀리자 석목은 어째서 적환요망이 자신을 놓아줬는지 이해하지 못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무수한 전투를 겪으며 많은 경험을 쌓아온 석목이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석목이 한 손가락을 까딱이자 칠 장 가까이 커진 금전검이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어내며 적환요망의 목을 베었다.

순간 움직임이 굳은 적환요망의 목에 빨간 줄이 생겨났다.

퍽!

다음 순간, 거대한 몸에서 분리된 적환요망의 집채만 한 머리가 아래로 떨어져 늪에 파묻혔다. 머리가 붙어 있던 곳에서는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져서 아래의 지면을 붉게 물들였다.

석목의 뒤에 나타났던 거대한 원숭이의 환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석목은 땅에 내려설 때까지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그때, 적환요망의 머리에서 날아오른 붉은 수혼이 석목으로부터 도주하기 시작했다.

“어딜!”

석목이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그의 몸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오더니, 거대한 사수흉망의 환영이 나타났다.

사수흉망의 환영 중 하나가 도망가는 수혼을 바짝 쫓아가서 한 입에 물었다.

“날 죽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넌….”

붉은 수혼이 필사적으로 발악했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 사이 다가온 사수흉망의 다른 머리들이 적환요망의 수혼을 뜯어먹었다.

그 순간, 석목의 가슴이 뜨거워지더니 토템 문신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그의 전신을 덮었다.

동시에 사수흉망의 환영에서 다섯 번째 머리가 천천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기뻐하던 석목은 곧 무언가를 떠올리고 허리춤의 수혼 주머니를 열었다. 주머니에 모아두었던 수혼들이 날아올라 사수흉망의 환영에 흡수되었다.

가슴의 토템 문신이 뿜어내는 빛이 더욱 강해졌고, 사수흉망의 머리가 돋아나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더니 곧 다섯 번째 머리가 완전히 자라났다.

한계점을 돌파하고 새로운 경지에 오른 듯 토템의 힘이 굉장히 거대해지자, 석목은 몹시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토템 문신에서 흐르는 방대한 토템의 힘을 잠시 느껴보았다. 이어 눈을 뜨며 토템의 힘을 개방했다.

순식간에 검은 비늘이 돋아나 석목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것은 이전과는 다르게 표면에 얇은 막이 한 겹 생긴 것처럼 영롱한 빛이 감돌았다.

쾅!

주위의 기운에 대한 감지능력과 오감은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어 있었다. 석목은 전신의 감각이 폭발하는 것 같은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단전에 자리 잡은 진기의 소용돌이가 급속도로 회전하더니 액체 상태로 변했고, 그의 몸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순간, 검은 빛이 석목의 뒤로 모여들어 오수흉망 모습의 법상을 어렴풋이 형성했다.

“지계!”

오수흉망의 힘으로 괴수화를 하자 그의 경지가 지계의 단계까지 단번에 오른 것이다.

석목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전신에 충만한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라면 적환요망과 다시 싸우더라도 칠 할 이상의 확률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석두! 어떻게 된….”

하늘에서 내려온 채아가 석목의 힘을 느끼고 겁에 질렸는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석목이 토템 변신을 해제하자 비늘이 사라지고 액체 상태의 진기가 다시 기체로 변했다. 그가 뿜어내는 기운도 평소의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긴장을 푼 채아가 석목의 어깨로 날아와 앉았다.

“석두, 설마 지계의 경지에 오른 거야?”

채아가 물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네. 이제 실력이 강해졌으니 바로 능천봉에 가도 되는 거지?”

흥분한 채아가 물었다.

석목은 한참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급해하지 마. 아직은 변신을 해야 잠시 지계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야. 이 정도의 실력으로는 아직 불안해. 우선 일강성에 가서 능천봉에 관한 정보를 얻은 뒤 다음 행보를 결정하자.”

* * *

며칠 후 해가 질 즈음, 석목은 드디어 사굴소택에서 벗어났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커다란 회색 성이 우뚝 서 있었고, 양 옆으로 길게 뻗어 있는 장엄하고 높은 성벽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바로 서하대륙 동혁구역에서 가장 큰 야만족의 성 일강성이었다.

너비가 십 장 가까이 되는 검은 성문의 양쪽에는 초소가 세워져 있었고, 입구에서는 열사부족의 복장을 한 야만족 병사 십 여 명이 성에 들어가는 인원들을 검문하고 있었다.

규정에 따라 열사부족의 부족원은 등록 후 무료로 입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부족의 야만족은 성에 들어가려면 열 개의 영석을 지불해야 했다.

동주대륙에서 영석 열 개의 가치는 삼사십만 은자 정도였다. 보통사람에게는 엄청난 거금이었지만, 자원이 풍부한 서하대륙에서는 그만큼 큰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석목은 속으로 불만을 가졌지만, 별 말 없이 영석 열 개를 지불하고 성으로 들어갔다. 성문에 들어서는 순간 시야가 탁 트였다.

마차 열 대가 나란히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가 앞쪽에 펼쳐져 있었으며, 도로 양쪽에는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건물들은 규모가 굉장히 크고 단단해 보였다.

길거리에는 온갖 점포가 즐비해 있었으며 사람들이 북적댔다. 대부분 야만족이었지만 회색 옷을 입은 인족도 일부 있었다.

인족들이 입고 있는 복장은 석목에게도 낯설지 않은 명월서교의 복장이었다.

이곳의 분위기를 보니 명월교와 야만족의 관계는 매우 좋아보였다.

바로 그때, 석목의 옆을 지나간 면사포를 쓴 야만족 여인이 채아의 시선을 끌었다.

딱 달라붙는 옷 너머로 드러난 그녀의 몸 굴곡은 굉장히 요염했으며, 살짝 드러난 팔은 하얗고 매끄러웠다. 면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그 너머로 언뜻 보이는 동그란 눈은 매우 아름다웠다.

채아가 침을 흘리며 말했다.

“석두, 석두! 어서 저 여자를 봐!”

채아의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린 야만족 여인이 뜨거운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체격이 큰 데다 눈썹이 짙고 눈이 컸다. 그래서 인족 사이에서도 외모가 상당히 준수한 편에 속했다. 게다가 혹독한 세월을 보낸 덕에 일부 흉만부족의 야만족보다 더욱 강한 야성미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야만족 여인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강하게 끌릴 수밖에 없었다.

“석두, 저 여자가 널 보는데?”

채아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석목은 야만족 여인을 곁눈질로 바라보며 채아의 머리를 때렸다.

“시끄러워!”

“하하, 저 눈빛을 봐. 야만족 여인은 역시 인족보다 훨씬 화끈하네. 석두, 너는 정말 관심이 없어?”

“산 채로 털이 뽑혀 먹히기 싫으면 좀 조용히 하는 것이 좋을 거야. 내가 알기로 야만족은 날것을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하거든.”

석목이 말했다.

몸을 떨며 주위 야만족들을 둘러본 채아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그제야 안심했다.

그 순간, 어디선가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채아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석목을 보며 애처롭게 말했다.

“석두, 배고파. 줄곧 길에서 노숙을 하느라 맛있는 것은 하나도 못 먹었잖아. 이러다가 살이 빠지겠어.”

석목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렇게 말할 거면 지금까지 먹은 영석들 전부 토해내.”

“영석을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걸 가지고 너무하는 거 아니야?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오랜만이라고….”

채아가 말했다.

“알겠어. 밥부터 먹자.”

석목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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