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교환 협의
한 달이 지났다.
석목은 어느 석실의 탁자 앞에 있었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뱉고 나서, 가죽 부적지를 한 장 집어 몸 앞에 가져다놓았다.
그것은 그가 상급 부적을 제작하기 위해 큰돈을 지불하고 구매한 부적지였다.
며칠 동안 연이어 부적을 제작한 석목은 현재 상급 부적 제작에 대한 자신감이 상당히 붙은 상태였다.
석목의 손에 들린 법붓이 빛을 내며 부적지로 다가갔다.
* * *
닷새 후, 얼굴에 수염이 잔뜩 자란 석목의 눈앞에는 십여 장의 상급 부적이 놓여 있었다.
그중 푸른색 부적 여덟 장은 풍영부였고, 노란색 부적 세 장은 토둔부(土遁符)였다.
풍영부는 이전에 만들어본 경험 덕분에 성공률이 높았고, 총 여덟 장을 제작할 수 있었다.
풍영부와 동일하게 ‘건천부경’에 기록된 오행부적 중 하나인 토둔부는 서른다섯 개의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부문이 서로 어지럽게 뒤엉켜 있어서 석목의 뛰어난 시력이 아니었다면 한 장도 성공하지 못할 뻔했다.
결국 석목은 열 번이 넘는 실패 끝에 간신히 토둔부 세 장을 제작했다.
석목은 자신이 사용할 풍영부 두 장과 토둔부 한 장을 제외하고 남은 것을 전부 예납목에게 넘겼다.
예납목은 여덟 장의 상급 부적을 받으며 석목을 마치 괴물이라도 보듯 경악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납목의 가게에 상급 부적이 있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수많은 강자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하지만 총명한 예납목은 석목에 대한 정보를 조금도 노출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석 달 동안 석목이 부적을 팔아서 얻은 영석은 칠만 개 가까이 되었다. 그중 대부분은 화속성 영석으로, 영화진을 반 년 가까이 유지할 수 있는 양이었다.
충분한 영석을 모은 석목은 예납목에게 부적 제작을 중단하고 수련에 매진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예납목은 몹시 아쉬웠지만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석목에게 차마 말을 하지는 못했다.
부적을 제작하는 석 달 동안 석목은 적원화경 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저택 주위에는 인적이 없는 작은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석목은 매일 새벽 그곳에서 흡일식을 수련했고 밤에 달이 뜨면 탄월식을 수련했다.
낮에 더 이상 부적을 제작하지 않게 된 석목은 지하 동굴에서 적원화경 9단계 심법을 계속해서 수련했다.
* * *
시간이 흘러 순식간에 반 년이 지나갔다.
석목은 늦은 밤 작은 언덕 꼭대기에서 탄월식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 뒤에 보름달의 환영이 어렴풋이 생겨나 하늘에서 쏟아지는 달빛의 정화를 흡수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석목은 보름달의 환영이 사라지는 동시에 몸을 움찔거리며 눈을 뜨고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석목의 머릿속 달빛의 결정이 이제 거의 갓난아기의 주먹만큼 커진 것이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다시 눈을 감은 석목은 법력을 머릿속에 흘려보냈다.
빠각!
법력에 닿은 결정이 깨지며 정순한 법력이 체내로 흘러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석목의 머리 뒤로 성운이 나타났다. 성운의 세 번째 별의 환영은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네 번째 별은 여전히 많이 어두웠다.
법력이 계속해서 체내에 주입되자 성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하더니, 네 번째 별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웅!
네 번째 별은 세 번째 별의 절반정도까지 밝아졌다.
두 눈을 뜬 석목은 즐거움과 근심이 반반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결정이 법력으로 변하며 그의 온신술이 상당히 늘어나긴 했지만, 지금의 속도로는 사성술사까지는 최소 일이 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석목의 뒤에서 갑자기 짙은 회색 안개가 피어오르더니 그 사이에서 하얀 갑옷을 입은 연나가 나타났다.
“연나!”
석목이 연나를 보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연나의 갑옷은 이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 표면에는 기이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으며, 양쪽 어깨 쪽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여러 개 솟아 있었다.
연나의 영혼의 화염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에 비해 또 다시 강해져서, 이제 짙은 자줏빛에 가까워져 있었다.
“드디어 조금 봐줄만해졌네.”
석목의 머릿속에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성장 속도는 놀랄 만큼 빨랐지만 연나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석목이 작게 숨을 내쉬더니 물었다.
“이번에도 물건을 빌리러 온 거야?”
연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곤봉을 빌려줘.”
석목은 말없이 등 뒤에서 운철곤봉을 뽑아 연나에게 건네줬다.
연나는 곤봉을 휘둘러보더니 고개를 돌려 석목에게 물었다.
“영기를 보충하지 않았어?”
“지금은 성에 발이 묶여 있는 처지라 내 수련에 사용할 영석도 부족한 상황이야. 곤봉의 영기를 보충하기 위한 여분의 영석은 없어.”
석목이 속으로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만 떠들고 영석을 줘.”
연나가 아랑곳하지 않고 석목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영석을 원한다면 교환할 물건을 가져오든가.”
석목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떤 물건이 필요한데?”
연나가 말했다.
“물론 저번의 그 녹색 꽃이지. 앞으로 꽃 한 송이와 영석 오천 개를 교환하는 게 어때?”
석목이 말했다.
고민에 빠진 연나가 잠시 침묵했다.
“꽃 한 송이에 영석 만 개.”
석목의 얼굴에 교활한 표정이 스쳤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대답했다.
“좋아!”
그 꽃의 가치는 고작 영석 만 개 정도가 아니었다.
연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령계로 돌아가려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석목이 물었다.
연나는 석목에게 다가와 주위를 배회하더니, 그를 향해 머리를 내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 몸에서 특별한 사망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최근 이상한 물건을 건드리지 않았어?”
연나가 물었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석목이 무언가를 갑자기 떠올렸다.
“참, 네가 말 안 했으면 까먹을 뻔했네. 아마 이것 때문일 거야.”
쿵!
석목이 팔을 휘두르자 그의 앞에 해골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것은 저택의 지하 동굴에 있던 해골이었다.
연나는 눈앞의 해골을 자세히 보며 기쁜 듯 영혼의 화염을 밝게 빛냈다.
“최근에 우연히 얻은 건데 특별해보여서, 혹시 네게 필요할까 챙겨뒀어. 원한다면 가져도 돼.”
석목이 말했다.
연나는 석목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갑자기 입을 벌리더니 해골을 향해 보랏빛 영혼의 화염을 날려 보냈다.
그 순간, 해골의 텅 비어 있던 눈구멍이 반짝이더니 짙은 남색 영혼의 화염이 일었다.
해골은 몸을 떨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골이 조금 경직된 동작으로 팔다리를 움직이자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이어 해골의 몸에서 사령생물 특유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끊임없이 증가해서 선천후기 수준까지 도달한 뒤 멈췄다.
석목은 그 광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해골을 선천후기의 사령생물로 만들어버렸으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해골은 친근한 눈빛으로 연나를 바라보며 영혼의 화염을 반짝였다.
해골은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연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해골의 입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인!”
“일어나! 오늘부터 나를 따른다. 이름을 하나 지어줄 필요가 있겠군.”
연나가 그렇게 말하며 생각에 잠긴 듯 영혼의 화염을 들썩였다.
그러나 연나는 좋은 생각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네 것이니 네가 직접 지어줘.”
석목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주인님, 저는…… 이름이 있습니다. 제…… 이름은…… 무야입니다.”
해골은 비록 흐릿한 목소리였지만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좋아, 무야라고 부를게.”
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 연나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더니 허공에 물결처럼 파동이 일며 공간의 통로가 생겨났다.
연나가 통로로 들어가자 무야가 뒤를 따랐다.
“며칠 뒤 꽃을 가져올 테니 영석을 준비해둬.”
공간의 통로가 사라지기 직전 연나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울렸다.
석목은 미소를 지었다. 녹색 꽃만 있다면 사성술사가 되는 것도 머지않았다.
수중에 있는 영석이 조금 부족했지만, 부적 제작에 시간을 조금 더 들이면 될 일이었다.
석목은 연나가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을 것을 걱정했는데,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자신에게 있다 보니 다행히 쉽게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 * *
시간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다시 석 달이 지나갔다.
사령계의 어느 거대한 검은 산봉우리에 음산한 검은 바람이 지나가며 귀곡성 같은 소리를 냈다.
두 사령군단이 그 산봉우리의 중턱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쪽은 대부분 해골이었으며, 다른 한쪽은 대부분 부시(腐尸: 부패한 시체)류의 사령생물이었다. 양측의 수는 거의 비슷했다.
해골군단의 우두머리는 덩치가 커다란 하얀 해골전사였다. 눈구멍에는 짙은 남색 영혼의 화염이 반짝였으며, 손에는 자신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하얀 대검이 들려 있었다.
해골전사의 실력은 극도로 뛰어나서,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상대쪽 사령생물들이 두 동강났다.
해골군단이 해골전사의 인솔에 따라 점차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골전사의 관심은 눈앞의 전투에 있지 않는 듯, 수시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허공에는 하얀 갑옷을 입은 연나가 곤봉을 든 채 거대한 검은 시견(尸犬: 몸이 썩은 개 모습의 사령생물)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반 년 사이에 연나의 몸에는 다시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연나의 등에는 반투명한 막으로 덮인 넓고 큰 뼈 날개가 자라 있었다. 날개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연나의 몸이 허공에서 매우 빠르게 이동했다.
시견의 머리에는 두 개의 두껍고 큰 굽은 뿔이 자라 있었고, 몸길이는 삼십 장 가까이 됐으며, 눈구멍에서는 짙은 보라색 영혼의 화염이 타올랐다. 연나의 기운을 훨씬 상회하는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시견은 회색 연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순간, 시견이 연나를 향해 도약했다.
연나는 피할 생각이 없는 듯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시견이 그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연나를 향해 거대한 발을 휘둘렀다.
쉬이익!
검은빛이 허공에 모여들어 거대한 개의 발바닥 모양을 형성했다. 그 발은 연나를 노리고 아래로 거세게 할퀴었다.
바로 그때, 연나가 팔을 휘둘렀다. 곤봉이 칠흑같이 검은 곤영으로 변해 발바닥을 향해 몰아쳤다.
쾅!
검은 발바닥을 너덜너덜하게 찢어버린 검은 곤영은 조금도 줄지 않은 기세로 검은 시견에게 날아갔다.
놀란 시견은 검은 빛이 감도는 두 뿔로 곤영을 맞받아쳤다.
빠각!
곤영은 시견의 두 뿔을 파괴하고 그대로 머리까지 가격했다.
곤영에 머리가 수박처럼 터진 시견의 거대한 몸이 마치 운석처럼 부시의 군단 위로 내리꽂혔다.
* * *
두 달 후, 어느 거대한 못 주위.
연나와 거대한 금색 뼈 뱀이 백 장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천위의 경지에 근접해 있는 뼈 뱀이 뿜어내는 기운은 연나보다 훨씬 강력했다.
연나와 대치 중인 금골사왕(金骨蛇王)은 사령계의 요수형 해골 중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였다. 그러나 왜소한 연나에게서 두려움을 느끼는 듯, 고개를 쳐들고 두꺼운 꼬리로 지면을 끊임없이 쓸고 있었다.
연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연나의 해골군단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지 않았다. 그중에는 이전에 연나가 석목에게서 얻은 무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