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성주의 부탁
석목은 주머니를 챙긴 뒤 가게를 나서려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참, 오늘 성의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던데 무슨 일이죠?”
석목이 물었다.
“아, 설마 모르고 있었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예납목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요? 최근 수련에 집중하느라 외출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그럼 이상할 것도 없군요. 일 년 넘게 성 밖을 배회하던 오규가 어째서인지 며칠 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오늘 성 안에 퍼졌습니다.”
예납목이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그 말을 듣고 놀란 석목이 물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함부로 판단을 내리기는 조심스럽군요. 하지만 유찬 성주가 사람을 파견해 탐색을 한 결과 오규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예납목이 대답했다.
“그거 좋은 소식이군요.”
그 말을 들은 석목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성을 떠날 생각입니까?”
예납목이 석목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맞습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렀으니 슬슬 떠나야지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몸 건강하십시오. 만약 기회가 있어 다시 일강성을 지나게 된다면 저를 잊지 말고 꼭 찾아 주세요.”
예납목이 조금 아쉬운 듯 말했다.
예납목은 이전부터 석목이 오규를 피해 성 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석목 같이 뛰어난 부적술사가 이런 작은 성에 이렇게 오래 머물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석목이 떠나면 더 이상 부적 장사는 할 수 없겠지만, 그는 그동안 이미 많은 돈을 벌었다. 예납목이 이 성에 발을 붙이고 사업을 키울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하, 만약 기회가 있어 다시 일강성에 들린다면 반드시 찾아오겠습니다.”
석목은 예납목과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눈 뒤 가게를 나섰다.
“석두, 엄청난 정보를 알아냈어! 뭔지 맞춰봐!”
석목이 가게에서 나오자마자 날아온 채아가 말했다.
“나도 이미 들었어. 오규가 떠났다는 얘기지?”
석목이 말했다.
“맞아! 지금 성 안에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각자 무리를 이루어 성을 나선다고 하니, 우리도 이 기회에 나가자.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답답해죽겠어.”
흥분한 채아가 말했다.
석목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좀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겠어. 오규가 정말로 떠났는지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으니, 먼저 상황을 조사해보고 다시 얘기하자.”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천오보헌을 향해 갔다. 천호보헌은 정보력이 뛰어나니 성 밖의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 * *
석목이 예납목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천오보헌에도 두 명의 특별한 손님이 찾아와 별실에 앉아 있었다.
상석에는 푸른 옷을 입고 덩치가 큰 하얀 눈썹의 노인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으며, 이전에 석목을 맞이했던 사 사장은 그 노인의 뒤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노인은 거대하고도 중후한 기운을 가진 지계의 존재였다.
그의 왼쪽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머리에 금관을 쓴 일강성의 성주 유찬이었으며, 다른 한 명은 회색 옷을 입고 있는 일강성의 단주 방옥이었다.
“하하, 유 성주와 방 단주가 한꺼번에 가게를 찾아주다니 매우 영광이군요.”
노인이 말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희 두 사람이 찾아온 것은 오 장로님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성 밖의 오규가 갑자기 떠난 것은 분명 귀 상회에서 손을 쓴 덕이겠죠?”
유찬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천오상회는 서하대륙의 평범한 상회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저 물건을 사고 팔 뿐이지 그런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노인이 태연하게 말했다.
유찬은 더 이상 그 일에 대해 묻지 않고,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이곳에 찾아온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탁할 곳이 천오상회밖에 없는 것 같더군요.”
“말씀하세요.”
노인이 사 사장과 시선을 주고받은 뒤 말했다.
“창욱성(苍旭城)의 성주에게 물건을 좀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유찬이 말했다.
“창욱성이요? 이곳에서 이만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 성을 말하는 겁니까?”
노인이 물었다.
“맞습니다.”
유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규가 떠나기 전, 요족들을 통솔하기 위해 지계의 요족을 하나 남겨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성을 나서면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노인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서하대륙에서 감히 천오상회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규가 이 일 때문에 천오상회에 미움을 살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유찬이 말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덤덤한 눈빛으로 유찬을 바라보았다.
“보수에 관해서는 분명 만족하실 겁니다.”
유찬이 이어서 말했다.
“전달하시려는 물건이 무엇인지 물어도 될까요?”
노인이 잠시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물건의 목록은 여기 있으니 살펴보시지요.”
유찬은 옥간 하나를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은 옥간을 받아 들고 정신력을 주입해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살짝 동요한 듯 하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좋습니다. 우리 천오상회에서 이 일을 맡도록 하지요.”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참, 마침 방 단주도 내륙으로 보내고 싶은 물건이 있어 함께 부탁하고 싶다고 합니다.”
유찬이 말을 하며 방옥에게 시선을 돌렸다.
“맞습니다. 제가 의뢰하려는 물건은 양도 적고 목적지 또한 창욱성과 가깝습니다. 이것은 물품 목록과 호송에 대한 보수입니다.”
방옥도 옥간을 하나 꺼내 노인에게 건넸다.
방옥이 건넨 옥간을 받은 노인은 정신력을 주입해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나는 길이기 때문에 일을 하나 더 맡아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방옥의 의뢰는 물건이 많지 않은 것이 비해 보수가 상당했다.
“물건들을 준비하기 위해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니, 출발은 대략 열흘 후가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오 장로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찬이 말했다.
그와 방옥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방에는 노인과 사 사장 두 사람만 남았다.
“물품 명단을 한번 확인하고 의뢰를 위한 준비를 해라.”
노인이 옥간 두 개를 사 사장에게 건넸다,
옥간을 받아서 들여다본 사 사장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오 장로님, 이 자원들은 가치가 너무 큽니다!”
사 사장이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라.”
노인이 말했다.
“일강성에서 출발해 창욱성까지 가려면 흉만인 익학(翼鹤) 부족의 근거지인 동윤(东尹)구역의 학명(鹤鸣)산맥을 지나가야 합니다. 학명산맥 주위에서는 비행에 능숙한 요수들이 있어서, 길을 지나는 상단을 수시로 습격해 물건을 강탈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아마…….”
사 사장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총회에서 주위 성에 파견되어 있는 객경장로(客卿长老: 타국 출신의 장로)의 지원을 요청하겠다. 너는 성 안에서 사십 명의 선천 토템용사, 혹은 성계술사를 모집하겠다는 공고를 내거라. 보수는 호송에 성공했을 때 인당 일천 개의 영석을 지급하는 정도가 좋겠구나.”
노인이 사 사장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실수 없이 잘 준비하도록.”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갔다.
사 사장은 그 자리에서 잠시 생각하다가 탁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종이를 꺼내 펼치고 붓으로 글씨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손을 멈춘 그가 박수를 치자 파란 옷을 입은 남자가 별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 공고를 관저 앞 게시판에 붙이고 접수를 받아라.”
사 사장이 남자에게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예!”
종이를 받아 든 남자가 대답을 하고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잠깐.”
사 사장이 남자를 멈춰 세웠다.
“분부하실 일이 또 있습니까?”
잠시 생각하던 사 사장이 말했다.
“만약 지원하는 사람이 사십 명이 넘더라도 전부 받고, 사흘 뒤에 시합을 통해 인원을 선별할 것이라고 알려라.”
남자는 대답을 한 뒤 자리를 떠났다.
바로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천오보헌의 점원이 들어왔다.
“사장님, 목석이라는 자가 사장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점원이 말했다.
“목석이라…….”
잠시 생각하던 사 사장은 곧 석목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다른 별실로 안내하고 차를 내드려라. 곧 가겠다.”
천오보헌의 한 별실로 안내된 석목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채아는 신이 나서 탁자 위에 있는 간식을 먹고 있었다. 석목은 그런 채아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로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사 사장이 들어왔다.
“하하, 찾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사 사장이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군요.”
석목은 인사를 하면서도 왜 사 사장이 이전과 달리 이렇게 자신을 친근하게 대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우리 천오보헌은 원래 능력이 있는 자에게 예를 갖춥니다. 천오상회의 오 장로님께서 상급 부적을 제작하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고 찬사를 하시더군요. 일전에는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사 사장이 말했다.
석목은 천오상회의 정보 수집 능력에 깜짝 놀랐다.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제가 어떻게 부적을 제작하겠습니까?”
석목이 말했다.
그러나 사 사장은 담담하게 웃을 뿐 깊이 따지지 않고, 석목 옆에 앉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셨지요? 혹시 그 종수라는 여인 때문에 오셨다면 또 귀하를 실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찾아온 것은 다른 일 때문입니다. 성 밖의 요수에 관한 정보를 원합니다. 오규는 정말 떠난 건가요?”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여전히 평온한 눈빛으로 물었다.
“그 일 때문이었군요. 성에 도는 소문대로 오규는 이미 일강성을 떠났습니다. 한동안은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오규가 떠나기 전 지계의 요수를 남겨두었어요. 성 밖의 요수가 상당히 줄긴 했으나 성을 나서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사 사장이 말했다.
오규가 떠났다는 말을 들은 석목은 순간 안심했다.
오규가 없다면, 성 밖에 있다는 다른 요족이 지계후기가 아닌 이상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정보료는 얼마죠?”
석목이 물었다.
“이미 성 전체에 퍼진 소식이기 때문에 보수는 받지 않겠습니다.”
사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또 찾아오겠습니다.”
석목이 인사를 한 뒤 몸을 일으켜 떠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채아가 부리를 움직이는 걸 멈추고 석목의 어깨로 날아올랐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 사장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무슨 일이죠?”
석목이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하하, 혹시 일강성을 떠나려 하십니까?”
사 사장이 말했다.
“그러려고 합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성 밖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요수를 마주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요.”
사 사장이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바로 말해주세요.”
석목이 말했다.
“열흘 뒤 본회에서 대륙의 서부로 물자를 운송할 계획입니다. 호송단의 호위를 맡을 인원을 모집하고 있으니, 흥미가 있다면 게시판에 가서 확인해보세요.”
사 사장이 말했다.
“호송 목적지가 어디죠?”
석목이 물었다.
“창욱성입니다.”
사 사장이 말했다.
석목의 눈빛이 빛났다. 그곳은 서하대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야만족의 큰 성이었다.
“이곳에서 창욱성까지는 최대 두 달 정도 걸립니다. 호위의 보수로 한 사람당 영석 천 개를 지급할 것입니다. 하하, 눈에 차지 않는 액수겠지만 상단과 함께 이동한다면 혼자보다는 훨씬 안전할 겁니다.”
사 사장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기억해놓도록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