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미행과 음모
연무장을 떠난 석목은 깊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거처를 향해 걸었다.
성을 떠나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조금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 채아가 작게 말했다.
“석두, 앞을 봐!”
고개를 들어 앞을 본 석목이 표정을 굳혔다. 그는 즉시 방향을 꺾어서 옆의 가게로 들어갔다.
잠시 후, 거리에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젊은 여인은 모자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지만, 석목은 그녀가 누군지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들이 멀리 떠나자 석목은 가게에서 나왔다. 그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젊은 여인은 유안과 항상 붙어 있던 견 씨 성의 여인이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1호 한해거주에 타고 있던 명월동교의 제자였다.
“방옥에 이어 저들까지……. 어째서 모두 이곳으로 모이는 거지?”
석목이 중얼거렸다.
“석두, 저들이 수상해?”
채아가 물었다.
석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따라가서 보면 알 수 있지. 내가 안내할 테니 뒤따라 와.”
살짝 흥분한 채아가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들키지 않게 조심해!”
석목이 다급히 말했다.
“멀리서 쫓아갈 거니까 안심해. 나를 발견하지 못할 거야.”
채아가 자신 있게 말하고 허공으로 날아갔다.
석목도 채아의 시야를 공유하며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일 년 사이에 시력이 더욱 좋아진 채아는 골목 몇 개가 떨어진 먼 거리에서도 그들을 놓치지 않고 쫓을 수 있었다.
반 시진 후, 여인의 일행은 성 밖에 위치한 어느 외진 정원에 도착했다.
석목과 채아는 낡은 고탑의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방 안에서 창문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것이,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것 같군.”
채아가 흥분이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석목은 명월동교의 목적을 파악하고자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얼굴을 포함해 전신을 회색 옷으로 가린 이가 그 정원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정원의 문 앞까지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다.
곧바로 대문이 열렸고, 회색 옷을 입은 이는 안으로 잽싸게 들어가 문을 닫았다.
석목은 그자가 문을 지나는 찰나의 순간에 얼굴을 확인했다. 바로 방옥이었다.
“그 단주야!”
채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반짝였다.
수상하게 각자 따로 도착한 것을 보니 무언가를 모의하려는 것이 분명해보였다.
“석두, 저들이 무엇을 꾸미는지 들어보지 않을래?”
채아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데 흥미가 있는지 몰랐네.”
석목이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게 좋은 시력을 가졌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너무 아깝잖아.”
채아가 말했다.
명월동교가 꾸미는 일에 흥미가 생긴 석목은 채아와 함께 탑을 내려와서 정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정원 주위에 도착한 석목은 채아를 주위 높은 곳에서 기다리게 하고 안으로 잠입하려 했다. 그때 채아의 시야를 통해 방옥이 정원 내부의 건물에서 나와 대문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놀란 석목은 다급히 몸을 숨겼다.
대문을 나선 방옥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몸을 돌려 어디론가 향했다.
잠시 후, 대문이 다시 열리더니 견 씨 성의 여인과 일행이 나와서 방옥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들어갈 때와 다른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더 이상 얼굴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석목은 재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견 씨 성의 여인을 뒤쫓았다.
시끌벅적한 거리에 도착한 여인은 마치 구경이라도 하듯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약 세 시진이 흐르고 하늘이 어두워진 뒤에야 커다란 주루로 향했다. 그리고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위로 올라갔다.
석목은 채아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천천히 주루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식사를 하시겠어요?”
다른 점원이 석목을 반겼다.
“별실로 안내해주세요. 여긴 너무 시끄럽군요.”
석목은 일 층을 한 번 둘러보더니 점원에게 은자 한 닢을 건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위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점원이 기뻐하며 석목을 위로 안내했다.
“방금 들어온 일행은 어느 방으로 들어갔죠?”
석목은 그들의 옷차림을 간단하게 설명하며 물었다. 점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석목은 말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화속성 영석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 점원의 손 위에 떨어졌다.
점원은 평범한 야만인이었지만 영석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재빨리 영석을 챙겼다.
“삼 층의 곤(坤)자 방입니다.”
점원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곳과 가장 가까운 방으로 안내해주세요.”
석목이 말했다.
점원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이고 삼 층의 조용한 별실로 안내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점원은 그렇게 말하며 옆쪽 별실을 향해 눈짓했다.
“이 식당의 간판 요리를 가져다줘요.”
점원의 뜻을 이해한 석목이 말했다. 점원은 대답을 한 뒤 아래로 내려갔다.
별실에 들어가서 귀를 기울이던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옆방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결계를 펼쳤군…….”
석목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오감이 매우 뛰어나긴 하지만 결계를 뚫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진법에 대해 능통하지 못한 그가 경솔하게 결계를 건드렸다가는 발각당할 수도 있었다.
“석두, 어때? 뭔가 들려?”
석목이 방법을 찾지 못해 곤란해하고 있을 때 채아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석목이 채아에게 대략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창문을 열어서 날 들여보내줘. 내게 방법이 있어!”
채아가 재촉했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석목이 채아의 말대로 별실의 창문을 열었다.
안으로 날아 들어온 채아가 탁자에 앉아 무언가 말을 하려 하자, 석목이 손을 들어 막고 문 뒤에 몸을 숨겼다.
문 앞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옆방 앞에서 멈췄다.
석목은 푸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곤자 방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문틈 사이로 보며 눈을 빛냈다.
얼굴을 가린 두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석목은 즉시 시선을 거두어 그들에게 발각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뿜어내는 기운으로 봤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선천 토템용사인 것 같았다.
둘 중 키가 큰 사람이 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방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석두, 아무래도 진짜 이곳에서 무언가 꾸미고 있는 거 같은데.”
채아가 말하며 옆방이 있는 쪽의 벽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채아의 머리 위에 있는 하얀 깃털이 반짝이더니 눈에서 하얀 빛이 감돌았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채아와 시야를 연동하자 벽이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하더니, 건너편 방의 모습이 석목의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채아의 눈이 빛날수록 점점 더 뚜렷하게 보였다.
옆방에서는 견 씨 성의 여인과 푸른 옷을 입은 키 큰 야만족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두 야만인이 면사포를 걷어내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들의 외모는 매우 특이했다. 얼굴이 말라서 두 뺨이 깊이 패여 있었는데, 피골이 상접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우 초췌해보였다.
그들은 코가 살짝 휘고 눈빛이 날카로워서 굉장히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석목은 즉시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시력이 뛰어난 그는 이전에 독순술을 연구한 적이 있었다.
“……이미 우리 쪽에서 호송대에 사람을 심어놨으니 사전에 연락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여인이 말했다.
“……우리 익학부족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니 안심하게…….”
키가 큰 야만족이 말했다.
“목적을 달성하면 반반씩 나누는 겁니다.”
여인이 말하자 키가 큰 야만인이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획대로 하는 겁니다.”
몸을 일으킨 여인이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위 도통(都统)을 따라가거라.”
“예!”
그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여인은 팔을 휘둘러 하얀 결계를 없앤 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어느새 다시 얼굴을 가린 두 야만인이 여인의 수하들을 데리고 걸어 나갔다.
그들이 전부 나가자 채아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채아는 살짝 지쳐 보였고, 석목이 진기를 주입해주자 그제야 기운을 차렸다.
“석두, 저들을 계속 쫓아갈까?”
채아가 물었다.
“그럴 필요 없어.”
고개를 가로저은 석목은 두꺼운 책을 꺼내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익학부족……. 흉만……. 역시…….”
석목이 중얼거렸다.
그 책은 석목이 상당히 많은 영석을 지불하고 구매한 것으로, 서하대륙에 있는 각 야만족의 습성과 거주구역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익학부족은 중간 규모의 부족으로, 몸에 비행 요수의 수혼을 봉인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부족원이 토템 변신을 하면 날개가 돋아나 비행을 할 수 있는, 상당히 특수한 부족이었다.
하지만 익학부족의 더 큰 특징은 바로 매우 사납고 탐욕스럽다는 것이었다. 규모가 큰 야만족들은 비행 능력을 사용해 강탈을 일삼는 그들을 매우 꺼려했다.
견 씨 성 여인의 갑작스러운 출현, 방옥과의 밀회, 익학부족 야만인의 개입, 방금 전 그들의 대화 내용까지…….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니 음모의 윤곽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채아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석목이 보고 있는 책을 보더니 말했다.
“석두, 혼자만 이해하고서 입 다물지 마.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고.”
채아가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즉시 서적을 챙겨넣고 자신이 추리한 내용을 대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명월동교 놈들이 간덩이가 부었네!”
채아가 놀라서 말했다.
“천오상회와 야만족을 동시에 건드리려 하다니, 예삿일이 아니야.”
석목이 말했다. 우연히 그들을 발견해 미행했을 뿐인데,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줄은 몰랐다.
“호송 임무에 참여할 거야? 낌새가 좋지 않은데.”
채아가 물었다.
“명월동교가 무슨 수작을 부리든 우리와는 상관이 없어. 천오상회의 힘을 빌려 일강성을 벗어난 뒤 우리는 기회를 봐서 벗어나면 돼.”
석목이 말했다.
“좋은 생각이네!”
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채아의 눈을 보았다. 그는 채아가 물체를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두꺼운 벽까지 투시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삼우(三羽: 깃털 세 개)의 경지에 도달하면 지면 아래 십 장까지 투시할 수 있어. 벽을 투시하는 것 정도는 대단한 일도 아니야.”
채아가 거만하게 말했다.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힘이 많이 드니까 우선 푹 쉬며 체력을 회복해.”
석목은 수속성 영석을 하나 꺼내 채아에게 건넸다. 최근 채아가 수속성 영석만 먹었기 때문이다.
채아는 머리를 앞으로 내밀어 영석을 물고 한 입에 삼켰다.
* * *
반 시진 후, 석목은 주루를 떠나 거처로 돌아왔다.
“기다려! 안에 사람이 있어!”
석목이 저택의 대문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갑자기 채아가 말했다.
즉시 하늘로 날아오른 채아와 시야를 연결하자, 석목의 눈앞에 마당의 풍경이 보였다.
마당에 있는 것은 녹색 옷을 입고 있는 소녀 영월동이었다.
“이곳엔 어떻게 찾아왔지?”
석목은 굳은 표정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채아의 시야를 통해 그녀를 관찰했다.
“하하, 너를 보러 집까지 찾아왔나본데!”
채아의 놀리는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입 다물고 들키지 않게 잘 관찰해!”
석목이 말했다.
영월동은 마치 무엇을 찾는 것처럼 건물들을 들락거렸다. 그녀는 석목이 이전에 부순 석조건물 앞에 잠시 서 있다가, 그가 적원화경을 수련했던 건물로 들어갔다.
석목은 그녀가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가만히 두었다.
그는 평소 모든 물건을 진묘계에 넣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임시 거처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지하실의 출구도 꽤나 꼼꼼하게 위장을 시켜 놓아서 그녀가 찾아내지 못할 확률이 높았다.
역시, 방을 한참을 뒤지던 영월동은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마당에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한참 후,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마당의 담을 넘어 먼 곳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몸을 드러낸 석목은 영월동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문득 그녀가 연무장에서 시전한 술법이 명월교의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