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40화 (240/916)

240화. 부운차(浮云车)

순식간에 열흘이 지나갔다.

석목은 야만족의 옷을 입고 두건으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린 채 집을 나섰다.

“석두, 왜 그렇게 옷을 입은 거야?”

채아가 물었다.

“바보야, 천오상회의 행렬이 명월동교의 표적이 되었으니 대비를 해야지.”

석목이 말했다.

채아도 문득 깨닫고 감탄사를 뱉었다.

“명월동교의 사람들이 너를 알아볼 테니 한동안은 따로 다니자.”

석목은 생각 끝에 채아에게 말했다. 채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날아갔다.

석목은 대문을 걸어 잠근 뒤 저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고향인 작은 어촌을 떠나 여러 이유로 각지를 떠돌아다녔고, 결국 동주대륙을 떠나 서하대륙까지 왔다. 그동안 석목은 대부분의 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지금처럼 이렇게 한곳에서 조용히 오랫동안 머무른 적은 거의 없었는데, 막상 떠나려 하니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그는 혹시 다시 이곳에 돌아올 기회가 있을지 몰라서, 지하의 영화진을 파괴하지 않고 입구만 봉쇄해두었다.

석목은 마지막으로 저택을 한 번 더 보고 천오보헌을 향해 갔다.

한 식경 후, 천오보헌 입구에는 선발된 서른 명의 선천무인과 열 명의 성계술사 중에서 이미 상당수가 모여 있었다. 그곳에는 영월동도 있었다.

“목 오라버니.”

영월동이 웃으며 석목에게 다가왔다.

“굉장히 일찍 왔네요.”

석목이 말했다.

“할 일도 없고 너무 심심해서 일찍 나왔어요.”

영월동이 웃으며 말했다.

“소저는 일강성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것이죠?”

석목이 물었다.

“맞아요. 원래 일강성에서는 잠시만 머물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오랫동안 발이 묶여 있었어요.”

영월동이 말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자 젊은 야만인 남자들이 석목을 질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석목의 실력을 확인했기 때문에 감히 나서서 도발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임무에 선발된 사십 명이 전부 모였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멀리서 다가왔다.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삽십 대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그는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지계의 존재였다.

“능서!”

영월동이 작게 외쳤다.

“아는 사람입니까?”

석목이 물었다.

“예, 저 자는 유찬 성주 휘하 최강의 장군 능서로, 지계의 존재예요. 이번 호송의 의뢰자가 유찬 성주라는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는데, 능서가 이곳에 온 것을 보니 사실인가보네요.”

영월동이 말했다.

석목의 눈이 살짝 빛났다. 명월동교가 노리는 이 물건들은 일강성의 성주 유찬의 물건이었다.

“하하, 안으로 드시지요.”

천오보헌의 사 사장이 능서를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하지만 능서는 거만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러나 사 사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능서 일행을 가게 안으로 안내했다.

능서의 출현에 그곳의 모인 수많은 이가 안도했다. 지계의 존재가 함께 한다면 그들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많은 보수를 떠올리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월동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죠?”

석목이 물었다.

“이 임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영월동이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살짝 놀란 석목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이번 의뢰를 위해서 천오상회에서 다른 지역의 월계술사까지 초빙한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위험이 없다면 천오상회에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겠죠.”

영월동이 말했다.

월계술사를 불렀다는 것을 보니 천오상회 측에서도 무언가 정보를 입수한 것 같았다.

“참, 호송 중에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가녀린 저를 꼭 지켜줘야 해요.”

영월동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석목에게 말했다.

“영 소저가 어떻게 가녀린 여자입니까? 위험한 일이 생기면 소저가 저를 보호해줘야 할 겁니다.”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을 힐끔힐끔 보던 이들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석목을 째려보는 영월동의 모습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바로 그때, 천오보헌에서 약 삼 장 너비, 십 장 높이의 대형 짐차가 나왔다.

짐차에는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지만, 검은 천으로 덮여 있어서 어떤 물건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정신력을 방출해 안쪽의 내용물을 확인해보려 했으나, 검은 천에 닿는 순간 튕겨 나왔다.

뒤이어 연달아 일곱 대의 짐차가 나왔다. 그것들을 보던 석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짐차에는 수많은 부문이 새겨져 있었고, 지면에서 반 척 정도 떠 있었다.

“목 오라버니, 이전에 이런 부운차를 본적 있나요?”

영월동이 물었다.

“아니요, 저는 작은 마을에서 자란 탓에 견식이 좁은 편입니다. 이 짐차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저 술법진들 덕분입니까?”

“눈썰미가 정말 뛰어나네요. 맞아요, 짐차에 새겨진 술법진이 대지의 기운을 흡수해서 부력을 형성하기 때문에 허공에 떠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허공에 떠서 이동한다면 울퉁불퉁한 길이나 가파른 산길이라 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갈 수 있어요.”

“그렇군요.”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운차를 사용하면 일정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천오상회처럼 돈이 많은 조직이 아니면 보유하는 게 쉽지 않아요. 아마도 성주가 천오상회에 의뢰를 맡긴 이유 중 하나가 부운차의 존재일 거예요.”

영월동이 말했다.

그때 마지막 여덟 번째 부운차 뒤로 두 무리가 뒤따라 나왔다.

한 무리는 능서가 인솔하는 성주의 수하들이었으며, 다른 한 무리는 천오상회 소속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인솔하는 자는 옥지팡이를 들고 있는 백의의 소녀였다.

소녀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늘씬한 몸매와 빼어난 아름다움은 완전히 가려지지 않았다.

그녀를 본 이들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으며, 능서 역시 불 같이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그런 주위의 반응에 기분이 좋지 않은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 여인이 소문의 월계술사인가 보군요.”

영월동이 여인을 보며 석목에게 말했다.

그러나 기다려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영월동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곧 화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석목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넋이 나간 표정으로 소녀를 보고 있었다.

석목은 깊게 호흡을 하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여전히 격정에 찬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석목은 그녀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바로 석목이 열심히 찾아다니던 종수였던 것이다.

석목은 서하대륙에서 종수와 마주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순식간에 수많은 생각을 한 뒤, 갑자기 한참 뒤쪽으로 물러나서 인파 사이에 숨었다.

석목의 행동을 의아한 표정으로 보던 영월동은 마치 자신과 비교라도 하듯 여인을 위아래로 뜯어보았다.

한편 냉정을 되찾은 석목은 종수가 서하대륙까지 오게 된 연유에 대해서 추측하기 시작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그녀는 천오상회에 몸을 담은 것 같았다.

석목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 종수는 천오상회에 소속되어 있는데, 그녀의 정보가 어째서 천오상회에 의해서 차단되었는지 의혹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무공에 전념했던 종수는 어느새 술법을 수련해서 자신보다 높은 월계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석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드디어 종수를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석목은 아직은 그녀에게 다가가 아는 척을 할 생각이 없었다.

종수와 천오상회의 관계는 알 수 없었지만, 이번 호송 임무는 명월동교와 익학부족의 계략으로 인해 도중에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종수와 관련된 이상 석목은 그들의 행위를 좌시할 수 없었고, 정체를 숨기고 있는 편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에 유리했다.

한편 두 무리가 나오자 가장 마지막으로 오 씨 성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종 장로, 부탁하겠네.”

노인이 종수에게 말했다.

“이번 임무는 저에게 맡기고 마음 놓으십시오.”

종수가 대답하기도 전에 능서가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한 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방금까지 오만한 표정이었던 그는 종수를 향해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하하, 능 장군만 믿겠네.”

잠시 멍한 표정으로 능서를 보던 노인이 곧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석목은 종수를 보는 능서의 눈빛에 기분이 나빠져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힌 후, 종수 쪽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지계의 존재는 감각이 매우 예민해서, 그의 적의가 쉽게 발각될 수도 있었다. 석목은 아직까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능 장군.”

종수가 차가운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당연한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하!”

능서가 종수의 차가운 반응을 느끼지 못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슬슬 출발하는 것이 좋겠군.”

노인이 말하자 능서와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집된 사십 명의 호위도 그 말을 듣고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도 종수를 훔쳐보는 이는 많이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월계술사인 그녀는 그들 같은 선천 토템용사나 성계술사가 넘볼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성계술사인 영월동이 그나마 노려볼만한 상대였기에, 대부분은 다시 그녀에게 관심을 돌렸다.

“이번 임무는 천오상회의 종 장로와 능서장군이 인솔할 것이니 그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노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노인의 신분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출발하라!”

노인이 명령했다.

임무에 참여하는 이들은 여덟 대의 부운차에 나누어 탔다.

종수는 제일 마지막 부운차로 향했다.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그 부운차에는 어떤 물건도 실려 있지 않았고 천막이 설치돼 있었다.

“종 소저, 잠깐만요.”

능서가 팔을 휘두르자 날개가 달린 작고 푸른 비차(飞车: 비행을 하는 차)가 나타났다.

이어서 비차는 순식간에 몇 장 크기로 커졌다. 그 안에는 탁자와 의자, 침상 등이 구비되어 있어서 매우 안락해보였다.

“제 비행 영기인 청익비차(青翼飞车)는 꽤나 편안합니다. 힘든 여정이 될 테니 이쪽으로 타시지요.”

능서가 말했다.

청익비차를 보고 놀란 이들이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 씨 성의 노인 역시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비행 영기 자체도 매우 진귀했지만, 이런 대형 비차는 특히나 더욱 귀했기 때문이다.

능서는 주위의 시선을 느끼고 만족한 얼굴로 웃음을 머금고 종수를 바라보았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부운차에 타면 돼요.”

종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 뒤 마지막 부운차를 향해 그대로 걸어가 버렸다.

능서의 이마에 푸른 핏줄이 솟아올랐다. 그는 종수의 뒷모습을 매섭게 노려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비차 위에 올라탔다. 비차가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천오상회 소속 사람들은 부운차를 조종해서 일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행렬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노인은 갑자기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 사장이 물었다.

“어째서인지 최근 마음이 진정이 안 되는구나. 이번 임무가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오 씨 성의 노인이 말했다.

“지나친 걱정입니다. 종 장로와 능 장군이 있으니, 설령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게 된다 해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사 사장이 말했다.

“그러길 바라야지.”

노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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