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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41화 (241/916)

241화. 위기모면

한편 석목은 영월동과 보라색 머리의 청년 등과 함께 뒤에서 두 번째 부운차를 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가장 뒤에 있는 부운차를 힐끔 보았다. 그러나 종수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하하, 목 오라버니도 종 장로가 마음에 들었나보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월계술사입니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을 거예요.”

영월동이 석목을 보고 살짝 질투하듯 말했다.

석목은 담담하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려 말없이 모자를 눌러썼다.

부운차의 행렬은 금세 성문에 도착했다. 천오상회의 이번 임무에 관한 정보는 이미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성문에는 많은 구경꾼이 몰려와 있었다.

능서가 있는 부운차의 행렬은 검문 없이 즉시 성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석목은 성을 나선 뒤에야 안도하며 점점 멀어지는 일강성을 뒤돌아보았다. 이후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었다.

“요수들이 배회하는 곳과 거리가 멀지 않으니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상공의 푸른 비차에서 능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이들이 각자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성 주위에는 망요(*蟒妖: 구렁이 요수) 일족의 요수들이 있었으며, 그중에는 지계의 요수도 하나 있었다.

아직 안개가 흩어지지 않은 새벽이라 시야는 매우 제한적인 상황이었다.

행렬은 천천히 전진했지만, 행적을 숨기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큰 부운차의 행렬은 요족의 눈을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었다.

채아와 시야를 공유한 석목은 안개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행렬이 앞으로 삼십 리 정도 이동했을 때, 석목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채아의 시야를 통해 길을 막고 있는 수백 마리의 요수 무리를 발견한 것이다.

“목 오라버니, 뭔가 발견했나요?”

석목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눈치 챈 영월동이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푸른 비차에서 능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멈춰! 전투를 준비해라!”

능서가 부운차의 앞에 뛰어내리는 동시에, 가장 뒤쪽의 부운차에서 종수가 날아와서 그의 옆에 섰다.

곧 전방의 안개 사이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거대한 요수 수백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석목과 같은 부운차에 타고 있던 보라색 머리의 청년과 영월동이 놀란 눈빛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그때 전방의 요수 무리 사이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튀어나왔다. 미간 사이에 보라색 삼각형 문양이 있는 그는 강력한 기운을 지닌 지계의 존재였다.

“감히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다니 간도 크구나.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능서가 옆의 종수를 한 번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흥! 너희가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다! 오규 어르신이 성을 나서는 사람을 수색해 적환 어르신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라 명하셨다. 수색을 거부하는 것들은 전부 죽여도 좋다고 하셨지!”

검은 옷을 입은 요족의 사내가 말했다.

화가 난 능서가 무언가 말하려 할 때, 옆에 있던 종수가 옥처럼 매끄러운 입술을 떼며 말했다.

“귀하의 존함은 어떻게 되는지요?”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꾀꼬리 같이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종수의 아름다운 외모를 본 요족의 사내는 살짝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망일족의 필욱이다.”

요족 사내가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런데 귀하가 방금 말한 수색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죠?”

종수가 물었다.

필욱은 아름다운 종수의 예의 바른 말투에 기분이 살짝 풀린 듯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먹만 한 크기의 보라색 조각달 모양 영기를 꺼내 흔들었다.

그 순간 영기에서 보라색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그의 옆에 모여들어서 보라색 문의 모습을 형성했다.

“이것은 우리 요족의 탐지 영기다. 우리 요망일족의 영혼에 반응하지. 그래서 적환 어르신을 살해한 범인이 이 문을 지난다면 바로 찾아낼 수 있다. 만약 너희 중 정말로 적환 어르신을 살해한 범인이 없다면 무사히 보내주겠다.”

필욱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종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영기를 보았다. 탐지 영기라고는 하지만 아무런 뒤탈도 없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모든 이가 능서와 종수의 반응을 기다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살짝 굳은 표정으로 종수를 보며 운철흑도의 칼자루를 쥐었다.

그는 아직까지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상대가 종수에게 위해를 가하려 한다면 손 놓고 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이 몸이 너희 요족의 수색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그야말로 바보 같은 망상이구나!”

분노한 능서가 크게 소리쳤다.

출발에 앞서 종수의 앞에서 큰소리를 쳤던 그는 체면이 깎이는 타협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죽어라!”

능서의 격한 반응에 본래 난폭한 성격을 지닌 필욱도 분노를 터트렸다.

“누가 죽을지는 아직 모르지!”

능서가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능서는 날카로운 폭발음을 내며 순식간에 필욱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 모습은 마치 푸른 유성과 같았다.

능서는 한쪽 주먹을 힘차게 내뻗었다. 이어 그의 주먹에 푸른빛이 모여들어 몇 장 크기의 흉악한 뱀 머리 형상이 되었다.

필욱은 능서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필욱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바닥을 뻗자,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보라색 빛이 그의 몸 앞에 모여들었다. 그 빛은 팔 장 가까운 크기의 거대한 보랏빛 손바닥의 모습을 형성했다.

쾅!

능서의 주먹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거대한 보랏빛 손바닥을 뚫고 계속해서 뻗어나갔다.

필욱이 굳어진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자 그의 손바닥에 보라색 비늘이 돋아났다.

퍽!

필욱과 능서가 동시에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필욱은 손바닥에서 고통을 느끼며 손을 내려다보았다. 보라색 비늘이 몇 개 파괴되어 있었다.

일 합을 겨룬 뒤 서로의 힘이 대등하다는 것을 깨달은 두 사람은 서로를 얕잡아보는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상대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살짝 밀린 필욱은 분노로 동공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죽어라!”

그 순간, 필욱의 몸이 보라색으로 반짝이더니 크기가 삽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구렁이로 변했다. 광폭한 기운을 뿜어내는 구렁이가 아가리를 쩍 벌린 채 능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뒤에 있던 요족들도 포효하며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그때, 능서의 가슴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더니, 상대와 크기가 비슷한 구렁이 법상이 나타나서 상대를 향해 달려들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하얀 빛이 날아와 능서와 필욱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것은 지름이 몇 장에 달하는 하얀 빛의 원형 방패였다.

빛 방패의 표면은 마치 햇빛에 비친 수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구렁이로 변한 필욱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들며 이마의 삼각형 문양에서 보라색 광선을 쏘았다.

그러나 광선이 빛 방패의 정중앙을 가격했지만, 모두가 예상했던 커다란 폭발음은 울리지 않았다.

빛의 방패는 안쪽으로 일 척 가량 오목하게 휘어지며 광선에 담긴 모든 힘을 전부 중화시켰다.

이어 빛의 방패는 하얀 빛을 뿜어내며 사라졌다.

필욱은 놀라서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는 다시 사내의 모습으로 돌아와 종수를 바라보았다.

종수의 머리 뒤에서는 하얀 초승달 모양의 환영이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멈춰주세요!”

종수가 지팡이를 거둬들이며 말했다.

필욱은 종수를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휘둘러 돌진하는 요수들을 멈춰 세웠다.

석목은 놀란 표정으로 종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종수는 못 본 사이에 변신을 한 지계 요족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낼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이 물건을 봐주세요.”

종수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고동색 영패를 꺼냈다. 그 영패에는 기괴한 붉은색 부문이 새겨져 있었다.

영패를 본 필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오상회의 영패! 설마 천오상회의 사람인가?”

필욱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맞습니다. 저는 천오상회의 객경장로 종수입니다. 현재 일강성의 성주 유찬의 의뢰를 받아 창욱성으로 물건을 운송 중이에요. 저희는 당신들과 싸우고 싶지 않아요. 당신들의 수가 우리보다 많을지는 모르나, 실력을 따지자면 그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도 않을 것이니 잘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종수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필욱은 고개를 돌려 뒤쪽의 요수 무리를 보았다. 확실히 요수가 더 많기는 했지만, 그중 선천요수의 수는 많지 않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상대를 보았다. 상대는 육십 명에 불과했으나 거의 전부가 선천 토템용사 혹은 성계술사였고, 지계의 존재도 두 명이나 있었다.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분명 피해가 막심할 것이었다.

필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잠겼다.

“저는 겨우 며칠 전에 일강성에 도착했지만 요망일족의 적환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적환이 죽었을 때 능서 장군은 일강성 안에서 나온 적이 없으며, 그 점은 요망일족도 이미 조사를 통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 이곳에 도착한 저와 능서 장군은 모두 적환을 죽인 범인이 될 수 없어요.”

종수가 차분하게 말했다.

필욱은 능서 쪽을 보았다. 일강성 성주의 유명한 부하인 능서에 대해서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요망일족은 사건에 대해서 많은 조사를 했고, 능서는 분명히 용의선상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게다가 제 뒤에 있는 이들은 전부 선천 토템용사 혹은 성계술사입니다. 그들만으로는 적환의 몸에 상처조차 입히기 힘들죠.”

종수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필욱은 정신력을 방출해 뒤쪽의 이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운 혹은 법력의 파동으로 봤을 때 전부 선천 토템용사 혹은 성계술사인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 저희는 모두 적환을 죽인 범인이 될 수 없습니다. 당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지나가도록 놓아주세요. 천오상회와 요망일족의 사이가 이런 일로 틀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종수가 말했다.

필욱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정말 범인이 없다면 이 문을 지나가면 되지 않나?”

그 말을 들은 종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더러 네놈들의 수색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냐? 꿈 깨라!”

능서가 소리쳤다.

“우리 천오상회는 지금껏 웃는 얼굴이 부를 가져다준다는 일념으로 어떤 세력과도 척을 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두려워 마냥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우리를 곤란하게 만든다면 우리도 맞서 싸울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되면 이 일은 추후 제가 직접 상회의 고위층에 알릴 것입니다.”

종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필욱은 머릿속으로 이해득실을 따지기 시작했다.

요망일족은 천오상회와의 거래를 통해 많은 이익을 얻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에게 밉보였다가는 오규에게 문책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고민을 하는 사이 맞은 편 능서의 법상이 고개를 들고 날카롭게 울기 시작했다. 종수도 하얗게 빛나는 지팡이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두 거대한 기운의 압박에 필욱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물론 그가 겁을 먹을 리는 없었지만, 뒤에 있는 많은 요수는 이미 두려움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슬슬 뒷걸음질을 치기도 했다.

“좋다. 오늘은 천오상회의 체면을 봐서 지나가게 해주마.”

필욱이 손을 흔들며 말하자 그의 뒤쪽에 있던 요수들이 양 옆으로 길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종수가 웃음을 지으며 지팡이를 내렸다. 능서도 코웃음을 치며 푸른색 장창을 거두었다.

행렬은 요수들의 사이를 뚫고 앞쪽의 안개 사이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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