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43화 (243/916)

243화. 운익성(云翼城)

하늘이 어두워질 때쯤, 그들은 산자락에 위치한 운익성에 도착했다.

성의 수문병은 행렬을 간단하게 검문한 뒤 바로 통과시켰다.

성에 들어간 뒤에는 모든 이가 부운차에서 내렸고, 그것들을 가운데 두고 둘러싼 채로 천천히 걸어서 이동했다.

인족과 야만족이 섞여 있는데다 각자 다른 복장을 하고 있는 일행은 매우 눈에 띄었다.

성 안의 주민들은 대부분 얼굴이 핼쑥한 익학부족의 야만족이었다. 호화로운 부운차의 행렬을 보는 그들의 표정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는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부운차를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주위를 둘러보는 능서의 매서운 눈빛에 놀라 고개를 돌렸고, 더 이상 그곳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행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수많은 선천급 이상의 고수와 지계, 월계의 존재가 있는 일행에게 누구도 다가와서 덤비지 못했다.

학 모양의 장식과 부조, 그림 등이 눈에 띄는 성 안의 건물들은 한눈에 봐도 굉장히 독특했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석목은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옆에 있는 영월동은 굉장히 익숙해보였다.

저녁인데도 왁자지껄한 성의 중앙에는 산맥까지 이어진 도로가 깔려 있었으며, 그 도로의 양쪽에는 제각각의 특색을 가진 상점과 주루, 객잔이 있었다.

“운익성은 학명산맥에 진입하기 전에 들리는 마지막 마을이에요. 모두 지치기도 했을 것이고 늦은 밤 학명산맥을 지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이곳에서 하루 묵고 가겠습니다.”

능서와 상의를 마친 종수가 말했다.

“종 소저는 정말 섬세하고 사려가 깊군요. 제 생각에도 오늘 밤은 푹 쉬고 내일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 객잔에서 머물죠.”

종수는 능서의 아첨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객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객잔은 시설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군요. 이전에 이곳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시설이 좋은 대형객잔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서 판매하는 본토의 음식은 굉장히 맛있으니 종 소저도 분명 좋아할 겁니다.”

능서가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놀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그런 곳에 묵는다면 너무 눈에 띌 겁니다.”

종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하, 우리가 이곳에 온 이상 어디서 묵든 눈에 띄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봐야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능서가 웃으며 말했다.

종수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능서의 말은 매우 일리가 있어서 반박할 수 없었다.

“도둑놈들이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를 건드리지는 못할 겁니다. 나와 그대가 있고 천오상회가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능서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럼 좋아요.”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능서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줄곧 자신의 말에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던 종수가 처음으로 수긍해준 것이다.

“가자. 앞쪽의 객잔에서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능서가 모두에게 말한 뒤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종수는 이미 가장 뒤에 있는 부운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능서는 별 수 없이 씩씩거리며 앞으로 갔다.

“하하, 능서가 다시 한 번 퇴짜를 맞았군요.”

영월동이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능서의 뒷모습을 보는 석목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굉장히 섬뜩했다.

능서는 줄곧 종수에게 치근덕거리면서 뒤에서는 수하들과 종수에 대해 저속한 말을 쏟아냈다. 몰래 정신력을 발산해 그런 그의 모습을 염탐한 석목은 매우 화가 났다. 명월교의 음모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를 가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 성은 정말 재미있어 보이네요. 오라버니, 이따 저와 함께 구경 가요.”

영월동이 말했다.

“미안해요.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시간을 낼 수 없을 것 같아요.”

석목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흥! 남의 마음도 알아주지도 않고!”

석목이 단번에 거절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듯, 영월동은 화를 내며 석목을 남겨두고 혼자 가버렸다.

바로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 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성격이 불같긴 해도 미인인데 정말 관심이 없어? 나는 정말 마음에 드는데. 그녀가 앵무새가 아니라는 사실이 아쉽네.”

“시끄러워! 빈틈없이 주위나 잘 지켜봐!”

석목이 언짢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행은 금세 성 중앙에 위치한 한 객잔에 도착했다. 그 객잔은 능서의 말마따나 굉장히 호화로웠다. 앞에는 육 층짜리 커다란 건물이 있었으며 뒤에는 정원이 딸린 별관들이 있었다.

객잔의 사장은 뜻밖에도 익학부족의 야만족이 아니었다. 사장은 일행을 매우 열정적으로 반기며 그들에게 정원이 딸린 별관을 몇 개 내주었다.

종수는 모든 부운차를 비교적 큰 정원 한 곳에 모아두고, 모두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도록 조치했다.

“성 안은 안전한 편이니 이곳은 저들에게 맡기면 될 겁니다. 우리는 가서 이곳의 맛있는 음식을 즐기죠!”

능서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맛있는 음식에 별로 흥미가 없어요. 만사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니, 저는 이곳에 머물며 부운차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능 장군은 드시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서 드세요.”

종수는 차갑게 말한 뒤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종수의 두 시녀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유감의 뜻으로 능서를 향해 한 번 웃어준 뒤, 종수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래진 능서의 두 주먹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마주볼 뿐 감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툭!

그때 누군가 부주의하게 물건을 건드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매우 선명했다.

그 순간 능서가 갑자기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원 내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모두 다급히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정원 한쪽 구석에 여유 있게 서 있던 석목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능서를 한 번 본 뒤 고개를 돌렸다.

능서는 코웃음을 친 뒤 다시 한 번 종수의 방을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능서가 나가자 정원에 있던 다른 이들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어 그들은 부운차를 지키기 위한 불침번의 순서를 정했다.

석목의 차례는 두 시진 뒤였기 때문에 당장 할 일은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정원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하늘에서 급강하한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석두, 성을 구경하려고? 맛있는 거 먼저 먹자!”

채아가 말했다.

“명월동교와 익학부족이 결탁해 언제 습격을 할지 모르는데, 그렇게 한가하게 다닐 틈이 어디 있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채아가 실망한 듯 한숨을 쉬었다.

“됐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나눠서 행동하자. 성에서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일이 마무리되면 꼭 맛있는 것을 사줄게.”

석목이 말하며 중급 수속성 영석을 채아에게 던졌다.

채아는 영석을 한 입에 받아 삼킨 뒤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석목은 밤하늘 상공으로 사라지는 채아를 보며 계속해서 걸었다.

익학부족의 야만족들은 저녁에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거리에는 다른 부족의 야만족들이 비교적 많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인지, 아니면 이곳에 명월교의 분단이 아예 없는 것인지 몰라도, 길에는 명월교의 교도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밤이 깊어질수록 거리의 상점이 하나둘씩 문을 닫으며 행인들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석목은 거리를 한 바퀴 돌아봤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본성 방향을 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석목은 어둠 속에 숨어서 본성이 있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각 후, 석목은 본성의 외곽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높은 담이 둘러서 있었으며, 창을 든 익학부족의 야만족들이 그 주위를 순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개 병사에 불과한 그들은 석목에게 어떠한 방해도 되지 않았다.

석목은 가볍게 담을 넘어 본성 내부로 잠입했다.

담 너머의 건물들 사이사이가 나무와 돌로 예쁘게 꾸며져 있는 것을 보니, 이곳의 성주는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자인 것 같았다.

석목은 함부로 정신력을 발산할 수는 없었기에 두 눈으로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본성 내부에는 순찰을 도는 병사가 없었다. 그러나 전혀 방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위 곳곳에서 희미한 법력의 파동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진법을 설치한 것이 분명해보였다.

만약 부주의하게 그것을 건드렸다가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었다.

석목은 금빛으로 변한 눈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그는 경지가 높아지며 금안(金眼: 금색 눈)에 새로운 능력이 더해졌다. 이제 금안을 정신력과 결합하여 사용하면 법력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안을 통해 보자 주위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각각 색이 다른 빛의 장막이 본성의 거의 모든 장소를 덮고 있었다.

석목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곧 기쁜 듯 웃었다.

진법의 범위가 전부 보이는 만큼 그것을 피해서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석목은 빛의 장막 사이사이를 미꾸라지처럼 지나면서 점점 깊숙이 이동했다.

잠시 후, 어느 길목을 지나던 석목은 놀란 표정으로 길가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곧 멀리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품속에 무언가를 품고 있는 익학부족의 젊은 야만족이 다가왔다. 그는 석목을 지나쳐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천천히 몸을 드러낸 석목은 그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현재 적막이 감도는 본성에는 대부분의 건물에 불이 꺼져 있었다. 석목이 이곳에 들어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방금 전의 청년은 그가 마주친 첫 번째 사람이었다.

석목은 청년을 쫓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선천의 경지에도 오르지 못한 그 자는 아마 이곳의 하인에 불과할 것이었다.

석목은 다시 몸을 움직여서 더욱 깊은 곳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모퉁이를 돈 그의 시선에 불빛이 보이는 삼 층 건물이 들어왔다. 석목은 기쁜 표정으로 건물에 다가갔다.

석목이 몰래 안쪽의 상황을 들여다보려던 찰나,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내려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깜짝 놀란 석목은 그것이 채아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일부러 깜짝 놀라게 했구나!”

석목이 채아의 머리를 두 번이나 때렸다.

“나도 안쪽에 있는 이들에게 들킬까봐 기척을 숨긴 거라고.”

채아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쪽의 상황이 어때?”

석목이 물었다.

“직접 봐.”

채아는 그렇게 말하며 건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채아의 눈이 하얀 색으로 빛났다.

석목은 재빨리 채아와 시야를 공유했다. 그러자 건물 벽이 천천히 투명해지며 안쪽에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사람은 검은 옷을 입은 노인으로, 상당한 권력을 지닌 사람인 듯 위엄이 느껴졌다.

다른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마른,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순간 석목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은 일강성에서 견 씨 성의 여인과 접촉했던 익학부족의 야만족 중 하나였다.

“석두, 익학부족의 야만족이 정말 이곳에서 뭔 짓을 벌일 건가 본데, 어떻게 할 거야?”

채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두 사람의 입모양을 보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이 대화를 멈췄다. 청년이 노인에게 인사를 한 뒤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근처에서 잠복하고 있던 석목과 채아가 재빨리 몸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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