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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45화 (245/916)

245화. 돌변한 태도

정원에는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이 부운차를 벽처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종수가 내린 명령에 따라, 그녀와 능서가 돌아오기 전까지 모든 사람은 이 정원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목 형이 왜 보이지 않지?”

석목과 같은 부운차를 타고 온 보라색 머리의 청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영월동도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청년의 말대로 정원에는 석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라색 머리 청년이 말했다.

그때 노인이 남겨두고 간 그의 수하들 중 덩치가 큰 검은 피부의 야만족이 다가와 말했다.

“우리가 도울 일이 없을까요?”

그러자 호위 일행 중 선천후기 경지의 마른 중년 남자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감사하지만 우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종수는 떠나기 전 그에게 익학부족의 야만족을 절대 부운차에 접근시키지 말라고 전음으로 지시했다.

“하지만 성주 어르신이 저희에게 이곳에 남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검은 피부의 야만족이 곤란해하며 말했다.

“이 물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물건이고 그대들은 외부인입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지 마십시오.”

중년 남자가 꿈쩍도 하지 않고 말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익학부족의 야만족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객잔의 다른 구역을 순찰하겠습니다.”

익학부족의 야만족은 일행을 데리고 객잔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제야 중년 남자는 표정을 풀고 부운차로 돌아갔다.

검은 피부의 야만족은 정원을 나서자마자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정원 쪽을 보았다.

그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러자 다른 익학부족의 야만족들이 객잔 곳곳으로 흩어졌다.

한편 종수 일행이 본성에 도착했을 때는, 석목이 잠입했을 때와 달리 건물들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음식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노인이 종수와 능서를 본성 안쪽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노인은 화원과 가산(假山: 정원 따위에 돌을 모아 쌓아서 조그마하게 만든 산)에 대해 청산유수처럼 설명하며 계속 안쪽으로 들어갔다.

종수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걸으면서도 경계를 전혀 늦추지 않고 수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심하세요. 운양은 저의 좋은 친우입니다. 나쁜 의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 거예요.”

능서가 입술을 살짝 움직여 종수에게 전음을 날렸다.

“만사에 조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종수가 능서를 힐끔 보며 전음으로 답했다.

앞에서 걸어가는 노인은 둘이 전음을 주고받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떠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회랑을 두 개 지나서 넓은 객실에 도착했다. 객실의 중앙에는 원탁이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 맛있는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이원탁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한 명 앉아 있었다. 만약 석목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녀가 유안의 사매인 견 씨 성의 여인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봤을 것이다.

종수와 능서는 견 씨 성의 여인을 보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견 씨 성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하하, 이쪽은 명월교의 견 도우(道友: 함께 도를 닦는 벗에게 격식을 차리는 호칭)입니다. 노부의 좋은 벗이지요. 그녀도 마침 운익성에 있어 초대했는데, 괜찮겠지요?”

노인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능서가 웃으며 여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종수는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앉으시죠. 이 음식들은 전부 이곳의 특산품을 사용해 숙수가 공들여 요리한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죠.”

노인이 열정적으로 말했다.

곧 술잔이 몇 번 오고가며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때, 석목은 객실 밖 화원 구석의 그늘진 곳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는 채아와 시야를 공유해서 객실 안의 상황을 훤히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석두, 이제 어떻게 하지?”

채아가 물었다.

“노인은 분명 좋은 의도로 종수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닐 거야. 우선 둘로 나뉘어 주위를 탐색해보고 다시 계획을 세우자.”

석목이 잠시 고민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채아가 멀리 날아가자 석목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운양 성주, 술과 안주는 전부 맛봤으니 이제 말씀하신 물건을 보러 가죠.”

종수가 말했다.

그녀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으며,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하하, 그러지요.”

노인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물건이요?”

견 씨 성의 여인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노부가 팔려는 물건이 있는데 종 소저에게 와서 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흥미가 있다면 같이 가시죠.”

노인이 말했다.

“거래와 관련된 일이라고 하니 제가 낄 곳은 아닌 것 같군요. 오늘 환대를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노인이 웃으며 떠나는 여인을 문 앞까지 배웅했다.

“따라오시지요.”

여인이 나가자 노인은 종수와 능서를 건물의 옆쪽으로 데려갔다.

세 사람은 모퉁이를 몇 번 돌아 곧 외진 곳에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 건물의 주위는 옅은 검은색 빛의 장막으로 덮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종수가 불안감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곳은 중요한 물건을 모아두는 장소이기 때문에 밖에 보호 진법을 설치해두었습니다.”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검은 영패를 꺼내 무언가 읊조렸다. 그러자 영패에서 검은 빛이 쏘아져 날아가 빛의 장막에 흡수됐다.

검은 빛의 장막이 반짝이더니 표면에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천천히 생겨났다.

종수는 정신력을 발산해 내부를 탐색해 본 뒤 살짝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진법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녀는 그 진법에 공격기능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들어가시지요.”

노인이 건물의 문을 열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종수와 능서가 그의 뒤를 따랐다.

건물 안은 매우 넓었지만 굉장히 휑했다. 탁자나 의자 등의 물건이 전혀 없었다. 방의 가운데는 회색 천에 가려져 내부가 보이지 않는 진열대만 십여 개 놓여 있었다.

종수는 눈을 반짝이며 진열대로 다가가서 천을 걷어냈다. 하지만 진열대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순간 종수가 굳은 표정으로 노인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설명을 해줄 생각이 없는 듯 가만히 웃으며 서 있었다.

이번에는 능서가 다른 진열대의 천을 걷어냈지만, 그것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뜻이지?”

능서가 표정이 굳어지며 물었다.

하지만 노인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고 있었다.

“이런!”

순간 종수가 놀란 표정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노인을 향해 거대한 빛의 칼날이 날아갔다.

그러나 노인은 몸을 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몸이 빛의 칼날에 베여 두 동강이 났다.

펑!

그 순간 두 동강이 난 몸이 검은 연기로 변하며 공기 중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환술!”

깜짝 놀란 능서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함정이에요! 어서 나가요!”

종수가 소리를 지르며 건물 입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능서도 종수를 따라 달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건물의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동시에 검은 빛의 장막이 다시 건물 전체를 빈틈없이 덮었다.

종수와 능서의 몸에서 하얀색과 푸른색 광선이 거의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쾅!

건물의 문을 파괴한 두 광선은 멈추지 않고 검은 빛의 장막과 거세게 충돌했다. 그러나 검은 빛의 장막은 격렬하게 흔들리며 표면에 파문이 일었을 뿐, 파괴되지는 않았다.

노인은 빛의 장막 밖에서 뒷짐을 지고 서서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노인의 주위에는 어느새 열 명이 넘는 익학부족의 야만족들이 서 있었다. 그들이 주문을 외우며 손을 휘둘러 검은빛을 날리자, 그것을 흡수한 빛의 장막이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동시에 빛의 장막의 표면에 머리는 요수, 몸은 인간인 괴이한 존재들이 천천히 나타나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빛의 장막 내부에서는 눈부신 푸른빛을 뿜어내는 장창이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창끝은 빛의 장막을 반 척 가량 뚫고 들어갔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하고 크게 흔들리다가 튕겨져 나왔다.

능서가 굳어진 표정으로 푸른 장창을 회수했다.

그 사이 빛의 장막의 표면에 나타난 여덟 괴물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빛의 장막에서 분리되어 나오기라도 할 것 같았다.

“운양, 이게 무슨 짓이지?”

능서가 일그러진 얼굴로 노인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짓? 하하하! 정말 재미있군. 아직까지도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것이냐?”

노인이 폭소를 터트리며 능서를 조롱했다.

능서가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리며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우리를 공들여 이곳으로 유인한 것은 우리를 죽이고 물건을 빼앗기 위해서인가요?”

종수가 빛의 장막 표면에 있는 괴물들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하하, 역시 종 소저는 총명하군요.”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천오상회의 노여움을 사게 될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요?”

종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손을 쓴 것이니, 종 소저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종수는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보라색 빛이 감도는 옥간을 꺼냈다.

옥간의 보라색 빛이 점점 밝아졌지만 얼마 안 가서 갑자기 꺼져버렸다.

종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옥간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자 잠시 보라색으로 빛나던 옥간은 곧 다시 꺼졌다.

“하하, 종 소저, 헛수고하지 마세요. 이 흑액태장대진(黑厄胎藏大阵) 안에서는 외부로 어떤 소식도 보낼 수 없습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사람을 보내놨으니 객잔에 남겨둔 이들도 지금쯤 전부 시체가 되어 있을 것이오.”

이어진 노인의 말에 종수와 능서가 깜짝 놀랐다.

“방금 그 여인! 명월교와 결탁하다니!”

종수가 소리쳤다.

“정말 예리하군요. 정확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처지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 * *

묵운양이 말한 대로 객잔에서는 고함소리와 격렬한 다툼소리,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는 이들은 상처 입은 몸으로 부운차를 등진 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해골과 강시 등 무수한 사령생물이 물밀듯이 밀려와 있었다.

사령생물들은 정원 밖 허공에 떠 있는, 둘레가 삼 장 가까이 되는 검은 공간의 통로에서 쏟아져 나오는 중이었다.

그 통로 위에는 견 씨 성의 여인이 검은 구름을 타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몇몇 수하도 주문을 외우며 공간의 통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공간의 통로에서 사령생물들이 울부짖으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사령생물들은 실력은 강하지 않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었다.

“젠장, 끝도 없이 나오는군!”

“오래 버틸 수 없다! 어서 가서 능 장군과 종 장로에게 알려!”

“전부 포위당해서 벗어날 수가 없어!”

부운차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전부 선천이나 성계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었지만, 대부분 한계에 달한 듯했다. 이미 몸을 보호하는 막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들은 두 눈이 충혈된 채 이마에서 땀을 줄줄 흘리고 숨을 헐떡이며 울부짖었다. 그 소리는 마치 야수가 죽기 전에 울부짖는 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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