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일구이언
영월동은 일행의 한쪽 구석에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위에 보라색 번개들을 날리고 있었다.
그녀는 선천등급의 커다란 은색 해골전사를 두 구 소환해서 다가오는 사령생물의 공격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영월동은 공격을 하는 동시에 견 씨 성의 여인을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같은 명월교 소속으로서, 그녀는 공간의 문을 열어 이렇게 많은 사령생물을 소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많은 자원과 준비가 필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굉장히 손쉽게 해낸 것이었다.
영월동은 견 씨 성의 여인이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없는 얼굴이었다.
휙!
그때 기다란 뼈창이 두 해골전사의 방어를 뚫고 영월동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 방심하고 있던 영월동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창에 가슴을 찔렸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녀의 허리에 걸려 있던 노란 장식이 갑자기 빛나더니 순식간에 노란 빛의 장막을 형성했다.
깡!
노랑 빛의 장막을 찌른 뼈창이 즉시 튕겨나가며 파괴되었다.
은색 해골전사 중 하나가 포효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뼈칼을 휘둘러 뼈창을 들고 있던 사령생물을 두 동강 냈다.
영월동의 이마에도 땀이 송송 맺혔다.
바로 그때, 공간의 문에서 높이가 팔 장에 달하는 거대한 시호(尸虎: 살이 부패한 호랑이 시체 괴수)가 크게 울부짖으며 걸어나왔다.
“크와악!”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내는 시호의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보라색 화염이 타오르고 있었다.
“지계!”
영월동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거대한 시호가 포효하며 돌진했다. 시호가 지나가는 길에 있던 사령생물들은 호랑이의 발에 가차 없이 밟히고 차여 사지가 산산조각 났다.
쿵! 쿵! 쿵!
마치 천둥소리 같은 거대한 발걸음 소리가 호위들의 마음을 짓눌렀다.
순식간에 무리의 바로 앞에 당도한 시호가 앞쪽의 한 야만족 청년을 향해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야만족 청년은 이미 토템변신을 해서 전신이 푸른색 비늘에 뒤덮여 있었다. 그는 포효하며 자신의 덩치만한 청동망치를 휘둘렀다.
쾅!
시호의 앞발과 충돌한 청동망치가 일격에 튕겨 날아갔다. 야만족 청년의 몸 역시 줄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서 사령생물들 사이로 추락했다.
청년은 순식간에 주위의 사령생물들에게 파묻혔다. 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잠시 들려오다가 뚝 그쳤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몇몇 겁이 많은 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했다.
그때, 앞서 입구를 막아섰던 중년의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올라 시호의 앞에 섰다.
“당황하지 말고 진형을 유지해!”
선천후기의 경지에 도달한 남자는 천오상회 직속 호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다른 직속 호위 중에서도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검은 빛이 감도는 창을 들고 있는 그는 지계의 존재를 마주하고도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지계의 사령생물인 시호가 남자에게서 살짝 위협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시호는 흉포하게 울부짖으며 남자에게 돌진, 회색빛이 감도는 두 앞발을 휘둘렀다.
남자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몸을 피했고, 이어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몇 장 길이의 기다란 창으로 시호를 찔렀다.
푸욱!
검은 창이 거대한 시호의 앞발에 깊게 파고 들어갔다. 남자는 창에 진기를 주입하며 옆으로 휘둘렀다.
촤악!
시호의 앞발에 뼈가 보일 정도의 깊은 상처가 생기며 대량의 고름이 흘러 나왔다.
시호가 고통에 울부짖으며 고개를 획 돌려 입에서 노란 광선을 뿜었다. 깜짝 놀란 남자가 바닥을 구르며 간발의 차로 광선을 피해냈다.
남자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허공에 있는 견 씨 성의 여인 날린 회색빛이 그의 몸에 닿았다. 순간 남자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바로 그때, 하늘 높이 뛰어오른 시호가 달려들어 그대로 남자의 몸을 짓이겼다.
뿌지직!
시호의 발가락 틈에서 대량의 선혈이 솟구쳤다. 그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크아앙!”
시호는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들고 포효하며 앞발을 들어올렸다.
시호의 앞발에 짓이겨진 남자의 몸은 다진 고기처럼 변해서 원래의 형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호가 고개를 획 돌려더니 주위의 다른 이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제 모두가 더 이상 차분함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다들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주위의 사령생물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영월동은 그런 혼란 속에서 해골전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한쪽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녀가 하얀 부적 한 개를 꺼내 사용했다.
그러자 하얀빛이 반짝이며 그녀의 몸을 감쌌다. 순간 그녀의 모습이 자리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녀는 사라지기 직전에 수인을 맺어 두 구의 해골전사를 사령계로 돌려보냈다.
잠시 후, 모든 호위가 쓰러지며 격전은 끝을 맺었다.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몰라도 그들의 시체는 최대한 보존된 채로 한 곳에 쌓여 있었다.
허공에서 견 씨 성의 여인이 내려와서 부운차를 살피기 시작했다.
부운차 몇 대가 전투 과정에서 뒤집혔지만, 재질이 특수한 덕분에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부운차에 실린 물건들을 확인한 여인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과연 대담하군요. 성계, 선천 등급의 호위 수십 명을 이렇게 손쉽게 처리하다니. 감탄했습니다.”
익학부족의 야만족 한 명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그 야만족은 일강성에서 여인과 밀회를 가졌던 익학부족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뒤에는 익학부족의 야만족이 오십 명 정도 더 있었다.
“과찬입니다, 필굉 장군.”
여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하, 당초 협의대로 물건들을 반씩 나누는 것에 이견이 없겠지요?”
필굉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잠시 필굉을 바라보다가 곧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여인이 주위의 사령생물을 뒤로 물렸다. 거대한 시호 역시 옆으로 비켜섰지만, 여전히 으르렁거리며 두 눈에 있는 영혼의 화염을 들썩이고 있었다.
필굉이 그 광경을 보고 안도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야만족들이 네 개의 부운차를 끌고 왔다.
“이번 일은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이렇게 손을 잡을 기회가 또 있었으면 좋겠군요.”
필굉이 짐이 가득 실린 부운차들을 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하지요. 다시 한 번 협력할 일이 있을 겁니다.”
여인이 대답하며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필굉은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그때 그가 갑자기 굳어진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런!”
쾅!
진동과 함께 지면 아래에서 회색빛이 솟아나왔다. 그것은 살아 있는 촉수처럼 변해서 필굉과 일행의 발을 붙잡았다.
“이런 짓을 벌이다니! 성주 어르신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깜짝 놀란 필굉이 외쳤다. 촉수에 감긴 그의 두 다리에서 감각이 사라지며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필굉의 몸에서 검은빛이 터져 나오며 전신의 근육이 부풀어 올랐고, 동시에 등 뒤에서 커다란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그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순간, 거대한 시호가 달려들어 그의 몸 절반을 한 입에 덥석 물어뜯어버렸다.
필굉의 몸이 단번에 두 조각이 나며 선혈과 내장이 비처럼 쏟아졌다.
주위의 다른 사령생물들도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야만족들에게 달려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부 살해당한 야만족들은 호위들의 시체더미 위로 던져졌다.
“곧 모두 시병(尸兵: 시체 병사)이 되어 앞으로도 우리와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여인이 백 구가 넘는 시체의 산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부운차를 끌고 즉시 운익성을 떠나라.”
여인이 곁에 있는 명월교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예!”
한 제자가 대답했다.
“견 사숙은 함께 가지 않습니까?”
다른 제자 한 명이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먼저 떠나라. 일을 마치는 대로 합류하겠다.”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본성 방향을 바라보았다.
* * *
종수와 능서가 붙잡혀 있는 본성.
건물을 덮은 검은 빛의 장막 표면에 나타난 여덟 괴물은 이미 거의 실체를 갖춘 상태였다. 그것들은 입에서 번개와 화염 등을 뿜어내 종수와 능서를 공격하고 있었다.
건물은 이미 산산조각이 난지 오래였으며, 빛의 장막 내부는 비처럼 쏟아지는 번개와 화염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종수와 능서는 공격을 도저히 피할 방도가 없어서 각각의 보호막을 펼쳐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종수의 머리 위에는 신성한 기운을 뿜어내는 우산 모양의 우윳빛 방패가 펼쳐져 있었다.
빛의 방패는 화염과 번개를 막아낼 때마다 흔들렸지만, 결코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능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의 전신은 진청색 타원형 보호막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힘이 거의 다했는지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 일렁였고, 색이 매우 어두웠다.
검은 빛의 장막에서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며 덤벼들었다. 뱀은 입에서 핏빛 화염을 뿜어내 능서의 몸을 감싼 보호막을 가격했다.
쾅!
화염이 사방으로 퍼지는 동시에 능서의 몸을 감싼 보호막이 흔들렸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능서도 함께 비틀거렸다.
“종 소저, 이대로는 이곳에서 죽겠어요! 이곳을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그녀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버티는 걸 제외하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종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그것을 사용해야 하나…….’
묵운양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흑액태장대진은 그가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든 진법이었다. 열 명이 넘는 진법사가 발동시킨 진법은, 한 번 갇힌 이상은 설령 지계후기의 존재라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진법 주위의 진법사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끊임없이 두 팔을 휘둘러 검은 빛을 쏘아내고 있었다.
흑액태장대진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법력뿐만 아니라 체내의 원기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진법을 한 번 시전하면, 그 대가로 앞으로 몇 년간은 휴식을 취해야만 이전의 몸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계의 존재와 월계술사를 죽일 수 있다면, 충분한 가치가 있는 희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묵운양도 온 정신을 진법 안의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수십 장 떨어진 곳에 석목이 나타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막 이곳에 도착한 석목은 검은 빛의 장막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채아가 소리 없이 날아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석두, 왜 이렇게 늦었어!”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석목은 채아와 갈라진 뒤 다른 곳에서 단서를 찾느라 이곳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때 석목은 빛의 장막 속에 있는 종수를 발견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뛰어나가려다 가까스로 충동을 억눌렀다.
“석두,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마. 갇혀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생명이 위험한 것 같지는 않아.”
채아가 다급히 말했다.
석목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수아는 반드시 구해야 돼. 채아, 이곳의 상황을 자세히 말해줘.”
그가 머릿속으로 채아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