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화. 생과 사의 갈림길
석목보다 일찍 도착해 그곳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채아가 석목에게 설명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법 주위에 있는 진법사들에게 몰래 다가갔다.
흑액태장대진 안에서는 여전히 번개와 화염이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쾅!
두꺼운 번개가 능서의 몸을 감싼 보호막에 떨어졌다.
쩌억!
푸른 보호막이 빠르게 깜빡이더니 한줄기 금이 생겨났다.
쾅! 쾅!
능서가 반응할 틈도 없이 다시 두 개의 두꺼운 전사(电蛇: 전기 뱀)가 공기를 가르고 날아와 푸른 보호막 위에 떨어졌다.
쨍강!
보호막은 마치 거울 깨지듯이 깨져버렸다.
당황한 능서에게 다시 번개 한 줄기와 화염 두 줄기가 날아왔다.
순간 능서의 몸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십 장이 넘는 크기의 푸른 뱀 환영이 허공에 나타났다. 뱀은 곧 그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능서의 피부에 푸른 비늘이 빼곡하게 돋아나고, 몸 뒤에 거대한 뱀의 꼬리가 자라났다.
반망반인(半蟒半人: 반은 구렁이 반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능서는 빠르게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날아오는 번개와 화염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두 줄기의 화염은 꼬리에 막혔으나, 미처 막지 못한 번개가 그의 몸에 떨어졌다.
쾅!
능서의 몸이 흔들리더니 파괴된 푸른 비늘 사이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본 종수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치근덕거리는 능서가 싫었으나, 만약 지금 능서가 죽고 혼자 남게 된다면 더욱 위험해질 것이 뻔했다.
종수가 주문을 외우며 한 손을 휘두르자, 그녀의 몸에서 이 척 길이의 하얀색 단도가 나왔다.
단도는 하얗게 반짝이며 능서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이어 순식간에 몇 장 크기로 커지더니 허공에서 빠르게 선회하기 시작했다.
능서를 향해 날아온 두꺼운 화염줄기는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단도에 갈라졌고, 사방으로 불똥이 날렸다.
능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격에 찬 눈빛으로 종수를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요. 제가 대신 방어를 해줄 테니 어서 공격해요!”
안색이 살짝 창백해진 종수가 외쳤다.
그 말을 들은 능서는 곧바로 빛의 장막으로 다가가서 항아리만한 두께의 꼬리를 휘둘렀다.
쾅!
흑액태장대진이 거세게 흔들렸다.
“흑액태장대진 2단계를 발동해라! 오늘 너희는 둘 다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묵운양이 외쳤다.
흑익부족의 진법사들은 이미 극도로 지쳐 있었지만,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이었기에 힘을 냈다. 그들은 일제히 대답한 뒤 더욱 빠르게 검은 빛을 날렸다.
휙!
바로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묵운양과 멀리 떨어져 있던 한 진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목에는 검은 화살이 박혀 있었다.
진법사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듯 목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휙! 휙!
놀란 야만족들의 뒤에서 다시 두 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으악!”
“악!”
한 야만족은 단번에 목이 뚫렸으며, 다른 야만족은 날쌔게 몸을 피했지만 오른팔에 화살을 맞았다.
진법사의 수가 단번에 세 명이 줄자 견고했던 흑액태장대진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공격의 위력과 속도가 크게 줄었다.
그 광경을 본 종수와 능서가 기뻐했다.
“누구냐!”
분노한 묵운양이 화살이 날아온 뒤쪽 그늘진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그때, 어둠속에서 강풍이 몰아쳤다. 그리고 동시에 검은 태양이라도 뜬 것처럼 눈부신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대한 기운은 묵운양의 기세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지계!”
묵운양이 놀라서 외쳤다.
그가 허공에서 회색 갈고리 모양의 검을 꺼내 아래로 내려베었다. 몇 장 크기의 두꺼운 검광이 솟아나와 그늘진 곳을 향해 날아갔다.
그때 어둠속에서 코웃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검은빛에 휩싸인 주먹이 뻗어 나왔다.
쾅!
주먹과 충돌한 회색 검광이 힘없이 파괴됐다.
묵운양이 다시 한 번 공격을 하려는 순간, 어둠속에서 몇 십 장의 부적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묵운양은 부적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법력의 파동에 살짝 놀랐다. 그중 몇 장은 묵운양마저 놀랄 정도의 강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그 순간, 어둠속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날아가는 부적들이 각각의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묵운양은 굳은 표정으로 급하게 몸을 멈추고 다시 뒤로 몸을 날렸다.
그의 반응은 빨랐지만, 부적들이 더욱 빨랐다. 어느새 부적들은 묵운양의 주위를 감쌌다.
콰르릉!
수십 장의 부적이 동시에 발동되며 엄청난 폭발음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폭발과 함께 터져 나오는 법력의 파동에 진법사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전신이 검은 비늘에 덮인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는 분노한 표정으로 진법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악!”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진법사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명을 달리했다.
남자가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계속 움직이자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여덟 명의 진법사가 죽었다. 그들은 전부 주먹질 한 번에 목숨을 잃었다.
진법사들은 성계술사에 불과했고, 토템변신을 시전하고 상급 풍속성 부적까지 사용하는 석목을 근거리에서 막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
진법사들이 목숨을 잃자 흑액태장대진은 곧 소멸될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종수와 능서는 처음에는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기뻐하며 웃기 시작했다.
순간 종수는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그 남자를 바라보며 두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에 능서도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더니, 기분이 상한 듯 코웃음을 쳤다.
연달아 여덟 명의 진법사를 죽인 석목은 다른 진법사에게 다가갔다.
휙!
바로 그때, 부적이 폭발한 장소에서 갈고리 모양의 검이 석목을 노리고 날아왔다.
검의 표면에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녹색 빛이 감돌고 있었다.
석목이 몸을 피하자 허공에서 방향을 급전환한 검이 다시 그를 쫓아왔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 팔을 휘둘러 금전검을 날렸다.
쾅!
두 검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순간, 묵운양이 석목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옷이 완전히 찢겨졌을 뿐 다른 타격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전신에는 두꺼운 녹색 각질층이 돋았으며,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네 개나 자라 있었다.
“강시공!”
석목이 놀라서 외쳤다.
묵운양이 시전한 것은 명월교의 강시공이었다.
살아남은 진법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성주 어르신이 자객을 처리할 것이니 전력을 다해 진법을 유지해!”
키가 작은 진법사가 큰 소리로 외치더니, 자신의 혀를 물어뜯어 흑액태장대진에 피를 뱉었다.
다른 진법사들도 각자 자리에 앉으며 빛의 장막을 향해 피를 뱉었다.
거의 소멸하기 직전이었던 빛의 장막은 피를 흡수하자 다시 천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진법의 안에 있던 종수와 능서는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해가는 빛의 장막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때 토템 변신을 풀고 다시 야만족의 모습으로 돌아간 능서가 핏빛 단창을 꺼냈다.
절단된 흔적이 뚜렷한 단창은 은은한 핏빛이 감돌았고, 괴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능서가 깊게 숨을 들이 마신 뒤 손가락으로 손목을 그었다. 그러자 피가 솟아나와 단창에 흡수되었다.
피를 머금은 단창의 빛이 즉시 밝아지더니 붉은 빛의 실이 솟아나와 창을 둘둘 감기 시작했다. 이윽고 핏빛 실에 꼼꼼하게 감긴 창이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단창은 주위의 모든 것을 흡수하려는 것처럼 괴이한 빛을 뿜어냈다.
종수는 옆에서 그 광경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능서는 자신의 손에 들린 단창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종수의 시선을 눈치 채고는 의연한 척을 하며 빛의 장막을 바라보았다.
“종 소저, 이번 일은 사람을 잘못 믿은 제 실수입니다. 대신 반드시 제가 소저를 탈출시킬게요.”
그가 웃음을 지으며 단창을 쥔 손에 힘을 주자, 괴상한 빛이 더욱 강해졌다.
능서는 빛의 장막으로 돌진하며 단창을 쥔 팔을 앞으로 뻗었다. 단창에서 붉은 눈부신 창영이 앞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핏빛 창영은 아직 완전히 복원되지 못한 빛의 장막을 가볍게 뚫었고, 그곳에 박힌 채로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능서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진법 밖에서는 묵운양과 석목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떤 무기도 없이 맨주먹으로 격투를 하는 중이었다.
토템변신을 한 뒤 몸이 단단해지고 힘이 강해진 석목은 지계초기의 존재 정도는 문제없이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시공을 시전한 묵운양의 힘과 신체의 견고함은 모두 석목에게 뒤지지 않았다.
둘의 싸움은 점점 격렬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묵운양은 능서의 핏빛 단창이 진법에 박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굳어진 표정으로 석목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석목은 그가 원하는 대로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가 두 팔을 맹렬하게 움직이자 무수한 권영이 묵운양에게 쏟아졌다.
묵운양은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을 멈추고 석목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때 빛의 장막의 표면에 있던, 사람의 몸에 뱀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핏빛 단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누구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능서는 크게 웃으며 단창을 휘둘렀다.
촤악!
단창의 움직임에 따라 빛의 장막에 박혀 있던 핏빛 창영이 움직였고, 빛의 장막에 일 장 가까운 너비의 틈이 생겼다.
“종 소저, 먼저 나가시죠.”
능서가 팔을 들어올리며 예의 있게 말했다.
종수는 사양하지 않고 틈 사이로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능서가 그녀를 뒤따라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빛의 장막에 박혀 있던 창영이 갑자기 폭발하더니 핏줄기로 변했다. 그것은 빛의 장막 표면에 있는 반사반인(半蛇半人: 반은 뱀이고 반은 인간인 괴물)의 몸에 흡수되었다.
동시에 갈라졌던 빛의 장막이 다시 합쳐졌다. 그 바람에 달려 나가던 능서는 그대로 빛의 장막에 충돌했다.
“말도 안 돼!”
넘어졌다가 몸을 일으킨 능서가 놀란 눈빛으로 눈앞의 광경을 보았다.
이미 밖으로 나간 종수 역시 놀란 표정이 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핏줄기를 흡수한 반인반사는 몸이 뚜렷해졌으며, 두 눈은 마치 핏빛 초롱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어 반사반인의 두 눈에서 두 줄기 붉은 빛이 쏘아져 나갔다. 그 빛은 능서의 손에 들린 단창에 흡수되었다.
웅-.
그 순간, 핏빛 단창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무수한 핏빛 실이 뿜어져 나왔고, 그 실은 순식간에 능서의 몸을 휘감았다.
핏빛 실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능서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능서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벌어진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몸이 빠른 속도로 말라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골이 상접해졌다.
툭!
잠시 후 바짝 마른 능서의 시체가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쩝쩝쩝…….”
핏빛 단창은 마치 능서의 피와 살을 맛보는 듯한 기괴한 소리를 냈다.
그 장면을 본 모두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나도 괴기한 모습에 석목과 묵운양마저도 싸움을 잠시 멈출 정도였다.
석목과 묵운양은 경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석목은 묵운양의 반응을 보고 이것이 상대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안심했다.
능서가 저 기괴한 핏빛 단창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철저하게 지배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용한 탓에 거꾸로 잡아먹힌 것 같았다.
단창의 두려운 기운과 피비린내가 빛의 장막 너머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천천히 각성하기라도 하는 듯 그 기운이 점차 강력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