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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48화 (248/916)

248화. 마음을 표현하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석목은 우선 이곳을 벗어나자고 종수에게 전음을 보내려 했다.

그 순간 핏빛 단창이 갑자기 진동했다. 그리고 기존의 몇 배에 달하는 기운과 함께 눈부신 붉은빛을 뿜어냈다.

붉은빛 사이에서 흐릿한 인영이 살짝 나타났다가 바로 사라지더니, 이어서 단창을 중심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발산되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콰르릉!

충격파는 흑액태장대진의 빛의 장막을 파괴한 뒤 잠시 멈칫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주위로 뻗어나갔다.

빛의 장막과 가까운 거리에 있던 종수, 그리고 남은 몇 명의 진법사가 충격에 휩쓸려서 강풍 속의 낙엽처럼 멀리 날아갔다.

그래도 월계술사인 종수는 진법사들보다는 반응이 훨씬 빨랐다. 그녀는 충격파가 다가오기 전에 재빨리 빛의 방패로 막으며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빛의 방패는 충격파를 아주 잠깐 막아냈을 뿐 곧 파괴되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종수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바로 그 순간, 어느새 종수의 뒤에 나타난 석목이 그녀의 몸을 받아냈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돌려 등으로 충격파를 막았다.

엄청난 충격에 휩쓸린 석목의 몸은 이십여 장을 날아간 뒤에야 간신히 멈췄다.

주위의 건물들도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갔고, 수목과 화초도 전부 뽑히며 엉망이 됐다. 단창을 중심으로 주위 수십 장이 순식간에 공터로 변했다.

석목은 아직 공포가 가지 않은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엄청난 위력을 발산한 단창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서쪽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종적을 감췄다.

석목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때 그의 옆에 능서의 시체가 떨어졌다.

석목은 시체의 왼손에 아직 끼워져 있는 푸른색 반지를 발견했다. 그는 눈을 빛내며 반지를 챙겼다.

이어 석목이 푸른 북을 타고 날기 시작하자, 묵운양의 회색 검과 대치하고 있던 금전검이 그를 뒤따라 날아왔다.

묵운양은 멀리까지 날아갔다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몸에 수많은 상처를 입었고, 얼굴은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핏빛 단창과 비교적 먼 거리에 있던 그는 강시공을 시전한 덕분에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다.

그는 한줄기 푸른빛으로 변해 멀리 날아가는 석목을 섬뜩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 쫓아가봐야 그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묵운양은 흩날리는 먼지가 가라앉은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몇 명 남아 있던 진법사 중 조금 멀리 떨어져 있던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처참하게 죽은 것이다.

“도이에게 학명산맥을 봉쇄하라고 전해라.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입었으니 멀리 도망가지는 못할 것이다.”

“예!”

묵운양이 지시하자 진법사가 대답한 뒤 물러났다.

바로 그때, 견 씨 성의 여인이 멀리서 날아왔다.

“묵 성주님,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죠? 종수와 능서는 처리했나요?”

여인이 눈앞의 상황을 보고 물었다.

“능서는 죽었고, 종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가 구출해갔네.”

묵운양이 말했다.

“뭐라고요? 묵 성주님, 이번 계획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우리 모두 곤란해지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흥, 두 사람은 모두 상처를 입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것이니 조급해하지 말게. 이미 산맥에 사람을 보내놨네.”

묵운양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럼 다행이군요. 참, 우리 명월교의 강시공은 어떻습니까?”

여인이 묵운양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나쁘지는 않지만 수련하기가 조금 번거롭더군. 그런데 필홍은 어쩌고 혼자 돌아왔는가? 그곳의 상황은 어떻지?”

묵운양이 말했다.

“부운차는 이미 전부 빼앗았어요. 필홍 장군은 우리와 협력하는 것이 매우 즐거운 듯 하더군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데, 묵 성주님은 어떤가요?”

여인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묵운양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순간, 견 씨 성의 여인이 수인을 맺자 그녀의 몸 앞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어 그 사이에서 등 뒤에 한 쌍의 날개가 달리고 키가 일 장 가까이 되는 사람의 윤곽이 나타났다.

회색 연기가 걷히자 전신의 피부가 검고 마르고 키가 큰 남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필홍! 그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지?”

묵운양이 깜짝 놀라 외쳤다.

“필홍 장군이 우리와 계속 협력을 하고 싶다고 했으니 불만은 없겠지요?”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필홍이 날개를 펼치며 묵운향에게 돌진했다.

“네년이 죽고 싶은가 보구나!”

묵운양이 소리를 지르며 회색 검으로 반격에 나서려 했다.

바로 그때, 여인이 은색 종을 꺼내 살짝 흔들었다. 종의 표면에 심오한 부문이 생겨나더니 종소리가 울렸다.

묵운양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굳어버렸다.

그 순간, 그의 뒤로 다가간 필홍이 두 팔로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어서 여인이 지팡이를 꺼내 휘두르자 회색빛이 날아가서 묵운양의 몸을 휘감았다.

* * *

한 시진 후, 학명산맥의 어느 동굴 안.

뚝, 뚝…….

어디선가 흘러나온 맑은 물이 동굴 천장에서 찔끔찔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동굴에는 평평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깔린 하얀 모피에는 한 소녀가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그녀는 피부가 눈처럼 하얗고 외모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바로 종수였다.

잠시 후 종수는 긴 속눈썹을 떨더니 천천히 두 눈을 떴다.

멍청히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눈에 낯익은 모습이 들어왔다.

“석 오라버니?”

종수가 반신반의하며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수아, 깨어났어?”

석목이 종수에게 다가가며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오라버니, 정말 오라버니군요!”

종수는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개의치 않고 석목에게 안겨서 눈물을 흘렸다.

석목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종수를 품에 안은 채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기만 했다.

“오라버니, 이게 꿈은 아니겠죠? 아무리 곳곳을 뒤져도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는 보지 못하는 줄 알았어요…….”

수아가 훌쩍이며 말했다.

“결국 이렇게 찾아냈잖아. 울지 마. 네가 계속 우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석목이 쩔쩔매며 말했다.

“울지 않을게요. 너무 기뻐서 그랬어요.”

종수가 아직 눈물자국이 남은 얼굴로 바보처럼 웃으며 말했다.

“내가 분명 묘음종으로 돌아가라고 했잖아.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거야?”

석목이 짐짓 화난 척을 하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는…… 저는 오라버니가 너무 걱정되어서 그랬어요.”

종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알겠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 하지만 다시는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면 안 돼. 네가 혼자 서하대륙까지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생겼다면, 내가 네 아버지를 무슨 낯으로 보겠니.”

석목이 말했다.

“제……제게 마음이 있어서 그런 걱정을 해주는 건가요?”

종수가 살짝 기쁜 목소리로 물었다.

석목은 그녀의 말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쭉 서문설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강해진 이유 중 절반은 그녀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종수를 여동생처럼 아꼈기에 그녀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 이제껏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동주대륙에서 현상금이 붙어 추격을 당했을 때, 그를 믿고 찾아온 것은 종수뿐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그를 위해 많은 사람이 꿈에도 그리는 선인이 되는 길을 포기하기까지 했다. 석목은 그제야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종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종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석목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점차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종수와의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자 석목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본래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닌 그는 즉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당연하지.”

석목이 종수를 보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라버니……. 앞으로는 저를 떠나면 안 돼요. 알겠죠?”

종수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고였다.

“응? 예쁜 누님, 일어났어요?”

석목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 채아가 동굴 안으로 날아 들어오며 말했다.

“석두가 엄청 애를 태웠어요. 깨어났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나가서 싹 다 죽여 버렸을지도…….”

채아가 눈치 없이 옆에서 떠들어댔다.

“됐어, 입 다물고 어서 나가서 주위나 경계해.”

채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석목이 딱밤을 날리며 말했다.

“석두, 이러면 안 되지. 누님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공로가 크다고. 이렇게 배은망덕하게…….”

채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석목이 자신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는 말을 들은 종수는 그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안심해. 앞으로 다시는 너를 두고 떠나지 않을게.”

석목이 채아를 무시하고 품 안의 종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 광경을 본 채아가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석두, 네가 드디어 이성에 눈을 떴구나! 정말 기뻐. 누님이 영월동보다 몇 배는 낫지. 내가…….”

결국 시끄러움을 참지 못한 석목은 종수를 모피 위에 가볍게 올려놓은 뒤, 채아를 잡아채 동굴 밖으로 나갔다.

“채아는 더 재미있어졌네요.”

석목이 돌아오자 종수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말만 많지 귀여운 구석이 없어.”

석목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참, 오라버니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예요? 익학부족의 습격을 받은 뒤로……. 앗, 부운차!”

그제야 부운차와 임무를 떠올린 종수가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움직이지 마. 익학부족과 명월교가 결탁했어. 운익성의 객잔은 습격을 받아 전부 몰살당했고, 부운차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석목이 말했다.

“물건들은 되찾을 수 없겠네요. 그런데 오라버니는…….”

종수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녀는 곧 무언가를 떠올리고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비밀리에 누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줄곧 호송 임무에 함께하고 있었어요.”

채아가 동굴 입구에서 머리만 빼꼼 내밀고 말한 뒤, 석목에게 한소리 더 듣기 전에 잽싸게 내뺐다.

“정말요? 줄곧 함께 있었던 거예요?”

종수가 살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석목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일을 종수에게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나저나 수아, 서하대륙에는 어떻게 왔고 어쩌다가 천오상회의 객경장로가 된 거야?”

석목이 지금껏 줄곧 가지고 있던 궁금증에 대해 물었다.

“말하자면 좀 긴데…….”

종수는 과거에 석목이 천오상회를 통해 보낸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묘음종에 돌아가기는커녕, 석목에 대한 걱정으로 곡양성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때마침 천마종과 통천선교가 서하고국을 침공한 시기였기 때문에, 그녀가 지나는 마을과 성들은 전부 치열한 전쟁에 휘말려 있었다.

종수는 전란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정이 지체되더라도 최대한 작고 외진 길만 이용했다. 그 바람에 수많은 사령생물의 습격을 받았지만, 이미 상당한 실력자가 된 종수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수많은 사령생물을 무찌른 뒤 결국 곡양성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종수가 도착했을 때 곡양성은 이미 폐허로 변한 뒤였다. 그녀는 자신을 열정적으로 맞이한 서노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통해, 석목이 바다 저편의 서하대륙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하대륙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종수는,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통천선교의 사람들이 그곳까지 쫓아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이어 그녀는 요수와 야만족이 기승을 부리는 서하대륙의 환경은 동주대륙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사실을 서노자에게 듣고, 다시금 불안에 휩싸였다.

바로 그것이 종수가 서하대륙까지 석목을 찾으러 오게 된 이유였다.

당시 그녀는 서해를 건너 서하대륙에 갈 수 있도록 서노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서노자는 종수에게 천오상회의 상선을 타고 갈 것을 제안했고, 그 조건으로 오십 년 간 천오상회의 객경장로가 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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