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계책
종수는 석목을 빨리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서노자가 제시한 제안을 단번에 수락했다.
그 뒤로 종수는 상회 측의 안내를 받아 상회의 거처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한동안 기다린 뒤 서하대륙으로 향하는 상회의 한해거주에 탑승할 수 있었다.
한해거주를 통해 항행하는 동안 종수는 천오상회의 회장이라 불리는 신비로운 인물을 만나 협의서를 작성했다. 그 내용은 이전에 서노자가 언급했던 사항과 같았다.
그렇게 해서 종수는 얼렁뚱땅 천오상회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회장의 전신은 흐릿한 금빛으로 덮여 있어서, 종수는 그 자의 외모를 명확하게 보지 못했다.
“그 말은 천오상회를 위해 오십 년 동안 일을 해야만 벗어날 수 있다는 거야?”
종수의 이야기를 전부 들은 석목이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맞아요. 그 당시에는 마음이 너무 급해서 경솔했어요.”
종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수아, 자책할 필요 없어. 나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면 이런 고생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테니. 다 내 탓이야.”
석목이 말했다.
“오라버니, 제가 어떻게 오라버니를 탓하겠어요. 저는 오라버니를 찾은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쁜걸요. 어둠 속에 하늘의 뜻이 있다고, 상회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됐을지 알 수 없는 걸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천오상회의 배후 세력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함이 가시지 않아.”
“오라버니, 상회는…….”
종수가 말했다.
“내가 천오상회에 몸값을 지불하고 네 자유를 되찾아줄게.”
석목이 종수의 말을 끊고 말했다.
종수는 살짝 놀랐으나, 곧 방법이 없다는 듯 말했다.
“호의는 고마워요. 저도 가능하기만 하면 즉시 상회에서 나와서 오라버니와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요. 하지만…….”
“하지만?”
석목이 물었다.
“그 계약서에는 상회를 떠날 수 있는 조건 같은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어요. 아마 회장 본인만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 거예요.”
종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럼 회장을 찾으러 가자. 그 자는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지?”
석목이 물었다.
“그건 저도 몰라요. 회장은 평소에는 천하를 떠돌면서 귀신처럼 홀연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고 해요. 상회의 사람들은 상회에서 지급한 영패로 그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지만 그가 대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직접 나타날 가능성은 더더욱 낮아요. 당초 협의를 할 때 그는 오십 년 뒤 계약이 만료되는 날 찾아온다고 했어요.”
종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는 거야?”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참, 생각났어요! 누군가 큰 공을 세우거나 정식 장로를 임용하는 등, 중요인사가 있을 때는 회장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잠시 생각을 하던 종수가 갑자기 말했다.
“큰 공을 세운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석목이 혼잣말을 했다.
“오라버니,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을 테니 우선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오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오라버니와 함께라면 저는 여한이 없어요.”
종수가 석목을 위로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살짝 한숨을 쉬며 종수를 품에 안았다.
종수는 처음 그들이 만난 뒤로 각자의 수련을 위해 갈라졌다가, 지금 다시 만나기까지의 일들을 추억했다.
“모든 것은 네 아버지의 부탁에서 시작됐지.”
석목이 살짝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이게 다 하늘의 뜻인가 봐요……. 앞으로 어디를 가든 오라버니 옆에는 제가 꼭 함께할 거예요.”
종수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종수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다가 무언가를 떠올리며 물었다.
“참, 수아, 전에 익학부족과 명월교의 음모를 기록한 옥간을 보냈는데, 어째서 전혀 대비를 하지 않은 거야?”
“뭐라고요? 이 일에 대해서 미리 알고 있었어요?”
종수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과거에 방옥을 미행했던 일에 대해 종수에게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종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물었다.
“오라버니, 그 옥간은 누구에게 맡겼어요?”
“네 시녀인 소미라는 아이에게 맡겼어.”
석목이 생각을 하다가 대답했다.
“소미요?”
종수가 한참 동안이나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계략에 당한 것 같네요.”
그 말을 듣고 놀란 석목이 자초지종을 묻자 종수가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제 곁에는 원래 시녀 한 명밖에 없었어요. 소미는 출발 보름 전에 상회에서 붙여준 거예요…….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성격이 좋고 영리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곁에 두기로 했어요. 그녀가 그런 짓을 벌여 상회에 피해를 끼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거죠.”
그녀의 말을 듣고 석목이 물었다.
“그녀는 고작 후천무인에 불과하니 분명 배후에서 사주를 한 사람이 있을 거야. 수아, 누가 그녀를 보냈는지 알고 있어?”
“그건 저도 잘 알지 못해요. 하지만 오라버니의 말을 들어보니 상회 내부 사람의 소행이 맞는 것 같아요.”
종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아, 안심해! 내가 반드시 그 자를 찾아내 제거할게.”
석목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설령 그 자를 제거한다고 해도 눈앞의 곤경을 해결하기는 어려워요. 이번에 운송하던 물건들은 굉장한 거액의 물건이었어요. 상회의 부운차들도 엄청나게 귀한 것이고요. 그것들을 전부 잃었으니 상회는 의뢰인에게 거액의 영석을 배상해야 할 테고, 그로 인해 명성이 땅에 떨어지게 될 거예요. 이 일을 총괄하는 저 역시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겠죠.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창욱성에 돌아가서 상회에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수밖에 없어요.”
종수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익학부족과 명월동교의 작전은 굉장히 치밀하게 이루어졌어. 그들이 공모를 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증거는 전혀 남아 있지 않지.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도 상회의 장로들이 나와 채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지는 않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오라버니의 말이 맞아요. 익학부족과 천오상회는 그동안 서로에게 전혀 간섭하지 않았고, 명월교는 상회와 상당한 규모의 거래가 오가는 밀접한 사이에요. 우리가 두 세력을 범인으로 지목한다고 해도 그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솔직하게 진술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아, 나는 네가 천오상회를 떠나려 할 때 이 문제로 발목이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니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
석목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라버니, 설마…….”
종수가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물건들을 되찾아올게!”
석목이 말했다.
“뭐라고요? 물건을 되찾아온다고요?”
종수가 깜짝 놀랐다
“그래, 우선 운익성에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보자.”
석목이 말했다.
“절대 안 돼요! 상대의 머릿수와 실력이 전부 우리를 훨씬 상회하는데, 그걸 어떻게 탈환해요? 그건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저는 오라버니가 그런 짓을 하게 둘 수 없어요!”
종수는 석목이 이대로 떠날까 두려웠는지, 그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수아, 만약 손실을 조금이라도 줄인다면 상회에서 더욱 빨리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나도 내 몸을 지킬 방법 정도는 가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석목이 종수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안 돼요, 못가요! 너무 위험해요.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드디어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럴 수 없어요…….”
말을 하는 종수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걱정하지 마. 내게 방법이 있으니 나를 믿어!”
그 모습을 본 석목이 종수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종수는 석목이 고집을 꺾지 않자, 고민을 거듭하다가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했다.
석목은 종수의 단호한 표정을 보고 반대를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더욱 빈틈없이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상의를 마친 후, 종수는 석목에게 물품의 목록을 건넸다. 그 목록을 들여다보던 석목은 그중에 성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 천우성의 경매에 참여했던 석목은 이미 성석의 가치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종수가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줬다.
종수는 이번 운송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은 겨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성석이라고 했다. 그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며, 나머지 물품들은 그것과 비교하면 가치가 훨씬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석과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나머지 물품들을 모두 합친 가치도 무려 영석 오십만 개 이상에 달했다.
“참, 수아, 왜 이번 운송에 부운차를 쓴 거야? 저장반지에 넣어서 이동하면 더 편한 것 아니야?”
석목이 물었다.
“저장반지에 넣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물품 사이에 성석을 숨겨 놓았어요. 이렇게 전부 강탈당할지는 몰랐지만요.”
종수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살짝 놀랐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성석은 진묘계의 한쪽 구석에 잘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석목이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리자 종수가 부연설명을 했다.
“성석이 저장반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에요. 상회에서 대량의 물품을 운송할 때 반드시 부운차를 사용해야 한다는 별난 규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째서 그런 규정이 있는지는 저도 알지 못해요.”
바로 그때,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 들려왔다.
“석두, 큰일 났어! 안에서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밖에 익학부족의 야만족들이 몰려왔어.”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채아의 시야를 공유했다.
“무슨 일이에요?”
석목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발견한 종수가 물었다.
“밖에 익학부족의 야만족들이 몰려와서 산을 뒤지고 있어.”
석목이 말했다.
“설마 우릴 찾는 건가요?”
종수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은 알 수 없어. 나가서 확인해보자.”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고 동굴 밖으로 향했다.
종수는 살짝 망설였으나 결국 석목을 따라서 동굴을 나섰다.
잠시 후, 석목과 종수는 동굴 밖으로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멀리 하늘에서 수많은 검은 점이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점점 날아오고 있었다.
석목과 종수가 아래로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도 매우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익학부족의 야만족으로, 천라지망을 펼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묵운양이 우리를 찾기 위해 운익성의 모든 병력을 보낸 것 같군.”
석목이 말했다. 그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하자, 조금 놀랐던 종수의 마음도 조금은 안정됐다.
“오라버니, 저들이 금세 이곳을 발견할 텐데 어쩌죠?”
종수가 아이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석목은 무언가 떠올리고 눈을 빛냈다.
“이리와.”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아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벼랑 근처의 숲속으로 이동했다.
“여기에 숨어 있다가 저들이 지나가면 운익성으로 돌아가자.”
석목이 말했다.
“여기에 숨자고요……?”
종수가 멍청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곳은 몸을 숨기기에는 너무 훤히 드러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석목은 웃으며 종수를 끌어안은 뒤, 일강성 거처의 지하실에서 얻은 녹색 망토를 꺼내 두 사람의 몸을 덮었다.
망토는 조금 훼손됐지만 몸을 움직이지만 않는다면 가까스로 두 사람을 덮을 수 있었다.
곧이어 망토가 녹색으로 살짝 반짝이더니 주위의 환경과 천천히 동화되었다.
“석두, 너무 편애하는 거 아니야? 나만 혼자 밖에 두다니. 어떻게 여자가 생겼다고 친구를 버릴 수 있어!”
채아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