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운익성으로 돌아가다
석목은 망토를 살짝 젖히고, 멀리 있는 익학부족의 야만족들을 보며 고민하다가 망토를 조금 더 젖혔다.
그는 원래 채아를 시켜 야만족들의 동향을 살피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야만족의 수가 너무 많아서 채아가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들어와.”
석목의 말을 들은 채아가 날아와서 망토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가 다시 망토를 덮자 그들의 모습과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날갯짓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수십 명의 야만족이 그곳에 도착했다.
긴장한 종수의 심장 뛰는 속도가 빨라졌다.
채아는 종수보다 더 긴장해서 석목의 소매 속으로 파고들어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하늘에서 푸른 날개를 가진 야만족이 석목 일행이 숨어 있는 곳의 상공을 지났다. 그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아래를 살폈다.
날개가 푸른빛에 뒤덮인 그 자는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지계의 존재였다.
그는 석목 일행이 몸을 숨기고 있는 곳을 보며 정신력으로 주위를 한 차례 훑었지만, 움직임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도 장군님,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 있는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푸른 날개의 야만족이 급하게 그곳으로 날아갔다.
주위에 있던 다른 야만족들도 그곳에 모여들어 함께 동굴에 들어갔다가, 금세 다시 나왔다.
“안쪽에 남은 흔적을 봤을 때 저들은 이곳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를 발견하고 급하게 도망친 것 같으니 어서 쫓아라!”
푸른 날개의 야만족이 소리쳤다.
주위 야만족들이 대답을 한 뒤 각자 전방으로 흩어져 날아가거나 뛰어갔다.
“도이 어르신, 저들이 우리가 찾는 그 두 사람일까요?”
검은 날개의 야만족이 다른 이들과 함께 날아가지 않고 물었다.
“설령 아닐지라도 성주의 명령이니 누구 하나도 놓치면 안 된다.”
“예.”
푸른 날개 야만족의 말에 검은 날개를 가진 야만족이 대답했다
두 야만족이 동시에 날개를 펼쳐 앞으로 날아갔다.
일각 후, 숲속의 녹색 나뭇잎 더미가 들썩이더니 옆으로 젖혀졌다. 그 사이에서 석목과 종수의 모습이 나타났다.
종수가 석목의 손에 들린 녹색 망토를 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
“오라버니, 그 망토는 어디서 얻은 거예요?”
“지하 동굴에서 얻었어…….”
석목이 망토를 얻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 해골은 생전에 분명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겠군요.”
종수가 말했다.
“내 생각도 같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금 파손돼서 움직일 때는 사용할 수 없어.”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오상회의 실력이 뛰어난 대가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 나중에 함께 찾아가서 수리를 할 수 있는지 알아봐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이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인 뒤, 운익성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운익성으로 가자.”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모두 떠났으니 죽은 척 그만하고 길을 찾아.”
석목이 팔을 휘둘러서 소매 속에 있던 채아를 떨궈냈다. 허공에서 잠시 비틀거리던 채아가 날개를 펼쳐 균형을 잡은 뒤,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뒤, 옷을 바꿔 입은 석목과 종수가 운익성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운익성은 대문이 열려 있어서, 이미 많은 사람이 성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석목과 종수가 다시 성에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성문에서는 별다른 검문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파에 섞여 성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우선 객잔으로 가 봐요!”
종수가 객잔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그녀를 따르며 수시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채아는 이미 하늘에 날아올라서 주위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객잔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이 대문을 열었다.
석목은 이미 채아의 시야를 통해 안쪽에 매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안에 들어간 종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부에는 불에 타고 남은 잿더미가 조금 남아 있을 뿐, 부운차는 고사하고 시체 한 구 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흔적을 깨끗하게 없애다니 움직임이 상당히 빨라. 이미 부운차를 전부 빼돌린 것 같으니 본성으로 가자. 묵운양은 부운차의 행방을 알고 있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종수도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정원의 잿더미들을 보며 문득 영월동을 떠올렸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생명을 지킬만한 수단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석목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리고 본성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본성 앞에 도착했다.
그곳의 대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지만,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두 사람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곧바로 담을 넘어갔고, 곧 표정이 굳어버렸다. 담 너머에는 은은한 사령의 기운이 깔려 있었다.
“안쪽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으니 내가 앞장설게.”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등 뒤의 운철흑도를 뽑고 안쪽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채아의 시야를 통해 주위를 둘러봤지만, 옅은 회색 안개에 뒤덮여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죽은 성처럼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전날 밤 이미 이곳에 두 번이나 와봤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으며 안쪽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그 순간, 석목이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종수를 붙잡고 빠르게 뒤로 몸을 날렸다.
푹!
곧바로 그들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서 파랗고 검은 팔들이 뻗어 나왔다. 이어서 순식간에 십여 구의 시체가 지면 아래에서 기어 나왔다.
“강시!”
무언가 불길한 예감을 느낀 석목의 안색이 살짝 굳어졌다.
강시 중 몇몇은 석목이 어젯밤에 이곳에서 본 시종들이었다.
“저들은 이곳에서 일하던 이들인데, 어쩌다가 모두 강시로 변한 걸까요?”
종수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명월교의 짓일 거야.”
석목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때 강시들이 눈에서 녹색 빛을 뿜어내며 석목과 종수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석목의 몸에서 금색 검광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날아갔다. 그 검광은 강시들의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돌아왔다.
동시에 움직임이 멈춘 강시들의 머리통이 살짝 기울더니, 제각기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쿵!
머리를 잃은 강시들은 잠시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가자.”
석목은 담담하게 말을 한 뒤 걸음을 재촉했고, 종수가 그 뒤를 따랐다.
그 뒤에도 두 사람의 앞에는 강시와 해골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끊임없이 나타났다. 아마도 본성에 있던 이들이 전부 사령생물로 변한 듯했다.
석목과 종수에게 이런 하급 사령생물은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았지만, 이곳의 답답한 분위기 때문인지 석목은 불길한 예감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일식경 후, 석목과 종수는 본성 가장 깊숙한 곳에 도착해 거대한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본성에서 가장 좋은 건물로, 평소 묵운양이 사무를 처리하는 공간인 것 같았다.
이 건물의 내부에서는 다른 어느 곳보다 강력한 사령생물의 기운이 끊임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석목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굳게 닫힌 건물의 문을 향해 팔을 뻗었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종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심해!”
석목은 종수에게 웃어 보인 뒤 손에 힘을 주었다.
대문이 천천히 열리자, 순간 굉장히 짙은 사령의 기운이 석목과 종수를 엄습했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뼈를 찌르는 것 같은 한기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석목은 부적 두 장을 꺼내 사용했다. 그러자 반투명한 빛의 장막이 그와 종수의 몸을 감싸며 한기를 막아줬다.
그곳은 낮이었지만 내부에 짙게 깔려 있는 회색 안개 때문에 햇빛이 들지 않아서 굉장히 어두웠다.
어느새 눈이 금빛으로 변한 석목이 안으로 들어가자 종수가 뒤를 따랐다.
석목은 종수의 손을 잡고 주위를 살피며 대전의 안쪽을 향해 들어갔다.
그곳의 안개는 너무 농밀해서 석목마저도 주위 십여 장 이상의 거리는 보이지 않았다.
텅 빈 대전의 내부에는 거대한 돌기둥 두 개가 천장을 받치고 서 있었다. 천장에는 검은 천들이 매달려서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앞으로 몇 걸음을 내딛던 석목이 발걸음을 멈췄다. 천장에서 늘어진 검은 천이 앞을 막고 있었다.
석목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가가서 손으로 천을 걷어냈다.
천의 뒤쪽에는 옅은 회색빛을 뿜어내는 몇 장 크기의 회색 원형 진법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으며, 그 위에 거대한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다.
시체의 피부는 검푸른 빛이었으며, 표면에는 마치 혈관처럼 붉은 선이 전신에 퍼진 채 일정한 박자로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얼굴에 퍼진 선들은 붉은 지렁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여서 상당히 징그러웠다.
짙은 사령의 기운은 그 시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석목은 시체가 움직이지 않자 안도했지만, 그것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멍해졌다. 시체의 얼굴은 운익성의 성주 묵운양과 어렴풋이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시체를 발견한 종수가 작게 비명을 질렀다.
그때 갑자기 시체가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을 번쩍 뜨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흉악한 무형의 기운을 주위로 뿜어냈다.
이어서 시체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듯하더니, 석목과 종수의 앞에 나타났다. 그 강시는 비수처럼 날카롭고 기다란 손톱이 자란 손을 휘둘렀다.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고 재빨리 뒤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석목의 반응속도는 상당히 재빨랐지만, 강시의 움직임이 더욱 빨랐다.
푹!
공격을 완전히 피하지 못한 석목의 가슴에 기다란 상처가 생기며 피가 튀었다.
“오라버니!”
놀란 종수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분노한 표정으로 고풍스러워 보이는 흰색 수금(竖琴)을 꺼내 손가락을 튕겼다.
딩딩딩!
긴박하고도 스산한 연주 소리와 함께, 마치 물결과 같은 파문이 종수로부터 퍼져나갔다.
강시는 파란 파문의 범위 안에 들어간 순간 늪에 빠진 것처럼 움직임이 현저히 느려졌다.
종수는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며 손가락으로 현을 강하게 긁었다.
쩡!
커다란 소리와 함께 주위의 파란 파문이 갑자기 한곳으로 모여 들었다. 그것들은 파란색 장창으로 변해 강시의 목을 노리며 날아갔다.
강시는 창이 두려운 듯 포효하며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파문에 의해 움직임의 제약을 받고 있어서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푹!
파란 장창이 강시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
강시의 왼쪽 어깨가 절단되며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액체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강시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뒤쪽으로 몸을 날려 파란색 파문의 범위 밖으로 벗어나려 했다.
“수아, 그게 벽음만파공이야? 과연 대단하네.”
석목이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종수를 칭찬했다.
녹색 부적을 붙인 그의 상처는 이미 피가 멎어서 아물고 있었다.
석목의 칭찬을 들은 종수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크와악!”
그 순간, 강시가 포효하며 다시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석목의 몸이 검은 빛으로 반짝이더니, 검은 뱀의 환영이 나타나 그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동시에 석목의 피부에 검은 비늘이 돋아났다. 이어 손가락이 길어지며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토템 변신을 한 석목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이 주위로 퍼져나가자 공기가 요동쳤다.
석목은 등 뒤에서 운철흑도를 뽑아들며 강시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강시에게 곧바로 공격을 가하려던 석목이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강시가 갑자기 제자리에 멈춰 서더니, 눈에 감돌던 보라색 빛이 어두워지며 동공에 생기가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강시는 흉하게 말라붙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고통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