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유풍곡(幽风谷)
종수가 손가락을 움직여 수금을 치자, 공기 중에서 다시 파란색 파문이 일며 강시를 향해 밀어닥쳤다.
그 순간 석목이 말했다.
“수아, 잠시 기다려봐.”
그러자 종수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멈췄다.
“오라버니,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걱정 마.”
석목은 시선을 강시에게 돌리며 말했다.
“당신, 묵운양이 맞나?”
석목이 강시를 향해 물었다.
“크으으…….”
강시가 작게 으르렁거리며 절박한 눈빛을 보냈다.
그가 내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석목은 그 뜻을 알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변했지? 명월교가 벌인 짓인가?”
석목이 캐내듯이 물었다.
강시는 팔을 휘저으며 무언가 뜻을 전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눈이 다시 보라색으로 빛나더니 이성을 잃었다.
강시는 두 다리를 구부렸다가 펴며 석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동시에 강시의 오른팔이 흐릿해지더니 석목의 머리와 가슴, 복부를 동시에 노리고 찔러왔다.
“묵운양, 내 말이 들리나?”
석목은 계속 강시에게 말을 걸며 운철흑도에 진기를 주입해 휘둘렀다.
깡! 깡! 깡!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세 차례 울렸다.
운철흑도에 저지당한 강시가 움직임을 멈추자, 석목은 그 사이에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방금 운철흑도와 충돌한 강시의 팔에는 얕은 상처가 세 개 생겨 있었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운철흑도는 더 이상 법기가 아니었지만 더욱 단단하고 예리해졌다. 그런데 저 정도의 얕은 상처밖에 내지 못한 것을 보니 강시의 방어력은 놀라울 정도로 높은 것 같았다.
또 그런 강시의 팔을 일격에 날려버린 종수의 벽음만파공이 얼마나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강시가 고함을 지르자 전신에 퍼져 있는 붉은 선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어 운철흑도에 베인 상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치유되었다.
그뿐 아니라 팔이 절단된 부위에 붉은 빛이 감돌더니, 잘려나간 팔이 천천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놀란 석목이 강시를 향해 몸을 날렸다.
강시도 석목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짙은 회색빛이 감도는 오른팔을 아래로 내려찍었다.
쾅!
운철흑도와 강시의 팔이 다시 충돌했다. 둘은 동시에 뒤로 튕겨나갔다.
석목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회색빛에 감싸인 강시의 오른팔은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운철흑도와 정면으로 충돌했음에도 얕은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
그 순간, 강시의 오른팔이 괴이한 각도로 움직이며 석목의 아랫배를 노리고 들어왔다.
놀란 석목은 바닥을 박차고 옆으로 피했다. 그리고 동시에 몸을 팽이처럼 돌리며 강시의 종아리를 향해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강시가 위로 뛰어올라 석목의 공격을 피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둘의 신영이 뒤엉킬 때마다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목은 강시와 싸울수록 점점 놀라고 있었다. 강시로 변한 묵운양은 이전에 강시공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강력해져 있었다. 힘과 속도, 신체의 강도까지 괴수화 변신을 사용한 석목의 능력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이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생전의 전투 감각은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 지계중기의 존재 이상으로 강력했다.
하지만 강시는 격전을 치르느라 잘려나간 한쪽 팔을 회복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석목과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정도가 한계였다.
딩딩딩!
그 순간, 은은한 연주 소리가 들려오며 공기 중에서 다시 파란색 파문이 일었다.
파문은 석목을 지나쳐서 그대로 강시를 향해 몰아쳤다.
파문의 영향을 받은 강시의 움직임이 순간 느려졌다.
석목은 숨을 거세게 들이마시며 단전에서 끌어올린 뜨거운 열기를 운철흑도에 주입했다. 그리고 상대의 무릎 관절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그 순간 운철흑도에서 검은 빛이 솟아나왔다. 그 빛은 고작 반 척 정도의 길이밖에 되지 않았지만, 순수한 어둠에 가까운 검은 빛이었다.
툭!
운철흑도가 강시의 무릎을 손쉽게 절단했다. 몹시 단단했던 강시의 몸이 갑자기 물렁하게 변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털썩!
강시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석목은 놀란 눈으로 운철흑도를 바라보았다. 칠흑같이 검은 빛은 벌써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강시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팔로 바닥을 짚고 뛰어올라서 석목에게 달려들었다.
“오라버니, 조심해요!”
종수가 놀라서 외쳤다.
석목은 운철흑도에서 시선을 떼고, 강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뒤이어 그가 팔을 휘두르자 강시의 하나 남은 팔마저 절단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사지가 전부 절단된 강시의 몸이 바닥에서 몇 바퀴 굴렀다.
하지만 그 지경이 됐음에도 강시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이미 사지가 전부 절단된 상태였기에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 순간, 운철흑도가 강시의 가슴을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검은 빛이 완전히 사라지며 운철흑도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석목은 잔뜩 찌푸렸던 미간을 천천히 폈다.
바닥에 못 박힌 강시의 기운이 빠르게 쇠하는 동시에, 두 눈에서 보라색 빛이 천천히 사라지며 거대한 몸이 빠르게 축소됐다.
잠시 후, 강시는 평범한 야만족의 크기로 돌아왔다. 그것은 석목이 알고 있던 묵운양의 모습이었다.
석목이 우두커니 서서 사지가 전부 절단된 묵운양을 바라보았다. 그는 빠르게 죽어가고 있어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너……너희구나…….”
가까스로 고개를 돌린 묵운양이 두 사람을 보더니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동시에 그의 피부에서 붉은 선이 점점 빛났다.
“오라버니, 조심해요.”
종수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안심하게. 나는 곧 죽을 거야……. 몸이 이 꼴인데 무엇을 하겠는가……. 나……나를 강시화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서 고맙네…….”
묵운양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석목이 종수의 손을 토닥이며 걱정하지 말라는 뜻을 전했다.
“본성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고, 당신은 왜 강시가 된 건가? 도대체 누가 벌인 짓이지?”
석목이 물었다.
“명월교의 소행이네……. 내가 믿지 못할 사람들을 믿어버렸어.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음모…….”
묵운양은 원한에 사무친 듯, 한층 커진 목소리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랬군.’
석목은 속으로 생각하며 다시 물었다.
“그럼 객잔의 물건들도 모두 그들이 가져간 것인가?”
기운이 많이 약해진 묵운양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가 보낸 수하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니…… 물건은 아마 전부 명월교가 가지고 있을 것이네…….”
묵운양이 말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나?”
석목이 물었다.
“알려주겠다. 대신 나의 복수를 해줘…….”
묵운양이 말했다.
“네가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어차피 그들을 추격해 물건들을 빼앗아와야 해.”
석목이 말했다.
“그렇군……. 학명산맥의…… 유풍……곡으로…… 가…….”
묵운양은 마지막 힘을 짜내 말을 내뱉었다. 이어 그의 동공이 풀리더니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쾅!
그 순간, 그의 몸에 있는 붉은 선이 밝게 빛나더니 전신이 핏빛 화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놀란 석목이 운철흑도를 뽑아 화염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활활 타오르는 화염은 묵운양의 시체와 영혼, 그리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순식간에 태워서 재로 만들었다.
한 성의 성주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석목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석목은 운철흑도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이전에 비해 확연히 가벼워져 있었다.
운철흑도에서 솟아나온 검은 빛은 연나가 과거 무진도인의 일격을 막아냈을 때 운철곤봉에서 솟아나온 것과 굉장히 비슷했다.
석목은 과거 연나가 지계의 경지에 올라야 운철흑도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 것을 떠올렸다.
‘이것이 운철흑도의 진정한 위력인가?’
석목의 마음속에 감격과 기대감이 차올랐다. 연나의 말대로라면, 토템변신을 해서 일시적으로나마나 지계의 경지에 오르면 운철흑도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시도해볼 시간이 없었다. 우선 급히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수아, 이만 가자.”
석목이 운철흑도를 등 뒤의 칼집에 꽂아 넣으며 돌아섰다. 종수도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사령의 기운이 자욱한 본성을 빠르게 벗어났다. 그리고 거리에 도착한 뒤에야 한숨을 돌렸다.
“수아, 묵운양의 말을 어떻게 생각해?”
석목이 물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진실된 말을 한다고 하니 믿어도 좋을 것 같아요.”
종수가 말했다.
“유풍곡이 어딘지 알아?”
석목이 물었다.
“저도 처음 들어봐요.”
종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우선 그곳의 위치를 조사해보자. 학명산맥에 있다고 했으니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거야.”
석목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두 사람은 한 상점을 찾아가서 학명산맥의 지도를 구입했다.
지도를 보니 유풍곡은 학명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유명한 지역이며, 명월교의 분단이 위치한 곳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건은 십중팔구 유풍곡의 분단으로 향하고 있겠군.”
석목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유풍곡까지 쫓아가려고요?”
종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단서를 어렵게 찾았으니 당연히 가야지.”
석목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곳은 명월교의 분단이 위치한 곳이에요. 혹시라도…….”
종수가 말했다.
“괜찮아, 나에게 맡겨. 적들이 너무 강하다면 나 역시 무리하게 덤비지는 않을 거야.”
석목이 종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종수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서 출발하자. 부운차의 속도라면 아직 유풍곡에 도착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아.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다면 일이 훨씬 수월할 거야”
석목이 말했다.
두 사람은 잠시 계획을 세운 뒤 빠르게 성을 나섰다. 그리고 푸른 북에 함께 올라탄 뒤 학명산맥을 향해 날아갔다.
* * *
유풍곡은 학명산맥의 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푸른 북의 속도로도 입구까지 가는데 반 시진 가까이 걸렸다.
석목과 종수가 그곳까지 가는 동안 부운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설마 벌써 유풍곡 안으로 들어간 것인가…….’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바로 그때, 석목의 어깨에 앉아 있던 채아가 말했다.
“석두, 아래를 봐.”
석목과 종수가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았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 몇 명이 산골짜기에서 나와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것이 명월교의 옷이라는 것을 확인한 석목이 눈을 빛냈다.
곧이어 석목과 종수는 푸른 북의 방향을 꺾어 아래로 하강해서 명월교 제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놀란 명월교의 제자들이 경계하는 태세를 취했다.
“너희는 누군데 우리의 앞을 막는 것이지?”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청년이 꾸짖듯이 소리쳤다.
석목은 그의 얼굴에서 당황한 표정이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석목은 말없이 한 손을 휘둘러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허공에 붉은 빛이 반짝이더니 명월교 제자들의 머리 위에 붉은 구름이 나타났다.
이어 명월교의 제자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구름이 격렬하게 요동치더니 화염에 뒤덮인 돌덩이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깜짝 놀란 명월교의 제자들이 방어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쾅! 쾅! 쾅!
하늘에서 쏟아지는 돌덩이 사이에서 명월교 제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수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유성화우! 높은 화속성 친화력이 요구되는, 그래서 월계술사들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술법이잖아요!”
“내 화속성 친화력은 6급이야.”
석목의 말에 종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원소 친화력 6급이라면 대단히 뛰어난 자질이었다. 어느 세력에 들어가더라도 천재라 불리며 엄청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정도였다.
잠시 후 석목이 팔을 휘두르자, 허공의 붉은 구름이 흩어지고 지면의 화염도 천천히 사그라졌다.
그 자리에는 반신이 까맣게 타고 피를 뒤집어쓴 청년 한 명만이 살아남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까맣게 탄 시체가 되어버렸다.
석목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금전검이 나타나서 살아남은 청년의 목에 겨누어졌다.
“우리를 알아봤지? 말해라. 어떻게 우리를 알고 있지?”
석목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