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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52화 (252/916)

252화. 함정에 빠지다

고개를 든 청년이 석목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네놈에게 낭비할 시간 없다. 빨리 말하지 않는다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이다!”

석목이 짜증이 섞인 투로 말했다.

“말을 하면 풀어주는 겁니까?”

청년이 이를 악 물며 말했다.

“난 네 목숨에 아무런 흥미도 없다.”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이 안도한 기색으로 말했다.

“저희는 부운차가 올 것이니 마중을 나가라는 임무를 받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출발 전, 임무 중에 마주칠 수도 있다며 당신들의 초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허공에 날카로운 빛의 화살들이 생겨나 청년을 향해 날아갔다.

놀란 석목이 빛의 화살을 향해 화염구를 여러 개 날렸다.

빛의 화살은 화염구와 충돌하며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빛의 화살은 청년과 너무 가까운 곳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석목이 매우 빠르게 반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절반 가까이가 남자의 몸을 꿰뚫었다.

비명을 지르며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 청년은 그대로 절명했다.

석목이 즉시 몸을 돌려서 주위를 살폈다.

“석두, 북쪽이야!”

허공을 선회하던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석목이 북쪽을 돌아보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백 장 가량 떨어진 곳의 바위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빠른 속도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느냐!”

석목은 종수와 함께 푸른 북에 올라타서 그의 뒤를 쫓으며 소리쳤다.

법력의 파동을 가늠해보면 상대는 성계술사였다. 그러나 무슨 술법을 시전한 것인지 움직임이 굉장히 빨랐다.

그 자는 이곳의 지형에 매우 익숙한 듯했다. 좁고 외지거나 장애물이 많은 길로만 이동했고, 수시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래서 속도가 빠른 비행 영기를 타고도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채아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길을 알려준 덕에 점차 거리가 좁혀졌다. 어느새 석목 일행과 그 자와의 거리는 십 장 남짓으로 좁혀졌다.

석목이 눈을 섬뜩하게 빛내며 한 쪽 팔을 휘두르자, 금전검이 상대를 향해 빠르게 쏘아져 날아갔다.

남자는 금전검에 베이기 직전 가까스로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틀어서 옆쪽의 작은 산골짜기로 향했다.

석목은 코웃음을 치며 그 자를 바짝 쫓아 산골짜기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조심해! 들어가면 안 돼!”

놀란 석목은 즉시 푸른 북을 멈췄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순간 눈앞이 번쩍이더니 정육면체 모양의 노란 빛의 장막이 생겨나 두 사람을 가두었다.

“진법!”

석목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푸른 북을 회수하고 종수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노란 빛의 장막은 굉장히 두꺼웠고, 표면에 노란 연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래서 안쪽에서는 바깥쪽의 상황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석목은 채아와 시야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진법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두 볼 수 있었다.

석목은 채아에게 골짜기 밖으로 벗어나라고 다급히 지시했다.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채아가 적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진법 밖에서는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두 팔을 연달아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노란 빛을 쏘아내 진법에 흡수시키는 중이었다.

이어 어느새 나타난 명월교의 술사 다섯 명이 진법을 둘러쌌다. 그들은 옥패와 깃발 등의 물건을 든 채로 하나의 주문을 동시에 외웠다.

곧 노란 빛의 장막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계란 모양으로 변했다.

석목이 금색으로 변한 눈으로 살펴보자 작은 부문들이 빛의 장막 표면에 맴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석목은 진법을 깊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부적에 대해서는 상당히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진법은 복잡한 부적을 지면에 새기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결국 둘의 근본은 같은 것이었다.

석목은 진법을 관찰한 결과, 그들을 가둔 진법이 토속성의 구속진법이라는 걸 파악했다. 그것은 단단할 뿐 별도의 공격 기능은 없는 것이었다.

석목은 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단숨에 깨달았다.

바로 그때, 종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이 진법은 살상능력이 없는 순수한 구속진법이에요.”

“맞아. 저들의 목적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 아니야. 아무래도 우리를 일부러 이곳까지 유인한 것 같아.”

석목이 말했다.

그러자 종수도 그들의 의도를 즉시 파악했다.

“부운차를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서 시간을 벌려고 하는 것 같군요. 만약 부운차가 유풍곡에 진입한다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질 거예요.”

“어서 진법을 파괴해야 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석목이 등 뒤에서 운철흑도를 뽑으며 말했다.

종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수금을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토템변신을 한 석목이 두 손으로 운철흑도를 쥐고, 체내의 진기를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곧 굳어졌다.

그는 운철흑도에 진기를 주입하면 칠흑같이 검은 검기가 발산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운철흑도에서는 어떤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석목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운철흑도의 능력을 사용해 단숨에 진법을 파괴하고 나가려 했던 그의 계획이 순식간에 무산됐기 때문이다.

종수는 옆에서 이미 수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 소리와 함께 물결무늬의 파란색 파문이 일더니, 장창의 모습으로 변해서 빛의 장막을 향해 날아갔다.

장창이 충돌하자 빛의 장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힘을 내! 저들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빛의 장막 밖에서 한 남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어서 그의 머리 뒤에 별모양 환영이 네 개 나타나더니, 노란 빛을 발사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주위에 있는 이들의 머리 뒤에도 한 개 혹은 두 개의 별모양 환영이 생겨났다.

여섯 명의 성계술사가 전력을 다하자 진법이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여러 차례 시도를 해도 운철흑도에서 특별한 반응이 없자, 석목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설마 이전의 성공은 그저 우연일 뿐이었나?’

석목은 고민하다가 곧바로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지금은 그것에 집착할 때가 아니었다.

석목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빛의 장막을 향해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동시에 화염구까지 날렸다.

그런 석목을 본 종수도 공격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그녀는 파란색 파문으로 장창과 단검을 만들어 빛의 장막을 공격하는 동시에, 술법을 사용해 얼음송곳을 날렸다.

두 사람은 모두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수련했으며, 그 조예가 상당했다.

괴수화 변신으로 지계의 실력을 가진 석목, 그리고 월계술사인 종수가 힘을 합치자 무토황갑대진(戊土黄甲大阵)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식경이 지나자 노란 빛의 장막은 눈에 띄게 얇아져 있었다.

“절대로 저들이 빠져나오게 해서는 안 된다!”

진법이 더 이상 버티기 힘들 것 같자 한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이어 그의 머리 뒤에 있는 네 개의 별 중 하나가 강한 빛을 뿜어내며 폭발했다.

“예!”

다른 다섯 명의 술사도 각자 별의 환영을 폭발시켰다.

뒤이어 그들의 법력의 파동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들은 두 손을 수레바퀴처럼 돌리며 노란 빛을 빠르게 발사했다.

얇아질 대로 얇아졌던 빛의 장막이 밝게 빛나더니 다시 처음처럼 두껍고 단단해졌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파괴되기 직전이었던 진법이 다시 견고해지면서, 단시간 내에는 부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으니 부운차는 아마도 이미 유풍곡에 진입했을 것이다.

마음이 답답해진 석목은 단전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끼며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그 순간, 도신에서 칠흑같이 검은 빛이 솟아나왔다.

푹!

운철흑도가 두꺼운 빛의 장막에 깊숙이 박혔다.

석목은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가, 기뻐하며 체내의 진기를 흑도에 주입했다. 그러자 운철흑도의 검은 빛이 팽창하며 이 척 넘는 길이로 커졌다.

석목이 두 손으로 도를 잡고 힘주어 손목을 돌렸다.

쩍!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견고하기 그지없던 빛의 장막 일부가 평범한 흙벽처럼 쉽게 잘려나갔다.

석목은 기세를 몰아 운철흑도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그러자 두꺼운 빛의 장막에 수십 개의 깊은 검흔이 생겨나며 두께가 절반 가까이 얇아졌다.

“수아, 이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석목이 고개를 돌려 종수에게 외쳤다. 고개를 돌린 종수는 얇아진 빛의 장막을 보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쩡! 쩡! 쩡!

이어 힘차고 스산한 소리와 함께 종수의 파란색 파문이 한 곳에 모였고, 일 장 두께의 창이 생겨났다.

쾅!

파란 창이 빛의 장막을 강하게 가격했다. 빛의 장막이 흔들리며 조금 더 얇아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빠르게 깎여나가는 빛의 장막을 밖에서 지켜보며 남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의 손목에 채워진 검은 옥팔찌에서 하얀 빛이 감돌다가 곧바로 흩어져 사라졌다.

남자는 그것을 보고 안도하며 고개를 돌려 외쳤다.

“임무를 완수했으니 철수한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이들도 즉시 그곳을 떠나려 했다.

그 순간, 빛의 장막에 두꺼운 균열이 생겨났다.

쩌적!

뒤이어 칠흑 같이 검은 빛을 뿜어내는 운철흑도가 빛의 장막을 뚫고 나왔다.

“이런! 말도 안 돼!”

그 광경을 본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균열은 점점 확산되더니, 결국 빛의 장막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이어서 전광석화처럼 튀어나온 석목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남자 앞에 다가갔다. 그는 곧바로 검은 빛이 감도는 운철흑도를 아래로 내려 베었다.

놀란 남자가 입을 벌려 작은 녹색 방패를 뱉어냈다. 방패는 순식간에 몇 장 크기로 커지며 그의 몸 앞을 막았다.

쾅!

그러나 운철흑도와 닿은 녹색 방패는 마치 종이처럼 찢겨나갔다. 동시에 상대의 머리에서부터 가슴, 복부까지 얇은 선이 세로로 생겨났다.

뒤이어 좌우로 두 동강이 난 그의 몸이 양 옆으로 날아갔고, 피와 내장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직 멀리 도망가지 못한 다른 성계술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숨이 멎을 것처럼 놀랐다.

그 순간, 수금의 연주 소리가 들려오더니 노란 빛의 장막 속에서 퍼져 나온 파란 파문이 그들을 감쌌다. 파문의 영향을 받은 그들의 움직임이 순간 둔해졌다.

그때 석목이 날린 금전검이 몇 십 개의 검영으로 나뉘어 그들에게 쏟아졌고, 곧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금색 검광이 전부 사라진 뒤, 그곳에는 네 구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쓴 한 청년만이 상처 하나 없이 서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청년은 두 다리를 떨고 있었다.

석목은 재빨리 그의 목을 잡아서 푸른 북에 태웠다. 그리고 즉시 종수와 함께 유풍곡을 향해 날기 시작했다.

비록 푸른 북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세 명을 태우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가능했다.

“선……선배님……. 살려 주십시오……. 저는 그저 두 분을 가둬두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청년이 용서를 빌었다.

“조용히 해!”

석목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겁에 질린 청년이 즉시 입을 닫았다.

“유풍곡으로 향하던 부운차들은 어느 길로 이동했지? 이미 유풍곡에 도착했나?”

석목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석목의 질문에 청년은 눈알을 굴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석두, 방금 다른 남자가 임무를 완수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 아마 물건은 이미 유풍곡으로 옮겨졌을 거야.”

채아가 날아와 석목의 어깨에 앉으며 말했다.

석목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선배님, 그 일은 제 소관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명령을 받고…….”

다리가 풀린 청년이 애원하기 시작했다.

석목이 고개를 돌려 종수에게 말했다.

“한 발 늦은 것 같지만 괜찮아. 물건은 유풍곡에 잠입해서 되찾아오면 돼.”

석목이 말했다.

“정보도 전혀 없이 명월교의 분단에 진입하는 것은 너무 무모해요.”

종수가 말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석목이 웃으며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너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마. 유풍곡의 지형도를 내놓고 안에 어떤 강자가 있는지 전부 말해라. 거부한다면 널 이곳에서 던져버리겠다.”

석목이 담담하게 말했다.

청년이 창백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현재 그들은 수백 장 높이의 고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청년은 이성술사(二星术士)에 불과했기에 비행술법을 사용하지 못했고, 육체도 약했다. 이곳에서 떨어지면 절대 살아남을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청년이 재빨리 말했다.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무엇이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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