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53화 (253/916)

253화. 옛 친구를 만나다

반 시진 후, 안개가 자욱한 어느 거대한 산골짜기.

바람이 골짜기 사이로 불며 마치 사람이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산골짜기는 지형이 평평하고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쭉 뻗은 넓은 도로는 학명산맥을 가로지르는 도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산골짜기에는 커다란 성이 세워져 있었다. 운익성보다는 작지만 다른 작은 성들과 비교했을 때 전혀 뒤지지 않는 규모였다.

산골짜기의 입구에는 거대한 성루와 성문이 있었는데, 그 양쪽에 있는 가파른 절벽이 성벽을 대신하고 있었다.

성 안에는 높낮이가 다른 수백 개의 다른 건물이 있었으며, 대부분이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외곽에는 평범한 제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보이는 낮은 건물들이 있었으며, 중간에는 대전들이 있었다.

가장 안쪽에는 제단으로 보이는 건물이 높게 솟아 있었다. 제단 위에는 화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불빛이 주위의 모든 대전을 가물가물 비추고 있었다.

저녁 무렵이라 건물들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거리는 많은 인파로 왁자지껄했다.

석목 일행은 절벽 위의 커다란 바위 뒤에서 산골짜기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채아는 산골짜기 주위를 선회하며 성 내부의 동향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부운차가 몰래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는 않는지 감시했다.

석목은 사로잡은 청년에게서 이곳에 대한 정보를 많이 캐낸 상황이었다.

명월교의 분단인 유풍곡은 학명산맥의 중심구역이기도 했다. 그래서 평소에도 많은 외부인이 출입하거나 행상대(行商隊)가 머물렀기에, 잠입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지형도도 다 그렸고 설명도 전부 해드렸으니, 이제 놓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청년이 굽실거리며 석목에게 말했다.

“당연히 놓아줘야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청년의 미간을 찔렀다.

툭!

청년이 눈을 뒤집으며 기절해 쓰러졌다.

석목이 손가락에 정신력을 담아 찔렀으니, 청년은 앞으로 사흘 정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었다. 그들에 관한 정보가 새어나갈 걱정이 없으니 죽일 필요도 없었다.

석목도 웬만하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출발하자.”

석목이 골짜기 아래로 뛰어 내려가자 종수도 그를 따랐다.

그들은 채아의 시야를 통해 주위의 모든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에, 들키지 않고 무사히 성 안으로 잠입했다.

석목과 종수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큰 거리로 향했고, 곧바로 인파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다.

청년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는 지계의 존재가 두 명 있었고, 수많은 선천무인과 성계술사가 있었다.

석목과 종수의 실력은 약하지 않았지만,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적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최대한 신중하고 조용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이곳은 가장 외곽이라 조사를 해도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을 거야. 중심구역에서 뭔가 알 만한 사람을 잡아 심문하자.”

석목이 말했다.

두 사람은 기운을 감추고 성의 중심부로 향했다.

거리에는 다양한 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으며, 종수는 삿갓과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에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두 사람은 외부인이 있는 외곽의 거리를 빠르게 벗어났고, 명월교의 제자들 전용인 중앙구역 주변에 도착했다.

안쪽으로 향하는 길목은 명월교의 제자 몇 명이 엄숙한 표정으로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한 경비병들은 석목과 종수에게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두 사람이 하늘을 날아 위로 지나가는 것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외곽의 경비병을 가볍게 뚫은 두 사람은 성의 깊은 곳으로 잠입했다.

밖에서 볼 때는 알지 못했지만, 직접 와서 보니 이곳 분단의 저력은 상당했다. 그곳에는 일고여덟 개의 크고 작은 도로가 마치 인체의 경맥처럼 성 안 깊은 곳으로 갈래갈래 뻗어 있었다.

도로들 옆에는 각종 대전이 세워져 있었으며, 건물 사이사이에 수목과 화초가 심어져 있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했다.

석목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길이 너무 많다보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골치가 아파진 것이었다.

“오라버니, 누군가 와요.”

종수가 갑자기 석목을 잡아당기며 손가락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어느 길목에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과 종수는 눈을 한 번 마주친 뒤, 동시에 수풀 속으로 몸을 숨기며 기운을 감췄다.

“멍청한 놈들! 고작 몇 사람을 어찌하지 못해 이 몸이 직접 나서도록 만들다니.”

멀리서 누군가의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석목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이어 한 청년과 여덟 명의 명월교 제자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그 청년은 금테가 둘러진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신분이 상당히 높은 자인 듯했다.

그는 거만한 얼굴로 주위의 명월교 제자들을 꾸짖고 있었고, 제자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절절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청년의 얼굴을 확인하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청년은 다름 아닌 후새뢰였다.

보아하니 그는 서하대륙에 도착한 뒤로 상당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동안 경지가 전혀 오르지 않아서, 여전히 일성술사(一星术士)에 머물러 있었다.

후새뢰는 수하들을 꾸짖으며 석목과 종수가 숨어 있는 곳을 지나갔다.

“저들을 따라가자.”

그들이 어느 정도 멀어지자 석목은 종수에게 전음을 날린 뒤, 그들의 뒤를 쫓았다.

후새뢰의 일행은 곧 누군가의 집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정원이 딸린 삼 층짜리 건물이었다.

“됐다. 모두 돌아가라. 다음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지 않게 잘 좀 해라. 이렇게 바쁜 내가 너희의 일까지 처리할 틈이 어디 있겠느냐?”

후새뢰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예, 호법(护法) 어르신!”

“어르신, 쉬십시오. 내일 다시 문안드리겠습니다.”

제자들은 후새뢰에게 공경하게 인사한 뒤에 흩어졌다.

후새뢰는 우쭐거리며 정원 안쪽의 건물로 들어섰다.

그는 방에 도착한 뒤 기지개를 한 번 폈다. 그리고 크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자신이 마실 차를 타려고 했다.

바로 그때, 그의 앞에 크고 작은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깜짝 놀란 후새뢰는 몸에서 회색빛을 뿜어내며 뛰어오르려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체구가 작고 외모가 아름다운 여인은 그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덩치가 큰 남자는 그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드디어 만났군요! 어르신의 대단한 실력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무사하실 줄 알았지만, 언제나 걱정했습니다…….”

후새뢰가 즉시 석목의 앞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종수가 궁금한 표정으로 후새뢰와 석목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동주대륙에서 거둔 수하야. 과거 함께 명월교의 배를 타고 서하대륙으로 넘어오다가 헤어졌어.”

석목이 종수에게 설명했다.

종수는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후새뢰를 신뢰하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석목의 발밑에 엎드린 후새뢰는 사실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예전에 그가 석목을 내버려두고 온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일에 불만을 가진 석목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의 혼은 바로 사라져버릴 터였다.

그는 석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도 없었다.

“분명 어르신이 무사할 것이라 믿고 찾아가지 않았으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석목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후새뢰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그 당시 네가 나를 찾아왔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테니, 탓하지 않겠다. 걱정하지 말고 일어나라.”

석목이 그렇게 말한 뒤 의자에 앉았다.

그제야 안심하며 몸을 일으킨 후새뢰가 석목의 옆에 섰다.

“그동안 어디 계셨던 겁니까? 다른 이들은 모두 어르신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유 부교주만은 줄곧 어르신의 행방을 수소문했습니다.”

후새뢰가 웃으며 물었다.

“네가 말하는 유 부교주가 유안인가?”

석목이 물었다.

“맞습니다.”

후새뢰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안이 이곳 명월교의 부교주가 됐어? 참, 우선 명월교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설명해 보거라. 너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지?”

석목이 물었다.

“이 이야기는 말하자면 좀 깁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괜찮다. 너희가 서하대륙에 도착한 뒤 일어난 모든 일을 한번 천천히 말해 보거라.”

석목이 말했다.

“예, 그날 서하대륙에 도착한 뒤 저희는…….”

후새뢰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석목은 손가락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었다.

종수도 석목의 옆에 앉아 조용히 경청했다.

과거 명월동교가 서하대륙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실을 알게 된 명월서교의 교주는 그들을 직접 맞이하러 나갔다.

그날 유안과 명월서교의 교주는 단 둘이서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내용은 후새뢰 같은 평범한 제자로서는 당연히 알 길이 없었다.

교주와의 대화를 마친 유안은 모든 명월동교의 제자는 명월서교에 편입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 뒤로 일 년 사이에 일부 전주를 포함한 명월동교의 제자들은 서하대륙 각지의 분교에 배치되었다.

유안은 명월서교의 총단에 남아 부교주의 직위를 받았다.

명월동교는 동주대륙에서 넘어온 패잔병이었지만, 그들은 전부 정예 제자일뿐더러 숫자가 적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전부 흡수한 명월서교는 세력이 급속히 커졌고, 야만족 연맹의 바로 다음, 즉 서하대륙에서 세 번째로 큰 세력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다.

“유안이 서하대륙 명월교의 부교주가 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

석목이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교주는 그에게 어떤 실권도 주지 않았습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명월교의 상황은 어떻지?”

석목이 물었다.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지……. 현재 명월서교와 명월동교가 합병됐다고는 하나, 명월동교는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미묘한 상황이죠. 아직까지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것이 남아 있어서 서로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그럼 네가 이곳에 온 것은 명월서교의 파견을 받아서인가?”

석목이 물었다.

“유안과 전주들의 측근과 달리, 저 같은 명월동교의 평범한 제자는 그들의 신임을 받지 못해 막막한 처지입니다. 파견은커녕 양측 모두 저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지요. 사실 저는 어르신을 돕지 않았더라면 한해거주에 탈 자격조차 얻지 못했을 겁니다.”

후새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고생이 많은가 보군. 하지만 내가 보니 너는 이곳에 제법 잘 섞인 것 같은데.”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제가 깔끔한 일처리로 이곳 단주의 환심을 샀기 때문이죠. 덕분에 호법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석목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명월교의 현재 상황은 그가 그동안 수집한 정보, 그리고 예측했던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좋아, 우선 알겠다. 그리고 오늘 유풍곡에 외부인들이 왔나? 우두머리는 여자이고 대량의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 석목은 견 씨 성을 가진 여인의 외모를 자세히 설명했다.

“있었습니다. 바로 방금 전이에요. 저와 다른 두 명의 호법이 단주의 지시에 따라 그 물건을 골짜기로 옮겼습니다. 듣기로는 강탈을 해서 얻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르신이 말한 그 여인은 단주와 함께 대전에 들어가는 걸 봤지만, 그 뒤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미 떠났을 겁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수는 표정이 살짝 풀렸으나, 석목은 오히려 눈썹을 찌푸렸다.

“그 여인이 떠난 것이 확실해? 그 물건은 지금 어디에 있지?”

석목이 물었다.

“단주가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언급했으니 아마 맞을 겁니다. 물건은 현재 한 창고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석목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의 움직임은 그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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