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54화 (254/916)

254화. 분실

“그 물건들은 견 씨 성의 여인이 천오상회에게서 빼앗은 것이다. 우리가 이번에 유풍곡에 잠입한 것은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야.”

석목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후새뢰는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견 씨 성의 여인이 졸렬하고 파렴치하다고 욕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만약 계획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실행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지계의 존재인 부단주가 마침 어제 일이 있어 이곳을 떠났으니, 어르신과 이쪽…… 선배님이 힘을 합친다면 물건을 빼앗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후새뢰가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다. 우선 우리가 그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오도록 해라.”

그 말을 들은 석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그 일은 저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 창고를 개방할 수 있는 영패는 단주가 직접 관리하고 있어요. 그 영패가 없으면 누구도 그 안에 진입할 수 없습니다.”

후새뢰가 살짝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그럼 이곳의 단주에게 우리를 안내해.”

석목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오라버니.”

종수가 석목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곳의 단주는 월계술사에 막 오른 자입니다. 어르신의 실력이라면 근거리에서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들었지? 나에 대한 믿음을 좀 가져봐. 게다가 나한테는 너도 있잖아.”

석목이 종수의 예쁜 코를 장난스럽게 꼬집으며 말했다.

종수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석목의 그런 행동이 기쁘면서도 부끄러웠다.

후새뢰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눈을 깔고 서 있었다.

“안내해.”

석목이 고개를 돌려 후새뢰에게 말했다.

일각 후, 세 사람은 어느 대전 앞에 도착했다.

석목과 종수는 어느새 명월교 제자의 복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게다가그들은 대부분의 기운을 숨기고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선천초기의 경지로 보였다.

대전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의 좌우에는 회색 갑옷을 입은 문지기 두 명이 서 있었다.

“호법 어르신을 뵙습니다.”

두 문지기가 후새뢰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단주님은 지금 안에 계시는가?”

후새뢰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단주님께서는 안에서 수련 중이십니다.”

좌측의 청년 문지기가 말했다.

“내가 급한 일이 있어 단주님을 뵙고자 한다고 전해라.”

후새뢰가 말했다.

“예.”

청년이 후새뢰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재빨리 대답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호법 어르신, 뒤에 두 분은 누구십니까?”

우측의 문지기가 석목과 종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창욱성 분단의 동료들이다. 그곳 단주의 명령을 받아 중요한 일에 대해 보고하러 온 것이다. 너 같은 문지기가 알만한 일이 아니니 얌전히 문이나 지키도록 해라.”

후새뢰가 정색하며 짜증난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문지기는 절절매며 옆으로 물러났고,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갔던 청년이 다시 나와서 후새뢰에게 말했다.

“호법 어르신, 단주님께서 들어오라 하십니다.”

후새뢰는 석목과 종수를 데리고 거들먹거리며 대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청년이 석목과 종수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 하자, 다른 문지기가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말렸다.

세 사람이 대전 안으로 들어가자 대전의 문이 저절로 천천히 닫혔다.

“저 두 사람은 누구야?”

그들이 전부 안으로 들어가자 청년이 물었다.

“창욱성 분단에서 왔대. 중요한 소식을 보고하러 왔다고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일이 아니야.”

다른 문지기가 말했다.

그 말에 청년은 안도하며 상대를 감격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방금 그가 질문을 했다면 분명 후새뢰에게 크게 꾸짖음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 일은 이제껏 이미 수차례 있어왔다.

한편 석목 일행은 대전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돌이 끼워져 있어서, 굉장히 넓은 대전의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대전의 주석에는 회색 옷을 입고 우선(羽扇)을 든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눈이 얇고 길며, 짧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선비처럼 꾸몄으나, 납작한 코와 얼굴,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작은 눈이 분위기를 해치고 있었다.

“호법 후새뢰가 단주님을 뵙습니다.”

후새뢰가 중년의 남자에게 인사하자 석목과 종수도 함께 허리를 숙였다.

“후 호법, 예의에 얽매일 필요 없네. 중요한 일이 있어 찾아왔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인지 말해보게.”

단주는 후새뢰와 석목을 본 뒤, 종수의 몸에 시선을 고정하며 눈을 빛냈다.

종수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옷 위로 드러난 아름다운 몸매만으로도 남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 두 분은?”

그는 질문을 하면서도 시종일관 종수의 몸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그녀를 거침없이 위아래로 훑어보며 침을 삼켰다.

종수는 마음속에서 화가 끓어올랐으나 경거망동은 하지 않았다.

“이 두 분은 창욱성 분단에서 오셨습니다. 단주님께 말씀드릴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합니다.”

후새뢰가 단주의 표정을 보고 긴장하며 말했다.

“창욱성에서 온 교우(教友)였군. 무슨 일인지 말해보게.”

단주는 살짝 아쉬워하며 시선을 거두었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창욱성의 단주님께서 어르신께 물건을 전해주라 하셨습니다. 한번 보시지요.”

석목이 영롱한 녹색 옥 상자를 꺼내 후새뢰에게 건넸다. 그것은 정교한 조각이 새겨져 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옥 상자로, 한눈에 봐도 평범한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후새뢰는 손에 들린 옥 상자를 잠시 보더니 단주에게 넘겨주었다.

단주가 옥 상자를 건네받는 순간, 석목이 갑자기 제자리에서 증발했다. 그러더니 거의 동시에 단주의 위에서 나타나서 운철흑도를 아래로 내려베었다.

단주는 깜짝 놀랐다. 그는 앞에 있는 후새뢰 때문에 시야가 가져서 석목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고, 그로 인해 반응이 반 박자 늦었다.

하지만 그 역시 월계술사였고, 석목의 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회색빛이 뿜어져 나오는 우선을 들어 휘두르려 했다.

바로 그때, 단주의 손에 들려 있던 녹색 상자가 갑자기 스스로 열리더니, 하얀 빛의 사슬이 나와서 그를 향해 날아갔다.

바로 지척에 있어서 미처 대비를 하지 못한 단주는 순식간에 사슬에 꽁꽁 묶여버렸다.

하얀 빛의 사슬이 몸을 강하게 조여오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우선마저 바닥에 떨어뜨렸다.

단주는 놀라서 입을 열고 소리치려 했으나, 운철흑도의 서늘한 칼날이 그의 목에 바짝 닿았다.

석목은 손가락으로 단주의 가슴 몇 군데를 빠르게 찔렀다. 그러자 단주는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동안 종수는 몸에서 소리를 차단하는 하얀 빛을 뿜어내서, 결계를 형성해 대전을 감쌌다.

“도대체 네놈들은 누군데 명월교의 분단에 난입해서 일을 벌이는 것이냐! 본교에서 너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후새뢰, 이 배신자 같으니라고!”

단주가 소리쳤다.

후새뢰는 상대의 시선을 피하며 한 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순간, 석목이 차가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졌다. 그러자 검은 빛이 한줄기 날아가서 단주의 왼쪽 눈을 때렸다.

일격에 한쪽 눈이 멀어서 피범벅이 된 단주가 처참한 비명을 질렀다.

“조용히 해. 이건 방금 눈동자를 제멋대로 굴린 것에 대한 벌이다.”

석목이 말했다.

단주는 몸을 떨며 입을 다물었고, 남은 오른쪽 눈으로 석목을 보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보면서 종수는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복잡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석목이 한 손으로 단주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묻겠다. 오늘 견 씨 성의 여인이 이곳에 가져온 물건은 지금 어디에 있지?”

“창……창고에 있습니다.”

단주가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그 여인과는 무슨 관계지?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어?”

석목이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유안 부교주의 사람입니다. 그녀와는 최근 알게 되었으며, 그녀는 이미 유풍곡을 떠났습니다.”

단주가 다급히 대답했다.

“정말로 떠났다니…….”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뒤이어 석목이 손가락으로 단주의 가슴을 강하게 찍었다. 손가락을 통해 뿜어져 나간 토템의 힘이 상대의 심장을 감쌌다.

단주는 심장이 마치 차가운 손에 쥐어진 것 같은 느낌에 숨이 턱 막혔고,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석목이 한 손을 흔들자 그의 몸을 묶고 있던 빛의 사슬이 풀렸다.

단주는 기쁜 표정으로 팔다리를 움직여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체내의 법력이 봉인당한데다 심장을 제압당한 상황이라, 감히 석목에게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를 창고로 안내해라. 심장이 으깨지는 것이 싫다면 도망치려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예, 예…….”

단주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대전의 뒤쪽으로 향했다.

대전 뒤에 도착한 단주는 편전의 한쪽 벽을 몇 차례 두드렸다.

카가각!

순간 벽이 갈라지더니 삼 장 높이의 돌문이 나타났다. 돌문의 표면에는 검은 빛이 핏줄처럼 퍼져서 흐르고 있었다,

단주가 검은 영패를 꺼낸 뒤 고개를 돌려 석목을 바라보았다.

“전신의 법력이 봉인당한 탓에 문을 열 수가 없습니다.”

단주의 말에 석목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 영패에는 제 본명정혈(本命精血)이 들어 있어서 저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주가 석목의 표정을 보고 다급히 덧붙였다.

석목은 어쩔 수 없이 단주의 오른팔을 손가락으로 몇 번 찍어서 오른팔의 경맥만 풀어주었다.

단주는 미소를 지으며 석목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영패를 작동시켰다.

순간 영패에서 회색 연기가 뿜어져 나와 해골의 형상을 형성했다. 이어 그 해골에서 한줄기 회색빛이 발사됐다.

회색빛이 돌문을 비추자, 표면의 검은 혈관이 물이 스며들 듯 천천히 돌문에 흡수되어 사라져갔다.

검은 빛이 전부 사라지자 돌문이 살짝 열리며 틈이 생겨났다. 그 광경을 본 후새뢰가 힘주어 밀자 돌문이 천천히 열렸다.

돌문의 뒤편에는 방금 전까지 그들이 있던 대전의 다섯 배 가까이 되는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

천장의 높이는 팔 장은 족히 되어 보였으며, 여러 개의 기둥이 그것을 받치고 있었다. 또 보호진법이 설치되어 있는지 사면의 벽과 바닥에서 검은빛이 약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공간에는 기둥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가구나 장식품이 없었다. 그러나 바닥에 쌓여 있는 각종 물건과 진열대 덕에 휑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바닥에는 광석과 특수한 목재, 요수의 재료와 각양각색의 영석이 쌓여 있었다. 또 목재로 된 진열대 위에는 그보다 더욱 귀중해 보이는 영초나 단약, 서적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후새뢰는 그 물건들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입가에서 침을 흘렸다.

그러나 석목은 그것들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고 내부를 둘러보았고, 이윽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저기 있다!”

석목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여덟 대의 부운차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덮고 있던 검은 천은 사라져서 안에 있는 물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석목은 그 물건을 호송하는 임무를 맡긴 했지만, 내용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부운차에 실려 있는 것은 대부분 각종 영초였으며, 요수의 재료도 상당량이 있었다. 대부분은 각종 구렁이 요수의 껍질과 뼈였다.

그것들을 제외하고도 손바닥만 한 크기로 네모나게 잘린 검은 암석 같은 물건이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종수는 기쁜 표정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부운차를 하나하나 점검했다.

“물건이 전부 있어?”

석목이 물었다.

종수는 그중 한 부운차에 실려 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목재 상자를 집어 들었다.

그 상자는 뚜껑이 이미 열려 있었으며,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설마 그 안에 있던 것이?”

석목이 물었다.

“맞아요. 원래 이 안에 성석이 들어 있었는데, 누군가 챙겨갔어요.”

종수가 말했다.

순간 석목은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단주에게 다가가서, 한 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들었다.

“말해라. 안에 있던 물건은? 네가 가져갔나?”

석목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억울합니다! 이 부운차들은 방금 이곳에 도착했는데 제가 어떻게 물건을 챙겼겠습니까? 특히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상자는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단주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법력이 거의 완전히 봉인된 단주는 목이 조이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단주의 말은 거짓 같지 않았다. 석목은 코웃음을 치며 그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쿵!

물건더미에 부딪힌 단주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석목을 한 번 보더니 몸을 떨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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