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실마리가 끊기다
“성석은 그 여자가 가져간 것 같아. 이중에 성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많은 화물 사이에서 단번에 찾아낸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거야.”
석목이 종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정말로 상회에 내통자가 있나보군요.”
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미의 짓일까?”
석목이 물었다.
종수가 확신이 없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때 단주가 경악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가왔다.
“천, 천오상회의 사람들이었군요! 우리 명월교와 천오상회는 서로 척을 진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거래를 하고 있거늘 어찌…….”
석목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너희가 훔친 상회의 물건을 우리가 직접 가지러 온 것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단주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곧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뭐라고요? 이 물건들은……. 젠장! 평범한 상인들의 물건이라고 해서 동의했더니…….”
석목이 차갑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갑자기 단주의 머리 뒤에 그믐달 모양의 환영이 나타났다. 이어 그의 몸에서 회색빛과 법력의 파동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금(禁)!”
단주가 빠른 동작으로 수인을 맺으며 외쳤다.
그 순간, 석목의 주위 바닥에서 갑자기 회색 사슬이 솟아나와 그의 두 다리를 묶었다.
이어서 단주 주위의 허공에서 회색 장창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회색 물결처럼 석목을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휙! 휙!
장창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장내에 가득 울려 퍼졌다.
“어르신, 조심하세요!”
옆에 있던 후새뢰가 그 광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종수가 다급한 표정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회색 장창들이 날아가서 석목의 몸을 뚫고 지나간 것이다.
단주는 그 광경을 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회색 장창에 뚫린 석목의 몸이 곧바로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석목의 실체가 아닌 잔상에 불과했다.
“젠장!”
단주는 욕지거리를 내뱉고 이어서 무언가 행동을 취하려 했지만, 그 순간 가슴 쪽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단주의 뒤에는 석목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운철흑도는 단주의 등을 뚫고 가슴으로 나와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단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아무 말 없이 다른 손의 주먹을 뻗었다.
주먹에 맞아 날아간 단주는 경련하며 피를 뿜어내더니 곧 절명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그 모습을 본 종수가 재빨리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후새뢰, 저 자는 네게 주겠다. 저 시체로 제사를 지내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단주에게서 저장반지를 챙긴 석목이 고개를 돌려 후새뢰에게 말했다.
“가……감사합니다, 어르신!”
후새뢰는 기쁜 표정으로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성석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히 다른 물건들은 되찾았어. 우선 이 물건들을 가지고 창욱성으로 돌아간 뒤에 성석에 대해 생각해보자.”
석목은 팔을 휘둘러 도신에 뭍은 피를 날려버린 뒤 종수에게 말했다.
“오라버니, 명월교의 근거지인 이곳에서 이렇게 많은 물건을 아무도 모르게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할 거예요.”
종수가 말했다.
“괜찮아.”
석목이 일곱 개의 저장반지를 꺼내며 말했다.
“우선 최대한 비싸고 작은 것들을 저장반지에 옮겨 넣자. 그 뒷일은 내게 맡겨.”
종수도 고개를 끄덕인 뒤 저장반지를 세 개 꺼냈다.
두 사람은 부운차에서 귀한 물건들을 엄선해 저장반지에 옮기기 시작했다.
한 시진 후, 석목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부운차를 보았다.
일곱 개의 저장반지에 꽉 채워 넣었지만, 부운차에는 아직 칠 할 가까운 물건이 남아 있었다.
종수 역시 세 개의 저장반지에 물건을 가득 넣은 뒤, 아직 물건이 가득한 부운차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수아, 이번에 운송한 물건들의 목록을 가지고 있지?”
석목이 물었다.
“네, 있어요.”
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안에 실려 있는 물건들을 전부 내려놓고 부운차를 챙기자.”
석목이 그렇게 말하며 부운차에 있는 물품들을 한쪽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종수가 고개를 끄덕인 뒤 푸른색 진반(阵盘)을 꺼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진반이 잠시 반짝이더니 가장 가까이 있는 부운차를 향해 푸른빛을 쏘았다.
푸른빛에 감싸인 부운차가 곧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작아지자, 종수가 그것을 챙겼다.
종수가 다른 부운차를 챙기는 동안, 석목은 한쪽에 놓여 있는 진열대로 다가갔다.
그 진열대는 총 오 층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하얀 빛의 장막에 뒤덮여 있었다. 가장 위쪽 칸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커다란 영석들이 놓여 있었고, 아래층으로 갈수록 점점 작은 크기의 영석들이 쌓여 있었다.
석목은 어느새 검은 비늘이 돋아난 주먹을 휘둘러 진열대를 덮고 있는 하얀 빛의 장막을 강하게 가격했다.
하얀 빛의 장막은 석목의 주먹을 막아냈지만, 그 빛은 전보다 확연히 어두워졌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주먹을 연달아 날렸다.
쨍강!
연속되는 석목의 주먹을 견디지 못한 빛의 장막이 점점 얇아지다가 결국 깨지고 말았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석목은 진열대의 가장 위에 있는 붉은색 영석을 하나 집어 들었다.
붉은 빛을 강하게 뿜어내는 영석을 잡자 손이 타들어가는 듯한 뜨거운 감각이 전해져왔다.
그 영석은 상급 화속성 영석으로, 그 가치는 하급 영석 만 개와 맞먹었다.
가장 위층에 있는 각양각색의 영석은 전부 상급 영석이었다. 그것들만 해도 가치가 영석 십만 개를 넘었으며, 아래층의 중급 영석까지 더하면 족히 삼십만 개는 될 것 같았다.
석목은 그곳에 있는 영석들을 몽땅 챙겨 넣었다. 저장 반지는 이미 거의 다 찼지만, 그것들을 넣을 공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 영석들이 있다면 창욱성에서 부족한 물건을 충당하기에 충분했다.
이어서 다른 진열대로 다가간 석목은 값이 많이 나가고 휴대하기 편한 물건들을 챙겼다.
웅웅웅!
그때, 뒤쪽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진동음이 울렸다.
고개를 돌린 석목은 후새뢰가 핏빛 진법에 덮인 단주의 시체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주의 시체를 덮은 붉은 빛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시체는 천천히 사라지더니 사령계로 넘어갔다.
동시에 후새뢰의 몸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그 빛이 다시 그의 정수리를 통해 흡수되었다. 이어서 그의 머리 뒤에 성운이 나타나더니 어두웠던 두 번째 별이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후새뢰는 눈을 감은 채 깊게 호흡을 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저의 잘못을 탓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해질 수 있게 도와주시다니……. 어르신의 은혜에 이 몸 분골쇄신을 하여 보답하겠습니다.”
눈을 뜬 후새뢰가 석목에게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됐으니 일어나라.”
석목이 말했다.
후새뢰가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수아, 실마리는 여기서 끊긴 것 같아. 성석은 견 씨 성의 여인에게 있을 텐데,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석목이 말했다.
“오라버니, 괜찮아요. 이 정도까지 물건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큰 처벌은 받지 않을 거예요.”
종수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며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계속 머물러봐야 소용이 없으니 어서 떠나는 것이 좋겠어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잔뜩 흥분한 상태인 후새뢰에게 말했다.
“너는 이제 따라올 필요 없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네가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되니 여기에 남아 있도록 해. 이후에 어떻게 행동할지는 네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라.”
“예, 알겠습니다.”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던 후새뢰가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은 종수와 함께 창고를 나섰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후새뢰도 곧 그들의 뒤를 따랐다.
“너는 먼저 가봐라. 방금 문을 열어준 문지기 두 명을 제외하고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했을 거야. 나는 이곳에 남아서 저들을 손봐주고 가겠다. 이것은 명월교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원한을 갚아주기 위한 것이기도 해.”
석목이 후새뢰에게 말했고, 마지막 말은 종수에게 한 것이었다.
종수는 멍한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후새뢰가 석목과 종수에게 인사한 뒤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수아, 너는 나서지 말고 혼란을 틈타서 먼저 떠나. 골짜기의 입구에서 만나자.”
석목이 말했다.
“네, 조심해요.”
종수가 말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석목은 토템변신을 한 뒤 푸른 북에 올랐다. 푸른 북이 허공으로 빠르게 날아가자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콰르릉!
뒤이어 허공에서 번개와 화염, 한빙의 폭풍이 대전 위로 쏟아졌다.
진법에 의해 견고해진 대전이 거센 술법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붕괴됐다.
그때 온 천지에 가득한 술법 사이로 금색의 검이 날아갔다. 그것은 대전 앞에 서 있던 호위를 스쳐지나갔다.
두 사람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눈치 채기도 전에, 그들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하늘로 솟아올랐다. 머리를 잃은 시체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져 건물의 잔해 아래 묻혔다.
화염이 빠르게 번지며 대전과 그 주위의 건물들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유풍곡에서 행패를 부리느냐!”
커다란 외침 소리와 함께 회색빛에 둘러싸인 다섯 사람이 허공에 떠 있는 석목을 향해 날아왔다. 그들의 뒤에는 수많은 명월교 제자가 따르고 있었다.
석목은 그들을 향해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전검이 십여 장에 달하는 크기로 커지며 다섯 사람에게 날아들었다.
그들은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는 금전검이 도저히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뿔뿔이 흩어져 도주했다.
그 순간 석목이 하얀 빛의 사슬들을 날렸다. 그것들은 마치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도망치는 이들을 쫓아가 몸을 묶었다.
거대한 검이 크게 한 바퀴 돌며 그들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으아악!”
“윽!”
허공에서 메아리치는 처절한 비명소리와 함께 토막 난 시체들이 아래로 떨어졌다.
뒤따라 석목에게 달려들던 명월교 제자들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들보다 경지가 아득히 높은 호법들이 힘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한순간에 몰살당한 것을 보고 겁에 질린 것이다.
그때 대전을 벗어나 달려가던 후새뢰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대전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후새뢰는 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돌아왔고, 혼란을 틈타 불타오르는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석목이 아래로 돌진하자 명월교 제자들은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속도로는 석목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석목이 두 손으로 부적들을 날리자 화염과 바람의 칼날이 인파 속으로 떨어졌다.
곧 처절한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대부분이 후천무인 혹은 영계술사에 불과한 그들이 석목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순식간에 무수한 사상자가 발생하며 절규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석목은 허공을 한 바퀴를 돌며 다시 주위의 수십 개의 건물들을 파괴했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종수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그제야 북을 타고 멀리 날아가 사라졌다.
마른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문득 단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대폭 줄어든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