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대소동
한참 후, 두려움에 몸을 떨던 명월교의 제자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그 마귀 같은 사람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파괴된 대전과 주위의 수십 개의 건물에서는 아직까지 불길이 치솟고 있었으며, 비명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살아남은 명월교의 제자들은 어쩔 줄 모르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참, 단주님이 어째서 보이지 않은 거지? 설마 이미…….”
그들 중 누군가가 문득 단주를 떠올리고 말했다.
단주가 있던 대전은 이미 붕괴되어 붉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쾅!
바로 그때, 무너진 담벼락의 잔해가 폭발하더니, 화염바다 속에서 우선을 든 유풍곡의 단주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그의 옷은 온통 찢겨 있었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지 온 몸이 피에 젖은데다 안색이 창백했다.
“단주님!”
명월교의 제자들이 기뻐하며 달려왔다.
갑작스러운 재난을 당했지만 단주가 있으니, 기댈 곳 없이 갈팡질팡하게 되는 상황만은 면한 것이다.
단주는 비틀거리더니 옆에 있는 바위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단주님, 괜찮으십니까?”
한 마른 남자가 다가와서 물었다.
“괜찮다. 대전에서 침입자에게 암습을 당해 원기가 상했지만, 나 역시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다.”
단주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단주가 마른 남자에게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운기조식을 하며 상처를 진정시킬 테니, 너는 가서 사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집계하도록 해라. 특히 선천등급과 성계술사의 사상자는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예!”
마른 남자가 재빨리 대답했다.
단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른 명월교의 제자에게 말했다.
“대전이 무너져서 창고를 보호하는 금제도 파괴되었을 것이다. 사람을 보내 그곳을 지키도록 하고 물건들은 잘 정리해 짐차에 싣도록 해라. 그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니, 상부에 보고한 뒤 다른 분단으로 옮겨 보관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자 명월교 제자가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단주님, 그건 좀 부적절하지 않겠습니까?”
“감히 나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것이냐?”
단주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자는 다급히 대답을 한 뒤 사람들을 이끌고 떠나갔다.
단주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곧 시선을 거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단주님, 부단주님께 큰 일이 생겼으니 돌아오라 이를까요?”
옆에 있던 다른 제자가 물었다.
“내가 이미 전달했으니 너희는 신경 쓸 필요 없다.”
단주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질문을 한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즉시 주위의 불을 진압하러 갔다.
단주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그의 눈동자에 일렁이는 화염이 비쳤다.
그때 골짜기 안쪽에서 날아온 푸른빛이 유풍곡의 입구에서 잠시 멈췄다. 그 빛은 다시 날아올라 서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사령계.
회색 안개가 자욱한 곳에 거대한 회색 산봉우리가 서 있었다.
칼처럼 곧게 뻗은 그 산봉우리의 정상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으며, 거울처럼 매끄러운 산등성이는 하늘에 있는 핏빛 달을 반사하고 있었다.
산봉우리는 중턱부터 번개를 머금은 회색 구름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파도치는 핏빛 물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산자락을 거세게 들이받고 있었다.
바로 그때, 멀리서 거대한 회색의 뼈 새가 날아왔다. 그 새는 산봉우리에 바짝 다가가더니 곧바로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몸길이가 수십 장에 달하는 새의 뼈에는 붉은 액체가 흐르는 혈관이 퍼져 있었다. 가슴 쪽에서는 둥근 붉은 빛이 심장처럼 두근거리고 있었으며, 커다란 날개에는 회색 깃털이 자라 있었다.
뼈 새의 삼각형 머리에는 눈부신 붉은 빛을 뿜어내는 몇 척 길이의 뿔이 여러 개 자라 있었다. 그것은 언뜻 보면 붉은 색 왕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놀랄 만큼 강력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 새는 매처럼 굽은 부리로 평범해 보이는 회색 다리뼈를 하나 물고 있었다.
뼈 새는 겁에 질린 듯 주위를 수시로 두리번거리는 동시에, 산봉우리 주위를 나선형으로 돌며 위쪽으로 올라갔다.
바로 그때, 하얀 빛이 산봉우리 아래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굉장히 빨라서 어느새 뼈 새의 지척에 이르렀다.
하얀 빛 속에서 검은 곤봉을 든 하얀 해골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해골이 곤봉을 휘두르자 수십 장 길이의 검은 곤영이 허공에 나타났다. 그것들은 새를 향해 놀라운 기세로 날아갔다.
그 곤영에 맞으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는 듯, 뼈 새는 두 날개를 펼쳐 옆으로 몸을 피했다.
콰르릉!
새의 옆으로 스쳐지나간 검은 곤영이 산봉우리를 가격했다. 그러자 산석들이 무너져 내리며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뼈 새는 고개를 쳐들고 회색 뼈를 더욱 강하게 문 뒤, 필사적으로 두 날개를 퍼덕이며 더욱 빠르게 날아갔다.
뼈 새의 행동을 보고 분노한 하얀 해골, 연나는 등 뒤의 하얀 날개를 펼치더니 뼈 새를 빠르게 쫓아갔다.
차례로 회색 구름을 가르며 날아간 그들은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모습을 감췄다.
* * *
보름 후, 어느 고요한 숲의 끝자락.
숲속에는 하늘까지 닿을 듯이 높고 잎사귀가 무성한 고목, 그리고 덩굴들이 가득했다.
바로 그때, 숲을 가로질러 나온 한 줄기의 푸른빛이 숲속의 고요를 깨트렸다.
푸른빛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양쪽에 푸른 날개가 달린 청익비차였다.
청익비차에는 석목과 종수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후……. 겨우 벗어났네…….”
석목의 어깨에서 채아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들이 벗어난 숲은 저어삼림(低语森林)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 숲에는 사람의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기괴한 수목들이 분포해서, 그곳을 지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했다. 정신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 그 숲에 들어갔다가는 끊임없이 숲을 헤매다가 결국 죽게 되기 일쑤였다.
석목과 종수는 경지가 높은데다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익혀서 정신력이 굉장히 강했다. 그럼에도 기괴한 수목들이 내는 소리는 그 수에 비례하여 효과가 강해졌기에, 모든 숲에서 동시에 소리가 들려오자 그들마저도 적지 않게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숲에는 각종 요수와 독충이 득시글거렸다. 그중에서도 비행 요수가 많아서 그들은 이 숲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서 상당히 애를 써야 했다.
하지만 석목과 종수는 그런 고생을 하는 동안에도 함께 한다는 사실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저어삼림을 벗어나 평원지대로 나오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얀색의 무언가가 시야 끝자락에 어렴풋이 들어왔다.
조금 더 앞으로 가자 그 하얀 것이 길게 이어진 성벽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벽의 높이는 무려 수십 장 가까이 됐으며, 전체가 옥처럼 티 없이 새하얀 색이었다.
성 안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건물들 역시 대부분이 흰색이었다.
“와, 정말 크다!”
채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오라버니, 창욱성이에요.”
종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을 본 석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하대륙에 도착한 이후로 거대하고 개성 있는 성들을 많이 봐왔지만, 눈앞의 창욱성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훌륭했다.
창욱성은 뛰어난 시력을 가진 석목의 눈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는 이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성을 보는 것은 천우성 이후로 처음이었다.
성 안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건물 사이로 이어진 넓고 깔끔한 도로 위에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고, 그 모습이 마치 계곡 물에서 물고기들이 오가는 것처럼 혼잡했다.
성 안에 흐르는 크고 작은 강 위에는 화물선들이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성의 번성함과 화려한 느낌을 한층 더해주었다.
“서하대륙에서 손꼽히는 성답게 굉장히 아름답네. 명불허전이야. 천우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겠어.”
석목이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며 말했다.
“그럴 수밖에요. 창욱성은 서하대륙의 동부 요충지로, 교통이 매우 편리해서 상회도 이곳에 총단을 세울 정도인 걸요.”
종수가 말했다.
“확실히 좋은 위치야.”
석목이 말했다. 그는 천오상회의 총단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종수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참, 이 성은 야만족의 십 대 부족 중 하나인 신응(神鹰)부족의 관할이에요. 성 주위는 허공까지 전부 진법으로 막혀 있으니 여기부터는 내려서 걸어가요.”
종수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고개를 끄덕인 뒤 근처의 작은 산골짜기에 착륙했다.
뒤이어 청익비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창욱성의 동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창욱성의 동문에는 여섯 개의 입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입구마다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입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석목과 종수도 그중 한 줄에 가서 섰다.
흥분한 채아는 석목의 어깨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물론 미리 석목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채아는 창욱성 동문 양쪽에 세워져 있는 두 개의 거대한 검은 석상에 시선을 빼앗겼다.
높이가 무려 백 장에 달하는 거대한 두 석상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으며,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두 조각상은 성을 지키는 전사처럼 안으로 들어오려는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왼쪽의 조각상은 상의를 벗고 머리에 깃털을 꽂고 있는 야만족 남자였다. 용모가 비상하고 체격이 건장했으며, 왼손에는 창을 들고 있었다. 오른쪽 조각상은 등에 날개가 자라고 손에 장궁을 들고 있는 남자로, 눈빛이 매우 또랑또랑했다.
“멋있어! 저 둘은 누구야?”
채아가 말했다.
“저 둘은 수천 년 전 서하대륙의 요만대전(妖蛮大战)에서 활약한, 신응부족에서 가장 강력했던 용사야. 신응부족은 남녀 모두 아름답고 멋진 부족이지. 특히 신응부족의 여인은 다른 야만족 남자들이 떼를 지어 몰려올 정도로 아름답다고 해. 중소 규모의 야만족 족장들은 신응부족의 여인에게 장가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정도야.”
종수가 설명했다.
“이 성에 미녀들이 많이 있다는 말이잖아? 석두, 그거 정말 좋겠는데? 어쩌면……. 아야, 아파!”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던 채아가 석목에게 머리를 맞고 뒷말을 삼켰다.
“얌전히 좀 있어. 들어가서 절대로 사고 치면 안 돼!”
석목은 채아에게 엄포를 놓은 뒤, 무언가 걱정되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종수에게 말했다.
“아직도 그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거야?”
“괜찮아요. 오라버니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챙기지 못했을 거예요. 그러면 아마 상회에서의 명성도 크게 떨어졌겠죠.”
종수는 석목을 향해 웃어보였지만,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잃어버린 성석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지? 방법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어.”
석목이 말했다.
“그 견 씨 성의 여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 건가요?”
종수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석목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다.
석목의 호흡을 느낀 종수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러나 점점 석목의 말에 집중하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정말 아무 문제도 없을까요?”
석목의 말을 끝까지 들은 종수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내 말대로 하면 분명 기한 내에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거야.”
석목이 삿갓을 꺼내 머리에 쓰며 태연하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오라버니의 말대로 할게요.”
종수도 면사포를 꺼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채아가 즉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