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책망
두 사람이 성에 진입해 직접 눈으로 보니, 야만족이 지은 건축물에는 적든 많든 전부 인족의 건축기술이 적용되어 있었다.
일부 거대한 석조건물 위에는 운치 있는 정자가 있었는데, 그것은 한 눈에 보아도 인족의 것을 모방한 게 분명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 모습이 이도저도 아닌 것이 어중간해보였지만, 계속 보다보니 굉장히 조화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해질 무렵이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곳은 신응부족의 성이니만큼 머리에 깃털을 꽂은 신응부족의 야만족이 가장 많았다.
그중 대부분은 머리에 깃털을 하나 꽂은 일반 부족원이었으며, 깃털을 두세 개 꽂은 야만족 용사도 종종 보였다. 그러나 네 개 이상의 깃털을 꽂은 상급 용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종수의 설명대로라면 네 개 이상의 깃털을 꽂은 이들은 대부분 부족에서 중요한 지위를 맡고 있을 테니, 사실 이상할 것도 없었다.
종수가 말한 대로 신응부족은 남자든 여자든 전부 외모가 출중했다. 다른 우락부락한 야만족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띄었다.
신응부족의 여인들은 다른 야만족 여인에 비해 체형이 작고 가냘펐으며, 인족이 입는 의상과 비슷한 느낌의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있었다.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나는 그녀들의 하얀 어깨가 주위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아가 신응부족 여인들의 몸을 구경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과연 누님의 말대로야! 아름다워!”
채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얌전히 있어! 여자들을 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
석목이 호통치듯 말했다.
“석두,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가지 마! 우리 건앵일족은 순결하고 고귀한 종족이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은 새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신응부족의 야만족들은 조류를 사냥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고 하던데? 그렇게 계속 보다가 그들에게 찍히면 도와주지 않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석목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채아는 그가 일부러 겁을 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천성적으로 겁이 많았기에 결국 시선을 거두고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
“저들이 입고 있는 옷을 누님이 입으면 분명 이 성에서 가장 아름다울 텐데! 석두. 그렇지 않아?”
채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수가 두 뺨을 살짝 붉혔다.
“얌전히 있으라고!”
석목이 채아에게 딱밤을 날리며 꾸짖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내려앉자 건물들에 등불이 켜졌다. 거리에는 여전히 인파들이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
“오라버니, 시간이 늦었으니 우선 머물 객잔을 알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종수가 물었다.
“야경이 나쁘지 않으니 조금만 더 거리를 거닐다가 알아보자.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신분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석목이 말했다.
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회색 망토로 전신을 덮고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다.
“수아, 창욱성과 신응부족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은 것 같던데, 와본 적이 있는 거야?”
석목이 물었다.
“서하대륙에 막 도착했을 때 한 번 와봤어요. 제가 알고 있는 대부분은 상회의 사람들에게 들은 것들이에요.”
종수가 말했다.
“참, 상회의 총단은 어디에 있어?”
석목이 물었다.
“창욱성은 총 스무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구역마다 각각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어요. 천오상회의 총단은 2구역에 있고, 우리가 현재 있는 곳은 15구역이에요. 이곳에는 작은 가게와 노점들이 많이 있고 야시장이 매우 유명하죠.”
종수가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의 양쪽에 있는 상점들은 규모가 크지 않았고, 길가에는 노점이 간혹 보였다.
노점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은 평범한 야만족의 의복과 모자부터, 무기와 법기, 단약 등 다양했다. 다만 품질이 좋지는 않았다.
그때 종수가 한 노점 옆을 지나가다가 은은한 빛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췄다.
그것은 노점에서 판매하는 푸른색 팔찌로, 살짝 낡았지만 표면에서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있어서 굉장히 눈에 띄었다.
종수는 그 팔찌가 마음에 들었는지 종수가 집어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종수는 어려서부터 묘음종에서 생활하며 수련에 매진해왔다. 그래서 평소 옷이나 장신구에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 팔찌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가씨가 보는 눈이 있군 그래! 이 팔찌는 청광박옥(青光璞玉)을 정교하게 조각해 만든 것으로, 보기 드문 좋은 물건이지. 창욱성에서는 여기를 제외하고는 파는 곳이 없어!”
노점에서 물건을 파는 노인이 종수의 모습을 보고 말했다.
“얼마에요?”
석목이 곧바로 물었다.
노인은 두 사람을 한 번 보더니 가격을 불렀다.
“영석 백 개라네.”
“너무 비싸요!”
종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팔찌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제가 살 테니 잘 포장해주세요.”
석목이 진묘계에서 중급 영석을 꺼내 노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예!”
영석을 받은 노인이 옥 상자에 팔찌를 넣어 석목에게 건넸다.
종수는 석목의 행동을 보며 말리려 했지만,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아, 이리와. 내가 채워줄게.”
상자를 받아 든 석목이 팔찌를 꺼냈다. 그리고 한 손으로 종수의 백옥 같이 하얀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팔찌를 채웠다.
푸른 팔찌는 종수의 하얀 피부와 잘 어울려서 보기 좋았다.
사실 그 팔찌는 법기도 아니고, 특별히 좋은 옥도 아닌 평범한 옥석으로 만든 것이었다. 게다가 세공도 평범해서 그렇게 비싼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석목에게 있어서 그 정도 영석쯤은 종수의 기쁨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 팔찌만 차고 다닐 거예요.”
종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보야, 이건 별 가치도 없는 물건이야. 나중에 정말 귀한 팔찌 영기를 얻게 되면 다시 선물할게.”
석목이 웃으며 종수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종수는 석목의 옆모습을 보며 옥팔찌를 귀한 보물 대하듯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채아는 어느새 어디론가 날아가 보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거리를 거닐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비교적 외진 곳에 위치한 객잔에 방을 얻었다.
“수아, 계획대로 내일부터 바로 행동하자. 우선 부족한 물건을 몰래 모아야 해. 명단에 있는 물품의 수가 굉장히 많던데, 전부 구할 수 있겠지?”
석목이 말했다.
“창욱성은 거대한 성이니 영석만 있다면 문제는 없을 거예요. 시간이 많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요.”
종수가 말했다.
“좋아, 영석은 충분해. 내일이 되면 따로 움직이며 물건을 구하자.”
석목이 말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일어난 석목은 점소이에게 주위에 창고로 쓰기에 적합한 장소가 있는지 물었다. 많은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큰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점소이의 말에 따르면, 마침 오래 전 양식창고가 이전하며 버려진 창고들이 15구역의 이두(泥头)거리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그 창고들을 소유한 일부 야만족들이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받고 장소를 대여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대여가 가능해지면서 그 창고들은 점차 빈곤한 야만족들이 거주하는 숙박소처럼 변했으며, 지금 그곳에 빈 창고가 남아 있는지는 점소이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석목은 점소이에게 영석 하나를 쥐어준 뒤 즉시 이두거리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에는 비어 있는 창고가 몇 개 있었다. 조금 낡았지만 공간은 충분히 커서 물건을 보관하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석목은 싼 가격으로 허름한 창고를 하나 대여했다. 그리고 창고 주위에 진법을 깔았다.
그 뒤로 석목은 물건을 구하는데 총력을 다 했고, 신분을 감춰야 하는 종수는 남아서 창고를 지켰다.
창욱성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상점이 있었다. 그러나 석목과 종수가 운송하던 것들은 흔한 물건이 아니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일부 상급 요수의 가죽, 요단(妖丹) 같은 재료는 더욱 구하기가 어려웠다.
석목은 성 안을 무려 이틀 동안 돌아다닌 끝에 간신히 대부분의 물건을 구했지만, 아직도 일부가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도 검은 벽돌 같은 광물은 특히 찾기 어려웠다.
종수의 말에 의하면, 묵석(墨石)이라고 불리는 검은 광물은 일강성 주위의 광맥에서 채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열전도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 화실을 건설할 때 사용하기 좋은 특수한 재료라고 했다.
하지만 묵석은 매우 희소한 광물이었다. 이번 호송에서 강탈당한 묵석들은 일강성의 묵석 광맥에서 수십 년 동안 모은 양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석목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당장은 묵석의 재고가 없지만, 상점의 주인들은 영석만 충분히 지급한다면 인맥을 동원해 구해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상점의 주인들은 며칠간 대량으로 물건을 구매한 석목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사흘 뒤, 석목은 결국 성석을 제외하고 부운차에 실려 있던 모든 물건을 모았다.
창고에 물건이 가득 실린 여덟 대의 부운차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일강성에서 출발할 때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됐어. 첫 번째 계획은 순조롭게 마쳤어.”
석목이 말했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며칠 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요.”
종수가 물건이 가득 쌓인 부운차들을 보고 감격해서 말했다.
“물건들은 이곳에 두고 천오상회로 가자.”
석목이 말했다.
두 사람이 창고를 나서자, 석목은 팔을 휘둘러서 검은 빛을 쏘았다.
탁!
검은 빛을 흡수한 창고의 네 벽이 검게 빛나더니 대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 * *
석목은 종수의 안내에 따라 금세 천오상회의 총단 한연각(翰渊阁) 앞에 도착했다.
한연각은 석목이 생각했던 것만큼 거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연각이 있는 곳은 성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창욱성 내에서도 손꼽히는 금싸라기 땅이었다.
한연각의 대문에는 고아하고도 힘이 있는 금색 글자로 ‘천오상회’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었다.
면사포를 벗고 녹색 옷을 입은 종수는 마치 선녀처럼 아름다워서 수많은 행인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석목은 회색 천을 둘러 얼굴을 반쯤 가리고, 머슴처럼 거친 베옷을 입고 있었다.
바로 그때, 비단옷을 입은 젊은 남자가 대문에서 나왔다. 그는 종수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고 넋을 잃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헛기침을 몇 번 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자가 종수에게 인사했다.
종수는 말없이 보라색 영패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장로님이셨군요. 안에 들어가서 알리겠습니다.”
영패를 보고 놀란 남자가 그것을 받아들고 재빨리 안으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온 남자가 영패를 돌려주며 공손하게 말했다.
“종 장로님이셨군요. 안쪽으로 드시지요.”
종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석목과 함께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석목의 추측대로 한연각의 내부는 별천지 같았다.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화원과 회랑이 있었는데, 작은 다리 아래 물이 흐르고 꽃향기가 나는 풍경이 굉장히 이채로웠다.
안내를 하던 젊은 남자가 어느 건물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왕 부회장님, 종 장로님이 왔습니다.”
젊은 남자가 말했다.
“들어오너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건물의 문이 열렸다.
건물 안의 주석에는 구레나룻이 하얗게 센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날카로운 눈썹과 남자다운 얼굴을 가진 남자는 비범한 기개와 도량을 가진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왼쪽에는 요염한 자태를 가진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느다란 눈으로 종수와 석목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상회의 부회장 왕서곤이라네. 회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이곳의 전권을 위임받았지. 일강성에서 온 종 장로가 맞나?”
왕서곤이 종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맞습니다. 왕 부회장님을 뵙습니다.”
종수가 예를 표하며 말했다.
“상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젊고 재능이 뛰어나서, 벌써 여러 가지 큰일을 해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왕서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종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