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58화 (258/916)

258화. 소문이 돌다

왕서곤은 석목을 힐끔 한 번 보더니 종수를 오른쪽 자리에 앉히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상회의 기록을 열람해보니 일강성에서 물건을 호송하는 임무를 맡았던데, 오는 길은 순조로웠는가?”

왕서곤이 물었다.

“결코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어떻게든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종수가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사실 최근 상회에서 호송하는 물건들이 강탈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네.”

왕서곤이 감탄하며 말했다.

종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건은 지금 어디에 있나? 물건을 먼저 옮기고 다시 대화를 하는 것이 좋겠네.”

왕서곤이 물었다.

종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학명산맥을 지나던 중 저 역시 의뢰물품을 노리는 악한들을 만났습니다.”

“음?”

그러자 옆에 있던 여인이 갑자기 끼어들어 말했다.

“어째서 그 사실을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죠?”

종수는 여인을 보지 않고 왕서곤에게 말했다.

“이미 오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강성에서 모집한 호위와 상회의 호위 수십 명이 전부 죽었습니다. 제가 살아서 이곳까지 온 것도 천운이었습니다.”

“뭐라고요? 사람이 다 죽었다니요? 그럼 물건은 어떻게 됐지요?”

여인이 화가 난 기색으로 물었다.

“조 장로, 종 장로의 말을 먼저 듣게.”

왕서곤이 말했다.

여인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입술을 삐죽이더니 입을 다물었다.

“물건은 전부 강탈당했습니다.”

종수가 말했다.

“뭐라고요? 물건과 사람들을 전부 다 잃고 무슨 낯으로 이곳에 온 거죠?”

여인이 고성을 질렀다.

“조 장로, 예를 지키게!”

왕서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 종 장로가…….”

여인이 급하게 말했다.

“종 장로, 물건을 정말 강탈당했나? 어떻게 된 것인지 상세히 설명해주게.”

왕서곤이 여인의 말을 끊고 물었다.

종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이곳으로 오는 길에 겪은 일에 대해 전부 고했다. 하지만 명월교와 익학부족이 결탁한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서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을 꾸며냈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었다.

종수의 설명을 들은 왕서곤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이곳까지 찾아온 건가요? 의뢰받은 물건을 잃어버리면 상회에서 세 배의 영석을 보상해줘야 할 뿐만 아니라, 명성에도 크게 흠이 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거예요?”

여인이 다시 고함을 쳤다.

“종 장로, 그 물건들의 가치는 잘 알고 있겠지?”

왕서곤이 말했다.

종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에 대한 단서가 있나?”

“단서는 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지금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종수가 말했다.

“허풍은!”

여인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종 장로 혼자서 물건을 되찾아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네. 감히 천오상회의 물건을 건드린 것으로 보아 필히 상대도 범상치 않은 자들일 것이네. 이렇게 하지. 종 장로가 만약 범인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아온다면, 상회에서 물건의 주인과 힘을 합쳐 물건을 되찾아오겠네.”

왕서곤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상회가 나서서 조치를 취하려면 충분한 시간을 남겨줘야 해요. 만약 보름 안에 증거를 찾아오지 못한다면 종 장로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할 거예요.”

여인이 말했다.

“조 장로의 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보름은 너무 촉박하니 기한은 이십 일이 좋겠네.”

왕서곤이 말했다.

“배려에 감사하지만,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상회에 전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물건을 건네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되찾지 못한다면 어떠한 처벌이든 받아들일 겁니다.

종수가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왕서곤과 여인은 종수의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랐다.

상회가 개입한다면 문제가 상당히 쉽게 해결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물건을 되찾아오지 못하더라도, 천오상회의 능력이라면 성석을 제외한 나머지 물건들은 단시간 내에 모두 모을 수 있었다. 성석 또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지만, 상회의 저력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상회가 나서서 이 일을 해결해준다면 종수는 책임을 피해갈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약속했던 오십 년의 기한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석목은 그것만은 두고 볼 수가 없었기에, 진즉에 이렇게 행동하기로 종수와 입을 맞추어놓았다. 무엇보다도 명월교의 음모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를 찾는 건 매우 어려웠다.

“종 장로, 정말 상회의 도움이 필요 없나?”

왕서곤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물었다.

여인은 종수가 사리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지, 멍청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종수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확신이 있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하지만 이 일에 대한 비밀은 꼭 지켜야만 하네. 상회의 명예와 관련된 일이니 절대 소문이 나서는 안 되네.”

왕서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했습니다.”

종수가 대답했다.

“참, 두 사람을 위한 거처를 마련해놓았네. 사람을 시켜 안내하라 일러 놓았으니 그곳에서 머물게나.”

왕서곤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종수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물건을 누가 뺏어갔는지도 모르면서 되찾겠다니, 정말 허황됐군요!”

여인이 종수의 뒷모습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반 년 전부터 상회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어. 처음에는 여곤성(荔昆城) 분단의 물건이 강탈당하더니 이어서 아파성(乌巴城), 제살성(齐萨城) 등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고, 이제는 일강성에서도 일이 터졌어. 표면상으로는 그 지역의 야만족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내 생각에는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다. 마침 종수가 자신이 직접 해결을 하겠다고 하니 어쩌면 정말로 무언가 찾아낼 수도 있겠지.”

왕서곤이 말했다.

“숙부, 정말 그녀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인이 불신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종수가 물건을 되찾아오는 것은 상회에 있어서도 좋은 일이다. 게다가 그녀는 회장의 신임을 받을 정도로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지 않느냐. 그렇지 않았다면 요족 특사의 자리에서 너와 경쟁하지 않았겠지. 만약 물건을 되찾지 못한다면 그녀는 요족 특사의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몸을 일으킨 왕서곤이 창밖을 보며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그렇군요. 과연 숙부님은 빈틈이 없어요!”

여인이 기뻐하며 말했다.

* * *

종수와 석목이 천오상회의 총단을 떠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천오상회가 의뢰받은 물건을 유실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일부는 요족이 벌인 짓이라고 주장했고, 일부는 세력이 커진 천오상회에 불만을 가진 야만족 세력이 벌인 짓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천오상회가 물건을 빼돌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다양한 풍설이 돌았다.

하지만 이 일의 책임자인 천오상회의 객경장로 종수가 이미 창욱성에 돌아왔으며, 물건이 사라진 것 자체는 확실하다는 소문도 났다.

“결국 소문이 퍼졌네요. 물건들을 미리 모아놔서 다행이에요.”

종수는 이두거리의 창고에서 물건이 가득 실린 부운차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올 것이 왔을 뿐이니 걱정할 필요 없어. 소문이 빨리 퍼지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나쁜 것만은 아니야.”

석목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오라버니, 우리는 노출돼 있는데 적들은 숨어 있으니, 불안감이 사라지지가 않아요.”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고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

* * *

천오상회와 당사자인 종수가 호송 중이던 물건이 강탈당한 것에 대해 직접 부인하지 않자, 소문은 더욱 빠르게 온 성에 퍼졌다.

이틀 후, 한연각의 문 앞에 두 명의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중 한 사람은 갈색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삼십대 후반의 장대한 남성이었다. 그는 창욱성의 성주인 신응부족의 장로 영호관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석목이 알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과거에 유안과 함께 서하대륙으로 넘어온 적봉 전주였다.

“이곳까지 행차하셨는데 미처 마중을 나가지 못했군요. 이 분은?”

소식을 듣고 재빨리 나온 왕서곤이 영호관에게 인사를 하고, 옆에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이분은 열풍애(裂风崖) 명월교 분단의 적 단주입니다.”

영호관이 말했다.

“적 단주였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왕서곤이 웃으며 인사했다.

“빙 둘러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곳까지 온 것은 최근 성에서 떠들썩한 소문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영호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최근 상회의 일이 바빠 외출을 하지 못했는데, 어떤 소문을 말하는 것이죠?”

왕서곤이 말했다.

“일강성의 성주 유찬이 귀 상회에 맡긴 물건이 강탈당했다는 소문 말입니다.”

영호관이 말했다.

“그 소문을 어디서 들은 것이죠?”

왕서곤이 물었다.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천오상회가 정말 의뢰를 맡긴 물건을 유실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적봉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저는 정말 그 일에 대해서 듣지 못했습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떤가요?”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본 왕서곤이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왕서곤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천오상회는 사업을 할 때 신용과 명예를 가장 중시합니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규정에 따라 두 분에게 세 배의 돈을 배상하겠습니다. 아직 약속한 기한이 되지 않았으니, 그런 유언비어를 믿고 조급해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주위에 사람이 점점 모여 들자 왕서곤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왕서곤이 소문을 믿을 수 없다는 태도로 나오니 영호관 역시 반신반의하기 시작했다. 사실 적봉이 부추기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곳까지 찾아와 따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건을 정말 분실했다면 세 배의 보상을 해주겠다는 말에 영호관은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게다가 외부에서 도는 소문만으로 천오상회의 체면을 계속해서 깎아내릴 수도 없었다.

영호관은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왕서곤과 몇 마다 대화를 나눈 뒤 적봉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왕서곤의 눈빛은 매우 복잡했다.

사실 그는 종수가 물건을 되찾아올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가 파견한 정탐원의 보고에 따르면, 종수는 물건을 되찾을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성에서 줄곧 머물고 있었다.

* * *

이두거리의 창고.

“수아, 우울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석목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종수를 보며 물었다.

“물건의 주인인 이곳의 성주가 천오상회를 찾아왔대요. 그래서 무작정 발뺌했다고 부회장이 전해왔어요.”

종수가 말했다.

“하하, 아직 약속한 날짜가 되지도 않았잖아. 성주가 찾아온 것은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일 뿐이야. 문제없을 테니 걱정 마.”

석목이 말했다.

“성주에 관한 일은 걱정되지 않아요.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은 웃으며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온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석두, 내가 누굴 봤는지 맞춰봐!”

“궁금하게 하지 말고 말해.”

거들먹거리는 채아를 석목이 곱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급해하지 마. 나도 숨도 돌리고 물도 마시면서 쉬어야지. 하루 종일 밖에서 날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는…….”

채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목이 머리에 딱밤을 날렸다. 잔뜩 움츠러든 채아가 석목을 노려봤다.

“어서 말해. 뜸 들이지 말고!”

석목이 수속성 영석을 하나 던져주며 말했다.

“말하면 되잖아! 적봉이야. 적봉이 이 근처 열풍애 명월교 분단의 단주야.”

채아가 한 입에 영석을 받아먹으며 말했다.

“적 전주? 그가 지금 여기에 있어?”

석목이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이곳의 성주인 영호관이라는 작자와 관계가 굉장히 좋아 보였어. 둘이 함께 천오상회에서 소란을 피우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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