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추격
석목은 금색 눈으로 차갑게 적봉을 바라보며, 죽음의 기운을 뿜어내는 운철흑도를 그대로 베어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적봉이 뒤로 몸을 피하는 동시에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순간, 그의 몸 앞에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삼 장 가까운 크기의 금색 해골이 나타나 석목의 앞을 가로막았다.
금색 해골은 보라색 영혼의 화염을 가진 지계의 사령생물이었다.
금색 해골의 뼈는 마치 커다란 나무의 뿌리처럼 두꺼웠는데, 그중 두 팔의 뼈가 특히 굵었다. 그 표면에는 보라색 부문까지 새겨져 있어서 굉장히 단단해보였다.
금색 해골이 보라색 영혼의 화염을 들썩이더니 포효했다. 그것이 맷돌만큼이나 두꺼운 주먹을 아래로 내려찍자 맹렬한 강풍이 일었다. 지면의 돌조각과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그 순간 석목의 움직임이 갑작스럽게 빨라지더니, 푸른색 잔상을 남기며 금색 해골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움직임을 멈춘 금색 해골이 고개를 숙여서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해골의 몸에는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팔까지 횡으로 기다란 균열이 생겨 있었다.
카가각!
균열이 빠른 속도로 벌어지더니 해골의 오른팔이 떨어져나갔다. 이어서 상반신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말도 안 돼!”
멀리 몸을 내뺀 적봉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몸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황금해골왕이 상대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그가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다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이 그의 앞에 나타나 운철흑도를 휘둘렀다.
적봉이 깜짝 놀라 몸을 떠는 것과 동시에, 그의 지팡이가 눈부신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붉은 구름처럼 변해서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러나 붉은 구름이 막 형성되는 순간 운철흑도가 그것을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둘로 나누어진 구름 중 한쪽이 흩어지더니 피가 뚝뚝 흐르는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다른 한쪽의 구름은 살짝 떨렸지만 흩어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질풍 같은 속도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딜!”
석목이 한 팔을 휘두르자 청익비차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가 올라타자 비차가 푸른빛을 뿜어내며 붉은 구름을 쫓기 시작했다.
적봉은 엄청난 속도로 거리를 점차 좁혀오는 청익비차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재빨리 주문을 외우며 온전한 팔로 반대쪽 팔의 절단면을 그었다.
절단면에서 피가 흘러나와 그의 몸 앞에 모였다. 이어 핏빛 부문으로 변해서 그를 감싸고 있는 붉은 구름에 흡수되었다.
부문을 흡수한 붉은 구름이 넘실거리더니 색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면서 속도가 오 할 정도 빨라지면서 청익비차와의 거리를 크게 벌렸다.
붉은 구름의 속도에 놀란 석목은 재빨리 수인을 맺었다. 청익비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순간 강력해졌다.
이어서 석목은 팔을 휘둘러 비차의 양쪽 날개에 검은 빛을 날렸다.
검은 빛을 흡수한 비차의 양쪽 날개가 커지더니 표면에 푸른색 부문이 생겨났다.
그와 동시에 청익비차도 속도가 크게 증가하면서 핏빛 구름과의 거리를 다시 좁히기 시작했다.
적봉은 뒤쪽의 상황을 보면서 다급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사용하는 혈둔비술(血遁秘术)은 원기의 소모가 극도로 크기 때문에 오래 지속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적봉의 눈에 전방에 있는 거대한 산봉우리가 들어왔다. 그는 눈을 빛내며 산봉우리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휙!
산봉우리에 바짝 다가간 핏빛 구름이 재빨리 산봉우리 뒤쪽으로 돌아갔다. 구름은 산봉우리에 잠시 가려진 뒤 바닥에 잠깐 닿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허공으로 떠올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산봉우리를 돌아온 청익비차는 멀어져가는 핏빛 구름을 쫓지 않고 움직임을 멈췄다.
석목이 코웃음을 치면서 한 손을 휘두르자 거대해진 금전검이 아래의 땅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쾅!
거대한 금전검이 지면을 베자 바닥에 일 장 깊이의 기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가 주위의 십여 장을 덮었다.
그 순간 적봉이 흙먼지 사이에서 뛰어올랐다. 그는 창욱성 방향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푸른빛을 반짝이며 다가온 청익비차가 앞을 막아섰다.
적봉이 창백한 얼굴로 석목을 보며 물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알아챘지?”
“성석을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석목이 차가운 눈빛으로 적봉을 보며 말했다.
사실 방금 몸을 숨긴 적봉을 발견한 것은 그가 아닌 채아였다. 채아는 시종일관 적봉을 따라다니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적봉은 석목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꿈도 꾸지 마라!”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져가는 수밖에.”
석목이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금전검이 다시 그를 향해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본 적봉이 남은 한쪽 팔로 재빨리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눈부신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르릉!
그 순간 지면 아래의 깊은 곳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지면에 수십 개의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 사이에서 수백 개의 거대한 바위가 솟아올라 금전검과 석목을 향해 빗발치듯 날아갔다.
석목을 태운 청익비차가 높이 날아올랐다. 동시에 금전검이 칼자루를 중심으로 빠르게 회전하며 거대한 검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금전검은 빼곡하게 날아드는 바위에 격렬하게 흔들렸지만 결국 전부 막아냈다.
회전하는 금전검에 갈린 돌가루가 주위에 자욱하게 깔려 시야를 가렸다. 석목은 금전검을 회수한 뒤 푸른색 부적을 사용해 먼지를 전부 날려 보냈다.
하지만 그 사이 적봉은 이미 모습을 감춘 뒤였다.
석목의 머릿속에서 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그는 지둔부(地遁符)를 사용해서 서북쪽 방향으로 도주했어.”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재빨리 청익비차에 올라 서북쪽 방향으로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봉의 모습이 다시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청익비차는 이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번개같이 적봉을 쫓았다.
적봉은 뒤쫓아오는 비차를 보고 깜짝 놀라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그가 타고 있는 회색 창이 빛을 강하게 뿜어내며 한층 속도를 높였다.
푸른빛과 회색빛이 창욱성 주위의 산맥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갔다.
두 사람의 추격은 반나절 가까이 계속됐다. 적봉은 한쪽 팔을 잃은 중상에도 불구하고 월계술사답게 각종 괴이한 수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석목으로서도 쉽게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적봉 역시 그의 모든 계략을 파훼하며 쫓아오는 석목을 완전히 따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적봉은 회색 창을 타고 도주하면서 하나 남은 손으로 중급 영석을 쥐고, 그 안에 담긴 영기를 미친 듯이 흡수했다.
긴 추격전으로 인해 체내의 법력이 거의 고갈된 그의 안색은 종잇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
적봉은 영기를 전부 잃은 영석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영석을 꺼내 쥐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더니 방향을 급선회해서 거대한 산봉우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를 쫓던 청익비차의 반응은 조금 느렸지만, 곧 방향을 꺾어서 바짝 따라붙었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날아간 두 사람은 금세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그 순간 적봉은 고도를 낮추더니 산봉우리 아래 거대한 산골짜기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산골짜기 안에서는 무언가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석두, 조심해! 저 안에 강력한 요수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
채아의 말에 석목의 표정이 굳어졌다.
바로 그때, 적봉이 산골짜기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석목을 향해 몸을 돌리며 품속에서 여인에게 받은 옥 상자를 꺼냈다.
“성석을 원하는 것이지? 능력이 있다면 가져가봐라!”
적봉이 석목을 조롱하는 표정을 지으며 팔을 강하게 휘둘렀다. 그러자 옥 상자가 허공에서 호선을 그리며 산골짜기 깊숙이 날아갔다.
그 순간 산골짜기의 안개 속에서 격양된 울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무언가 나오려는 듯 안개가 격렬하게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놀란 석목이 고개를 돌려 어깨에 앉아 있는 채아를 보았다.
채아는 순간 하얀빛이 감도는 눈으로 날아가는 옥 상자를 쫓았다.
“저 안에 성석 두 개가 모두 들어 있어!”
채아의 목소리가 석목의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성석은 단단하지 않으니 빨리 움직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머뭇거리다가 요수에게 파괴되었다고 후회하지 말고!”
적봉은 그렇게 말하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멀리 날아갔다.
석목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적봉을 바라보았지만, 뒤를 쫓아가지는 않았다.
꽥!
그 순간,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거대한 요수 세 마리가 안개를 뚫고 나왔다.
몸길이가 오 장 가까이 되는 요수의 깃털은 마치 철판처럼 금속의 광택이 흘렀다. 머리는 매와 닮았지만 부리는 마치 오리의 그것처럼 넓적해서 매우 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과는 별개로, 뿜어내는 기운을 가늠했을 때 세 마리의 요수는 지계의 경지까지 겨우 한 발자국 남은 강력한 요수였다.
요수들은 청익비차에 타고 있는 석목에게 시선을 향하더니 날카롭게 울부짖으며 날아들었다.
그중 가장 앞에 있는, 덩치가 제일 큰 요수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입속에서 맷돌만한 푸른 바람의 칼날들이 날아왔다.
석목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문을 외우자, 그의 몸 앞에 거대한 은색의 방패가 생겨났다.
표면에 무수한 부문이 맴도는 빛의 방패는 기영순이었다. 석목의 법력이 상승한 덕분에, 눈부신 빛을 뿜어내는 기영순은 이전보다 열 배도 넘게 견고해져 있었다.
쾅! 쾅! 쾅!
바람의 칼날들이 기영순에 가로막혀 멀리 튕겨 날아갔다. 칼날을 막아낸 기영순은 잠시 반짝이며 흔들렸지만 곧 안정됐다.
석목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두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금전검이 허공에 나타나 빠르게 커지더니, 십여 개의 거대한 금색 검영으로 분산되어 한 마리 거대한 금룡처럼 줄지어 날아갔다.
깜짝 놀란 요수가 큰 소리로 울며 몸에서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허공을 자유자재로 비행해서 검영들을 간발의 차로 피해냈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이 주문을 외우며 두 손을 연달아 휘둘렀다. 그러자 금전검의 움직임이 두 배 가까이 빨라졌다.
금빛이 반짝이며 세 개의 검영이 요수의 가슴과 양쪽 날개를 노리고 날아갔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빠른 속도였다.
놀란 요수는 날개를 몸에 바짝 붙여 검영에 베이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가슴을 노리고 날아오는 검영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요수는 다시 한 번 입을 크게 벌려서 푸른색 바람의 칼날을 날렸다,
바람의 칼날들이 한곳에 모이더니 서로 연결됐다. 그것들은 톱니바퀴처럼 하나의 커다란 원을 형성했다.
푸른 칼날의 원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서 금색 검영과 충돌했다.
깡! 깡! 깡!
바람의 칼날이 끊임없이 회전하며 금색 검영이 더 이상 다가오는 것을 저지했다.
동시에 요수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더니 검은 발을 번개처럼 빠르게 휘둘렀다.
금색 검영이 몇 번 반짝이다가 결국 파괴되자, 요수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바로 그 순간, 석목에게서 하얀 빛의 사슬이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요수의 몸을 묶었다.
사슬에 묶인 요수는 날개를 펼치려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견고한 빛의 사슬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요수의 거대한 몸이 허공에서 잠시 비틀거리더니 곧 커다란 돌덩이처럼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눈부시게 빛나는 금전검의 본체가 요수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푹!
요수의 거대한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더니 절단면에서 선혈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석목과 회색 요수가 싸우는 과정은 매우 복잡한 듯 보였지만, 사실 전부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