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기한이 도래하다
석목의 바로 근처까지 날아왔던 다른 요수들은 우두머리가 죽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 정도의 실력을 가진 요수는 평범한 사람과 비교해도 지능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요수들이 석목에게 수십 개의 바람의 칼날을 날린 뒤, 즉시 방향을 돌려서 아래쪽 산골짜기로 도주해버렸다.
석목은 그걸 보며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기영순으로 청익비차의 앞을 감싼 뒤 요수들을 쫓았다.
펑! 펑! 펑!
바람의 칼날을 막아낸 기영순의 표면에 균열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은 부서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어서 석목이 한 손을 휘두르자 허공에 각양각색의 부적이 수십 장 나타났다. 놀랄 만큼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는 그것들은 대부분 중급 부적이었으며, 상급 화속성 부적이 일부 섞여 있었다.
동시에 석목의 몸에서 투명한 빛의 사슬 수십 가닥이 뿜어져 나와 부적들과 연결되었다.
석목이 다시 한 번 손을 휘두르자 수십 장의 부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아가서 두 마리의 요수를 금세 따라잡았다.
석목이 손가락을 미간에 가져다대자 부적이 갑자기 둘로 나뉘더니 각각 요수 두 마리의 주위를 에워쌌다.
“폭(爆)!”
석목의 소리치자 수십 장의 부적이 반짝이더니 동시에 폭발했다.
쾅! 쾅!
두 요수의 몸을 덮은 거대한 폭발의 파동이 사방으로 펴져나갔고, 산골짜기에 연기가 자욱해졌다.
이어 새까맣게 변한 두 요수가 아래로 추락해서 바닥에 처박혔다.
전신의 깃털이 까맣게 타고 몸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지만, 두 요수는 아직 죽지 않은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지면에 착지한 석목은 요수들에게는 시선조차도 주지 않고, 즉시 산골짜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산골짜기는 이 삼 십 장 정도의 깊이로, 그리 크지 않았다. 각종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고 깊숙한 곳에서는 샘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바로 산골짜기에 가득한 안개의 근원이었다.
샘 위에 있는 검은 동굴에서는 가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 안에는 요수들의 새끼가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동굴 안쪽에서 회색 요수가 튀어나와서 날개를 펼쳐 동굴의 입구를 막았다. 요수는 석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감지했는지 두려움에 찬 표정을 지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위협적으로 포효했다.
석목은 담담한 표정으로 요수를 한 번 본 뒤, 고개를 돌려 옥 상자를 찾기 시작했다.
회색 요수는 석목의 행동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동굴의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석두, 저기야!”
석목의 어깨에 앉아 있던 채아가 날개로 산골짜기의 한쪽 구석을 가리키며 외쳤다.
석목은 기쁜 표정으로 채아가 가리킨 방향으로 다가갔고, 나무 위에서 옥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손톱만한 크기의 성석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그중 한 개는 종수가 잃어버린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어디서 얻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견 씨 성의 여인이 절대 정당한 방법으로 얻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어쨌든 석목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었다.
성석에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석목은 상자를 다시 챙겨 넣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서 동굴 입구의 회색 요수를 한 번 바라본 뒤, 산골짜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석목이 떠나가는 것을 확인한 요수는 그제야 안심하며 긴장을 풀고 몸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
금세 산골짜기를 벗어난 석목은 주위에 쓰러져 있는 요수 두 마리에게 다가갔다. 요수들은 그 사이에 목숨을 잃고 시체로 변해 있었다.
석목이 수혼 주머니를 꺼내 수인을 맺자 두 시체에서 솟아오른 푸른 수혼이 주머니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석목은 만족한 표정으로 수혼 주머니를 바라보았다. 창욱성으로 향하는 여정 동안 공들여 수혼을 모은 덕분에, 석목의 수혼 주머니에는 상당한 양의 수혼이 들어 있었다.
그가 수혼을 수집하는 가장 큰 목적은 연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만약 연나에게 운철흑도의 신비로운 힘을 사용하는 법을 배울 수만 있다면, 실력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석목 스스로도 이따금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아주 사소한 요소로도 승패가 갈리는 실전에서 계속 요행에 기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나는 최근에도 여전히 석목의 소환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석목은 작게 한숨을 쉬며 운철흑도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도에 중급 화속성 영석을 가져다 대고 영기를 주입시켰다.
운철흑도의 중량은 다섯 개의 중급 영석을 연속으로 삼킨 뒤에야 한계에 달했다.
석목은 운철흑도를 다시 등 뒤에 꽂아 넣은 뒤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청익비차가 나타났다.
석목을 태운 청익비차가 푸른빛으로 반짝이더니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적봉과 오랜 시간 추격전을 벌인 석목은 산맥 깊숙이까지 진입해 있었다. 물건을 건네기로 한 날짜가 이틀 밖에 남지 않은 만큼,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약속한 기한을 놓쳐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도 몰랐다.
* * *
창욱성의 한연각에서는 우아하게 꾸며진 응접실에 몇 명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주석에는 왕서곤, 그리고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창욱성의 성주 영호관이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아랫자리에는 종수와 요염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여인은 가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한두 마디씩 거들었으며, 종수는 아무 말 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
곧이어 푸른 옷을 입은 시종이 응접실에 들어왔다. 그는 특이한 모양새의 백옥 찻잔을 네 사람에게 건넨 뒤 물러났다.
뜨거운 차가 담긴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멀리서 구해온 영차(灵茶)입니다. 맛이 나쁘지 않을 테니 한번 드셔보시지요.”
왕서곤이 웃으며 말했다.
영호관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입 안 가득 퍼지는 진한 향기와 단전의 화끈한 열기를 느끼고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정말 좋은 차군요. 설마 그 유명한 백융로(白绒露)입니까?”
“하하, 정말 모르시는 것이 없군요. 올해 수확한 가장 신선한 백융로입니다. 저에게 두 상자가 더 있으니 마음에 든다면 가지고 가서 천천히 맛보셔도 좋습니다.”
왕서곤이 그렇게 말하며 푸른 상자 두 개를 꺼내 건넸다.
“이런 영차라면 영석 만 개로도 한 상자를 사지 못할 텐데, 이렇게 귀한 물건을 그냥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영호곤이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그 말을 들은 왕서곤은 더는 권하지 않고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제가 오늘 이곳에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일강성에서 보내온 물건들에 대해 묻기 위해서입니다. 내일 신시(申时)가 약속한 기한인데 물건들은 어디에 있죠?”
영호관이 말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종 장로가 이미 본성까지 찾아가 보증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찾아와서 물건의 행방을 묻다니, 설마 우리 천오상회의 실력보다 그런 유언비어를 더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왕서곤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명성이 자자한 천오상회의 실력에 제가 어찌 의문을 가지겠습니까? 단지 최근 여러 가지 소문이 끊이지 않기도 하고, 맡긴 물건들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보니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왕 부회장이 저의 고충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호관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안심하세요. 내일 신시에 맞추어서 물건을 가지고 가면 됩니다.”
왕서곤이 고개를 돌려 종수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시니……. 그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영호관은 몸을 일으켜 왕서곤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대문을 향해 가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
“참, 사전에 미리 쓴소리를 좀 하겠습니다. 만약 내일 신시까지 물건을 건네주지 못한다면 이 일은 야만족 연맹의 고위층에 보고될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왕서곤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영호관이 떠나자 왕서곤의 표정이 즉시 어두워졌다.
여인은 종수를 흘겨보며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종 장로, 방금 영호관 성주의 말을 들었겠지. 물건들에 대한 조사 현황은 어떤지 정확한 소식을 알려주게.”
왕서곤이 물었다.
“걱정마세요. 반드시 내일 신시까지 가져오겠습니다.”
종수가 표정과 마찬가지로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
“지금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나요? 최근 줄곧 성 안에만 머물고 있는 것 같던데요. 이미 찾았다는 그 단서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죠? 제가 봤을 때 종 장로는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전혀 노력하는 것 같지 않아요!”
여인이 말했다.
“됐으니 그만 말하게나.”
왕서곤이 손을 들어 여인의 말을 막았다.
“종 장로, 상회에서 해결을 해주겠다는 것을 거절했으니 이 일에 대한 책임은 모두 자네에게 있네. 만약 내일 시간 맞춰 물건을 가져온다면 종 장로의 공로가 기억되겠지만, 반대로 되찾아오지 못한다면 장로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번 의뢰에서 발생한 세 배의 위약금을 앞으로의 보수에서 제하게 될 것이네.”
왕서곤이 말했다.
종수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왕서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가자 응접실에는 종수와 여인만 남았다.
“이곳에 앉아서 낭비할 시간이 있나요? 아니면 이미 책임을 지고 좌천당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건가요?”
몸을 일으킨 여인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여인 역시 꽃 같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으나, 종수의 절세 미모와 비교하면 확연히 부족했다.
게다가 선녀처럼 기품이 있는 종수에 비해 그녀의 분위기는 저속해보이기까지 했다.
여인은 종수의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을 질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소미가 운익성 사건 이후로 전혀 보이지가 않네요. 시체도 찾을 수가 없고요.”
종수가 갑자기 말했다.
“소미? 그게 누구죠?”
여인이 표정을 살짝 굳혔다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종수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몸을 일으켜 응접실을 나섰다. 그녀의 행동과 표정에서는 어떠한 초조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종수의 뒷모습을 보다가 건물을 나섰다. 그녀는 정원이 딸린 한 저택으로 향했다.
“아가씨.”
그녀가 도착하자 정원에서 시녀가 나와서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 시녀는 바로 소미였다.
소미는 이전보다 많이 야위어 있었으며, 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중상을 입었다가 막 상처를 치유한 사람 같았다.
“일어나.”
여인은 담담하게 말한 뒤 저택 안으로 들어가서 의자에 앉았다.
소미가 그녀의 뒤를 따라와서 차를 따랐다.
“이번에는 고생했다.”
여인이 말했다.
“응당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소미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큰 공을 세웠으니 그에 따른 보상이 내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우리의 계획을 종수에게 알리려던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거라. 그 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었지?”
여인이 물었다.
소미는 당시의 기억을 최대한 되살려가며 석목의 체형과 용모를 묘사했다.
설명을 들은 여인은 손을 흔들어 소미를 내보냈다. 그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다가 하얀 옥부(玉符)를 꺼냈다.
옥부는 반짝이더니 그 위로 하얀 빛의 거울을 만들었다.
거울에서 종수와 거친 베옷을 입은 한 남자의 모습이 비치었다. 남자는 머리에 삿갓을 써서 얼굴이 절반 정도 가려져 있었다.
여인은 베옷을 입은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옥부를 다시 챙겨 넣고 박수를 쳤다. 그러자 어디선가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아가씨.”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종수의 곁에 있던 그 머슴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여인이 물었다.
“줄곧 종수 장로의 거처에서 그를 찾고 있습니다만, 도무지 행적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그 자의 행적을 놓친 것 같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쓸모없는 놈!”
여인이 호되게 꾸짖자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여인이 차갑게 말했다.
“계속 종수의 주변을 감시하다가 그 자를 찾으면 즉시 보고해라.”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대답하고 천천히 물러났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하던 여인은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가 네년을 돕든 상관없다. 고작 하루 사이에 잃어버린 물건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되찾아올 수 있을 리가 없지!”
여인이 차갑게 웃으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