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62화 (262/916)

262화. 기다림

종수는 천오상회 내의 거처에서 석목에게 선물 받은 푸른 옥팔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응접실에서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오라버니, 물건은 찾지 못해도 좋으니 제발 무사히 돌아 오세요…….”

종수는 두 손을 모아 가슴에 가져다 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이윽고 그녀는 갑자기 허리춤에서 옥쟁반을 꺼냈다.

쟁반의 윗면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작은 글씨가 한 줄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 * *

다음날 오후 미시(未时).

천오상회 한연각에는 왕서곤과 종수, 요염한 여인, 그리고 일부 상회의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수시로 종수를 바라보았지만, 종수는 별다른 반응 없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회의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상당수의 젊은 남자가 여인과 종수를 번갈아 보았는데, 당연하게도 종수에게 시선이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왕서곤은 처음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침묵하고 있었으나, 소리가 점점 더 커지자 결국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장내가 고요해졌다.

“종 장로, 오늘이 바로 약속한 기한이오. 되찾아오기로 한 물건은 어디 있는가?”

왕서곤이 물었다.

그 말을 들은 종수는 대문 방향을 한 번 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시선을 거둔 그녀가 왕서곤에게 말했다.

“부회장님, 물건은 지금 제 친구가 가지고 있습니다. 곧 이곳에 도착할 것이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나야 당연히 기다릴 수 있지만, 곧 도착할 의뢰인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네.”

왕서곤이 말했다.

“부회장님, 아직 신시까지는 한 시진이 넘게 남아 있습니다. 만약 물건이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면 두 말 없이 처벌을 받겠습니다.”

종수가 말했다.

“알겠네.”

왕서곤은 시선을 건물 밖으로 돌렸다.

바로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중 한 사람은 창욱성의 성주 영호관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회색 옷을 입은 명월교의 노인이었다.

“오셨군요. 이쪽은 명월교의 임 장로겠군요. 이곳까지 왔는데 미처 마중을 나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왕서곤이 그들을 맞이하며 말했다.

“격식 차릴 필요 없습니다.”

영호관이 웃으며 노인과 나란히 다가왔다.

“앉으시지요.”

왕서곤은 두 사람을 상석에 앉힌 뒤 자신도 그 옆에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아랫자리에 앉았다.

“바로 본론을 말하겠습니다. 오늘 일강성에서 보낸 물건을 받으러 왔습니다. 이건 이번 의뢰에 대한 잔금이니 세어보시고, 문제가 없다면 물건을 넘겨주시지요.”

영호관이 영석이 들어 있는 보따리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성주님과 같은 목적으로 열풍애 분단을 대표해서 왔습니다.”

회색 옷을 입은 노인도 보따리를 꺼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왕서곤이 종수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종수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호관과 노인에게 다가갔다.

“영호관 성주님, 임 장로님. 소녀는 두 분의 물건에 대한 호송을 담당한 종수입니다.”

종수가 말했다.

“종 장로, 화물은 어디 있는가?”

영호관이 물었다.

“성주님, 화물을 건네기 전에 우선 소녀의 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종수가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도 좋네.”

영호관이 말했다.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두 분의 물건은 익학산맥을 지나던 중 전부 강탈당했습니다.”

종수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왕서곤과 여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부터 그 일에 대한 각종 추측이 난무했으나,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왕서곤은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시선을 깔고 있었으며, 여인은 종수를 놀리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영호관의 표정은 즉시 일그러졌으나, 그와 달리 옆에 있는 노인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 말은 우리의 물건들을 전부 잃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럼 이전에 제때 물건을 건네겠다고 한 말은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 건가?”

영호관이 물었다.

그러자 종수가 말했다.

“물건은 강탈당했지만, 오랜 추적 끝에 모두 되찾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이 굳은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왕서곤의 시선에 즉시 입을 다물었다.

종수가 계속 말했다.

“다만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이 이미 의뢰 물품 중에서 중요한 것을 하나 빼돌린 뒤였습니다. 하지만 물건의 행방을 찾던 중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고, 현재 그 물건을 되찾은 제 친구가 이곳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흥! 우리더러 그 말만 믿고 바보같이 기다리라는 말이오?”

노인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임 장로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우선 조금만 기다려보죠. 약속된 신시까지 아직 시진이 남았으니 우리가 조금 더 기다리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영호관이 말했다.

“시간이 되어도 물건이 도착하지 않으면요?”

노인이 말했다.

“물건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다면 본 상회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두 분께 세 배의 보상을 하겠습니다.”

왕서곤이 말했다.

“좋습니다. 나중에 다른 말을 하기 없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내는 점점 조용해졌다. 종수는 홀로 중앙에 서서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었지만, 전혀 기죽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영호관은 차를 음미하고 있었고, 옆의 노인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여인은 불안한 눈빛으로 종수를 보고 있었다.

종수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에 하얀 구름들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점차 평온을 되찾은 종수는 문득 석목을 떠올리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안심하라고 말했으니 그는 분명 늦지 않고 제때 도착할 것이었다. 혹여나 그가 제때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종수는 아무리 큰 처벌을 받게 되어도 전부 감내할 수 있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 약속한 신시가 다가왔다.

노인은 곧 손에 들어올 세 배의 배상금을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바로 그때,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밖에서 한 남자가 들어와서 말했다.

“부회장님, 밖에 종 장로님의 부운차가 도착했습니다.”

그 순간, 놀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여인은 굳은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영호관은 기쁜 듯 눈을 빛냈고, 옆에 있는 노인은 반대로 표정이 굳어졌다.

“조용!”

왕서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소란스러운 장내가 곧바로 잠잠해졌다.

“들어오라 해라.”

왕서곤의 지시에 남자가 재빨리 대답한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왕서곤은 고개를 돌려 종수를 보았다. 석목을 믿었던 종수는 웃음을 짓고 있을 뿐, 크게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내용물이 천에 덮여 가려진 여덟 대의 부운차가 문 앞에 멈춰 섰다.

가장 뒤쪽의 부운차에는 등 뒤에 검은 도를 메고 검은 옷을 입은 청년 석목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장내의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본 뒤 부운차에서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왕서곤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다른 이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따랐다.

“오라버니.”

종수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석목의 손을 잡았다.

“오래 기다렸지?”

석목이 종수를 보며 말했다. 종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여인은 가늘게 뜬 눈으로 석목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한편 종수와 석목의 다정한 모습을 본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특히 젊은 남자들은 더 그랬다. 그 모습만 봐도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유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남자들이 질투 가득한 눈으로 석목을 바라보았지만, 석목과 종수는 주위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곧 영호관과 노인이 다가와 부운차들을 살펴본 뒤, 석목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종수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종수는 그제야 부운차로 다가가서 영호관과 노인에게 말했다.

“두 분, 물건들을 전부 되찾아왔으니 부족한 것이 있지 않은지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호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뒤 한 손을 들어 손짓을 했다.

그러자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이 그의 손짓을 보고 즉시 다가와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반면 노인은 어두운 표정이 되어 수하들을 시키지 않고 직접 부운차를 검사했다.

왕서곤과 요염한 여인, 그리고 천오상회의 사람들은 묵묵히 그 광경을 보면서도, 이따금 석목과 종수에게 한 번씩 시선을 돌렸다.

일각이 지나자 영호관의 수하들이 일곱 대의 짐차를 모두 확인했다. 그들은 잠시 서로 귓속말을 했고, 그들 중 한 청년이 영호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나무상자를 건넸다.

상자를 받아든 영호관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일곱 대 전부 확인했소. 목록과 완전히 일치하오.”

영호관이 평온한 말투로 천천히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여인이 복잡한 눈빛으로 종수를 바라보았다.

“과연 천오상회는 믿을 만하군요. 탄복했습니다.”

영호관이 웃으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왕서곤이 말했다.

“그쪽은 얼굴이 낯선데, 어떻게 부르면 되겠는가? 혹시 상회의 사람인가?”

영호관이 석목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종수의 친구 석목입니다. 저는 수련을 하는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 상회에는 속해 있지 않습니다.”

석목이 영호관을 마주보며 말했다.

영호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때 노인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는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보려고 부운차를 여러 번 꼼꼼하게 확인해봤지만, 부족한 것을 단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임 장로님, 물건은 전부 있습니까?”

종수가 물었다.

“전부 있네. 저는 바쁜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습니다.”

노인은 종수에게 대답한 뒤, 영호관과 왕서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그의 수하들은 재빨리 부운차의 물건들을 전부 저장반지에 넣은 뒤, 그의 뒤를 쫓아갔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그들이 떠나가는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직 입구를 지키던 문지기만이 그들을 배웅할 뿐이었다.

“사고를 이토록 신속하게 처리하다니, 천오상회의 능력에 다시 한 번 깜짝 놀랐습니다. 이번 창욱성의 경매는 역시 천오상회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영호관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왕서곤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상회를 신임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전력을 다해 성주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영호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그곳을 떠나갔다. 물건이 너무 많아 저장반지로 옮겨가기 힘들었기 때문에, 일곱 대의 부운차가 그와 잠시 동행했다.

성주와 그의 수하들이 떠나는 것을 본 왕서곤이 건물로 들어가며 말했다.

“종 장로, 조 장로, 나를 따라오시게. 나머지는 흩어지게.”

왕서곤이 말했다.

“오라버니, 잠깐 다녀올 테니 먼저 돌아가서 기다리세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때 요염한 여인이 다가와 종수에게 말했다.

“종 장로, 축하해요.”

“고마워요.”

종수가 대꾸했다.

“저런 수하가 있었다니 깜짝 놀랐어요. 처음 한연각에 왔을 때 곁에 있던 머슴은 저 자가 분장한 건가요?”

여인이 벌써 멀어진 석목을 보며 말했다.

“부회장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종수가 대답을 해주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자 여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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