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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63화 (263/916)

263화. 경쟁

왕서곤은 건물 안쪽에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그의 뒤에 종수와 여인이 나란히 섰다.

왕서곤은 곧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종 장로, 의뢰 물품을 되찾아와 상회의 명예를 지킨 공이 굉장히 크네.”

“과찬입니다.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제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종수가 말했다.

“그렇다고는 하나 결국 그들이 노린 것은 우리 상회였으니, 물건을 되찾는 일을 전부 자네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았던 것 같네.”

왕서곤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왕서곤이 더 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상당히 떠들썩했던 사건이니, 아마도 오래 지나지 않아 창욱성과 다른 야만족의 성에 널리 퍼질 것이고, 서하대륙 내에서 우리 천오상회의 입지는 더 커질 것이네. 이번 일에 대한 자네의 공로는 회장에게 사실대로 보고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종수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조 장로도 침사성(沉沙城)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네. 두 사람 모두 우리 상회의 귀한 인재야.”

왕서곤이 여인을 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여인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그대들을 이곳에 부른 것은 중요한 일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라네.”

왕서곤이 품속에서 푸른 옥간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내가 최근에 회장님에게 받은 전갈이라네.”

종수와 여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오상회의 회장은 평소 신출귀몰해서 사람들 앞에 직접 나타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었다.

“전갈의 내용은, 요족과의 사업 확장을 위해 젊은 세대의 장로 중 한 사람을 요족 특사로 지정하고, 대륙 중앙의 나라구역(那罗区域)으로 보내서 삼 대 요족과의 교섭을 진행하라는 것이네.”

왕서곤이 말했다.

“이번 의뢰에서 종 장로는 사고를 침착하게 처리해 상회의 손실을 막아냈으며, 조 장로는 그동안 상회에서 수많은 공로를 쌓아왔네. 두 사람은 모두 뛰어난 인재야. 다른 장로들과 상의를 거쳐 두 사람 중 한 명을 교섭에 관한 전권을 가지는 요족 특사로 지정하기로 했네.”

왕서곤의 말에 흥분한 종수의 얼굴이 상기됐다.

서하대륙에서 세력이 가장 큰 요족은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천오상회의 사업은 이미 서하대륙에 골고루 퍼져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요족과의 왕래는 굉장히 제한적이라 일부 중소 규모의 마을과 거래를 하는 정도였다. 상회는 칠십이 종의 요족들 중 가장 강대한 삼 대 요족과 사업을 진행하고 싶었으나, 지금까지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번 일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회장이 무언가 손을 써놓았든가, 아니면 삼 대 요족이 상회와 협력하고 싶어 한다든가 하는 등 최소한의 계기가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요족의 특사가 되어 능천봉에서 교섭을 성공시킨다면, 앞으로 천오상회에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종수는 천오상회에서의 높은 지위는 바라지 않았다. 다만 만약에 교섭을 성공시킨 대가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그때는 진정으로 석목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창욱성에서 십 년에 한 번 개최되는 이번 경매가 그대들이 능력을 펼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네.”

왕서곤이 말했다.

그의 말에 종수와 여인은 저도 모르게 서로를 한 번 바라본 뒤 즉시 시선을 돌렸다.

“창욱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폭이 좁고 길지. 그래서 상회는 성의 동쪽과 서쪽에 경매장을 각각 한 개씩 설치했다네. 이번 창욱성 경매에서 두 사람이 그곳을 담당하도록 하게. 두 사람 중 성과가 좋은 사람을 요족 특사로 임명하도록 하겠네.”

왕서곤이 말을 이었다.

“상회에 대한 공헌도가 높은 쪽이 먼저 원하는 곳을 고르도록 하지.”

순간 종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천오상회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상대보다 공적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계산을 해보았네만 조 장로의 공헌도가 조금 더 높으니, 먼저 선택을 하게나.”

왕서곤이 말했다.

여인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성의 서쪽에 위치한 경매장을 선택하겠습니다.”

“좋네. 그럼 성의 동쪽에 위치한 경매장은 종 장로가 관리하게.”

왕서곤이 종수를 보며 말했다.

종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성의 동쪽과 서쪽 경매장은 모두 창욱성에 위치하고 있으니 큰 차이는 없네. 모든 것은 두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지. 경매회의 성공은 홍보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게.”

왕서곤이 말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종수와 여인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모두 물러가게. 잠시 후 사람을 보내서 경매에 관한 정보, 그리고 경매에 올릴 물건들을 균등하게 나눠주겠네. 경매까지는 아직 두 달이 남았으니 잘들 준비하길 바라네.”

종수와 여인은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두 여인이 떠난 후 왕서곤은 대전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노란 비단옷을 입은, 얼굴이 네모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부회장님.”

왕서곤이 들어오는 것을 본 남자가 몸을 일으켜 인사했다.

“됐네. 우리 사이에 무슨 예의인가.”

왕서곤이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시종이 다가와서 차를 따랐다.

“운 장로, 오늘 종수의 일처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왕서곤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그녀는 생각이 아주 깊은 것 같습니다. 나이는 많지 않지만 절대 냉정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남자가 말했다.

“음, 계속하시게.”

왕서곤이 말했다.

“그동안의 행동과 태도를 돌이켜보면, 그녀는 아마도 단서를 가지고 있는데도 일부러 상대의 시선을 돌린 것 같습니다. 상대가 경계심을 늦추게 한 뒤, 남들 몰래 사람을 시켜 강탈당한 화물을 일거에 되찾았을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종수는 끝까지 의뢰물품을 강탈한 범인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지. 그러나 다른 지역들의 상황으로 보아 나도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네. 종수가 그것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소행임을 밝힐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겠지.”

왕서곤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증거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부회장님이 종수와 대화를 한번 나누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왕서곤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물었다.

“음, 그 점은 고려해보겠네. 참, 물건 회수에 큰 역할을 한 그 석목이라는 자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있나?”

그러자 중년의 남자가 품속에서 옥간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여기 그에 대한 정보가 있으니 한 번 보시지요.”

옥간을 받아 든 왕서곤이 그것을 이마에 가져다 대고 정신력을 주입했다.

“확실히 재미있는 사람이군. 무인으로서의 경지도 상당한데 부적술사라. 게다가 동주대륙에서 왔다니……. 동주대륙은 자원이 풍부하지 않지만 그만큼 오히려 천재적인 인물이 종종 나오곤 한다지.”

“어려운 환경이 사람을 더욱 단련시키는 법이죠.”

왕서곤의 말에 남자가 덧붙였다.

“이곳에 적힌 정보와 오늘 본 상황에 따르면 석목과 종수는 연인 관계인 것 같군. 실력이 매우 뛰어난 자이니 상회로 끌어들인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야.”

왕서곤이 잠시 상각하다가 말했다.

“종수와 연인 관계인 이상 종수만 제대로 잡아둔다면, 그는 우리 상회를 위해 힘쓰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남자가 말했다.

“일리가 있네.”

왕서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전을 나선 종수와 요염한 여인은 돌길을 따라 걷다가 어느 갈림길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한번 바라본 뒤 말없이 각자 다른 길로 향했다.

종수는 빠른 걸음으로 금세 거처에 도착했다. 석목은 정원에서 뒷짐을 친 채, 어깨 위의 채아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라버니, 아까는 정말 오지 않는 줄 알았어요.”

석목을 발견한 종수가 한달음에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남들 앞에서 보이던 신중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결국 무사히 돌아왔잖아.”

석목이 종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종수가 석목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두 팔로 강하게 끌어안았다.

“걱정하지 마. 네 오라버니는 하늘의 가호를 받아서 언제나 안전하니까.”

석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와, 오글거려! 난 못 보겠다.”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서 날아오르며 꽥꽥거렸다.

“시끄러워!”

석목은 채아를 혼내줄 요령으로 손가락을 튕겨 공기를 탄환처럼 날렸으나, 채아는 그것을 손쉽게 피한 뒤 유유히 달아났다.

석목은 이전보다 빨라진 채아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아무렇게나 날린 공기의 탄환이라 진기가 담겨 있지는 않았지만, 거리가 매우 가까워서 채아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종수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석목을 놓았다.

“방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석목은 이어지는 종수의 질문에 며칠간 겪은 일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명월교, 유안……. 역시 그들의 짓이었군요.”

종수가 말했다.

“그가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해. 아마도 그 일에 대량의 성석이 필요한 거겠지.”

석목이 말했다.

“오라버니, 이번 일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제 됐어요. 앞으로 그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우리도 그들을 건드리지 않기로 해요.”

종수가 말했다.

“응, 알겠어. 참, 방금 왕서곤이 무슨 말을 했어?”

석목이 물었다.

종수는 왕서곤이 언급한 경매와 요족 특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줬다. 그것은 천오상회의 기밀이었지만, 그녀는 석목에게는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나라구역, 능천봉!”

이야기를 듣던 석목이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라버니, 왜 그래요?”

석목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종수가 물었다.

“사실 내가 서하대륙에 온 건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지만, 능천봉에 가기 위해서이기도 했어…….”

석목은 잠시 생각한 뒤 자신이 줄곧 능천봉에 가고 싶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다만 하얀 원숭이의 꿈에 관한 부분은 너무도 해괴해서, 줄곧 그곳에 대한 꿈을 꿔왔다는 설명으로 대신했다.

“제가 알기로는 능천봉은 요족의 성지이며, 요족의 삼 대 부족이 지키고 있어서 외부인이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종수가 말했다.

“맞아. 그래서 힘을 모아서 충분한 실력이 갖춰지면 행동하려 했지.”

석목이 말했다.

“오라버니가 지계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해도 능천봉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해요. 하지만 만약 제가 요족 특사가 된다면 오라버니와 함께 삼 대 요족의 영지에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어요. 그곳에 가게 된다면 능천봉에 접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종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번 경매는 내가 온 힘을 다해서 도울게!”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종수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석목과 함께 있을 때면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경매까지는 두 달 남았어. 길다고 할 수도 있고 짧다고 할 수도 있는 시간이지. 우선 경매장에 가서 앞으로의 계획을 짜자.”

석목의 말에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회 소속의 주예입니다. 종 장로님을 뵙기를 원합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백의를 입은 청년이 정원에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썹을 가진 그 자는 매우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략 선천초기 정도의 경지로 보였다.

“왕 부회장님의 명령을 받아 창욱성 경매와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왔습니다.”

청년은 종수에게 인사를 한 뒤 손바닥 크기의 옥상자를 꺼내 건넸다.

옥상자 안에는 옥간과 서신 등의 물건이 들어 있었다.

대충 읽어보니 그것들에는 종수가 경영을 맡을 동쪽 경매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와 경매 과정, 성 안에 있는 각종 세력의 명단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고생했네.”

종수가 청년에게 말했다.

그러나 주예라는 청년은 대답을 하고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직 남은 일이 있나?”

종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주예에게 물었다.

“왕 부회장님은 창욱성에 익숙하지 않은 종 장로님이 경매를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에게 종 장로님을 보조하며 어떤 지시든 따르라 하셨습니다.”

주예가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안내하게. 마침 성 동쪽의 경매장에 가보려 했으니.”

종수가 말했다. 창욱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그녀로서는 도움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예.”

주예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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