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참관
상회를 나선 세 사람은 성 동쪽에 위치한 번화가에 도착했다. 거리는 네다섯 대의 마차가 나란히 운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으며, 각종 대형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영선가(迎仙街)입니다. 창욱성 동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죠.”
주예가 두 사람에게 소개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석목도 얼마 전까지 각종 물자를 구입하기 위해 성 안을 분주히 오갔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번화한 거리는 피해 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창욱성의 번화한 거리를 자세히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창욱성은 역시 서하대륙의 이름난 성다웠다. 다른 어떤 성보다도 번화한 곳이었다.
그때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거대한 삼 층 건물이 석목의 시선을 끌었다.
그 건물은 거리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굉장히 크고 높았다. 천장의 유리기와가 반짝이는 게 매우 고급스러워 보였다.
가게의 문 앞에는 ‘영선각’이라고 적힌 거대한 편액이 걸려 있었다. 금색으로 적힌 커다란 세 글자에서 광대한 기세가 느껴졌다.
주예가 그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영선각이 바로 종 장로님이 이번에 맡으실 경매장입니다.”
종수는 커다란 건물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보죠.”
종수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영선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영선각의 대문 앞에는 노란 옷을 입은 후천 경지의 문지기 두 명이 서 있었다.
세 사람이 다가오자 문지기 중 한 명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종수와 주예는 모두 편한 복장을 입고 있었으며,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영패나 옥패 등의 물건도 들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기운을 감추고 있어서 평범한 여행객처럼 보였다.
“멈춰라! 이곳은 천오상회의 초청을 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문지기가 위협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이 분은 오늘부터 영선각을 책임질 종 장로님이다.”
주예가 영패를 꺼내며 꾸짖었다.
천오상회는 위계질서가 엄격했다. 주예는 총단 소속의 관사(管事)로, 장로 바로 아래의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용서하십시오. 제가 무지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문지기가 깜짝 놀라 다급히 길을 열었다. 다른 문지기도 그 모습을 보고 즉시 옆으로 비켜났다.
코웃음을 치며 그들을 지나친 주예가 종수와 석목을 영선각 안으로 안내했다.
석목과 종수는 그의 안내에 따라 복도를 지나서 어느 방에 도착했다.
그곳은 면적이 백 장 가까이 되는 네모반듯한 경매장이었다. 중심부에서 바깥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계단식의 구조로 되어 있었으며, 사면에 의자가 각각 백 개씩 놓여 있었다. 중앙에는 원형 탁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경매장에는 백여 명의 인원이 모여 소규모 경매를 벌이고 있었다. 가격을 부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영선각에는 경매장이 총 다섯 군데 있습니다. 일 층과 이 층에 각각 두 개씩 있으며, 일반적으로 경매는 대부분 그곳에서 개최되죠. 규모가 가장 큰 삼 층의 경매장은 평소에는 외부에 개방되지 않고, 십 년에 한 번 열리는 이번 경매처럼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됩니다.”
주예가 설명했다. 종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부를 한 번 둘러보았다.
“이 층의 경매장으로 안내해주게.”
종수의 말에 주예가 두 사람을 이 층으로 안내했다. 이 층 경매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층 경매장의 면적은 일 층과 비슷했지만 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또 좌석이 비교적 적었지만 고급 목재를 사용해 넓고 쾌적했으며, 자리마다 마실 것과 과일 등이 놓인 사각형 탁자가 있었다.
석목과 종수는 이 층에도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삼 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머리가 전부 하얗게 센 영선각의 지배인이 그들과 합류했다.
종수와 석목은 삼 층의 경매장을 보자마자 눈을 빛냈다.
고풍스럽게 꾸며진 삼 층 경매장은 마치 대가문의 서재처럼 조용하고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경매장의 사면에는 내부가 한 눈에 들어오는 독립된 귀빈실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이곳의 규모와 시설은 천우성의 승선경매가 이루어졌던 경매장과 비견될 정도였다.
“성주가 맡긴 물건들은 전부 도착했나?”
종수가 지배인을 보며 물었다.
“예, 창고로 운반해놓았습니다.”
지배인이 말했다.
“그곳으로 안내하게.”
종수가 말했다.
지배인이 종수의 곁에 있는 석목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종 장로님과 주 관사는 천오상회의 사람이니 문제가 없지만, 석 선배님은 상회의 사람이 아니라서…….”
그 말을 들은 석목은 자신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종수의 곁에 있던 주예가 갑자기 말했다.
“이 분은 상회의 일을 도운 적이 있는 천오상회의 귀빈이오. 왕 부회장님께서 이곳의 모든 곳을 드나들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셨소.”
주예가 서신을 꺼내 지배인에게 건넸다.
멍한 표정으로 서신을 받아 든 지배인이 그것을 읽더니, 곧 죄송스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석목과 종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석목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로서는 왕서곤이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대우를 해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의뢰 물품을 되찾아줬다고는 하나, 이 정도의 특혜를 받을 일은 아니었다.
‘혹시 왕서곤은 나를 천오상회에 가입시키고 싶은 것인가?’
천오상회는 규칙이 극히 엄격했다. 그래서 보통 무관한 사람에게는 절대 상회의 비밀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니 그를 포섭하려는 게 아니라면 양서곤의 이런 행동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천오상회의 정보망이라면 석목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간단할 터였다. 그렇다면 그를 포섭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로 그때, 종수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입술을 살짝 움직여서 석목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라버니, 제 생각은 하지 말고 오라버니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요.”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석목도 종수의 손을 꼭 잡고 시원하게 웃으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이쪽입니다.”
지배인이 그들을 아래층으로 안내했다. 그가 석목 일행을 이끈 안쪽의 방은 평범했다. 그 방에서는 어떤 특별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 지배인이 푸른 구슬을 꺼내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구슬이 푸른빛을 뿜어냈다.
카가각!
그 순간, 바닥이 진동하더니 천천히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려 일 각 가까이 내려가다가 멈췄다.
‘이렇게 깊은 지하에 창고를 짓다니.’
석목이 깜짝 놀랐다. 그의 추측대로라면 그들은 이미 지하 백 장 가량을 내려온 것 같았다.
지하 깊숙한 곳에 창고를 짓다니, 확실히 천오상회는 철두철미했다.
이어 지배인이 팔을 휘둘러 벽에 푸른빛을 날렸다. 그러자 벽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입구가 생겨났다.
“이 안에 경매에 나올 물건들을 보관해뒀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지배인이 입구로 들어가며 말했다.
입구 너머에는 방 일고여덟 개를 합쳐놓은 정도의 넓은 석실이 있었다. 그곳에는 광석과 영석, 영초 등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뿐만 아니라 더욱 진귀한 단약, 법기, 서적 등이 수십 개의 진열대에 놓여 있었다.
안쪽 깊숙한 곳에는 커다란 상자들이 놓여 있었는데,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귀한 물건인 게 틀림없어 보였다.
유풍곡의 명월교 분단 창고는 눈앞의 이 석실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다.
바로 그때, 석목은 지계강자의 거대한 기운이 압박해오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굳어졌다.
석목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을 지키는 고수를 믿고 진입을 허락한 것이었군.’
몰른 그는 이곳의 물건들을 노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종수 역시 이곳의 재보들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금세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경매에 나올 물건들은 무엇이지요?”
그녀가 지배인을 보며 물었다.
그곳의 물건들은 수가 굉장히 많았지만, 경매에 내놓을 정도로 특별히 진귀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안쪽에 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지배인이 그렇게 말하며 더 안쪽으로 향했다. 그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상자 앞에 멈춰 섰다.
종수가 상자 중 한 개를 열어보았다. 그러자 눈부신 하얀 빛을 뿜어내는 일 척 길이의 순백색 광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태을정금철(太乙精金铁)!”
종수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석목도 눈을 빛냈다. 그것은 영기를 제작하는데 사용되는 상급 광석으로, 아주 희귀한 물건이었다.
게다가 저 정도 크기라면 아마도 영석 오륙천 개 정도는 지불해야 살 수 있었다.
종수가 뚜껑을 닫고 옆에 있는 다른 상자를 바라보자, 주예가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다가가서 상자를 열었다.
그 상자 안에는 청록색 장도가 들어 있었다. 그 장도는 모양이 기이하며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는 것으로, 상급법기 중에서도 품질이 매우 뛰어나 최상급 법기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종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엔 비교적 크기가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붉은색 옥병이 들어 있었다.
“이 병에는 연혈단(燃血丹) 총 열다섯 개가 들어 있습니다.”
석목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전에 연혈단에 대해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연혈단은 복용 후 체내의 기혈을 태워서 일시적으로 삼 할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신체에 커다란 부담을 주기 때문에, 약효가 가신 뒤 원기가 크게 상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혈단이 생사의 관문에서 목숨을 살려줄 수도 있는, 아주 진귀한 단약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하나씩 일일이 보기에는 번거로우니 물건들의 목록을 주게.”
종수가 상자를 닫으며 말했다.
그러자 지배인이 옥간을 하나 건넸다. 그것을 받은 종수가 옥간을 이마에 대고 정신력을 주입했다.
잠시 후,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대충 알겠으니 우선 이곳을 벗어나지.”
종수가 말했다.
모두는 곧바로 지상 위로 돌아왔다.
“지배인, 영선각은 자네가 평소처럼 경영하도록 하게. 경매에 관한 일은 내가 조만간 지시를 내리겠네.”
종수가 영선각을 나서며 지시했다.
“예.”
지배인이 대답했다.
반 시진 후, 종수와 석목은 거처로 돌아왔다.
“수아, 왜 그래?”
석목이 종수에게 물었다. 그녀는 돌아오는 내내 언짢아보였고, 거처에 돌아와서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한번 보세요.”
종수가 경매 물품의 목록이 적힌 옥간을 석목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옥간을 읽어본 석목이 말했다.
“물건 중 일부는 우리가 운송해온 물건들이네. 게다가 그것들 중에서도 고작 중간 수준의 물건이야. 평범한 경매에 내놓기에는 제법 괜찮은 물건들이지만, 이것들로 조 장로를 이기는 건 불가능할 거야.”
“제 생각과 같네요. 오라버니는 그동안 고생했으니 우선 이곳에서 쉬세요. 저는 잠시 나갔다올게요.”
종수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 조심해.”
석목의 말을 들은 종수가 고개를 끄덕인 뒤 거처를 나섰다.
석목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채아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새는 워낙 영리하니 별일은 없을 것이었다.
석목은 숨을 길게 내뱉고 중급 화속성 영석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정순한 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연달아 격전을 벌이고 또 먼 거리를 급하게 이동했다. 그래서 체내의 법력과 진기가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곧 영석에서 붉은 빛의 실타래가 솟아나오더니 석목의 체내로 끊임없이 흡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