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65화 (265/916)

265화. 불공평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석목이 다시 눈을 떴을 때, 하늘색이 어두워지고 해질 무렵이 되어 있었다.

석목은 빛을 잃어 어두워진 영석을 한쪽 구석으로 던졌다. 그곳에는 이미 영기를 잃은 붉은색 영석 여덟 개가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석목은 정신이 맑아지고 몸의 피로가 깨끗하게 사라진 것을 느꼈다. 단전의 진기와 법력이 전부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양이 조금 늘어 있었다.

영석에 담긴 영기를 직접적으로 흡수해 진기와 법력을 늘리는 방식은 최근 들어 시도하기 시작한 방법이었다. 이전까지는 석목 역시 전투 중 절체절명의 순간에 진기와 법력을 급하게 보충하는 용도로 영석을 사용했다.

영석은 중요한 자원인 동시에 화폐로도 사용되는 것이었다. 동주대륙에서 영석은 귀한 물건이었기에, 그것을 수련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행동에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거 석목은 몇 명의 선천무인과 지계무인을 쓰러트려 상당한 영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도 그동안 그것을 사용해 수련을 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그런 시도를 몇 번 해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영석을 모으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영석에 담긴 영기는 고도로 농축된 자연의 기였다. 그것은 인체에 흡수되면 정순하기 이를 데 없는 진기와 법력으로 전환되었고, 경맥을 타고 흘러가서 단전의 기부와 법력의 회오리에 흡수되었다. 그 속도는 자연의 기를 흡수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빨랐다.

특히 체내의 진기와 법력이 전부 고갈되었을 때 영석의 영기를 흡수하면 수련의 효과는 더 컸다.

서하대륙 무인과 술사들의 수련 속도는 동주대륙에 있는 이들보다 빨랐다. 그것은 서하대륙에 영석이 풍족한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바로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종수가 표정이 어두워진 채 들어왔다.

“수아, 무슨 일이야?”

석목이 물었다.

“밖에서 수소문을 해보고 왔어요.”

종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경매에 나오는 물건에 대해서?”

석목이 물었다.

종수가 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이번 경매를 위해 성주 측에서 상회에 넘긴 물건들 중, 좋은 것은 이미 조 장로 쪽으로 넘어간 것을 확인했어요.”

석목이 말했다.

“부회장인 왕서곤이 관여했겠군.”

“오라버니의 말이 맞아요. 이 일은 왕 부회장이 묵인한 것이 분명해요. 알아보니 조 장로와 왕 부회장은 혈연관계라고 하더군요.”

“정직하고 공정한 척 행동하더니 이런 비열한 수단을 쓸 줄이야.”

석목이 말했다.

“사실 어느 정도는 공정하다고 할 수 있어요. 저에게 나누어준 물건은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대신 수량이 비교적 많아요. 다시 말해 모든 물건의 가치를 합산해보면 차이는 거의 없어요.”

종수가 말했다.

“교활하게 머리를 쓴 거야. 그렇게 하면 꼬투리를 잡지 못하리라는 걸 아는 거지. 경매에서는 평범한 물건보다는 가치가 많이 나가는 물건의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어. 그 물건들만으로는 조 장로를 이길 수 없을 테니 다른 방법을 더 생각해보자.”

석목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경매에 나올 물건만이 문제가 아니에요. 방금 성의 서쪽 경매장에 가봤는데, 그곳의 환경은 영선각보다 훨씬 좋고 인파도 더욱 많아요.”

종수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그 늙은 여우가!”

석목은 경매장을 배정받게 된 경위를 종수에게 전해 듣고, 오전에 본 왕서곤의 위엄과 기품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때 종수의 부드러운 두 손이 그의 주먹을 감싸자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수아, 이건 네게 너무 불리해…….”

석목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는 종수가 겉으로는 연약해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강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 저도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봤어요. 아직 경매까지는 두 달의 시간이 있으니, 물건은 다른 곳에서 충분히 끌어올 수 있어요.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저는 전력을 다할 거예요.”

종수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이 경매를 성공적으로 마쳐서 반드시 석목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알겠어. 내가 전력으로 도울 테니 안심해. 내가 가진 물건들도 상회의 이름으로 함께 경매에 내놓자.”

석목은 영기 여섯 개와 옥 상자 한 개를 건넸다.

종수는 멍한 표정으로 영기들을 보더니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 영기들은 왕서곤이 건네준 것보다도 더욱 좋은 물건이었다.

“오라버니, 이 영기들을 사용하지 않으려고요? 혹시 괜히 저 때문에…….”

종수가 문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이것들은 전혀 쓸 일이 없어서 원래부터 가져다 팔 생각이었어. 마침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으니 일거양득이지.”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의 말을 들은 종수는 그제야 안심을 했다.

이어 종수는 옥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손톱만한 크기의 성석이 하나 들어 있었다.

그것은 과거 적봉에게서 빼앗은 두 개의 성석 중 하나였다. 영호관에게 한 개를 건네주고 남은 것이었다.

“오라버니, 이……이 성석은 너무 귀해요. 명월동교의 사람들이 음모를 꾸며가며 물건들을 강탈하는 것도 전부 성석을 얻기 위해서잖아요. 분명 중요하게 쓰일 곳이 있어서 그런 것일 테니 챙겨두세요. 경매에서 팔아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요.”

종수의 말에 석목이 손을 흔들며 대답했다.

“고작 성석인데 아까울 것이 뭐가 있어? 네 자유와 비교하면 새발의 피일 뿐이지. 이번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할 물건으로 삼도록 해.”

석목은 이미 이런 작은 조각보다 훨씬 커다란 성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성석까지 경매에 내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종수가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동주대륙에서든 서하대륙에서든 조그만 성석 한 조각 때문에 커다란 유혈사태가 벌어졌는데, 만약 주먹만 한 크기의 성석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로 인해 야기되는 혼란은 어마어마할 것이 분명했다.

“고마워요…….”

종수가 아름다운 두 눈을 빛내며 석목을 바라보았다.

“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이 뭐가 필요해.”

석목이 종수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종수가 앞으로 몇 걸음 다가와서 석목의 품에 안겼다.

석목은 품속의 부드러운 감촉과 코끝에 맴도는 은은한 체취를 느끼고 호흡이 살짝 거칠어졌다.

종수는 석목의 몸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를 느꼈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였지만, 그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바로 그때, 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와, 내가 없는 틈에 또 안고 있네!”

어느새 날아온 채아가 두 사람을 놀리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채아를 매섭게 째려보았다. 채아는 그 시선을 피하며 아무것도 못 본 척을 했다.

종수는 두 뺨을 붉히며 재빨리 석목에게서 떨어졌다.

“오라버니, 저는 이만 쉬러 갈게요.”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재빨리 방을 떠났다.

석목이 채아를 매섭게 노려보며 한 손을 들자 채아는 즉시 날개를 펼치더니 멀찌감치 도망갔다.

석목은 채아를 쫓지 않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 그는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자세를 취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이후 종수는 매일 바빴다. 그녀는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때 거처를 나서서 밤이 어두워진 다음에나 돌아왔다.

석목은 그녀를 도우려 했지만, 종수는 초반의 잡일은 혼자서 할 수 있다며 그를 쉬도록 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도 굳이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는 상회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너무 많이 나선다면 종수에게 불필요한 번거로움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석목은 매일 저녁과 새벽에 수련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흔치 않게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계속 빈둥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 * *

창욱성의 서쪽 옥천가(玉泉街)는 성의 서쪽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로, 동쪽에 있는 영선가와 이름을 나란히 하는 곳이었다.

옥천가에서는 거마의 왕래가 잦았으며, 주루와 상점, 다방, 대장간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거리는 수많은 사람으로 인해 항상 시끌벅적했다.

영선가와 다른 게 있다면, 멀리까지 그 명성이 퍼져 있는지 외부에서 온 행상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었다.

성의 동쪽에 있는 영선가와 성의 서쪽에 있는 옥천가 모두 창욱성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지만, 조금만 비교해봐도 위아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거리의 규모, 가게의 수, 행인, 외부에서 온 행상까지 모두 옥천가가 앞섰다.

거리를 돌아본 석목은 조 장로의 경매장인 옥천각(玉泉阁)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그곳은 처마가 높고 난간이 예쁘게 조각된 삼 층 건물이었다.

옥천각은 영선각과 마찬가지로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을 본 석목은 천오상회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굳게 닫힌 옥천각의 대문 앞에서는 노란 옷을 입은 호위들이 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낯선 이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을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금안과 채아가 있는 석목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석목과 채아는 옥천각이 한 눈에 보이는 이 층짜리 찻집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건물의 상태를 보니 옥천각은 영선각보다 더 최근에 지어진 것 같았다. 높이는 동일하게 삼 층이었지만 옥천각의 규모가 더욱 컸는데, 안쪽에 있는 경매장도 영선각보다 클 확률이 높았다.

건물은 그 자체로도 웅장했지만 한껏 꾸며놓아서 더욱 으리으리해 보였다. 삼 층의 눈에 띄는 위치에 새 현판을 걸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장내도 열심히 꾸며놓은 것으로 보아, 이번 경매를 위해 조 장로가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옥천각을 잠시 관찰하던 석목은 찻집을 떠나서 옥천가와 인접한 화용가(华容街)로 향했다.

화용가는 옥천가의 바로 옆에 붙어 있었지만, 사람의 수는 옥천가보다 확연히 적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거리를 걷던 석목은 천원재(天元斋)라는 이름의 상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석목은 그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 잃어버린 의뢰 물품을 살 때 자주 드나든 곳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그곳에 있는 물건들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석목이 상점에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 있던 젊은 남자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 남자는 이곳의 주인인 전호안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줄곧 다시 찾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호안이 웃으며 말했다.

“좋은 물건이 새로 들어온 게 있습니까?”

석목이 물었다.

“하하, 들어오자마자 알아보시는군요. 제가 귀하를 위해서 특별히 좋은 물건들을 많이 남겨두었습니다.”

전호안은 그렇게 말하며 석목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랐다. 그는 당시에 비교적 구하기 어려웠던 묵석을 전호안의 도움으로 대량으로 구입했다. 그래서 이곳에 깊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번에도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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