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정신탑(定神塔)과 응안과(凝颜果)
“이곳은 귀빈을 접대하기 위한 장소입니다. 천천히 보시지요.”
전호안이 점원을 불러서 석목에게 차를 한 잔 올렸다.
석목은 그 당시 눈에 띄지 않게 꽤나 조심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묵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상당한 양을 사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호안은 석목이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석목은 그 장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곳은 크지는 않았지만 좋은 물건이 많이 있었다. 그는 진귀한 물건은 찾지 못했지만 특별한 물건 몇 개를 찾을 수 있었다.
그중 귀곡예(鬼哭蕊)라는 목(木)속성 영초는 단약 제작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환술 진법에 사용하면 진법의 위력을 높여주는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귀곡이라는 이름은 그것이 환각을 유발하며 내는 소리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만약 천 년을 산 귀곡예가 사용된 환술 진법에 갇히게 되면 지계의 강자조차도 깊게 빠져들어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또 응안과라는 것도 있었다. 서하대륙의 극서 지역에서 나는 과일로, 이것을 먹으면 그 시기의 외모를 평생 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무인과 술사는 경지가 높아지면 수명이 대폭 증가하고, 노화하는 속도가 굉장히 느려졌다. 물론 그렇다고 영원히 늙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많은 사람이 늙는 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원히 현재의 외모를 유지시켜준다는 점에서, 응안과는 굉장히 특별한 물건인 게 틀림없었다.
석목은 다른 진열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한쪽 구석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물건이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 물건은 백옥으로 만든 작고 정교한 탑이었다. 일 층이 제일 크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작아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옥탑의 표면에는 복잡한 부문이 새겨져 가물가물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걸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안목이 정말 뛰어나시군요.”
전호안이 옥탑을 유심히 보고 있는 석목을 보며 말했다.
“이 물건은…….”
석목이 물었다.
“이것은 정신탑입니다.”
석목이 흥미를 보이자 전호안이 즉시 설명했다.
“정신탑?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아주 대단한 물건이지요! 이것은 사용자의 마음을 안정시켜 수련에 집중하게 해줍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용법은 저 역시 잘 알지 못합니다.”
석목의 질문에 전호안이 말했다.
석목은 더듬거리며 말하는 전호안이 미심쩍어 다시 한 번 자세히 물어보고, 그것이 영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계 이상의 존재만이 사용할 수 있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 외에는 다른 능력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가격이 비싸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매우 적다고 했다.
처음 그 물건을 얻었을 때 전호안은 신주단지 모시듯 아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계륵 같은 물건이라 팔리지 않았다.
그는 석목이 관심을 가지자 이 기회에 어물쩍 팔아버리려 했다. 그러나 석목이 쉽게 속아 넘어갈 리가 없었고, 전호안은 결국 집요한 질문을 버티지 못하고 사실대로 실토했다.
“이 물건에 많은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영기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 천원재를 오랜 세월 경영한 제 경험으로 봤을 때, 이 물건에는 분명 알려지지 않은 능력이 있을 겁니다…….”
전호안이 석목을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석목이 그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석목도 정신탑을 본 순간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으며, 그것을 부담없이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영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물건은 전호안에게 있어서도 어차피 계륵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석목은 개의치 않고 가격을 흥정할 수 있었다.
한 차례 흥정이 오고간 뒤 석목은 응안과 세 개와 귀곡예 하나, 정신탑까지 영석 삼만 개를 주고 구입했다.
전호안은 정신탑을 원가에 팔아서 이득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로서는 악성 재고를 처리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기뻐했다.
석목이 천원재를 나오자 채아가 날아와서 어깨에 앉았다. 채아는 석목이 옥천가의 찻집을 떠났을 때부터 이곳저곳을 날아다녔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네. 별일도 없는데 어딜 그렇게 다니는 거야?”
석목이 말했다.
“너에게 정보를 얻어다 주려고 그런 건데, 억울해!”
채아가 말했다.
“그럼 무슨 좋은 정보를 알아냈는지 말해봐.”
석목이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좋은 물건을 찾고 있던 거지? 내가 방금 좋은 곳을 발견했어.”
채아가 말했다.
“뜸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석목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본성 주위의 용도가(龙道街)에서 꽤나 좋아 보이는 가게를 발견했어. 그곳은 옥천가처럼 떠들썩한 거리는 아니지만, 신분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 사람들이 드나들더라고.”
“본성? 용도가?”
채아의 말에 석목은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그도 그곳에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에서 가장 큰 연무장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인상이 남는 가게를 본 적이 없었다.
“커다란 연무장 바로 뒤에 있어. 꼭꼭 숨겨놓아서 보통사람들은 발견하지 못할 거야.”
채아가 날개를 퍼덕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석목은 반신반의하며 용도가로 향했다.
그가 있던 곳에서 용도가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성을 지나쳐야 했다.
크게 보면 매의 날개의 모양을 하고 있는 창욱성은 거리가 규칙적이지 않고 비뚤비뚤했다. 그래서 거리를 하나 지날 때마다 방향을 몇 번씩이나 꺾어야했다.
석목은 본성의 대각선 방향에 있는 골목에서 나오자마자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본성에서 나오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그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아 보였다.
석목은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둘 중 하나는 창욱성의 성주 영호관이었으며, 용모가 준수하고 핏빛 장발을 기른 다른 한 남자는 바로 유안이었다.
그리고 영호관과 유안의 뒤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한 명 서 있었다.
그녀는 바로 과거 운익성에서 헤어진 영월동이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유안을 보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살짝 어두워보였다.
그 광경을 본 석목은 급하게 몸을 돌려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석목은 적봉에게 성석을 빼앗고 그의 한쪽 팔을 잘라버렸다. 물론 그로서는 정당한 행위였지만, 결국 명월교와 원한 관계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다행히도 유안과 영호관 성주는 대화를 나누는데 심취해서 주위의 동향에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석목이 아직 멀리 가지 못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아리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 오라버니?”
영월동이 낯익은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외친 것이었다.
석목은 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었지만,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자 결국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목 오라버니였군요!”
석목의 얼굴을 확인한 영월동이 매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영 소저.”
석목이 인사했다.
“목 오라버니,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어요. 우리는 정말 인연이 아닐까요?”
영월동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때, 영호관과 작별인사를 한 유안이 영월동이 길모퉁이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다가왔다.
“영월동 소저…….”
유안은 영월동을 부르다 말고 석목을 발견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목 오라버니, 유안 부교주를 알아요?”
영월동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은 스스럼없이 앞으로 가서 인사를 했다.
“유 형이었군요. 오랜만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하하, 동생이었구나.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인가? 정말 오래 찾아다녔네.”
유안은 즉시 기쁜 표정을 지으며 석목과 호형호제하기 시작했다.
“하하, 제가 이곳에 있지 않으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설마 아직까지 망망대해에 있어야 하는 겁니까?”
석목이 농담조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게나. 당시 사고 이후에 동생을 찾기 위해 사방을 다 뒤졌다네. 당시의 상황을 알겠지만, 나는 굉장히 많은 사람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어서 먼저 피할 수밖에 없었다네. 하지만 동생이 나를 원망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지.”
유안이 말했다.
석목이 대답하려 할 때 갑자기 영월동이 끼어들더니 말했다.
“유안 부교주도 신의를 저버리는 소인배였군요.”
유안은 영월동의 말에 가시가 돋쳐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척,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내가 기뻐하느라 소개하는 것도 잊었군. 이 분은 본교 교주의 막내딸 영월동 소저라네.”
“목 오라버니와는 이미 아는 사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오라버니, 유안 부교주와 잘 아는 사이인가보네요?”
영월동이 석목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잘 알다 뿐이겠습니까. 목 동생은 저와 함께 동주대륙에서 온 문경지교(刎頸之交)입니다.”
유안이 말했다.
석목은 그저 웃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부교주 같은 사람도 문경지교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영월동이 말했다.
“영 소저, 저는 유 형과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가 맞아요. 유 형, 당시의 상황은 저도 잘 알고 있으니 자책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모두 살아서 서하대륙에 도착한 것은 축하할 일이지요.”
석목이 말했다.
“하하, 역시 동생은 생각이 열려 있구나. 오늘 다시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같이 한잔 하러 가는 것이 어떤가?”
유안이 말했다.
석목은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지만, 유안이 적봉에 관한 일을 언급하지 않는 게 신경 쓰였다. 그은 유안이 정말로 상황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봉은 명월교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고, 성석과도 관련이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득 석목의 머릿속에서 유안과 영호관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 둘이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얼마 뒤 개최되는 경매에서 사고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석목은 유안과 마주친 김에 대화를 나누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함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주루로 향했다.
두 사람을 보며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영월동도 그들을 쫓아갔다.
석목과 유안이 주루의 삼 층 별실에 막 앉았을 때, 영월동이 들어와서 석목의 옆에 앉았다.
“소저가 주문하겠습니까?”
유안이 물었다.
“알아서 시키세요.”
영월동이 말했다.
“가리는 음식이 있나요?”
유안이 다시 물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은 다 싫어요.”
영월동이 말했다.
“아무래도 동생이 주문해야겠구나.”
유안이 석목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사양하지 않고 점소이를 불러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술과 안주가 나왔을 때, 석목과 유안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몇 년 못 본 사이에 경지가 많아 올라 깜짝 놀랐네. 보아하니 서하대륙에서의 생활이 나쁘지 않은 것 같군.”
유안이 말했다.
“하하, 오늘까지 살아 있는 것도 행운이지요.”
석목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겸손할 필요 없네. 과거 그 사고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무엇이 자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겠는가?”
유안이 말했다.
“오라버니는 이곳에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유안 부교주처럼 오자마자 높은 자리에 올라 편한 생활을 즐긴 줄 아나요?”
영월동이 끼어들었다.
“그랬나? 동생은 영월동 소저와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인가?”
유안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영 소저와는 일강성에서 만나 천오상회의 호송 의뢰를 함께 하며 알게 됐습니다.”
석목이 영월동과 알게 된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목 오라버니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 어째서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는 그런 고된 일을 한 거예요? 서하대륙에서 호송임무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영월동이 말했다.
“맞아요, 서하대륙에는 수많은 요수가 자리를 잡고 있어요. 동쪽 일대는 그나마 괜찮지만 다른 구역은 요족의 천하라고 해도 무방해요. 위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죠. 소저도 앞으로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하지 마세요. 교주님이 걱정합니다.”
유안이 말했다.
“부교주는 정말 많은 일에 간섭을 하시는군요. 나중에는 거처에서 출입을 하는 것까지 허락을 받으려 하겠습니다?”
영월동이 말했다.
“그럴 리가요. 그저 소저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뿐입니다. 소저의 자유를 간섭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유안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