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첨예한 대립
“참, 소저, 저는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운 좋게 습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만, 소저는 어떻게 거기서 살아 나온 것이죠?”
석목은 영월동이 대답하기 전에 갑자기 물었다.
“말도 마세요. 미리 몸을 지키기 위해 챙겨놓은 부적이 없었더라면 저도 죽었을 거예요…….”
영월동이 그 당시의 일에 대해 낱낱이 설명했다.
“제가 떠난 뒤에 그런 일이 일어난 줄은 몰랐군요. 하지만 영 소저는 어째서 그것이 명월교가 벌인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석목이 일부러 질문을 던지며 곁눈질로 유안의 반응을 살폈다.
유안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특히 영월동이 지계의 호시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명월교에서 자란 제가 어떻게 교내 제자들의 수법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많은 사령생물을 소환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 여자의 모습은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영월동이 말했다.
“아? 어떤 여인이었죠?”
옆에 있던 유안이 물었다.
“키는 저와 비슷했고, 붉은 옷을 입고 있었고, 나이는 많지 않아 보였는데도 월계술사였어요. 혹시 부교주가 알고 있는 사람인가요?”
영월동이 말했다.
“저는 만나본 적 없는 사람 같군요.”
유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안은 당시의 이야기를 들으며 탄식을 멈추지 않았다. 만약 사전에 미리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석목 역시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다.
물론 석목은 그것이 유안의 소행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폭로하지 않았다.
유안은 보통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계략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안이 두 개의 성석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이상, 석목 역시 먼저 폭로할 생각이 없었다.
이어 그들의 화제는 과거 바다에서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유안은 석목에게 매우 감동한 듯한 모습이었다.
“만약 당시 해상에서 동생이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 명월교는 오늘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네. 자, 한잔 하게.”
유안이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과찬입니다. 유 형이 없었다면 저 역시 서하대륙에 오지 못했을 겁니다.”
석목과 유안이 잔을 부딪친 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하하,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이 인연이라는 것이네.”
술을 많이 마신 유안의 눈빛은 이미 게슴츠레해졌다.
영월동은 서해에서의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는지 석목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석목은 해수의 습격을 당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저 동경의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살짝 어처구니가 없었다.
“참, 동생, 그때 두 괴수의 격전 속에서 어떻게 탈출한 것인가?”
유안이 갑자기 물었다.
“나뭇조각을 타고 조류에 따라 흘러가다보니 어느새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석목이 말했다.
“두 괴수의 격전이라니요? 오라버니, 저도 들려주세요!”
영월동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유 형이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저는 당시 의식을 거의 잃고 있어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석목의 말에 유안은 거절하지 않고 거침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유안은 술자리 내내 마치 석목을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인 것처럼 대했고, 두 사람은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적어도 영월동은 두 사람의 관계를 보이는 모습 그대로 믿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석목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핑계로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월동은 석목이 떠나는 것을 보기만 할 뿐 쫓아가지는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유안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주루를 벗어나 성큼성큼 걸어갔다.
주루를 나온 석목은 다른 가게를 더 둘러보지 않고 거처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유안이 갑자기, 그것도 경매 시작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창욱성에 나타나자 경계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 천우성에서 유안이 승선경매를 피로 물들였던 때와 지금의 상황은 상당히 흡사했다.
당시 석목은 자신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일 때문에 그는 통천선교에게 수배를 당했다.
이번 경매의 개최자 중 한 명이 종수이고, 그녀는 그가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하나였다. 상대의 힘이 그를 아득히 뛰어넘는다 해도 그는 결코 종수를 두고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석목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는 순간, 채아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석목의 어깨에 앉았다.
“어디 갔었어?”
석목이 물었다.
“빠르게 반응했으니 망정이지! 유안만 보면 불편해죽겠어. 그런데 유안은 어떻게 영 소저를 아는 거야?”
채아가 말했다.
“영월동은 명월교 교주의 딸이야. 유안도 명월서교의 사람이 되었으니 서로 아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하지만 부교주와 교주의 딸이 무슨 일로 함께 영호관을 찾아온 것인지…….”
생각에 잠긴 석목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석두, 어떻게 유안과 그렇게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야?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사이인 줄 알았어.”
채아가 말했다.
“아마도 영월동은 그렇게 믿고 있을 거야. 채아, 유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 즉시 알려줘.”
석목이 말했다.
“유안은 교활하고 경지도 놓은데 들키면 어떡하지? 그가 무서운 건 아니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만약 그를 쫓다가 들키면 어떡해? 강시 앵무새가 되기는 싫어!”
채아가 온몸을 떨며 말했다.
“조금 더 멀리 떨어져서 높게 날면 들키지 않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채아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석목이 밀어 넣은 수속성 영석에 입이 막혔다.
채아는 영석을 삼키고 트림을 했다. 그리고 원망에 찬 눈빛으로 석목을 흘겨본 뒤 아무 말 없이 날아갔다.
* * *
그날 저녁, 석목은 방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 채아의 시야가 공유되며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한 남자가 검은 말을 타고 창욱성의 서문을 통과했다. 그는 험한 산길 속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하늘은 어두웠고 채아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빠르게 이동하는 그의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석목은 유안이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창욱성을 떠나는 광경을 보고 멍해졌다. 그의 행동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유안이 성을 잠시 떠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성을 떠났다는 사실만으로 석목은 큰 안도감을 느꼈다.
석목은 문득 영월동을 떠올렸다.
‘그녀는 동행하지 않나?’
바로 그때, 정원의 대문이 끼익 열리더니 종수가 피곤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수아, 어서와.”
석목이 종수를 맞이하며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거처를 나선 종수는 협력할 대상을 찾기 위해 여러 상점과 세력들을 방문했다고 했다.
“일은 순조로웠어?”
석목이 물었다.
“성의 일부 큰 세력과 가게들은 오랫동안 창욱성에서 경영을 해온 조 장로를 암암리에 지지하고 있어요. 저의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그들은 경매에 맡길 물건이 있다고 해도 우리를 찾아오지는 않을 거예요.”
석목과 나란히 방에 들어온 종수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은 그도 예측한 바였다.
조 장로는 지리적인 우위를 점했을 뿐만 아니라 상회의 고위층인 왕 부회장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 시작부터 유리한 것은 당연했다.
“영호관 성주가 이번 경매에 성석은 내놓지 않았지?”
석목이 물었다.
“성석은 내놓지 않았어요. 현재 상황에서는 오라버니가 맡긴 성석이 우리의 가장 큰 희망이에요. 하지만 조 장로 역시 분명 무언가 엄청난 물건을 준비해놓았을 거예요.”
종수가 말했다.
“괜찮아. 내게 방법이 또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석목이 말했다.
“방법이라니요?”
종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석목의 말에 의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녀는 석목이 성석을 맡긴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성석은 과거 천우성의 경매에서도 가장 주목을 받은 물건이었다.
“수아, 가서 가죽 부적지를 좀 사다줘. 고급일수록 좋아.”
석목이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은데 그걸로 뭘 하게요? 설마…….”
종수가 물었다.
“맞아, 부적을 제작할 거야. 알지 모르겠지만, 난 상당히 뛰어난 부적 제작 실력을 가지고 있어.”
석목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수가 무언가 묻기도 전에, 석목이 작은 옥상자를 하나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며 말했다.
“너에게 주는 선물이야.”
종수가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았다. 상자 안에는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푸른 과일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종수가 물었다.
“이건 응안과야. 먹으면 평생 외모가 변하지 않아.”
석목이 말했다.
“정말이에요?”
종수가 크게 기뻐했다.
그녀가 수련하는 벽음만파공은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수련하는 비교적 특수한 기술이었다. 그녀는 상회에 가입한 후 그곳의 자원을 이용해 순식간에 월계술사의 경지에 올랐고, 수명이 연장되는 동시에 외모의 노화도 매우 느려졌다. 하지만 아무리 느리더라도 결국 늙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노화를 영원히 막을 수 있다는 유혹을 견딜 수 있는 여인은 아마 없을 것이었다.
“당연히 정말이지.”
석목이 말했다.
종수가 눈을 빛내며 응안과를 집어 들더니 다짜고짜 입에 넣고 삼켰다.
“그렇게 급할 필요는…….”
석목이 깜짝 놀라 말했다.
“이제 늙지 않는 거죠?”
종수는 응안과가 목에 걸렸는지 딸꾹질을 한 번 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석목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참, 그리고 이건 오늘 얻은 거야. 경매에서 팔도록 해.”
석목이 귀곡예를 꺼내며 말했다.
“귀곡예!”
놀란 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석목은 잠시 생각한 끝에 정신탑은 꺼내지 않았다.
* * *
순식간에 한 달이 지났다. 창욱성에서 십 년에 한 번 열리는 경매가 이제 눈앞까지 다가왔다.
창욱성에는 사람이 평소보다 몇 배로 늘어났으며, 주위 야만족 세력의 대표들도 차례로 도착했다.
대다수의 사람은 이미 이번 경매를 천오상회가 맡았으며, 동쪽과 서쪽의 두 경매장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부 눈치 빠른 사람들은 영선각과 옥천각이 이전과는 다르게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영선각과 옥천각은 월초부터 소규모의 경매를 개최했는데, 시간의 안배나 선전의 강도와 방식 등 모든 방면에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있으면 발전도 있는 법이었다. 월말의 본 경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한편 창욱성의 서쪽에 있는 옥천각에서는 한 여인이 창밖 가득한 인파를 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조 장로였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경매의 실적이 엄청나요. 이번 실적은 최후에 집계하는 성적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덕분에 대량의 경매 물품을 위탁받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에 금비녀를 꽂은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이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조 장로가 더욱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종수보다 좋은 물건들을 받아온 그녀는 그중 일부를 소규모 경매에 내놓았다.
“영선각의 상황은 어떻지?”
조 장로가 물었다.
“현재 성의 잠재적 손님 중 오 할 이상이 우리 옥천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영선각은 고작 이 할조차 되지 않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좋아, 계속 영선각을 압박해라. 그들이 내놓는 물건은 전부 두 배로 내놓고, 가격은 전부 일 할 낮추도록.”
조 장로가 말했다.
“예.”
여인이 대답했다.
옥천각의 지배인인 그녀는 이 기회를 틈타 상회에서 지위가 높은 조 장로와 깊은 관계를 맺고자 했다.
바로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조 장로님, 신응부족의 고산 장로와 창우(苍羽)부족의 찬 족장, 흑영회(黑灵会) 종 회장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바로 갈 테니 잠시 기다리라 일러라.”
조 장로는 여인과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용모를 다듬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