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68화 (268/916)

268화. 반격 개시

잠시 후 조 장로가 응접실에 도착했다.

응접실에는 이미 여러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진 청년과 눈썹이 긴 검은 옷의 노인, 접선을 든 기품 있는 중년 남자였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조 장로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정말 죄송합니다. 최근 일이 너무 바빠 세 분을 기다리게 했군요.”

응접실에 들어선 조 장로가 말했다.

“하하, 조 장로가 최근 바쁜 것은 모두가 알고 있네. 우리같이 한가한 사람들이야 좀 기다린다 한들 괜찮네.”

중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종 회장님, 겸손이 과하십니다. 흑영회의 사업이 최근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건 창욱성의 사람이라면 모르는 자가 없을 겁니다.”

조 장로가 웃으며 말했다.

창욱성에서 광석 장사를 하는 흑영회는 여러 중간 규모의 야만족 부족이 연합하여 설립한 상회였다. 비록 천오상회와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창욱성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상회였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청년은 신응부족의 장로로, 영호관과 비견되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은 창욱성 주위의 강력한 부족인 창욱부족의 족장이었다.

“한창 바쁜 시기인 것을 알고 있으니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즉시 본론을 말하겠네. 요청에 따라 경매에 내놓을 물건들을 가지고 왔으니 여기 목록을 한번 보게.”

청년이 그렇게 말하며 옥간을 꺼냈다.

노인과 중년의 남자 역시 각자 옥간을 하나씩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조 장로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믿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높은 가격에 판매할 테니 안심하세요.”

여인이 말했다.

“당연히 조 장로를 믿네. 그렇지 않았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지.”

중년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반 시진 후, 세 사람은 옥천각을 떠났다.

조 장로가 세 개의 옥간을 든 채 흥분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녀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박수를 쳤고, 곧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내일 경매를 하나 더 열어라. 경매가 끝난 뒤에는 중요한 사안을 선포할 것이다.”

조 장로가 말했다.

남자가 대답을 한 뒤 밖으로 나가자, 조 장로는 창가에 다가가서 성의 동쪽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 * *

성의 동쪽에 있는 영선각.

이곳에도 매우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었지만, 옥천각과의 차이는 현저했다.

영선각 삼 층에서는 지배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는 종수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신응부족의 고산 장로와 창우부족의 찬 족장. 흑영회의 종 회장……. 확실한 것인가?”

종수가 말했다.

“예, 사람을 보내 확인한 사항입니다. 그 셋은 한 시진 전에 옥천각에 들어가 반 시진 전에 떠났습니다. 경매에 내놓을 물건을 위탁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지배인이 말했다.

“알겠네. 내려가 보게.”

종수가 말했다.

지배인은 대답을 한 뒤 안방을 살짝 엿보았다. 그곳에는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석목이 있었다.

지배인이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방 밖으로 나가자, 종수가 방문을 닫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석목이 법붓을 든 손을 멈추자 파란 부적이 반짝였다.

그것은 중급 수속성 부적인 한상부(寒霜符)였다.

석목은 부적을 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풀었다.

탁자 위에는 이미 수십 장의 부적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중급의 부적이었다.

“수아, 걱정하지 마. 옥천각의 경매 물품이 우리보다 더 많고 품질도 좋으니 인기가 많은 것은 당연한 거야.”

안방에서 나온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거대한 세 개의 연맹이 가세해서 옥천각의 기세가 더욱 웅장해졌군요. 보름만 지나면 본경매가 시작될 텐데 걱정이 되어요…….”

종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수아, 조 장로가 우리보다 더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그 부분은 어쩔 수가 없어. 하지만 우리 쪽도 이제 준비가 거의 끝났잖아.”

석목이 말했다. 그의 당당한 모습을 본 종수는 조금 안심하는 듯했다.

“이제는 우리가 반격할 차례야.”

* * *

영선각 일 층, 경매장으로 향하는 통로 양쪽.

소형 점포로 개조된 그곳의 방안에는 각종 진귀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때 피부가 검은 토템용사가 점포 안 진열대에 붉은색 부적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상당히 강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는 그 부적은 중급 화속성 부적인 화모부였다.

피부가 검은 야만족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부적은 서하대륙에서 굉장히 희소한 물건이어서 커다란 상점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설령 있다고 해도 가격이 매우 비쌌다.

야만족은 재빨리 표시된 가격을 보고, 그 부적이 전혀 비싸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부적 주세요!”

검은 피부의 야만족이 점포를 지키는 청년에게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청년은 웃으며 부적을 꺼내 검은 피부의 야만족에게 건넸다.

야만족은 흥분한 표정으로 호쾌하게 영석을 지불했다.

그는 수중에 가진 영석이 많지 않아서 오후에 열리는 소규모 경매에서 좋은 물건을 낙찰 받지 못할까 걱정을 하던 참이었다. 야만족은 중급 부적을 구했으니 헛된 발걸음을 한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선천 토템용사에게는 고작 중급 부적 한 장은 별것 아닐지 몰라도, 그 같은 후천 토템용사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특히 요수를 사냥할 때나 부족 내에서 비무를 할 때 상당히 유용했다.

“흑만 형, 왜 그리 흥분했습니까? 무슨 좋은 물건이라도 샀습니까?”

그와 같은 복장을 한 야만족 남자들 몇 명이 다가왔다.

“별 것 아니야. 나쁘지 않은 물건을 골랐어.”

검은 피부의 야만족은 눈동자를 돌리며 부적을 산 것을 숨겼다. 비장의 무기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청년이 어디선가 중급 화속성 부적을 하나 꺼내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중급 부적!”

그들 중 가장 먼저 부적을 발견한 후천후기의 토템용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순간 야만족들의 시선이 거의 동시에 부적의 가격으로 향했고, 그들은 곧 우르르 몰려가서 부적을 사려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들의 소란은 순식간에 주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여기도 중급 부적을 판매한다! 풍속성의 구풍부(飓风符)야!”

다른 점포에서도 누군가 부적을 발견하고 외쳤다.

“여기도 있어!”

또 누군가가 다른 점포에서 부적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부적이 한 장 팔릴 때마다 점포에서는 즉시 새로운 부적을 꺼내 진열대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다섯 장이 팔리자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부적을 내놓지 않았다.

“최근 영선각의 한 고명한 부적술사에게 많은 부적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수량이 제한적이라 매일 점포 한 군데에서 다섯 개씩만 판매할 것입니다.”

부적 다섯 장을 전부 팔아치운 어느 점포에서 청년이 소리쳤다.

그의 말에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 부적을 사지 못한 이들은 내일 다시 오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했다.

청년이 다시 말했다.

“중급 부적은 그가 손 가는대로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월말의 본 경매에는 그가 직접 제작한 상급 부적이 나올 겁니다.”

“상급 부적은 수가 얼마나 있죠?”

누군가 물었다.

“그건 일단은 비밀입니다. 하지만 그 부적술사께서는 이번 경매를 위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말하셨습니다.”

청년의 말에 주위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지계의 존재까지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지닌 상급 부적은 서하대륙에는 극도로 희소했다. 선천 등급에게 상급 부적은 목숨을 부지시켜줄 수 있는 진귀한 것이었다.

중급 부적을 볼 때는 별 감흥이 없었던 선천과 성계의 존재들은 청년의 말에 격앙된 표정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개최되는 소규모의 경매에도 비정기적으로 소량의 상급 부적이 나올 예정입니다.”

청년이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 말에 설렘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 몇몇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청년은 그 광경을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영선각에서 중급 부적을 판매한다는 사실, 그리고 경매에 상급 부적이 나올 것이라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소식을 접한 수많은 세력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영선각은 시기적절하게 성내의 많은 세력에게 월말에 열릴 경매의 초청장을 보냈다. 초청장을 받은 대부분의 세력은 경매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 * *

옥천각에서는 조 장로가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저희가 얻은 정보에 따르면, 이미 스무 개가 넘는 중소규모의 야만족과 상회의 세력이 영선각 경매에 참여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녀의 옆에서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이 옆에서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조 장로를 바라보았다.

조 장로는 손바닥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세게 밀며 몸을 일으켰다.

“상급 부적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줄이야. 내가 종수를 너무 얕봤구나.”

조 장로가 분개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상급 부적을 가지고 있지 않나?”

조 장로가 여인을 보며 물었다.

“있기는 하나 십여 장 밖에 없으며, 그것들은 이미 본 경매에 내놓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겨우 십여 장이라……. 너무 적어.”

조 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젊은 나이에 상회의 장로직을 맡을 수 있었던 건 매우 영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부적을 사용해 영선각에 대항한다면 망신만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금세 파악했다.

“종수 그 계집이 어디에서 부적술사를 모셔왔는지 알아냈느냐?”

조 장로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사람을 보내 조사하는 중이지만 아직 소득이 없습니다.”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이 말했다.

조 장로가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계속 조사해. 무언가 알아내면 즉시 보고하도록.”

조 장로가 말했다.

“예.”

여인이 대답한 뒤 옆에 있는 남자와 함께 물러갔다.

“흥! 상급 부적 정도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생각을 하다니 어리석구나.”

조 장로가 차갑게 웃으며 말한 뒤 몸을 홱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 * *

영선각의 일 층에 있는 경매장.

원래 두 개였던 경매장은 중간에 있는 벽을 허물어서 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변해 있었다.

물론 삼 층 경매장과 비교하면 규모나 장식 모두 조금씩 부족했지만, 대형 경매 전의 몸풀기로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현재 이 경매장은 만석이었으며, 심지어 자리가 없어서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내는 흥분과 기대에 가득한 사람들로 인해 시끌벅적했다.

주위의 시끄러운 환경과 대조적으로 진중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적사(赤蛇)부족, 염호(炎虎)부족, 백보헌(百宝轩), 창궁회(苍穹会)…….”

종수는 아래 모인 사람들을 보며 읊조렸다.

석목과 종수는 현재 경매장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위쪽 방에 있었다.

“신응부족이나 흑영회와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이 주위에서는 꽤나 이름난 중간 규모의 세력이에요.”

종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세력들을 전부 끌어들인다면 상당한 도움이 되겠군.”

석목이 말했다.

“저들은 아마 모두 상급 부적을 얻기 위해 온 것일 거예요. 오라버니, 앞으로 필요한 양도 많은데 오늘 부적들을 경매에 내놓아도 괜찮을까요…….”

종수가 걱정되는 눈빛으로 석목을 보며 말했다.

“부적의 제작 과정 역시 술법을 수련하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게다가 한 달 동안 이미 많이 제작해두었잖아. 저들의 관심을 끄는 정도로만 내놓다가 나머지는 월말의 본 경매에 꺼내놓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종수가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