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몸 풀기
경매장 중앙의 탁자 옆에 보라색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큰 키와 덩치를 가졌으며, 특별한 무공을 수련했는지 양쪽 손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영선각의 경매에 참여한 귀빈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저는 고력입니다. 오늘은 낯선 얼굴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경매 시작 전에 먼저 몇 마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영선각은 월말의 본 경매 개최 전 맛보기로 총 다섯 번의 소규모 경매를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이 그중 세 번째입니다. 본 경매에는 밖에서 구경조차 어려운 희소한 물건들이 나올 것이니 기대해주세요.”
중년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며 소란스럽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그럼 이제 군소리는 그만하고 바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남자가 손을 흔들자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상자를 하나 들고 왔다.
상자에는 굉장히 강력한 금(金)속성 기운을 뿜어내는, 일 척 크기의 반짝이는 금속이 놓여 있었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이 태을정금철은 순도가 매우 높아서, 영기의 제작 과정에 사용할 경우 그 영기의 위력을 대폭 높여줍니다. 시작가는 영석 오천 개입니다.”
굉장히 희소한 편은 아니지만 영기의 등급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는 그 물건은, 선천후기의 야만족이 영석 구천오백 개에 낙찰했다.
시작부터 상당히 높은 가격에 낙찰되자 중년 남자의 얼굴에 기쁜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그가 다시 손을 흔들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이 이번에는 사람의 절반만한 크기의 하얀 알을 들고 왔다.
“이것은 선천등급 요수 금안금조(赤眼金雕)의 알입니다. 부화 후 조금만 길들이면 적안금조를 마음껏 부릴 수 있습니다. 미리 알려드리자면 월말의 본 경매에는 적안금조의 요단도 나올 예정입니다.”
중년 남자가 말했다.
선천등급 요수의 알이 나오자 장내가 조금 술렁였다.
비행요수를 길들인다면 전력 측면으로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비행법기를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편리하게 타고 다닐 수 있었다. 이번 입찰에서는 방금 전에는 나서지 않았던 많은 세력이 참여했다.
하지만 큰 세력들은 적안금조의 알이 눈에 차지 않는 듯,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상급 부적을 구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 이들이었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중년 남자는 줄곧 큰 세력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두 개의 경매품이 더 판매된 뒤, 남자는 그들의 짜증 섞인 표정을 보고 등 뒤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하얀 옥상자를 들고 걸어왔다.
옥상자에는 강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는 붉은색, 보라색, 파란색 부적이 각각 한 장씩 들어 있었다.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영선각에서 모신 부적술사께서 직접 제작한 고급 부적입니다.”
중년 남자의 말에 경매장 내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상자 안으로 집중되었다. 줄곧 태산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던 세력들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서 눈을 흥분으로 빛냈다.
“연환염폭부(连环炎爆符)와 뇌운풍폭부(雷云风暴符), 상천수인부(霜天水刃符)입니다. 모두 상급 부적 중에서도 상등품이지요. 이 안에 담긴 술법의 위력은 지계 토템용사의 일격에 상응합니다. 그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모두 아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년 남자가 상자에서 세 장의 부적을 꺼내 모두에게 보이며 말했다.
“정말 상급 부적이야!”
“법력의 파동이 아주 강하군.”
곧 사람들의 감탄소리로 장내가 가득 찼다.
“세 장의 상급 부적은 한꺼번에 판매합니다. 시작가는 오천 개의 영석입니다.”
중년 남자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천이백!”
“오천삼백!”
“오천오백!”
입찰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부분 선천등급의 고수였다.
그 순간,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푸른 옷을 입은 청년이 한 번에 영석 오백 개를 높여서 가격을 불렀다.
“육천!”
청년의 주위에는 수행원들이 그를 에워싸듯 서 있었다.
“저 자는 남옥이에요. 중간 규모의 상회 백보헌의 소주이죠. 배후에는 평만부족인 남산(蓝山)부족이 있어요.”
종수가 청년을 보고 석목에게 설명했다.
석목은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육천오백!”
이번에는 붉은 갑옷을 입은 사내가 외쳤다. 그 자도 붉은 옷을 입은 수행원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청년이 싸늘한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자, 그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보았다.
“저 자는 염호부족의 지계장로예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은 아래의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육천팔백!”
청년이 물러서지 않고 외쳤다.
그때, 또 다른 세력이 입찰에 참여했다.
“팔천!”
그 모습을 본 석목은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부적의 가격이 그의 상상 이상으로 높게 오르고 있었다.
비록 일부 영기나 진귀한 재료와 비교하면 가격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부적은 소모품인 만큼 수량만 충분하다면 상회에서는 큰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다.
석목은 유풍곡의 명월교 분단에서 얻은 영석 대부분을 의뢰 물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했고, 수련에 필요한 물건들도 샀다. 지금 그의 수중에 있는 영석은 삼만 개가 조금 넘는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상급 부적을 판매하면 원가와 수수료를 제외하고도 한 몫 단단히 벌 수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성석의 수입까지 더한다면, 자신의 경지를 한 단계 올리기에 충분한 양의 영석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바로 그때, 문지기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종수에게 인사를 한 뒤 석목에게 말했다.
“석 선배님,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 * *
세 장의 상급 부적은 치열한 경쟁 끝에 영석 팔천오백 개에 염호부족의 장로에게 돌아갔다.
세 장의 상급 부적은 경매의 열기를 더욱 달구었고, 이어서 나오는 물건들도 상당히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반 시진 후, 경매가 막을 내렸다.
백보헌의 소주와 염호부족의 장로, 그리고 금색 옷을 입은 세 남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영선각의 응접실에 도착했다.
아직까지 경매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약간의 적의를 보이고 있었다.
“염 장로, 이미 상급 부적을 세 장이나 구매했으면서 이곳에는 왜 온 것입니까?”
백보헌의 소주 남옥이 붉은 갑옷을 입은 사내를 흘겨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곳은 영선각이지 백보헌이 아닙니다. 이곳에 오는데 남 소주의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붉은 갑옷을 입은 사내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남옥이 코웃음을 친 뒤 자리에 앉았다.
“이쪽은 창궁상회의 부회장 언결이겠군요. 저는 염호부족의 염전입니다.”
염전이 금색 옷을 입은 사람들 중 피부가 하얀 남자에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언결이 차가운 표정으로 짧게 대답했다.
바로 그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종수가 들어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일이 바빠서 오래 기다리시게 했군요.”
종수가 방안을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실례인 줄 알고서도 다짜고짜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염전은 거친 외모와는 다르게 말솜씨는 상당히 원만한 편이었다.
방금까지 오만하게 굴던 남옥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한 차례 인사치레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종수가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남옥과 염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이 이곳에 온 목적은 하나였다.
“종 장로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상급 부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선각에 상급 부적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언결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남옥과 염전이 동시에 종수를 쳐다보았다.
“구체적인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은 밝힐 수 없습니다. 상급 부적에 흥미가 있다면 월말의 영선각 경매에 참가해주시길 바랍니다.”
종수가 말했다.
“듣기로는 종 장로님이 뛰어난 부적술사를 모셨다고 하던데, 앞으로 저희와 거래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남옥은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질문이 너무 당돌했던 것이다.
“남 소주는 소식에 굉장히 밝으시군요. 맞습니다. 그는 현재 영선각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일은 월말의 경매가 끝난 뒤에 다시 논의하지요. 만약 세 분의 성의만 충분하다면 여러분과의 거래를 고려해보겠습니다.”
종수의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상급 부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였지만, 사실 그건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주된 목적은 그 부적술사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타진해보는 것이었다.
서하대륙에서 상급 부적을 제작할 수 있는 부적술사는 매우 희소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안정적으로 상급 부적을 공급받을 수만 있다면 세력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종 장로님, 정말입니까? 그 말씀이 사실이라면 이후에 월말의 경매를 포함한 영선각의 모든 경매에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옥이 흥분해서 말했다.
“하하, 사실 우리 염호부족에서도 이번 경매를 통해 팔고자 하는 물건들이 있었는데, 영선각에 맡기면 되겠군요.”
염전이 웃으며 말했다.
“백보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선각에 물건을 맡기겠습니다.”
남옥이 다급히 말했다.
“창궁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결이 덧붙였다.
종수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들과 경매품 위탁과 관련된 계약을 하나씩 체결했다.
세 사람은 조금 더 대화를 나눈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수는 그들을 영선각의 대문까지 배웅한 뒤, 바로 삼 층의 방으로 향했다.
“오라버니의 예상대로 그들이 영선각과 경매품 위탁 계약을 체결했어요.”
종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됐네. 이걸로 조금은 따라잡았지만, 아직까지는 옥천각과의 격차가 크니 더 많은 세력을 끌어들여야 해. 참, 옥천각이 이 일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테니 사람을 보내 그들을 감시하는 게 좋을 거야.”
석목의 말에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옥천각에서는 녹색 옷을 입은 여인이 어두운 표정의 조 장로 앞에 서 있었다.
“염호부족, 백보헌, 창궁회가 모두 영선각에 경매품을 위탁했다고?”
“맞습니다. 사람을 보내 확인했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조 장로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그녀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고작 부적 몇 장을 이용해 상당한 규모의 세력을 세 개나 끌어들이다니, 우리가 그녀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하지만 영선각의 상황은 여전히 우리보다 한참 좋지 않습니다.”
여인이 말했다.
“경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비장의 패를 숨겨놓았듯 그들 역시 숨겨놓은 패가 있을 것이다. 참, 그 부적술사에 대해서는 알아냈나?”
조 장로가 물었다.
“영선각 측에서 워낙 꽁꽁 숨겨놔서 직접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에 상회에서 종수의 정보를 열람하던 중, 그녀의 곁에 있는 석목이라는 자가 부적술사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제 생각에는 어쩌면…….”
여인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 정말 그 자가 맞는지 잘 감시해.”
조 장로가 지시했다.
“예.”
여인이 대답했다.
조 장로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손바닥만 한 하얀 옥패를 꺼냈다. 옥패에는 물품의 목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몇 개의 물품을 선택했다.
“이 물건들을 꺼내서 앞으로 열릴 두 번의 경매에 내놓도록.”
조 장로가 여인에게 옥패를 건네며 말했다.
“조 장로님, 이 물건들은 본 경매에 내놓으려던 것이 아닙니까?”
옥패를 받은 여인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월말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미끼를 뿌려야겠다.”
조 장로가 말했다.
“장로님, 외람되오나 다른 물건들은 몰라도 이 현명화는 우리가 엄청난 돈을 들여 얻은 것입니다. 지금 내놓는 것은 아무래도…….”
여인이 말했다.
“나에게 다 생각이 있다. 진정으로 좋은 물건을 내놓아야만 커다란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법이다.”
조 장로 역시 살짝 아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평정심을 회복하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