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현명화
경매에 상급 부적이 나왔다는 소식이 창욱성 내에 빠르게 퍼지자, 영선각은 수많은 사람과 세력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항간에는 새로운 소문이 돌았다. 옥천각에서 다음날 개최하는 소규모 경매에 엄청난 물건이 나올 것이며, 그중에는 법력을 늘려주는 진귀한 보물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 창욱성 인근에 있는 열풍애 명월교 분단의 한 대전에서 두 사람이 마주앉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적봉이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붉은 옷을 입은 견 씨 성의 여인이었다.
적봉의 잘린 팔은 새로 자라 있었지만, 원기를 아직 회복하지 못한 듯 얼굴이 창백했다.
“견 사매, 임무는 어떻게 하고 이곳에 돌아왔어?”
적봉이 물었다.
“유안 사형이 그 일은 직접 처리할 테니 창욱성에 돌아가서 경매에 참여하라고 했어요.”
여인이 말했다.
“경매? 혹시 경매품 중 유안 사제의 마음에 드는 물건이라도 있는 거야?”
그녀의 말에 적봉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경매는 천오상회의 두 장로가 공동으로 개최해 서로 경쟁을 한다고 해요. 그중 한 사람이 바로 종수에요. 그녀와 석목이 깊은 관계라는 것은 사형도 알고 있겠죠.”
견 씨 성의 여인이 말했다. 그녀는 천오상회의 사정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맞아. 석목이 천오상회와 줄이 닿아 있을 줄이야.”
적봉이 말했다.
“제가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이번 경쟁에서 종수는 열세에 놓여 있어요. 분명 석목이 나서서 그녀를 도울 거예요.”
견 씨 성의 여인이 말했다.
“그 말은…….”
적봉이 말했다.
“경매의 승패는 결국 누가 좋은 물건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갈려요. 석목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놓는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진귀한 것을 하나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하죠.”
여인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성석!”
적봉은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의 얼굴에 수치와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말한 성석은 석목이 그에게서 빼앗아간 것이었다.
“적 사형, 석목은 선천무인에 불과하지만 유안 사형은 그를 엄청나게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 그러니 이번에 사형이 당한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예요. 유안 사형은 그 일에 관한 것은 우선 잠시 제쳐놓으라고 했어요.”
여인이 적봉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그녀의 위로를 받은 적봉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유안 사형이 저에게 소식 하나를 몰래 보내왔어요. 이번 경매에 성석보다 더욱 중요한 물건이 나온다고 해요.”
여인이 말했다.
“그게 어떤 물건이지?”
적봉이 궁금해 하며 물었다.
여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술을 살짝 움직여 전음을 날렸다.
“그것을 경매에 내놓는다고?”
전음으로 내용을 들은 적봉이 놀라서 말했다.
“저도 믿기지 않아요. 하지만 유안 사형이 그렇게 말했으니 분명 거짓이 아닐 거예요.”
여인이 말했다.
바로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명월교의 제자 한 명이 들어왔다.
“적 단주님, 천오상회의 옥천각에서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그가 초청장을 적봉에게 건넸다.
적봉은 손을 흔들어 그를 다시 내보낸 뒤 초청장을 읽었다. 그가 갑자기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그것을 여인에게 건넸다.
초청장에는 초청 문구와 함께 경매에 나올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영선각에서 상급 부적을 내놓자 옥천각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나보군.”
적봉이 말했다.
* * *
다음날 정오, 옥천각 일 층에서는 예정대로 경매가 열렸다.
경매장에는 여러 세력들이 운집해 있었다. 석목도 평범한 야만족의 복장을 하고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쪽 구석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옥천각의 일 층은 영선각보다 훨씬 컸으며, 거의 모든 자리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영선각이 상급 부적으로 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옥천각이 새로운 무기를 꺼내들자 즉시 관심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어!”
석목은 좌측의 멀지 않은 곳에 회색 옷을 입은 여자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삿갓을 쓰고 검은 면사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뛰어난 시력을 가진 석목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바로 견 씨 성을 가진 명월동교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그때 여인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뿐, 어떤 의심스러운 것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여인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석목이 사람들 뒤에서 슬그머니 걸어 나왔다. 그는 더는 여인을 바라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이윽고 경매가 시작됐다.
옥천각에서는 진귀한 물건을 연달아 내놓았고, 모두 상당히 높은 가격에 낙찰됐다.
경매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이어서 나오는 물건은 이번 경매의 마지막 물건입니다.”
경매를 진행하는 여인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앞에 있는 탁자에 녹색 상자가 하나 나타났다.
비록 객석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감각이 예민한 이들은 상자에서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상자가 열리며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가장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냉기에 몸을 움츠렸다.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녹색 꽃으로, 꽃잎에 녹색 빛이 감돌고 있었다.
석목이 두 눈을 반짝이며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그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예상했던 대로였다. 옥천각에서 내놓은 현명화는 바로 연나가 사령계에서 가져다주던 신비로운 녹색 꽃이었다.
“이 현명화는 사령계에서 가져온 꽃입니다. 명월교의 제자라면 아마 모두 들어봤을 겁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니 제가 간단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인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 현명화는 외관만 꽃과 비슷할 뿐, 사실 꽃이 아닙니다. 사령계에서 지계 이상의 사령생물이 죽고 남은 정순한 음의 기운에 다른 여러 요소들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매우 희귀하고 채취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것은 술사의 법력을 크게 증가시켜줄 뿐 아니라, 월계 이하의 술사가 사용하면 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것은 원래 며칠 후에 열리는 마지막 경매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지만 특별히 미리 내놓았습니다. 우리 옥천각이 본 경매를 충실하게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밝히는 한편, 본 경매에는 더 좋은 경매물품들이 나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경매장은 순간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
“소개는 여기까지하고 입찰을 시작하겠습니다. 삼만 영석부터 시작합니다.”
여인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삼만오천!”
“사만!”
“오만!”
흥분한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외치면서 가격이 순식간에 치솟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전까지는 현명화가 무엇인지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천오상회의 말이니 그 효능이 거짓일 리는 없었다.
현명화를 적합한 사람에게 준다면 세력 내에 월계술사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니, 장내의 사람들은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층에 있는 조 장로는 아래의 떠들썩한 광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경매에 사용하려 했던 많은 진귀한 물품을 미리 내놓게 됐지만, 기존의 관심만 되찾을 수 있다면 투자할 가치는 충분했다.
현재 월말의 경매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고객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석목은 더 이상 경매를 구경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경매장 안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육만!”
그때였다.
“칠만!”
누군가가 한 번에 영석을 만 개나 높여 가격을 불렀다.
석목은 경매장을 나서다 말고 눈썹을 치켜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가격을 부른 사람은 바로 견 씨 성의 여인이었다.
“구만!”
이어서 누군가가 다시 이만 개를 높였다. 이번에 가격을 부른 사람은 영월동의 옆에 있는 회색 옷차림의 노인이었다.
석목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몸을 돌려 경매장을 빠져나갔다.
이곳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영선각에는 좋은 일이었다.
* * *
종수는 영선각에서 각종 문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살짝 어두웠다. 이날도 영선각에서 소규모 경매를 열었지만, 같은 날 옥천각에 현명화가 나타온다는 소문에 실적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석목이 들어왔다.
“오라버니, 옥천각의 현명화에 대한 이야기가 성 안에 가득해요.”
종수가 말했다.
“수아, 조급해하지 말고 이걸 봐봐.”
석목이 웃으며 검은 상자를 하나 꺼내 종수에게 건넸다.
종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받아 들며 뚜껑을 열었다.
상자의 안에는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녹색 꽃이 세 개 들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현명화였다.
“이건…… 현명화?”
종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석목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현명화는 그가 이전에 연나에게 얻은 것이었다. 석목은 원래 그것을 남겨두었다가 온신술의 마지막 단계를 돌파할 때 사용하려 했다. 그러나 이런 특수한 상황이 됐으니 우선 경매에 내놓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연나가 현명화를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이건……. 오라버니, 어디서 현명화를 세 개나 구한 거예요?”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종수가 물었다.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되었어. 이전까지는 이 물건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석목이 말했다.
어째서인지 그는 종수에게 연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총명한 종수는 석목이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즉시 깨닫고, 더 이상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는 흥분한 눈빛으로 녹색 꽃들을 바라보았다.
“수아, 이 현명화는 너에게 맡길게. 옥천각에서 이미 충분히 홍보를 했으니 사람을 끌어 모으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석목의 말에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화는 며칠 남지 않은 본 경매에 한꺼번에 내놓고, 사전에 홍보를 하는 것이 좋겠어요.”
종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네가 나보다 잘 알 테니, 알아서 처리해.”
석목이 말했다.
종수는 갑자기 얼굴을 살짝 붉히더니 석목에게 다갔다. 그리고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고 그의 볼에 입술을 맞추었다.
얼굴에 느껴지는 감각에 석목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놀란 석목은 곧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탁자에 앉아서 부적지를 꺼냈다.
* * *
다음날 영선각에서 놀랄만한 소식을 발표했다.
바로 월말의 마지막 경매에 현명화 세 송이가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창욱성의 커다란 세력 모두는 현명화 세 송이의 영상이 기록된 영선각의 초청장을 받았다.
그뿐 아니라 초청장에는 대량의 상급 부적을 포함, 수많은 진귀한 물건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그 목록의 가장 끝에는 성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창욱성은 다시 한 번 떠들썩해졌다. 초청장을 받은 세력들은 모두 영선각으로 한달음에 달려왔고, 경매에 반드시 참석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상급 부적, 현명화, 성석!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미치게 만드는 귀중한 물건이 세 개나 모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바로 전에 옥천각이 경매에서 현명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 자리에서 그것을 얻지 못한 세력들이 모두 영선각으로 몰려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의 예상과는 다르게 옥천각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순식간에 며칠이 지나갔다.
마지막 경매가 열리기 바로 전날이었지만, 성 안의 세력들은 영선각과 옥천각의 경쟁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었다. 모두 경매를 위해 재력을 끌어 모으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줄곧 아무런 반응도 없던 옥천각에서 갑자기 최종 초청장을 발송했다. 초청장에는 영선각이 그랬듯 경매에 나오는 물건의 목록이 적혀 있었다.
초청장에 적힌 옥천각의 마지막 경매품은 능염정이라는 물건이었다.
“능염정? 그게 뭐지?”
그 이름을 처음 들어본 창욱성의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