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요족의 보물
창욱성에 위치한 어느 아름답고 넓은 정원.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뒷짐을 지고 선 채 정원 중앙에 있는 건물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건물은 회색빛의 장막으로 덮여 있었지만,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법력의 파동이 그것을 뚫고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었다.
한 시진 후,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법력의 파동이 점점 사라졌다.
잠시 후, 건물의 문이 열리면서 주황색 옷을 입은 영월동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은은한 법력의 파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7성의 경지에 오른 것을 축하드립니다. 일을 마치고 총단에 돌아간 후에는 월계술사에 오르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노인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현명화의 덕이 컸어. 참, 월말의 경매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영월동이 물었다.
“아가씨께선 무려 이레 동안 폐관수련을 했습니다. 내일이 바로 본경매가 개최되는 날입니다.”
노인이 두 장의 초청장을 건네며 말했다.
“영선각과 옥천각에서 보내온 초청장입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드디어 나타났군. 이번에는 반드시 얻고야 말겠어. 음? 영선각에도 현명화가 있을 줄은 몰랐군. 영선각에는 패장로가 다녀오도록 해. 반드시 세 개를 모두 얻어야 해.”
초청장을 읽은 영월동이 말했다.
“제게 맡기세요.”
노인이 말했다.
* * *
“수아, 능염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
영선각의 어느 방에 있는 석목이 종수에게 물었다.
“아뇨, 지배인에게도 물어봤는데 그 역시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해요. 하지만 옥천각에서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물건으로 내놓은 만큼 분명 평범한 물건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요.”
종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리 쪽에 성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자신만만하게 내놓았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지.”
석목이 말했다.
옥천각의 초청장에는 능영정의 영상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석목이 일강성 교외의 지하 동굴에서 얻은 투명한 암홍색 광물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능염정이란 이름을 처음 듣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 운익성의 의뢰 물품을 운송하던 중, 그는 영월동이 동굴에서 그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어디에 사용되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영월동은 능염정을 얻기 위해 창욱성까지 온 건가? 그리고 이 일이 유안과도 관련이 있을까?’
석목이 온갖 추측을 하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지배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 장로님,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되어 보고를 드리러 왔습니다.”
종수가 문을 열어 그를 안에 들인 후 물었다.
“무슨 정보지?”
노인이 말했다.
“지금 성내에서는 흥미로운 소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소문?”
“종 장로님과 석 선배님은 요족의 숨겨진 보물에 대한 전설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지배인이 말했다.
“요족의 보물?”
그 말을 들은 종수와 석목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수천 년 전 요만대전(妖蛮大战)이 종식된 후, 서하대륙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대륙 중앙의 나라구역에 위치한 능천봉에 요족이 숨겨둔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었지요. 그것은 과거 요만대전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전설의 요왕이 남긴 것으로, 그것을 얻는다면 요왕의 엄청난 힘을 전승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계로 오를 수도 있다고 하죠.”
노인이 말했다.
“전승, 선계!”
석목은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종수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과거에 그 요왕이 갑자기 사라진 뒤, 그 보물은 많은 이가 노리는 표적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은 과거 요왕이 능천봉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은 선계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족 측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문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삼 대 요족이 능천봉을 성지라 부르며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았죠.
요족의 보물에 대한 소문은 야만족과 요족의 지속적인 충돌을 야기했습니다. 심지어 야만족의 강자들이 능천봉에 잠입하려 시도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많은 사상자만 발생했을 뿐 소득 없이 복귀했다고 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요족 사이에서 과거의 그 요왕처럼 강력한 존재가 나오지 않자 소문은 점차 잠잠해졌습니다.”
노인이 설명했다.
“먼 과거의 일을 지금 다시 꺼내는 이유가 뭐지?”
종수가 물었다.
“이 이야기가 능염정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 능염정이 요족의 보물을 찾기 위해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합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 소문은 언제부터 퍼진 것이죠?”
석목이 물었다.
“오늘 아침부터입니다.”
노인이 말했다.
“옥천각이 초청장을 보낸 시기와 딱 맞아요.”
종수가 말했다.
“아마 그 소문은 조 장로가 능염각을 홍보하기 위해 퍼트린 것 같아.”
석목이 말했다.
“확실히 수상하네요. 하지만 소문은 결국 소문이에요. 사실인지도 알 수 없는 소문 때문에 큰돈을 지불하고 그 물건을 사려는 자가 있을까요? 참, 소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종수가 물었다.
“소문의 진위에 대해서 의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많은 세력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종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생했네. 먼저 물러나게.”
노인이 방을 나가자 종수가 방문을 닫았다.
“오라버니,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능염정의 가치는 아마 현명화 세 송이와 성석을 합친 것보다 높을 거예요.”
종수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아, 끝까지 가보지 않는 이상 누구도 결과를 단정 지을 수 없어. 일단은 기다려보자.”
석목의 말에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 날은 구름 한 점 없을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마치 파란색 거울 같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트이고 기분이 유쾌해졌다.
본경매가 개최되는 이날을 위해 천오상회는 많은 공을 들였다. 창욱성 내에 있는 천오상회의 여러 상점은 초롱과 오색 천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매가 열리는 영선각과 옥천각은 더욱 공들여 꾸며저 있었다.
두 경매장 곳곳에 설치한 진법에서는 빛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수십 리 밖에서도 눈에 잘 띄었다.
영선각의 입구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삼 층의 대형 경매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했으며, 경매장 양쪽에 준비된 특별석 역시 귀빈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경매장 내부가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종수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안심해. 인기로 따지자면 옥천각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아. 누가 이길지는 아직 알 수 없어.”
옆에 서 있는 석목의 말에 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석목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매장 내부에서는 열 개 이상의 강력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들은 모두 지계의 존재였다.
“오라버니, 저는 잠시 나가볼게요. 몇몇 귀빈은 제가 직접 맞아야 해요.”
“응, 그러도록 해.”
종수의 말에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곧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시간이 흐르고 정식 경매가 시작됐다. 보라색 옷을 입고 손이 붉은 남자가 경매장의 중앙으로 걸어나왔다. 영선각의 수석 경매사 고력이었다.
“오늘 이곳에 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먼 곳에서 온 수많은 고객 분이 오늘의 경매를 오랫동안 기다려오셨을 겁니다. 그러니 길게 말하지 않고 바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고력이 거두절미하고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가 말하는 동안 이미 누군가가 첫 번째 경매품으로 보이는 옥상자를 중앙의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상자 안에는 놀랄 만큼 강력한 법력의 파동을 뿜어내는 부적이 한 뭉치 들어 있었다.
“영선각에서 부적술사를 한 분 모셨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계실 겁니다. 그가 제작한 중상급 부적들을 아마 많은 분이 사용해보셨을 것이구요. 그 부적술사께서 우리 영선각에 총 백 장의 상급 부적을 경매 위탁했습니다. 그것은 열 장씩 나누어서 경매 도중 틈틈이 판매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중 첫 번째입니다.”
고력이 말했다.
흥분한 사람들로 인해 경매장이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 부적들을 구매하기 위해 찾아왔기 때문이다.
고력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부터 놀랄만한 물건을 꺼내놓은 덕분에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상급 풍속성 부적의 시작가는 영석 이만 개입니다.”
고력이 말했다.
“이만 천!”
“이만 오천!”
“삼만!”
“삼만 오천!”
부적의 가격은 금세 영석 오만 개까지 올라갔다. 그 가격을 부른 사람은 바로 백보헌의 남옥이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상급 부적을 얻지 못한 일이 가슴에 맺혀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나른한 목소리가 특별석 쪽에서 들려왔다.
“육만!”
그러자 남옥이 살짝 굳은 얼굴로 손을 들며 외쳤다.
“육만 오천!”
그러나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특별석 쪽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칠만!”
남옥이 천천히 손을 내렸다. 가격이 너무 높아서 더 이상 경쟁을 해봐야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바로 그때, 특별석 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팔만!”
그러자 나른한 목소리의 주인이 조금 짜증이 섞인 말투로 다시 가격을 높였다.
“십만!”
그 소리에 장내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상급 부적 한 장에 영석 육칠천 개라고 해도 이미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상급 부적이 아무리 희소하고 구매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결국 일회성 소모품이었다. 그리고 영석 십만 개는 상당히 질이 좋은 영기를 사고도 남을 만큼 큰돈이었다.
그 이후로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첫 번째 경매품부터 엄청난 가격에 낙찰되자 고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서 나온 경매품은 하급 영기 은호한창(银弧寒枪)입니다!”
고력이 팔을 휘두르자 몇 사람이 붉은 천에 덮인 긴 물건을 들고 나왔다.
고력이 천을 걷어내자 일 장 길이의 은색 장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한 마리의 은색 구렁이 같은 그 창은 당장이라도 날아가서 사람을 물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것을 본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은색 창은 과거 그가 통천선교의 지계장로에게 빼앗은 물건이었는데, 모습이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이전보다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종수가 그 사이에 무언가 조치를 취해놓은 것 같았다.
“이것은 공격력이 엄청나며…….”
말재간이 좋은 고력의 몇 마디 말에 그 은색 창은 천하에 몇 없는 뛰어난 물건으로 탈바꿈했다.
영기가 필요한 일부 사람들이 즉시 가격을 부르기 시작했고, 물건은 금세 높은 가격에 낙찰되었다.
이어서 법기, 단약, 재료 등 진귀한 물건들이 연달아 나와서 물이 흐르듯이 팔려나갔다.
그리고 사이사이에 상급 부적이 한 번씩 나타났다. 그 부적들은 처음처럼 영석 십만 개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리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고가에 낙찰되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경매의 전반부가 어느새 종료됐다.
종수는 작은 글자들이 줄줄이 적혀 있는 하얀 옥판을 들고 있었다. 옥판에 적혀 있는 것은 경매의 전반부에 나온 물품의 목록과 낙찰가였다.
“결과가 어때?”
석목이 물었다.
“총 낙찰가는 대략 영석 백팔만 개예요. 예상했던 것보다 이 할이나 높아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중한 물건들이 전부 경매 후반부에 나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전반부의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때 종수의 허리춤에서 갑자기 푸른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옥판을 내려놓으며 그 구슬을 꺼냈다.
“그게 뭐야?”
석목이 물었다.
“옥천각에 사람을 보내놨어요. 그가 옥천각의 경매 전반부 결과를 기록해서 보냈어요.”
종수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손가락으로 푸른색 구슬을 찍었다.
그 순간, 구슬의 빛이 반짝이더니 그 위에 푸른빛의 화면이 떠올랐다. 그 화면에는 옥천각의 경매 물품 목록과 낙찰가가 적혀 있었으며, 가장 아래에 낙찰가의 총합이 있었다.
백삼십구만이라는 숫자를 본 종수의 표정이 굳었다. 경매의 전반부에서 영선각의 실적은 옥천각에 무려 삼 할 가량 뒤처진 것이다.
석목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 다시 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그가 종수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종수가 말했다.
“수아, 괜찮아. 여기 적힌 경매 물품의 목록을 보니 옥천각 측에서는 좋은 물건을 전반부에 상당수 내놓은 것 같아. 후반부에는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석목이 말했다.
종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