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74화 (274/916)

274화. 열염(烈焰)

한연각을 떠난 종수는 석목이 있는 곳을 향해 기분 좋게 걷고 있었다.

그곳은 성의 남쪽에 위치한 창고였다. 경매 준비가 시작된 뒤로, 석목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예전에 빌린 창고에서 줄곧 지내왔다.

반 시진 후, 창고의 문 앞에 도착한 종수가 손을 휘둘러 하얀 빛을 쏘았다. 그 빛을 흡수한 문에 푸른빛이 감돌더니 소리를 내며 열렸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본 종수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석목은 창고 안에서 눈은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는 대력마원탈태결 7단계를 수련하는 중이었다. 이번 경매에서 후새뢰를 통해 지계 원숭이 요수의 정혈을 얻어서 수련을 재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종수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은 석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라버니!”

종수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능천봉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려 했다.

바로 그때, 그녀의 안색이 갑자기 창백해졌다가 다시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놀란 석목이 몸을 날려서 쓰러지는 종수의 몸을 부축했다.

“수아, 괜찮아?”

석목은 긴장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통해 종수의 체내에 정순한 진기를 주입시켰다.

석목의 진기를 흡수한 종수의 얼굴에서 붉은색이 점차 사라져갔다.

“괜찮아요.”

종수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똑바로 섰다.

“괜찮기는. 이전에 영선각에서도 이런 적이 있었잖아. 지금 네 경지에서 피로 때문에 비틀거린다는 것은 말이 안 돼.”

석목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최근에 가끔 이런 일이 있긴 했지만, 항상 금세 괜찮아졌어요.”

종수가 말했다.

석목이 고개를 저으며 종수를 자리에 앉혔다.

“아니야. 자세하게 확인해봐야겠어.”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종수의 머리에 가져다대고 정신력을 주입했다.

그의 정신력이 종수의 체내를 자세히 검사했지만 어떤 이상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기혈의 운행이 조금 느렸는데, 그것은 과도하게 피로할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음…….”

석목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정신력을 종수의 체내에 주입해봤지만, 결국 어떠한 수확도 얻을 수 없었다.

석목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침묵했다.

“정말 괜찮아요. 가끔 피로감이 느껴지는 정도이니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석목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에 감동한 종수가 말했다.

“정말 괜찮은 거야?”

석목이 물었다.

“정말 괜찮아요. 오라버니도 직접 확인했잖아요.”

종수가 말했다.

“알겠어. 그동안 너무 피곤했으니 돌아가면 푹 자겠다고 약속해.”

석목이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어요. 참, 채아는 어디 갔죠?”

종수가 창고 안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채아는 좁은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항상 밖에 있어.”

석목이 말했다.

“참, 왕 부회장이 저에게 특사를 맡겼어요. 한 달 뒤에 출발이에요.”

종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잘됐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럼에도 석목은 매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석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종수 역시 매우 기뻤다.

“한 달 동안 계획을 잘 세워보자.”

석목이 그렇게 말하며 지도를 한 장 꺼냈다.

그 순간, 석목에게 다가가려던 종수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녀는 또다시 비틀거리다가 그 자리에 쓰러졌다.

“수아!”

석목이 즉시 손을 뻗어서 쓰러지는 종수를 안았다.

손이 종수의 몸에 닿는 순간 석목은 깜짝 놀랐다. 종수의 몸이 마치 화로처럼 뜨거웠던 것이다.

석목은 화속성의 적원화경을 수련했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이런 영향을 미칠 리는 없었다.

석목은 단전의 진기를 끌어올려서 종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막았다. 그리고 그녀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뉘었다.

이미 정신을 반쯤 놓은 종수는 중얼거리며 석목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수아, 나는 여기 있어. 괜……괜찮은 거야?”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러나 정신이 혼미한 종수는 석목의 말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까스로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정신력을 뿜어서 다시 종수의 체내에 주입했다.

종수의 몸속에서는 통제가 되지 않는 진기와 법력이 날뛰면서 기경팔맥을 헤집고 있었다.

다행히 무공과 술법을 동시에 수련했으며, 경지 또한 높은 종수의 경맥은 단단하고 질겼다. 그래서 진기와 법력의 폭주를 어떻게든 견뎌내고 있었다.

석목은 계속해서 정신력을 주입하다가 진기와 법력이 폭주하는 원인을 금세 찾아냈다.

종수의 단전 중앙에서 맹렬한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단전에 있던 진기와 법력이 이 화염에 의해 밀려나면서 경맥으로 몰려간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설마 주화입마에 빠진 건가?”

석목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킨 석목은 생각에 잠겼다. 어찌됐든 종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갑자기 나타난 저 화염을 제거해야 했다.

석목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팔을 휘두르자 몇 가닥의 하얀 빛줄기가 뻗어나갔다.

창고 곳곳에 떨어진 빛의 줄기는 빛의 장막으로 변했다. 그것은 총 네 겹의 빛의 장막을 형성했다.

“채아, 주위의 동향을 경계해. 누군가 다가오려 하면 바로 알려줘.”

밖의 한 건물 위에 앉아 있던 채아는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서 석목이 있는 창고를 보았다.

창고 안에는 진법이 몇 겹으로 펼쳐져 있어서 채아로서도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채아는 석목의 말투가 심각한 것으로 보아 무언가 긴급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눈치 챘고, 빠르게 대답했다.

석목은 종수의 옆에 가부좌를 틀고 두 손을 그녀의 아랫배 단전 위에 올렸다. 그리고 진기를 종수의 체내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종수의 단전까지 흘러들어간 석목의 진기가 붉은 화염을 겹겹이 둘러쌌다.

그 순간 종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열기가 약해지면서, 경맥에서 날뛰던 진기와 법력 역시 잠잠해졌다.

동시에 종수의 표정도 한결 평안해졌다.

하지만 석목이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종수의 단전 속 화염이 솟구쳐 오르는 동시에 진동을 했다. 그것은 주위를 둘러싼 석목의 진기를 향해 파동을 발산했다.

그것을 본 석목이 다급히 진기의 주입을 늘렸지만, 그 파동 역시 점차 강력해졌다. 석목은 결국 전력으로 진기를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목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의 진기는 이미 대부분 소모됐지만 화염의 기세는 전혀 멈출 줄을 몰랐다.

석목은 이를 악 물더니 왼쪽 손을 종수의 몸에서 뗐다. 그리고 중급 화속성 영석을 꺼내 쥐었다.

영석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서 석목의 몸 안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진기가 고갈되어가는 속도가 조금 늦춰졌다.

여전히 체내의 진기는 빠르게 소모되고 있었지만, 그 중급 영석이 진기를 보충해주는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가서 어느새 반 시진이 지났다.

석목의 주위에는 빛을 잃고 어두워진 영석이 백 개 가까이 널브러져 있었다.

석목은 여전히 왼손에 영석을 쥔 채, 오른손은 종수의 아랫배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영석이 끊임없이 진기를 보충해주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백지처럼 창백하게 변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종수의 단전 속에 있는 화염 역시 힘이 거의 다했다는 사실이었다. 그 화염은 천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석목은 왼손에 들고 있던 영석을 던지고 새로운 영석을 꺼내 쥐었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계속 진기를 주입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종수의 단전에 위치한 화염의 떨림이 완전히 멈추었고, 더 이상 어떠한 파동도 뿜어내지 않았다.

그제야 표정을 푼 석목은 정신력을 뿜어내서 종수의 체내에 있는 화염이 활동을 멈춘 것을 확인했다. 그는 곧이어 쓰러지듯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석목은 영석을 사용해 진기를 회복하면서도, 한편으로 정신력으로 종수의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종수가 기다란 속눈썹을 떨더니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녀의 안색은 핏기가 하나도 없어서 창백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아!”

석목이 기뻐하며 외쳤다.

“오라버니…….”

종수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석목을 보았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을 들어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니까 우선은 잠시 휴식을 취해.”

석목이 종수의 손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종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 고마워요…….”

그녀가 조금 힘겨워하며 말했다.

“바보야, 우리 사이에 감사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석목이 말했다.

그런데 종수가 힘없이 웃으며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다시 이변이 발생했다. 그녀가 경련하듯 몸을 떨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기절한 것이다.

석목은 깜짝 놀랐다. 종수의 단전에서 움직임을 멈추었던 화염이 다시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석목은 재빨리 종수의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조금 회복된 진기를 주입해서 다시 화염을 감쌌다.

바로 그때, 종수의 몸에 다시 한 번 이변이 일어났다. 그녀의 피부에서 옅은 금색 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곧 피부 표면에 붉은 경맥의 무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쾅!

종수의 단전에 있는 화염이 갑작스럽게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이전보다 열 배 이상 강력한 화염의 파동이 주위를 감싼 석목의 진기를 손쉽게 깨트렸다.

종수의 피부에 드러난 붉은 무늬가 빛을 발산하더니 그곳에서 무수한 붉은 화염이 솟아나왔다. 화염은 마치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며 주위를 향해 뻗어나갔다. 이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석목은 순식간에 그 화염에 완전히 둘러싸였다.

종수가 입고 있는 옷이 순식간에 불에 타올라 재가 되었고, 그녀의 아름다운 전신이 완전히 드러났지만, 그녀의 몸에는 어떠한 상처도 생기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솟아나오는 화염은 마치 화염의 옷처럼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석목은 화염에 붉게 비친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자신도 모르게 살짝 넋을 놓았다.

하지만 그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손을 뻗어 종수의 손을 잡았다.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화염이 창고 안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창고에 쌓여 있던 수많은 물건이 몰아치는 화염에 순식간에 녹아내려 자취를 감추었다.

빠르게 퍼져나간 화염은 창고 주위를 몇 겹으로 덮고 있는 빛의 장막에 닿았다.

그러나 그 진법은 석목이 공을 들여 구한 것으로, 공격 능력은 전혀 없었지만 방어 능력이 뛰어나서 쉽게 파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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