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시험
석목의 표정은 평온해보였으나, 그는 마음속으로 크게 외치며 다짐하고 있었다.
‘나도 강해져야만 해! 그래야 수아를 찾을 수 있어!’
그의 머릿속에서 힘을 키워야 한다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일어났다.
석목은 눈을 돌려서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며 팔에 힘을 주었다. 까맣게 탄 왼손이 그제야 석목의 눈에 띄었다.
이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좀 적응이 되고 나니, 석목은 이 왼손이 생각했던 것보다 번거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칠팔 할의 힘을 써버렸지만 왼손을 간신히 들어 올릴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심지어 그 왼손이 자신의 신체 일부가 아니라는 착각마저 들었다. 왼손은 들면 마치 세 살짜리 어린아이가 큰 망치를 들고 휘두르는 것처럼 서툰 움직임이 나왔다.
석목은 무언가 중얼거리며 산의 암벽을 향해 왼손 주먹을 힘껏 날렸다.
쿵!
새까만 주먹이 아주 쉽게 암벽을 뚫으면서 그의 팔이 팔꿈치까지 들어가 버렸다. 단단한 암벽이 석목의 주먹 앞에서는 순식간에 진흙 반죽이 되어버린 듯했다.
석목은 절벽으로 들어간 왼손의 손가락을 펼치며 다시 팔을 뺐다.
우지직!
석목의 다섯 손가락은 금강석으로 변하기라도 한 듯, 암벽에 다섯 줄의 긁힌 자국을 만들어 냈다. 그는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손을 쉽게 빼낼 수 있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석목이 눈빛을 빛내더니 오른손으로 서슬이 퍼런 청색 장검을 꺼냈다. 그가 잠시 주저하다가 장검을 휘두르자 검이 차가운 빛으로 변하면서 왼손을 베었다.
쾅!
마치 둔기로 단단한 쇠를 친 것처럼 장검은 그대로 튕겨나갔다. 하지만 시커먼 왼손에서는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단단할 수가!’
석목은 속으로 놀랐다.
청색 장검은 비록 영기는 아니었지만, 예리하기로 유명한 상급 법기였다. 그런데 이 검이 자신의 왼손에 그 어떤 흠집조차 남기지 못했다.
게다가 조금 전 장검이 자신의 손을 내려칠 때,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다 할 느낌이 없었다.
잠시 후 석목은 등 뒤에 있는 운철흑도를 꺼내들었다.
석목은 빛을 반짝이는 흑도로 자신의 왼손을 베었다. 이번에는 힘의 삼 할만 써서 내리쳤다.
쾅!
이번에도 굉음이 나면서 흑도가 그대로 튕겨나갔다. 석목의 왼손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석목은 이를 악물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오 할의 힘으로 내리쳤으나 흑도는 여전히 튕겨나갔다.
* * *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며 흑도는 흑색 검광이 되어 석목의 손을 베었다. 왼손은 희미한 빛을 발했고, 흑도는 충격을 받은 듯 진동했다.
순간 석목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이제 모든 힘을 다 쓴 상황이었기에 지계 초기의 무인들이 정면으로 덤비면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왼손은 여전히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을 듯했다.
그는 검은 왼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의 강인함은 이미 영기의 수준을 초월했고, 심지어 영기조차 파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왼손은 그저 강한 것뿐만이 아니었다.
석목은 갑자기 왼손에 힘을 주어 산의 암벽을 뚫었다. 그리고 손바닥에 힘을 주어서 돌을 움켜쥐었다.
그는 맨손으로 암벽에 있는 돌을 집어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석목이 눈을 반짝이며 손을 휘젓자 왼손 가운데서 검은 돌이 나오더니 옅은 청색 빛을 발했고, 그가 왼손에 힘을 주니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돌은 그대로 부서져서 가루가 되었다.
순간 석목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방금 부순 것은 이것은 법기를 제련하는 재로인 흑청 금광석으로, 강철보다도 단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큰 힘도 들이지 않고 가루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다시 손을 뒤집었다.
그의 손에서 아기의 주먹만 한 자줏빛 광석이 나왔다. 이것은 고급 광석으로, 이전에 후새뢰가 경매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듣자하니 영기를 제련할 때 첨가하면 영기의 강도가 크게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 작은 광석은 무려 영석 만여 개의 가치가 있는 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흥분한 석목은 왼손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석목은 자신의 왼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자줏빛 광석은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진흙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나왔다.
석목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날아갈듯 기뻐했다.
그는 본래 왼손에 이상이 생긴 것 때문에 한동안 우울해 있었다. 그러나 이 손이 의외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너무 기뻤다.
석목은 소리를 지르며 왼손을 거칠게 휘둘렀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산의 암벽을 베었다.
검은 주먹이 반짝이더니 암벽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고, 곧 암벽이 크게 갈라지더니 부서진 돌들이 비 오듯 떨어졌다.
그 짧은 순간 암벽은 반이나 붕괴되어 버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나른하게 졸고 있던 채아는 이를 보고 크게 놀랐다. 그러나 아래 있는 석목이 한 일이라는 걸 알고는 몸을 돌려 다시 잠을 청했다.
석목은 산골짜기에서 진지하게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는 왼손의 위력을 대략 파악했다. 그 손 안에는 어마어마한 신력이 봉인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이 신력은 인간이 본래 가진 힘의 스무 배에서 서른 배는 되는 듯했다.
다만 이 왼손은 너무 육중했기 때문에, 위력은 대단하지만 몸과 조화를 잘 이루지 못했다. 석목의 탈태결(脫胎決) 6단계의 힘으로 겨우 힘겹게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석목이 지금의 모양새로 적과 싸운다 해도 왼손은 어떤 도움도 안 될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담만 될 것 같았다.
그때 석목의 머릿속에서 금색의 경전이 떠올랐다.
“맞아! 구전현공!”
종수가 실종된 후 모든 일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석목은 그 서적에 대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때 꿈속에서 일어난 일로 미루어보면, 자신의 왼손에 일어난 일은 분명 구전현공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니 해결할 방법을 찾으려면 구전현공에서 출발해야 했다.
석목은 정신을 집중해서 기억 속에 있는 금빛의 서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석목이 갑자기 눈을 떴고, 그의 두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서적에 있는 구전현공의 첫 번째 수련 방법은 몸을 단련하는 것으로, 지양(至陽)의 단련 공법이었다.
이 단련 비법과 흡일식은 적지 않은 공통점이 있는 듯했다. 엄격히 말하면 흡일식은 단련 공법의 기초에 해당하고, 태양의 힘을 흡수하는 것을 통해 몸을 단련하는 것이었다.
그는 꿈을 통해 이 구전현공이 비범한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기묘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법결의 첫 부분에 따르면, 이 공법은 소문으로만 듣던 육신신통지술(肉身神通之術)이었다. 그것은 총 9단계로 나뉘어 있는데, 한 단계씩 수련할 때마다 몸이 기묘한 신통력을 갖게 된다고 했다.
또 구전현공의 3단계를 달성하면 몸이 금강석 같이 강해져서, 벼락에 맞거나 검에 베여도 쉽게 상처를 입지 않게 된다.
6단계를 달성하면 적혈중생(滴血重生)의 경지에 이르러서 모발이 육신으로 변하는 듣도 보도 못한 신통력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9단계는 상상을 초월했다. 법결 첫머리에는 그것에 대한 특별한 설명 없이, ‘구전이 잘 이루어지면 천지와 함께 장수하며 일월과 공존할 수 있다’고만 언급되어 있었다.
석목은 구전현공 첫머리를 읽고 난 후 충격으로 그 자리에서 멍하니 있다가,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천지와 함께 장수하고 일월과 공존한다는 말은 단지 과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전현공이 필적할 것이 없을 만큼 현묘하고, 진정으로 신통력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
석목은 숨을 깊게 쉬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잠시 후 평정심을 되찾은 그는 눈을 감고 1단계의 구체적인 수련 방법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1단계를 자세히 읽고 나자 석목은 얼굴색이 변하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눈을 뜨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천수혈맥(天獸血脉)이야!”
서적 속의 구체적인 수련 방법에 따르면, 자신은 구전현공을 수련할 수 없었다. 이 공법은 범인(凡人)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를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게 특수한 천수, 혹은 천수혈맥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다.
이 공법을 수련하면 체내의 기혈이 극도로 왕성해진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천수혈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그 왕성한 기혈을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몸이 폭발하여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석목은 난감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소위 천수라고 하는 것이 어떤 존재인지도 알지 못했고, 금색 경전에는 이 천수의 이름도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곧 무언가를 떠올리고 눈을 반짝였다.
자신의 꿈속에 늘 나타나는 흰 원숭이는 이 구전현공을 수련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서적에 나온 몇 가지 천수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신은 일찍이 위기를 맞았을 때 두 차례 흰 원숭이로 변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그것이 꿈속의 흰 원숭이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다.
‘혹시 내 몸에도 그 혈맥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석목은 고개를 저으며 이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는 확실히 원숭이류의 혈맥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이미 증명이 됐다. 다만 쓸모없는 석후(石猴)의 혈맥일 뿐이었다. 만약 잇따른 기연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진기를 수련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천수의 혈맥 같은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석목은 차갑게 웃고는 더 생각하지 않고 경전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반나절이 족히 지난 후에야 그는 그 금색 경전에 적힌 내용을 다 읽었다.
금색 경전은 빛을 내며 그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사라졌지만 석목은 어차피 그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일그러뜨렸던 미간을 펴며 편안한 자세를 취했고, 그의 얼굴에는 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금색 경전의 마지막 부분에는 천수혈맥이 아닌 자도 신묘한 현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것은 ‘소(小)구전현공’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체내에 천수의 정혈을 주입함으로써 몸을 부분적으로 단련해서, 그에 상응하는 천수혈맥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소구전현공의 첫 번째 수련 방법은 신체의 일부를 지양지화(至陽之火)에 유입시키는 것이었다. 현재 자신의 왼손처럼 경전에 기록된 것들을 완성하여 봉인된 징조와 동일했다.
석목은 꿈에서 흰 원숭이가 왼손을 들고 태양의 힘을 흡수하던 모습, 그리고 종수의 몸에서 나왔던 맹렬한 불길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물론 그는 자신의 왼손에 있는 봉인이 종수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일 뿐만 아니라, 신비한 여인이 만들어서 정제한 천 년의 천봉진염(天鳳真焰)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종수의 몸에서 나온 불꽃만으로는 지양지화의 봉인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석목의 몸속에는 어떤 천수 정혈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잠깐만! 몸속에 정혈이 들어온다는 것은 설마…….”
순간 석목은 하나의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이전에 그는 바다 밑에서 해족 소녀를 구해줄 때 핏빛 안개를 흡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설마 흰 원숭이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석목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고, 마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린 기분이었다.
그의 체질이 변하고 이해력이 좋아진 것, 수차례 상처를 입고도 스스로 치유된 것, 그리고 꿈속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은 모두 해족 소녀를 구하고 몇 차례 핏빛 안개를 흡수한 이후에 생긴 일이었다.
꿈에서 흰 원숭이가 구전현공을 수련하던 상황을 지금 다시 돌이켜보니, 당시 흡수한 핏빛 안개가 바로 꿈에서 보았던 정혈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흰 원숭이가 구전현공을 수련할 수 있었던 걸 보면, 그는 공법 내용에 언급된 몇 안 되는 천수에 속하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