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79화 (279/916)

279화. 만화산(萬火山)

석목은 자신이 어떻게 꿈속에서의 힘을 빌려서 지금 이 왼손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도 비로소 이해가 됐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석목은 흥분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제1단계를 시작했을 뿐, 수련해야 할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경전에 언급된 대로 1단계의 수련을 하려면 반드시 용암지에 있는 불의 힘을 빌어야 했는데, 이는 적원화경의 조건과 흡사했다. 하지만 화염의 힘보다는 요구되는 조건이 까다로웠다.

석목은 손바닥만 한 흰색 옥간을 꺼냈다. 이것은 그가 창욱성에서 비싸게 구입한 서하대륙 동부지역의 지도로,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지도에는 각 지역 성지(城池)의 위치, 지형, 산천, 호수, 화산, 사막 등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석목은 눈에서 금색 빛을 내뿜으며 지도를 보았다. 그리고 창욱성 북쪽으로 수만리 떨어진 곳에 아주 큰 화산 산맥이 있는 걸 보고, 곧 좋은 수를 생각해냈다.

석목은 옥간을 집어넣고 채아와 이야기를 했다.

일각이 지난 후, 석목이 있던 골짜기에서 한 줄기의 푸른빛이 뻗어 나와서 서북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지면 위에 거대한 산맥이 가로로 놓여 있었고, 산세는 기복이 심했다.

그리고 모든 산맥은 검붉은 색이었고 하늘에는 흑운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흑운 아래에는 거대한 화산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그 길이가 만 장에 달해서 마치 거인이 우뚝 솟아 있는 것 같았다. 반면 어떤 것은 수십 장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산봉우리들은 모두 검은 연기 기둥을 내뿜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끔 눈부신 붉은 빛이 떠올라 천둥 같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산맥 주위는 몹시 뜨거웠다. 고온으로 뜨거운 공기가 물결을 이루었고, 곳곳에서 코를 찌르는 유황 냄새가 났다. 검붉은 돌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서하대륙 중부 쪽에 있는 이곳에는 십만 개의 화산이 있었고, 험하기로 유명했다.

소문에 의하면 이 화산 중 거대한 것은 크기가 십만 리가 넘는 것으로 유명했다. 물론 정말로 십만 리가 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굳이 그걸 일일이 헤아려볼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어쨌든 이 화산들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십만화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푸른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점점 커지고 밝아지더니 순식간에 큰 빛이 되어 산맥 부근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바로 석목이었고, 그는 눈앞에 있는 거대한 화산 산맥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땅 위의 화산은 하늘의 흑운과 이어져서 마치 거대한 천연의 요새 같았다.

“그야말로 장관이네! 역시 서하대륙이야! 지맥의 영력이 넘쳐서 이런 큰 화산들이 형성된 것인가 보다.”

석목의 어깨 위에서 채아가 왁자지껄 떠들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꺼운 서적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이곳에 오는 길에 다른 성지에 들러 사온, 십만화산에 관한 서적이었다.

석목은 서적을 뒤적거렸다. 이미 여러 번 훑어봤기 때문에 십만화산에 대한 대략적인 상황은 이해하고 있었다.

십만화산이 있는 지역은 매우 광활하고, 깊이 들어갈수록 환경이 험해졌다. 그래서 지계 무인 중에는 이곳을 무사히 지나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십만화산의 깊은 곳에는 정체 모를 막강한 요수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것들은 지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십만화산은 험준하기는 해도 결코 척박한 곳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자원이 매우 풍부했다. 산맥에는 많은 광석이 매장되어 있었고, 화산에는 화속성 요수 등 영기 재료가 풍부했다. 그래서 많은 이가 보물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십만화산의 동부 지역에는 많은 성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곳이 바로 적염성(赤炎城)이었다. 규모로 보면 창욱성보다는 못하지만 훨씬 번화한 곳이었다.

적염성은 십만화산에서 가까워서 화맥(火脉)이 풍부했고, 그 덕분에 서하대륙에서 기구 제련으로 유명했다. 소문에 의하면 이 성에 있는 야만족 장인의 수는 서하대륙 전체의 절반 이상에 달했다.

석목은 서적을 보고 난 뒤, 지도를 꺼내 주위의 지형과 대조해보며 자신이 있는 위치를 빠르게 파악했다. 그가 있는 곳은 적염성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수백 리만 가면 닿을 것 같았다.

눈동자가 금색이 된 채 적염성 방향을 둘러보던 석목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석두, 뭘 보고 있는 거야?”

채아는 석목이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을 보고 궁금한 듯 물었다.

“저기가 적염성이 있는 곳이야. 여기서 멀지 않아. 수백 리쯤 가면 닿을 수 있어.”

석목이 말했다.

“정말? 그럼 어서 가보자. 사실 나 적염성이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해.”

채아가 재촉했지만, 석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십만화산은 서하대륙 중부의 매우 특수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그저 위험하기만 한 지역이 아니었다.

십만화산을 중심으로 동쪽 지역에는 야만족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반대편인 서쪽 지역은 요족들의 세력 범위였다. 그러니 십만화산만 지나면 요족의 세력권에 들어서는 셈이었다.

석목의 목적지인 능천봉은 서하대륙의 중심, 즉 요족 세력의 한복판이었다.

석목은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안정을 찾았다.

십만화산은 매우 험악하기에 이곳을 지나가고 싶어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십만화산 서쪽에도 적염성과 비슷한 규모의 큰 성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화옥성(火獄城)이었다.

화옥성은 적염성과 대형 전송 법진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를 통해 바로 이동이 가능했다. 물론 반대로 화옥성에서 적염성으로 바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적염성과 화옥성은 요족과 야만족 두 세력의 경계라는 특수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전송 법진을 만들 때 양쪽의 지도자는 두 성지에서는 서로 싸움을 금지하고, 원한을 품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기로 합의를 했다.

요족과 야만족은 여태껏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결국 어느 정도는 서로 의지하는 공생 관계이기도 했다.

야만족은 요족의 세력 범위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자원이 필요했고, 요족 또한 야만족의 자원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적염성과 화옥성은 함께 번창할 수 있었다.

그중 석목에게는 적염성이 잘 맞았다. 이곳에서는 안심하고 수련해서 경지를 끌어올리고, 능천봉에 가기 전에 마지막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가자.”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청색의 빛이 광채를 발하더니 석목과 채아를 감싸고 적염성으로 날아갔다.

* * *

석목은 일찍이 십만화산이 위험할 것이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이곳은 본래 외곽 지역이라 그렇게 큰 위험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이 지역의 모든 화산은 크든 작든 수시로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고, 산꼭대기를 제외하고는 부근의 지면이 갈라져서 무려 백여 장에 달하는 용암 불기둥이 뿜어져 나왔으며, 그것이 허공의 검은 먹구름까지 튀기도 했다.

또한 이런 용암의 분출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서, 그 주위의 수 리(里) 내에서도 분출이 일어날 수 있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적홍색의 석주처럼 장관을 이루었다.

그리고 석목은 삼백 리도 채 가지 않아 이런 대규모 폭발과 마주쳤다.

그는 폭발하는 지점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고, 무언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지면 민첩하게 자리를 피했다. 그래서 크게 놀라긴 했어도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운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석목은 야만족들이 용암 불기둥에 맞고 순식간에 뼈도 추리지 못하고 전멸당하는 걸 목격했다.

그 외에도 그다지 특별한 구석이 없어 보이는 검은색 먹구름이 허공에 잠복해 있는 자객처럼 불시에 장대 같은 산성비를 쏟아 붓기도 했다.

이 산성비는 부식성이 매우 강해서 무인들의 몸은 말할 것도 없고, 방어 법기나 영기들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산의 표면에 불규칙하게 패여 있는 크고 작은 구덩이들에는 사람들의 백골이 널려 있었다.

석목은 최대한 야만족이 출몰하지 않는 곳을 선택했다. 이곳은 이미 적염성 부근이었고, 일부 야만족은 위험을 피하는 요령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석목은 화산에서 여러 가지 위험을 피하면서 적염성 부근으로 힘들게 날아갔다.

* * *

반나절 후, 검붉은 산봉우리 위로 푸른빛이 날아올랐다.

그 빛 속에서 석목은 갈색 장갑을 낀 왼손을 내리고 사방을 살피며 경계를 하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그가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고, 근처에 있는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금빛으로 반짝였다.

“석두, 무슨 일이야?”

석목의 어깨에 앉아 있던 채아가 석목의 시선이 향하는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것은 막 폭발한 화산으로 보였다. 산 표면에는 막 굳은 용암이 이글거리며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는데, 화산 입구 부근에 네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네 사람 중 셋은 허리에 모피를 두른 거대한 야만족으로, 그들은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짧은 회색 상의를 입고 얼굴에 문신을 한 인족 청년이 있었다.

“석두, 저건…….”

채아가 약간 망설이듯 말했다.

“가서 살펴보자.”

석목은 그렇게 말하면서 화산으로 날아갔다.

* * *

한편 분화구의 웅덩이 근처에서는 네 사람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이놈아, 이 화산은 우리 세 형제가 한 달 넘게 기다려온 것이다. 염치도 없느냐? 어서 화염정(火炎晶)을 이리 내놔라!”

덩치가 큰 대머리 야만족이 문신을 한 인족에게 말했다.

“헛소리 마라! 나는 요 며칠 계속 이 부근에 있었는데, 그동안 너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근처에 폭발하는 화산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화염정을 빼앗으려 하다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

문신을 한 인족 남자가 말했다.

“사서 고생을 하는군.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냐?”

대머리 야만족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두 야만족이 중간에 있는 인족 남자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중 애꾸눈을 가진 야만족이 낮은 소리로 외치더니 두 자루의 짧은 도끼를 꺼내들었다. 그가 두 팔을 휘두르며 진기를 사용하자 두 개의 회색 그림자가 인족 남자에게로 날아갔다.

이어 호리호리한 체격의 다른 야만족의 가슴에서 남색 빛이 뿜어 나왔다. 그러자 그의 두 팔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거대한 집게로 변했다. 그는 집게팔을 휘두르면서 기세등등하게 그 남자에게 돌진했다.

공격을 받고 있는 인족 남자의 머리 뒤에서 세 개의 별빛이 반짝였고, 그가 손을 모으며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옆에 있는 대지가 엄청난 굉음을 내더니, 황토색 빛이 떠오르면서 주위가 온통 황토빛으로 뒤덮였다.

쾅쾅!

앞에 있던 두 회색 도끼 그림자는 그 벽을 부수지 못했고, 황토빛이 반짝이더니 잇따라 날아갔다.

호리호리한 야만족이 앞으로 나아가며 몸을 날렸고, 그가 두 집게를 휘두르며 인족 남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문신을 한 남자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던 듯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 개의 청색 칼날이 떠오르더니 세 방향으로 돌면서 상대방을 공격했다.

그 청색 칼날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날아가며 가까운 거리에 있던 호리호리한 야만족을 공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