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호랑이 요수
일각 정도 지났을 무렵, 공기를 가르는 소리를 내며 맹렬한 독기로부터 벗어난 청익비차가 공중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있는 곳의 아래에는 붉은 안개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입을 벌리고 잡아먹으려는 거대한 괴물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석목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아래의 독기 가득한 안개를 바라보더니,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번에 그의 왼손이 아니었다면, 죽지는 않았다 해도 전신의 가족이 벗겨졌을 것이다.
그때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채아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석두, 아래를 조심해!”
채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래에서 독기를 품은 화장이 솟구쳤다. 그 가운데서 거대한 붉은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석목은 놀라며 청익비차를 움직여서 옆으로 피했다. 그러나 날아오는 붉은 그림자를 온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쾅!
솟아오른 큰 힘이 청익비차를 강하게 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비차에서 그대로 떨어졌다.
석목은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면서 몸에서 흰 빛을 발산했다. 그 빛은 석목의 몸을 떠받쳐서 안전하게 땅에 내려설 수 있도록 했다.
여의도 법기를 발동해서 안전하게 지면에 닿았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에서는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조금 전의 공격으로 인한 상처였다.
“이건 도대체 뭐지?”
석목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르르 쾅쾅!
공중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유성처럼 빠르게 날아와서 두 사람의 앞에 섰다. 지면이 격렬하게 흔들렸고, 자갈들이 부서지며 먼지가 크게 일어났다. 그 바람에 석목은 눈을 감았다.
그때 먼지바람 속에서 거대한 붉은 호랑이 요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 요수는 사나운 두 눈에서 붉은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타오르는 불꽃 같았다. 거대한 몸은 검고 붉은 줄무늬로 뒤덮여 있었다.
호랑이 요수는 강철 채찍 같은 기다란 꼬리를 흔들면서 날카로운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호랑이 요수의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있었는데, 날개를 펼치면 몸집보다 더 컸다.
붉은 호랑이 요수는 눈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며 석목과 여의를 쏘아보았고, 그 붉은 호랑이는 몸에서 어마어마한 영압을 뿜어내는 지계의 요수였다.
“붉은 날개의 호랑이 요수라니! 화장만큼이나 대단한 걸!”
여의가 잔뜩 겁을 먹고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
호랑이 요수는 낮은 소리로 포효하며 거대한 날개를 펼치고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육중한 몸집을 가뿐하게 날려서 순식간에 석목의 앞에 나타났다.
호랑이 요수의 큼직한 발톱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고, 석목은 곧 몸을 흔들면서 왼손을 들어 올려 방어했다.
“석 형, 조심해요!”
여의가 깜짝 놀라 외치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 개의 문을 합친 것 같은 크기의 푸른색 칼날이 나와서 호랑이 요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호랑이 요수의 꼬리가 불빛을 내며 붉은 그림자로 변하더니 칼날을 쳐냈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
이어 호랑이 요수의 거대한 발톱이 석목의 팔을 가격했다. 그의 몸은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간 후에야 지면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석 형!”
여의가 기겁하며 입을 열었다.
붉은 호랑이 요수가 으르렁거리면서 굵직한 사지를 움직였다. 그러자 요수는 붉은 그림자가 되어 여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계속해서 석목을 공격했다.
호랑이 요수는 두 사람 중 석목에게서 더 큰 위압감을 받아, 아마도 석목만 죽이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붉은 호랑이 요수는 입을 크게 벌려서 큼직한 불기둥을 내뿜으며 석목을 공격했다.
우르르 쾅쾅!
지면이 불바다가 되면서 주위의 십여 장 범위를 다 태워버렸다.
붉은 호랑이 요수는 이어 불바다 속으로 뛰어들더니 석목을 공격했다.
그 순간 찬란한 금색의 검광이 석목의 몸에서 날아올랐다. 그 빛은 반짝하더니 수 척에 달하는 금빛 무지개가 되어 붉은 호랑이 요수를 가격했다.
금빛 무지개는 섬뜩한 검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검의 기운이 호랑이 요수에게 채 닿기도 전에 날카로운 기운이 사방으로 전해졌다.
허공에 떠 있던 호랑이 요수는 놀라서 피하려 했으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와서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다.
호랑이 요수는 울부짖으며 몸 전체에서 붉은빛을 발했다.
불빛이 반짝이더니 호랑이 요수의 몸에서 붉은 호랑이의 그림자가 날아올라 금빛 무지개 검과 충돌했다.
펑! 펑!
붉은 호랑이 그림자가 연이어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금빛 무지개도 그 빛이 흩어져 금색 비검(飛劍)으로 변해 날아갔다.
금색 비검이 사라지자 붉은 날개가 달린 호랑이 요수가 기다렸다는 듯 펄쩍 뛰어올라 몸을 허공에 띄웠다. 호랑이 요수는 시뻘건 아가리를 쩍 벌리고 무시무시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석목의 머리를 삼키려 달려들었다.
그때 석목은 이미 몸을 일으킨 상태였다.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채아는 어느새 하늘 높이 올라가 온데간데없었다.
석목은 달려드는 호랑이 요수를 보고도 조금도 움츠러들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두 팔에 근육을 만든 뒤, 오른손으로 왼팔을 받쳐 올려 요수를 향해 내뻗었다.
호랑이 요수는 몸을 허공에 띄운 채 앞발을 내밀어 석목의 왼팔을 뿌리치려 애썼다. 그러면서도 그의 머리를 물어뜯으려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호랑이 요수의 앞발과 석목의 왼팔이 맞닿으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거대한 힘이 스치자 요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파지직!
호랑이 요수의 앞발은 석목의 왼팔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며 고기조각이 되어 허공이 흩날렸다.
게다가 너무 맹렬하게 달려든 탓에 관성에 의해 몸을 가누지 못했고, 그대로 날아가서 석목의 주먹에 머리를 들이댔다.
석목은 기다렸다는 듯 왼손에 더욱 힘을 실어서 내뻗었다.
그러자 호랑이 요수의 머리는 석목의 주먹에 닿는 순간, 방금 전 산산조각이 난 앞발처럼 파열음을 내며 깨져버렸고, 핏덩이가 섞인 살점과 뇌수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호랑이 요수의 거대한 몸은 반대쪽으로 멀리 튕겨나가 떨어졌고, 그 요수는 두어 번 움찔하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여의는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한참을 다물지 못했다.
석목은 왼손을 내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숨이 차긴 했으나 내심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왼손의 놀라운 위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지계 등급의 요수를 한방에 무너뜨리는 실로 놀라운 힘이었다. 속도만 조금 높이면 결정적인 순간에 필살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번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운도 한몫했다. 석목이 기운을 감추었기에 호랑이 요수도 선천의 경지로 보고 경계를 낮췄을 터였다. 지계의 존재와 정면으로 맞섰다면 아마 힘겨웠을 수도 있었다.
석목은 몸을 추스르고 먼지를 털어내며 수혼 주머니를 꺼냈다. 그러자 호랑이 요수의 시체에서 솟아오른 붉은빛 수혼이 주머니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석목은 곧바로 호랑이 요수의 시체 옆으로 다가가서 몇 번을 훑어보았고, 시체를 마저 거두었다.
지계 요수의 시체는 그 가치가 매우 높았다. 피와 살, 뼈, 가죽 등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 좋은 재료이기 때문에 꽤나 높은 금액에 팔 수 있을 것이었다.
“석 형, 괜찮아요?”
여의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급히 물었다.
“괜찮아요.”
석목은 소매를 털며 대답했다. 그는 왼쪽 소매가 완전히 찢어진 상태였지만,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실력이 정말 대단하네요. 지계의 요수를 한방에 때려눕히다니, 실로 탄복했습니다.”
여의는 석목이 다치지 않은 걸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내심 탄복을 금치 못했다.
“과찬입니다.”
석목이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화장독무(火瘴毒霧: 독 안개가 있는 곳)와 가까운 곳이에요. 왜 갑자기 호랑이 요수가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것 같으니 어서 떠납시다.”
석목은 멀지 않은 곳에 떠 있는 붉은 안개를 보며 말했다. 여의도 그와 같은 생각이었다.
석목은 바로 채아를 부른 뒤, 청익비차에 여의를 태워서 적염성(赤炎城) 방향으로 날아갔다.
두 시진이 지나자 앞에 검은 점이 보였다.
“석 형, 저기가 적염성이에요.”
여의가 그 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이고 수인을 맺어 속도를 냈다.
검은 점은 가까워질수록 땅 위에 자리 잡은 거대한 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적염성은 규모를 보니 결코 창욱성보다 작지 않았다. 이곳의 건축풍은 아주 거대해 성벽이 무려 백 장 가까이 높았다. 성벽은 네모난 붉은색의 거대한 바위로 쌓아 올린 것이었는데, 그 바위 하나하나가 거의 작은 집 한 채만큼이나 컸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성의 내부는 거리가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양쪽에는 수많은 건물이 있었으며, 행인들은 마치 개미처럼 작아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성 중앙에 우뚝 솟은 검은 산봉우리였다. 구름을 뚫고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자세히 보니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건물들이 빼곡했다.
거대한 성문 꼭대기에는 적염성이라는 세 글자가 은은한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적염성은 붉은색의 거대한 짐승이 엎드려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주위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화산들도 적염성과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와!”
채아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적염성은 역시 듣던 대로군요.”
석목도 눈앞의 거대한 성을 보며 감탄했다.
“적염성이 서하대륙에서 제일 큰 성은 아니지만,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지요.”
여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석목은 그런 여의에게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관상으로 느껴지는 웅대함과 기세가 창욱성을 훨씬 뛰어넘는 건 분명했다.
“일단 성으로 들어가시죠.”
석목은 그렇게 말하면서 청익비차를 착륙시켰다. 두 사람은 비차에서 내려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
공중에서는 섬광이 번쩍이더니 성문 입구로 떨어지곤 했다. 거대한 성벽에는 주성문(主城門) 말고도 크고 작은 입구가 많았다.
여의는 석목을 데리고 그중 비교적 작은 입구로 갔다. 두 사람은 미리 와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뒤로 가서 섰다.
석목은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선천 정도 되는 경지에 얼굴은 하나같이 세속에 물들어서 사나운 모습이었다.
“모두 일반 수련자인가?”
석목은 속으로 조금 의아해했다.
줄을 선 사람들은 빠르게 이동했고, 두 사람은 곧 영석을 지불하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곧장 어느 저잣거리로 향했다. 거리는 매우 넓었고 정리도 잘 되어있었다. 바닥에 깔린 검붉은 석판에서 은은한 열기가 올라와서 성 안의 온도는 바깥보다 훨씬 높았다.
“적염성 가운데 있는 저 검은 봉우리는 원래 거대한 분화구였어요. 이곳은 더운 축에도 들지 않죠. 가운데로 갈수록 온도는 점점 더 높아집니다.”
여의가 석목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말했다.
석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염성은 기구를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라, 이런 곳에 지어진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길 양쪽에 있는 상점들은 절반 이상이 대장간과 무기 상점이었다.
“이곳에는 평범한 물건들만 있어서 볼 게 없어요. 적염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는데 외성은 주거지역이라 조용하고, 대형 무기 공방이나 상가는 내성에 모여 있죠.”
여의가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석목은 생각에 잠겼다. 방금 지나온 상점들에서는 법기까지 진열해놓고 팔고 있었다. 그것들이 평범한 물건이라면 진짜 좋은 물건은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인가? 설마 대놓고 영기를 파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