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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계지문-287화 (287/916)

287화. 대체

“사실 가르침을 청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노인의 말에 석목도 사양하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얘기해보시오.”

노인이 말했다.

“혹시 적염성에서 화강석을 살 수 있는지요?”

석목이 물었다.

“화강석은 대륙의 동부에서 생산되는 물건인데, 그곳은 적염성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품계도 낮아서 영기를 단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 안에는 남아 있는 게 없을 거요. 만약 있다고 해도 그 양이 많지 않을 것이고. 그런데 그건 어디다 쓰시려고?”

노인은 수염을 만지면서 물었다.

석목은 잠시 망설이다가 화강석으로 영화진을 설치하려는 계획을 이야기했다.

“혹시 영화법진을 보여줄 수 있소? 노부도 진법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 대체 가능한 다른 재료가 있는지 보리다.”

노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석목은 안색이 밝아지며 옥간을 꺼내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노인은 옥간을 받아 정신력을 주입시켰다.

일각이 지나서 노인이 옥간을 거두며 말했다.

“화강석은 단지 법진을 견고히 해서 원기가 과도하게 소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쓰는 거지요. 그러니 다른 화속성 광석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소.”

“무슨 광석이요?”

석목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화염정(火炎晶)이오. 화염정을 이 법진에 쓴다면 훨씬 더 좋은 효과가 있을 거요. 하지만 화염정은 고가의 법기와 영기를 제련하는 재료라서 그 가치가 매우 높소. 이렇게 많은 양이라면 더욱 많은 영석이 필요하겠지. 도움이 필요하면…….”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석목은 노인의 말도 끝나기 전에 예를 갖추며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껄껄 웃으며 별말 없이 옥간을 석목에게 돌려주었다.

“공서 선생님, 선화거의 제련 기술이 일품이라고 들었는데, 한 가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석목이 옥간을 받으면서 물었다. 그리고 손을 흔들어서 파천궁과 녹색 망토를 꺼냈다.

노인은 파천궁을 잠시 훑어보더니 바로 옆에 있는 녹색 망토로 눈길을 돌렸다. 녹색 망토를 보는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는 망토를 두 손으로 어루만지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놀라는 기색이 점점 더 짙어졌다.

석목은 그런 노인의 표정을 보고 방해가 될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노인은 녹색 망토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

“이런 기묘한 착상이 들어간 제조법을 보다니 참으로 눈이 즐겁구려. 석 도우는 이 망토를 어디서 얻었소?”

노인이 물었다.

“탐험을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었는데, 저도 내력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석목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공서 선생님, 보시다시피 망토가 낡았는데 혹시 공방에서 수리할 수 있을까요?”

석목이 물었다.

“보기 드문 진귀한 보물이긴 하나 전혀 방도가 없지는 않지요. 다만 몇 가지 희귀한 목속성 영재(靈材)가 필요합니다. 다른 재료들은 그나마 손쉽게 얻을 수 있는데, 신왕목(神王木)은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재료라 구하기가 까다롭습니다.”

노인이 조용히 말했다.

“신왕목이요? 혹시 이 나무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석목이 노인의 말을 듣고 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탁자 위에 곧 사람 머리 크기의 녹색 나무토막 하나가 나타났다. 후새뢰가 창욱성 경매에서 낙찰 받은 신왕목이었다.

노인의 시선이 신왕목으로 향하더니 순간 두 눈이 번쩍였다.

“맞습니다. 신왕목이군요!”

노인은 신왕목을 건네받아서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그의 얼굴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것이 있으면 어디까지 복구할 수 있을까요?”

석목이 물었다.

“망토가 섬세하긴 하지만 약간 파손된 정도라 완전히 복구할 수 있을 거요.”

노인이 말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참, 그리고 이 파천궁을 영기 등급으로 올릴 수 있을까요? 재료는 제가 준비했습니다.”

석목이 손을 흔들자 뱀 요수의 힘줄을 포함해 등급이 높은 재료들이 탁자 위에 나타났다. 그중에는 뱀 요수의 소굴에서 찾은 붉은색 정석도 있었다.

“지계 요수의 힘줄! 아, 그 뱀 요수의 것이로군요? 이것은 곤오염치철(昆吾焱熾鐵)!”

노인의 시선이 탁자 위를 한번 휩쓸다가 붉은 정석에 꽃혔다. 그는 놀라며 말했다.

“십만화산에서 우연히 얻은 광석입니다. 귀한 건가요?”

석목이 물었다.

노인의 눈에는 뜨거운 빛이 타오르는 듯했다.

“그렇습니다. 곤오염치철은 화속성 중에서도 일품인 광석이라오. 충분한 양만 있으면 법보도 만들 수 있소. 영기 제련에 쓰기에는 아까운 재료이긴 하지만.”

노인은 붉은색 정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조언 감사드립니다만, 이 활도 저에게는 매우 중요한 물건이라서요.”

석목이 말했다.

“석 도우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해드리지요. 뱀 요수의 힘줄과 곤오염치철이 있으니 영기로 격상시키는 데는 문제가 없소.”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비용은 얼마나…….”

석목이 물었다.

“석 도우, 이 망토가 노부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는구려. 만약에 성공적으로 수리를 한다면 노부의 수련 기술 또한 한 단계 향상될 테니, 그보다 좋은 보수가 어디 있겠소? 비용은 따로 받지 않고 남은 신왕목과 곤오염철치로 대신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노인이 망토를 들고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하지요."

석목이 빠르게 대답했다.

노인은 석목과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뒤, 망토와 파천궁, 그리고 재료들을 챙겨 떠났다.

석목은 노인을 배웅하고 바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자리에서 숨을 들이쉬더니, 청익비차를 타고 성 안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시내에서 가장 큰 재료 상점인 백호 상점에 도착해 그 안으로 들어갔고, 상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석목이 상가에 들어서자 흰색 옷을 입은 점원 여러 명이 그를 보았다. 그러나 석목이 인족인데다 차림새가 평범했기에, 그들은 서로를 몇 번 쳐다보더니 아무도 응대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적염성에는 여의처럼 볼품없는 사람들도 많아서 재료를 구한다 해도 작은 규모의 거래일 테니, 그들의 그런 반응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석목은 그들에게 개의치 않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상점 안의 규모는 선화거보다 몇 배나 컸다. 수많은 진열대 위에는 각종 재료가 나열되어 있었다. 영초, 영재, 광석, 요수 재료 등 없는 게 없어서 석목처럼 식견이 풍부한 사람도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때 십대로 보이는 젊은 점원 한 명이 망설이다가 석목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

“손님,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석목이 물었다.

“혹시 화염정이 있나요?”

“화염정은 십만화산의 특산품 중에서도 진귀한 광석이니 당연히 있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세요?”

젊은 점원은 화염정이라는 말을 듣더니 눈을 크게 뜨고 급히 말했다.

석목이 필요한 양을 말하자, 젊은 점원은 숨을 가쁘게 쉬더니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너……너무 많은 양이라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잠시만 앉아계시면 윗사람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석목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다른 점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해했다.

* * *

일각 후, 석목은 여러 점원의 배웅을 받으며 상가를 나섰다.

창욱성 경매에서 영석을 많이 벌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에서 꽤 난처할 뻔했다.

‘영석이 좋긴 하구나.’

화염정을 사긴 했지만, 공서 선생의 말대로 화염정은 방금 폭발한 화산 입구에서만 소량을 얻을 수 있는 광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이 매우 비쌌다. 화염정은 같은 크기의 화강석 가격의 열 배가 넘었다. 물론 그만큼 효과는 훨씬 뛰어났다.

석목이 수련하려는 구전현공의 첫 단계는 갖춰야 하는 환경에 대한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다. 그래서 석목은 내내 영화진의 효과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화염정을 손에 넣은 만큼 걱정을 덜게 되었다.

다만 화염정을 필요한 만큼 사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영석의 삼할을 소비해야 했다. 또한 영화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화속성 영석이 필요했기에, 이또한 적지 않은 지출이 될 것이었다.

석목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청익비차를 타고 다른 상점으로 날아갔다.

* * *

19호 용암지.

석목은 중급 화속성 영석을 바닥에 홈이 팬 곳에 끼워 넣었다.

그는 용암지 주변의 칠흑 같은 바닥을 모두 원형 법진으로 가득 메웠다. 화강석은 화염정으로 대체했다.

모든 홈을 영석으로 메우자 갑자기 법진의 전체 표면에 옅은 붉은 빛이 생기며 윙윙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용암지의 중앙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용암이 빠른 속도로 돌면서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용암지 안의 온도가 차츰 상승했다. 동시에 공기 중에 있는 화속성 영기도 짙어졌다.

석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서 선생의 말대로 영화진법은 순조롭게 만들어졌고, 효과도 훨씬 좋았다.

석목은 석실 한 모퉁이의 돌탁자 위에 눈을 꼭 감고 누워 있는 채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주위에 이 척 정도의 작은 진법을 설치했다.

채아는 며칠 전부터 잠들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아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예전에도 한 번 있었던 터라, 석목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잘 자거라.’

석목은 채아의 보송보송한 머리털을 살며시 만지고는, 용암지 부근에 있는 영화법진 한가운데로 가서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고 구전현공 첫 단계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공간의 열기가 불가사의할 정도로 올라갔고, 사방팔방에서 뜨거운 열기가 몰려와 온몸을 휩쓸기 시작했다.

석목의 온몸에서 뜨거운 피가 들끓는 듯했다. 그의 옷은 순식간에 타올라서 전신이 거의 드러나 있었다. 이마에는 핏줄이 솟아오르며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석목은 고통을 참으며 묵묵히 공법을 연마했다.

* * *

시간은 계속 흘렀다. 어느새 용암지 한구석에 희뿌연 하얀 돌무더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중앙의 영화진에는 넘치는 화속성 영력이 허공에서 무수히 많은 형광 점으로 변했고, 그것은 약동하다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석목의 몸이 마치 불꽃에 휩싸인 듯 점점 붉어지더니, 마치 화염에 타듯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그의 검고 마른 왼손이 거센 화염 속에서 부풀어 오르더니 원래의 크기로 회복되었다. 체내에서 뜨거운 피가 끓어오르며 진기가 단전을 뚫고 온몸으로 퍼졌다.

석목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비결을 외우며 진기를 왼손 손바닥에 주입했다.

그러자 까맣던 왼손이 점점 빨갛게 변하더니, 그 표면에 불이 붙은 해탄(骸炭:고체 탄소 연료) 마냥 밝고 붉은 무늬가 줄줄이 생겨났다. 이어 그 위에서 은은한 금빛이 약동하면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러자 천근만근이던 왼손이 다소 가벼워진 듯했다.

그러나 곧이어 참기 힘들 정도로 손바닥이 계속해서 부풀어 오르더니, 경맥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석목은 그 상태로 한참을 참았다. 그의 왼손은 붉고 밝은 빛을 내면서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그러자 주변 허공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뿜어져 나온 뜨거운 물결이 주위의 암벽에 닿아 점점 붉게 변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용암이 흐르면서 암벽 전체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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