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따라가다
석목은 한참 먹고 마시고 있던 채아를 아무 말 없이 낚아채고는 그대로 내려가서 주점을 나섰다.
“먹을 만큼 먹었으면 이제 일 좀 해.”
석목은 멀어지고 있는 회색 옷의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채아에게 말했다.
채아는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로 입을 삐쭉이며 투덜거렸지만, 그 사람의 뒤를 따라 날아갔다.
석목은 급하지 않게 천천히 채아와 시야를 공유하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반 시진이 지나지 않아서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비교적 한적한 대저택으로 가서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채아는 저택 근처에 있는 건축물의 꼭대기로 올라갔고, 채아의 눈에서 흰 빛이 번쩍이는 순간, 그의 눈에 벽들이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택은 비교적 넓었다. 십여 개의 방이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분주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사람의 몸에 짐승의 머리를 하고 야생성이 넘치는 요기를 발산하는 요족이었다. 이곳은 아마도 요족들이 쉬어가는 성 안의 전용 객잔 같은 곳인 듯했다.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저택으로 들어가더니 몸에 걸친 겉옷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사람 몸에 뱀 머리를 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두 눈은 초록색으로 빛나고 얼굴은 비늘로 뒤덮여 있었으며, 양 어깨에도 촘촘한 흑색 비늘이 덮인 선천 경계의 뱀 요족이었다.
대부분의 요족은 뱀 요족이 들어오자 그저 한번 힐끗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차가운 성격을 가진 뱀 요족은 이런 분위기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석목은 저택의 수백 장 밖에서 골목의 벽에 기대어 있었고, 채아를 통해 모든 상황을 지켜본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었다.
“채아, 이제 돌아와.”
그의 말에 채아가 잠시 뒤 날아서 돌아왔다.
“석두, 최근 십여 일 동안 줄곧 희한하게 생긴 요족들을 따라다녔는데, 저 뱀 요족은 거의 며칠을 따라다녔잖아.”
채아가 석목의 어깨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응, 거의 다 됐어.”
비록 석목의 말이 조금 두서가 없기 했지만, 채아는 이미 진즉에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너는 저 뱀 요족을 집중적으로 따라다니면 돼.”
“알았어!”
채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 *
눈 깜짝하는 사이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석목은 그 기간 동안 매일 적염성의 큰 상점을 빈번하게 드나들었다. 그리고 물건을 사고 남는 시간에는 여의가 머무는 곳에서 부적을 제작하며 시간을 보냈다. 용암지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하루는 석목이 조용히 부적을 제작하고 있는데, 돌연 흰 빛이 그의 몸을 스쳤다.
그는 잠시 멈칫하고는 손의 법필을 내려놓고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 흰 진판이 나타나면서 그 위에 흰 색의 글자가 떠올랐다.
석목은 글자를 훑어보고는 기뻐하며 밖으로 나갔다.
반 시진 후, 그는 적염성의 어느 주점 이 층에 도착했다.
지금은 끼니때가 아니라서 이 층에는 손님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창가에 앉은 두 사람뿐이었는데, 한 명은 키가 작은 중년 남자였고 다른 한 명은 전신을 검은 옷으로 휘감은 사람이었다.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의 형태를 보니 묘령의 여자가 분명했다.
이 층으로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던 석목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향했다. 그러나 그는 곧 눈을 돌리고는 다시 앉을 자리를 찾았다.
바로 그때, 중년의 남자가 일어나며 말했다.
“석 선배.”
그의 목소리는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젊었다.
석목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중년 남자를 보며 말했다.
“너는…… 후새뢰?”
중년 남자의 몸에서 갑자기 빛이 번쩍였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그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 뭔가 소리가 나더니 키도 수 촌 정도 커졌다. 그는 바로 후새뢰였다.
“네 역용술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는구나. 나도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석목이 말했다.
“석 선배, 전언을 받자마자 바로 달려왔습니다. 다만 여정 중에 문제가 생겨서 며칠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후새뢰가 말했다.
“괜찮아.”
석목은 손을 내저으며 후새뢰의 곁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인물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 분은 누구지? 네 지인인가?”
후새뢰는 석목의 물음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을 비추더니, 즉시 머리를 저었다.
“제가 어찌 감히 외부인을 데리고 선배를 만나러 오겠습니까? 다만 오는 길에 저 여자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는데, 제 실력으로는 도저히 따돌릴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두었습니다.”
후새뢰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그 말을 듣고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때 줄곧 앉아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일어났다. 그는 은쟁반에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깔깔깔! 목 오라버니, 제가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하겠어요?”
그 사람이 머리에 두른 검은 두건을 벗으며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냈다.
“당신은!”
석목의 눈이 커졌다.
눈앞에 있는 여자는 다름 아닌 영월동이었다.
“목 오라버니, 오랜만이네요. 날 보고 싶지 않았어요?”
영월동은 석목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영 소저였군요. 저를 찾아오시다니 무슨 일입니까?”
석목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나를 보고 싶지 않았나 봐요?”
영월동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바로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더니, 석목을 훑어보면서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목 오라버니, 이미 지계에 들어섰군요. 잘 됐네요.”
영월동이 기뻐하며 말했다.
후새뢰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동자에 기쁨의 빛을 드러냈다.
석목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서 담담하게 영월동을 보고 있었다.
“흥! 몇 년 못 봤는데 그새 왜 이렇게 차가워진 거죠? 물론 나는 그런 오라버니의 성격을 좋아하지만요.”
영월동이 툴툴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석목은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앉았다.
“말해 봐요. 멀리서부터 후새뢰를 미행해서 나를 보러 오다니, 무슨 용무가 있는 겁니까?”
석목이 물었다.
영월동이 살포시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래보여도 멀리서 목 오라버니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려고 온 거예요. 설마 삼 년 전 종수 장로가 어떻게 실종된 건지 궁금하지 않아요?”
그 순간 석목의 안색이 변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영월동의 두 어깨가 그의 강철 같은 큰 손에 꽉 잡혀 있었다.
“수아를 누가 데려갔는지 아는 겁니까?”
석목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영월동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아……아파요. 이것 좀 놔주세요!”
석목은 잠시 멍해 있다가 급히 영월동의 어깨를 놔주었다.
“미안합니다.”
영월동은 석목을 한번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살짝 어둡게 가라앉았다가 곧바로 평소대로 돌아왔다.
“영 소저, 그날 종수를 누가 데려갔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석목이 공손하게 말했다.
“좋아요. 일전에 목 오라버니가 나를 도와준 걸 봐서 알려줄게요. 종 장로 실종의 배후에 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유안이에요.”
영월동이 말했다.
“유안?”
그 말을 들은 석목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맞아요. 이건 내가 창욱성에 있는 모든 명월교 사람을 동원에서 간신히 알아낸 정보니 절대 틀릴 리 없어요. 거기다 그날 직접 움직인 게 바로 유안 본인일 수도 있어요.”
영월동은 장담하듯 말했다.
그러나 석목은 영월동을 슬쩍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월동은 석목이 뭔가 석연찮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급히 말했다.
“목 오라버니, 만약에 종 장로를 구하고 싶다면 우선 유안을 제거해야 해요. 아니면 나와 손을 잡고 유안의 악행을 다 폭로하는 건 어때요?”
석목이 침묵을 깨고 물었다.
“유안이 종수를 데려갔다고 했는데, 그 증거는 있습니까?”
영월동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게……. 나는 그냥 정보를 입수한 것뿐이에요. 유안은 너무 교활해서 아직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어요.”
“영 소저, 증거도 없이 그렇게 말하면 진짜라고 믿기 힘듭니다.”
석목이 말했다.
석목은 종수를 데려간 이가 유안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비록 그 신비한 여인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유안은 절대 아니었다. 심지어 그녀는 이쪽 세계의 사람조차 아닌 것 같았다.
“목 오라버니……. 종 장로가 위험에 처했는데도 구하려 하지 않다니, 그런 남자인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설마 유안이 두려운 거예요?”
영월동이 석목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영 소저, 그런 억지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거짓말까지 하면서 저랑 손을 잡고 유안을 상대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석목이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영월동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는 변명이 흘러나왔다.
“내가 무슨 가짜 정보라도 흘렸나요?”
“누군가 수아를 데려갈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녀를 데려간 사람은 분명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석목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영월동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좋아요, 방금 한 말은 거짓말이라는 걸 인정할게요. 다만 나도 방법이 없었어요. 지금 유안과 맞서는 것을 도와줄 사람은 목 오라버니밖에 남지 않았어요.”
영월동은 처연한 얼굴이 되더니 물기 가득한 눈으로 석목을 쳐다보았다.
석목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비록 그의 심지가 아무리 굳건하다고 해도, 영월동의 저런 표정을 보니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다만 그는 영월동이 얼마나 영악한 면이 있는지 떠올리고는, 마음속의 측은한 마음을 지워버렸다.
“그렇게 가엾은 표정을 지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시죠. 왜 유안과 싸워야 합니까?”
석목은 평온한 말투로 물었다.
그는 유안에 대해서는 항상 경계심을 가졌다. 그는 경계도 높고 실력도 출중했다. 만약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와 충돌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여의가 전해온 소식을 생각했다. 그래서 영월동을 통해 유안이 자신의 계획에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영월동은 처연한 표정을 거두고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우리 명월서교와 유안의 명월동교 사이의 일은 목 오라버니도 알고 있겠죠. 최근 삼 년간 유안은 교단을 위해 수차례 공을 세웠는데, 그래서 아버지가 그를 점점 신뢰하게 됐어요.”
석목은 그녀의 말을 듣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새뢰도 다시 창가 자리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바로 일 년 전, 유안이 가져왔는지 몰라도 공법 서적을 가져왔고, 그러자 아버님은 마치 보물을 얻은 것처럼 바로 폐관 수련에 들어가셨어요. 교단의 일을 유안에게 맡기고 말이에요. 더 화가 나는 건 유안이 아버지에게 나와 혼인하고 싶다고 말한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걸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어요. 나는 당연히 그게 싫으니까 그대로 도망쳐 나왔죠.”
영월동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의 눈에서 마치 불이 나고 있는 것 같았다.
“혼인하기 싫어서 도망치신 거군요.”
석목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 놓인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맞아요. 나는 목 오라버니에게 시집가고 싶어서 오라버니를 따라간다는 편지를 아버지에게 남기고 나왔죠. 아마 지금쯤은 사람을 풀어서 우리를 찾고 있을 거예요.”
영월동이 담담하게 말했다.
순간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마시던 차가 목에 걸려서 기침을 해댔다.
“그……그게 정말입니까?”
석목은 간신히 진정한 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흥, 당연히 농담이죠. 내가 진짜로 당신을 따라다닐 거라고 생각했다니, 꿈도 크네요. 난 그런 걸로 장난치지 않아요.”
영월동이 웃으며 말했고, 그 말에 석목은 한시름 놓았다. 그는 명월교의 살수들에게 쫓기는 것만은 사양이었다.
영월동은 비록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석목의 표정을 보고는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