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계지문-297화 (297/916)

297화. 진짜 원왕과 가짜 원왕

중년의 야만족 강시가 조금 더 빠른지 먼저 석목 앞에 도착했다. 그는 다섯 손가락을 벌려서 석목의 머리를 쪼개려 했다. 썩은 내를 동반한 다섯 줄기의 검은 바람이 날아왔다.

석목은 살짝 움직여서 중년 야만족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그가 중심을 채 잡기도 전에 다른 쪽에서 악취가 났다. 이번에는 각진 얼굴의 야만족이 석목의 뒤쪽에 나타나서 두 손을 휘둘렀다.

그의 열 손가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손톱이 몇 개는 길어졌다. 그것은 음침한 녹색 빛을 띠며 석목의 퇴로를 모두 차단하고 날아왔다.

그때 중년의 야만족 강시도 다시금 덮쳐왔다.

석목은 차가운 눈으로 왼손을 들었다. 끼고 있던 장갑은 이미 사라져 있었고, 불에 새까맣게 타버린 것 같은 손바닥이 드러났다.

쾅!

굉음과 함께 그의 왼손에서 눈부신 붉은 빛이 나타났다. 그것은 넘실거리는 화염으로 변하더니 엄청난 고온을 내뿜었고, 그 열기에 주위의 공기마저 타들어가는 듯했다.

석목이 낮게 일갈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각진 얼굴의 강시가 내민 손가락이 그 주먹과 부딪히며 마디마디 부서졌다.

이어 붉은 빛이 번쩍이더니 석목의 주먹이 각진 얼굴의 강시 눈앞에 나타났고, 강시는 급히 양팔을 회수하며 교차해서 석목의 주먹을 막았다.

쾅!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각진 얼굴의 강시의 몸은 실이 끊어진 연처럼 날아가 버렸고, 그대로 석실의 벽에 부딪혀서 큰 구멍을 만들었다.

석목은 몸을 돌려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중년의 강시를 보았다. 그리고 아직 불타고 있는 왼손을 들어올렸다.

순간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크게 놀라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중년의 강시가 즉각 멈춰 섰다.

벽에 생긴 구멍에서 각진 얼굴의 강시가 발버둥을 치며 힘겹게 빠져나왔다. 그의 두 팔은 이미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여 있었고, 하얗게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걸 본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두 야만족 강시는 지계의 경지에 이른 이들이었다. 그들의 신체 강도는 상급 영기에 비할 정도인데 일격에 양팔이 부서져버린 것이다.

“하하. 유 형, 아무리 그래도 구면인데, 제가 몰래 따라왔다고 해도 살수를 펼칠 필요까지야 있습니까?”

석목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어 붉은 빛이 그의 몸을 감쌌고, 잠시 뒤 붉은 빛이 사라지자 석목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왼손의 화염이 사라지자 그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지만, 곧 평소대로 되돌아왔다.

방금 석목은 왼손의 힘을 조금만 내보인 것이라 진기의 소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각진 얼굴의 강시는 이미 곤죽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당신은…… 석목!”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은 크게 놀라더니 잠시 침묵했다, 잠시 뒤 그가 두건을 거두자 붉은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오는 청년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 준수한 얼굴의 주인공은 바로 유안이었다.

“석 형께서 저를 따라 이곳까지 오다니, 무슨 목적입니까?”

유안이 물었다.

“제가 유 형을 따라온 건 맞지만, 저는 다른 목적이 있으니 유 형이 궁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유 형도 이곳 요족의 금지까지 놀러오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석목이 입을 열고 말했다.

유안은 눈을 반짝이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석실이 크게 흔들리더니 땅에 있는 금색 부문이 눈부신 금광을 토해냈다.

그러자 돌연 유안에 의해 열렸던 석문이 닫히고는, 그 위로 금색 부문이 나타나서 석문을 단단히 잠가버렸다.

석실 안의 벽 위로 떠오른 부문은 금빛을 발산하며 천천히 퍼지더니 순식간에 온 석실을 뒤덮었다. 석실이 마치 금색 새장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석목과 유안은 크게 놀라서 주위를 살폈다.

“너희 두 놈, 겁도 없구나. 감히 이곳에서 그렇게 손속을 교환하다니. 여기는 이미 금제가 발동했다. 도망갈 생각은 접거라.”

십가가에 매달린 형체가 걸걸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석목과 유안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굳었다.

석목이 입을 쩍 벌리자 금전검이 입에서 쏘아져 나왔다. 그것은 십 장 크기의 거대한 금색 검으로 변했다.

그가 손으로 법결을 하자 금전검이 열 개로 늘어나더니 그대로 석문을 내리쳤다.

쾅! 쾅!

연이여 폭음이 울리며 금빛이 석문을 감쌌다.

그러나 잠시 후, 금빛이 사라지고 나자 석문에는 조금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석목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금전검을 회수했다. 그 모습에 유안도 덩달아 안색이 굳어졌다.

“선배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석목이 십자가에 매달린 자에게 예의를 갖추며 물었다.

“내가 바로 창원왕이다.”

인간의 형태를 갖춘 그 고깃덩어리는 자조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천하를 호령하는 기세가 여전히 담겨 있었다.

석목과 유안은 그의 말에 멈칫했다.

“창원왕? 말도 안 됩니다. 그 자는 지금 능천봉 아래에서 화형대전을 주최하고 있는데, 당신은 무슨 이유로 그런 거짓말을 하는 겁니까?”

유안이 말했다.

“웃기는군. 그 자는 가짜다!”

십자가에 매달린 자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며 분노했다.

“가짜라고!”

석목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의 귀에 유안의 말이 들려왔다.

“석 형, 거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 자는 요기를 내뿜고 있는 걸 보니 요족일 것이고, 보아하니 가죽이 벗겨진 것 같군요. 내가 아는 비술 중에 요족의 가죽으로 상대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면 동등한 경지의 상대도 속여 넘길 수 있습니다.”

석목은 유안을 흘깃 보고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석 형, 나와는 딱히 적대적인 관계도 아닌데, 지금 여기는 요족의 금지이고 우리는 매 순간 살얼음 위를 걷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죠. 이곳에서 대승적인 차원에서 동맹을 맺는 건 어떻겠습니까?”

유안이 말했다. 석목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유안의 눈가에 기쁜 기색이 스쳤으나 금세 사라졌다.

“귀하가 만약 진짜 창원왕이라면, 당신을 사칭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유안이 입을 열어 물었다.

“당연히 황룡, 그 비열한 늙은이지!”

십자가에 매달린 고깃덩어리는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그의 말에는 뼈를 깎는 듯한 한기가 서려 있었다.

“황룡……?”

석목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런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안은 처음에는 눈을 찌푸리다가, 점점 눈을 등잔 만하게 크게 뜨며 말했다.

“황룡! 설마 통천선교의 부교주 황룡진인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놈이 아니면 누구겠느냐!”

십자가에 매달린 자가 한이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석목은 이마를 찌푸리며 유안을 바라보았다.

“석 형은 동쪽 대륙 출신이라 당연히 들어보지 못했겠지요. 그 사람은 통천선교의 부교주였는데, 삼백 년 전에 실종되어서 이제는 아는 이도 별로 없습니다. 황룡진인은 경지로 따지면 그 무진 도인보다도 위라고 합니다.”

유안이 설명했다.

석목은 그의 말에 경악했다.

“거기 있는 너희 둘, 이곳의 법진은 이미 발동됐다. 황룡 그 망할 놈이 돌아와서 누군가 침입했다는 걸 알게 되면 너희는 죽은 목숨이다. 살고 싶다면 나의 금제를 풀어라. 그럼 너희를 데리고 탈출해주마.”

십자가에 매달린 자가 말했다.

석목과 유안은 그 말에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희가 풀어드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다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명월서교의 진신 법보인 추선대가 능천봉에 있습니까?”

유안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추선대……. 그렇군. 네놈은 그 물건을 찾으러 잠입한 것이로군. 그렇다. 그 법보는 능천봉의 비밀창고에 있다. 너희가 나를 도와주기만 한다면 내가 너희를 데리고 그 곳으로 가주마. 거기서 너희가 원하는 보물을 고르거라. 그 비밀창고에는 숨겨진 전송법진이 있으니 모두 안전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게다.”

그 고깃덩어리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유안은 그 말에 크게 기뻐하며 아무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저할 것 없이 빨리 시행해라. 언제 황룡이 들이닥칠지 모른다.”

유안은 막 대답하려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석목을 보았다.

석목은 한쪽에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석 형, 왜 그럽니까?”

유안이 물었다.

석목은 유안을 무시하고 십자가 위의 창원왕을 보며 물었다.

“먼저 선배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냐?”

창원왕이 말했다.

“방금 말씀하신 능천봉의 비고라는 게 혹시 이곳 밀실 안에 있는 겁니까?”

석목은 창원왕을 보며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어 물었다.

창원왕은 그의 말에 놀랐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안은 그를 보고 조금 의아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제안하신 걸 받아들이겠습니다.”

석목은 한시름 놓았는지 그렇게 말했다.

창원왕이 비록 천위의 실력자라고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그와 유안이 손을 잡는다면 배신을 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선배님, 그럼 우리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유안이 물었다.

“나를 묶고 있는 건 네 개의 박요정(縛妖釘: 요괴를 결박하는 못)이다. 이것이 내 전신의 기맥을 틀어막고 있다. 박요정은 지면에 있는 저 금빛 진법과 이어져 있으니, 박요정을 뽑고 싶다면 우선 저 진법부터 해제해야 한다.”

말을 마친 창원왕은 심호흡을 하고는 몸에서 청색 빛을 내뿜었다.

그러자 네 개의 박요정이 순식간에 초록빛을 반짝이더니 하나로 이어져서 창원왕의 기를 제압했다.

석목과 유안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들은 네 개의 박요정에서 이어진 연한 초록빛이 석실 구석의 동서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네 개의 구석에는 반 치 정도 높이의 흑색 기둥이 솟아 있었는데, 초록빛은 바로 그곳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게 바로 네 개의 강룡장(降龙桩)이다. 저걸 부수어 버려라……. 그럼 박요정과 진법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다…….”

창원왕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거의 혼절하기 직전인 것 같았다.

석목과 유안은 시선을 교환한 뒤, 각자 남쪽과 북쪽에 있는 기둥을 향해 갔다.

석목은 한 손을 휘둘러서 금색검으로 남쪽의 검은 기둥을 베었다.

충격을 받은 흑색 기둥에 흑빛이 나타나더니 하나의 작은 귀물로 뭉쳐졌다. 두 눈이 새빨갛고 겉모습이 괴이해 보이는 게 입을 쩍 벌리고 금전검을 물었다.

석목은 순간 철렁하며 손짓으로 금전검을 멈춰 세웠다. 흑색의 귀물은 허공을 물더니 금전검을 향해 포효했다.

석목은 입으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자 금전검의 빛이 번쩍이더니 수 줄기의 금색 검기가 질풍처럼 쏘아져 귀물을 베었다.

귀물은 걸걸한 웃음소리를 내더니 입을 쩍 벌리고 검은 기를 내뿜었다. 금색의 검기는 그 기를 만나자 마치 부식되듯 빛을 잃었다.

석목은 그 광경을 보고 크게 놀랐다.

바로 그때, 반대쪽에서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은 고개를 돌려서 그쪽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반대쪽에서 나타난 귀물이 유안의 흰색 단도를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단도는 금세 빛을 잃고 귀물에게 삼켜졌다.

석목은 다시 시선을 돌려 앞에선 귀물을 보고는 한 손을 휘젓자, 열 몇개의 화구가 그대로 귀물에게 작열했다.

귀물이 또다시 웃으며 검은 기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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