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박요정과 강룡장
화구(火球)는 검은 기를 만나자 마치 물을 만난 것처럼 증발해버렸고, 검은 귀물은 남은 잔재를 재차 삼켜버렸다.
“석 형, 이 귀물은 뭔가 기이하군요. 모든 공격을 흡수하고 삼키는 것 같습니다.”
유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안은 두 야만족 강시를 부려서 동쪽과 서쪽에 있는 두 개의 강룡장을 공격해보았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유 형은 저 귀물이 대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석목이 물었다.
“나도 이번에 처음 봅니다.”
유안이 말했다.
석목은 이마를 찌푸리고는 낮게 일갈했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화염이 방출되어 수 장 크기의 붉은 원숭이가 되었다.
그 원숭이는 몸에서 화염을 조용히 불태우고 있었고, 폭발할 듯한 기운을 분출했다.
“지금은 방법을 궁리할 시간이 없으니, 그냥 힘으로 이 강룡장을 해제해버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석목은 긴 한숨을 쉬고는 등 뒤에서 운철흑도를 뽑았다.
그가 손짓으로 법결을 하자, 머리 위에 있는 원숭이가 귀물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원숭이가 입을 벌리자 순백색의 화염이 뿜어져 나갔고, 화염은 지나간 자리의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로 강력했다. 이 화염은 마물과 죽은 영혼을 제압하는 혼원진화였다.
귀물의 얼굴에 진중함이 언뜻 떠올랐다. 그러더니 두 눈에서 핏빛을 번뜩이며 입을 열어서 무언가 저주 같은 소리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혼원진화가 귀물의 몸에 붙으려는 순간, 귀물은 고개를 쳐들더니 검고 붉은 두 가지 색이 섞인 불꽃을 토해냈다.
검붉은 화염이 연꽃으로 변하더니 혼원진화와 부딪쳤다.
우르릉! 콰쾅!
혼원진화와 검붉은 연화의 충돌은 곧 연쇄 폭발로 이어졌다. 검붉은 연화는 격렬하게 떨리다가 반쯤 깨어졌지만, 결국 혼원진화를 버텨냈다.
귀물이 미처 숨을 돌리기도 전에 그의 뒤에서 인영 하나가 솟아올랐다. 석목이 어느새 그의 등 뒤에 나타난 것이다.
석목의 손에서 붉은 빛이 반짝이며 부적 두 장이 나타났다. 붉은 빛과 영기의 파동으로 보아 상급 부적 두 장이었다.
그가 부적을 단숨에 찢자, 굉음과 함께 허공에 거대한 붉은색 화룡 두 마리가 나타났다.
화룡의 몸길이는 족히 칠팔 장에 달했다. 그것은 붉게 타오르는 전신에서 고온을 발산하며 그대로 귀물을 향해 덮쳐갔다.
그것은 바로 열염화룡 부적이었고, 석목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 최강의 불 속성 부적을 사용한 것이다.
귀물은 혼원진화를 막느라 힘을 다했는지, 두 마리 화룡을 보고는 크게 놀랐고, 그의 시선에 조급함이 어렸다.
갑자기 귀물은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더니 오른손을 들어 왼팔을 뽑아버렸다.
그리고 입으로 저주를 외우자 왼팔이 폭발하면서 검은 방패로 변해 화룡의 앞을 가로막았다.
콰쾅!
양쪽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귀물은 두 마리 화룡을 막아내자 안도하며 다시 저주를 외웠다. 그러자 검은 방패에서 굵은 촉수가 돋아나면서 화룡 두 마리를 옭아매서 방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석목은 그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급해져서 금전검을 쏘아 보냈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금전검은 십 장 크기의 거대한 검이 되어 귀물의 머리를 쪼개려 했다. 지금만큼은 금전검이 귀물에게 부식되는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수중에 들린 운철흑도가 다른 쪽으로 귀물을 베어갔다.
석목은 지계에 들어선 뒤 드디어 조금씩 운철흑도의 위력을 발휘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제 이전처럼 오락가락하지 않았다.
흑색 귀물은 크게 놀라며 입에서 검은 기운을 토해내 귀조(鬼爪)로 변해서 금전검을 막아갔다.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몇 배나 커지더니 검은 묵빛을 뿜으며 운철흑도를 잡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귀물의 오른손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흑도는 그 기세를 몰아 귀물의 가슴께를 베어서 깊은 상처를 입혔다.
석목과 귀물은 멈칫했다. 둘 다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석목은 크게 기뻐하며 팔을 휘둘렀다. 운철흑도가 번쩍이며 귀물을 계속 공격했다.
귀물은 대경실색하며 검은 빛을 발산해 보호막을 형성했다.
아홉 줄기의 검이 보호막에 부딪히며 찢어지는 소리가 났고, 보호막이 찢기면서 귀물은 검의 기운에 잠식되었다.
“아악!”
귀물은 곧 처절한 소리와 함께 스러져갔다.
그것은 조각이 났지만 곧 묵색 기운으로 변했고, 그때까지도 여전히 죽지 않고 다시 기운을 뭉쳐서 되살아나려고 했다.
그걸 본 석목의 안색이 급변했다. 그가 뭔가 하려는 순간 운철흑도가 돌연 진동하더니, 도신에서 검은 빛과 함께 흑색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강대한 흡입력을 발생시켰다.
귀물이 변한 그 검은 기운은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거기에 빨려 들어갔다.
도신의 검은 빛은 점점 옅어지더니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귀물이 사라지자 검은 강룡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있는 흑도를 멍하니 보던 석목은 고개를 저으며 마음속의 의심을 덜어냈다. 그리고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크게 일갈하더니 왼손으로 일으킨 화염으로 강룡장을 내려쳤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강룡장이 부셔졌다.
그러자 중앙의 단상 위에 있는 창원왕의 왼손에 박혀 있던 박요정 하나가 빛을 잃었다.
유안은 아직 귀물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석목 쪽의 상황을 본 그의 눈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석목은 몸을 날려서 이미 검은 귀물의 배후를 차지했다. 곧이어 운철흑도가 검은 벼락처럼 내리 꽂히며 귀물의 머리부터 쪼갰다.
귀물은 크게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검은 기운을 대량으로 쏟아내 방패를 형성했다.
그러나 방패는 운철흑도에 의해 두 동강이 나버렸고, 도광이 빛처럼 내리치며 그 귀물도 일도양단이 되었다.
두 동강이 난 귀물은 폭발하듯 부서지며 검은 기운이 되었다.
운철흑도는 다시 눈부신 검은 빛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그 기운을 삼켜버렸다.
석목이 왼쪽 손을 움직이자 붉은 주먹의 그림자가 날아가서 땅 위의 검은 비석을 내리쳤다.
쿵!
큰 소리와 함께 강룡장이 산산조각이 났다.
유안이 이제 막 한숨 돌리는데, 석목은 곧 바로 동쪽 전장으로 갔다.
유안은 상황을 파악하고 그를 따라갔다.
운철흑도는 귀물을 억제하는 기이한 효과가 있었다. 남은 두 검은 귀물을 처리하는 데는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석목과 유안이 협공을 하면 순식간에 죽일 수 있을 것이었다.
곧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마지막 강룡장(降龙桩)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자 십자가에 매달린 창원왕의 몸에 있는 마지막 못의 녹색 빛도 어두워졌다.
“오오!”
창원왕이 하늘을 향해 길게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마치 천둥소리 같았으며, 석실 중앙에서부터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에 석실 전체가 웅웅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석목과 유안은 발아래의 땅이 끊임없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놀랐다. 그리고 창원왕의 힘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창원왕의 몸에서 커다란 푸른빛이 확연히 솟아올랐다. 그 빛은 너무 눈부셔서 사람들이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푸른빛이 번쩍거리더니 네 개의 푸른 손의 허상으로 응집되었고, 그 손은 네 개의 못을 움켜쥐고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못이 하나씩 끌려 나갈 때마다, 창원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이 점점 강해졌다.
석목과 유안은 십자가의 양쪽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며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
석목은 어느새 불 속성 영석을 꺼내 손에 쥐고 조용히 진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유안은 야만족 강시 두 구를 자신의 양 옆에 세웠다.
네 개의 못이 창원왕의 몸에서 다 끌려 나오자, 그의 몸에서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마치 석실 전체가 전율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하……. 삼백 년! 무려 삼백년이로구나! 내가 드디어 자유를 찾았다!”
푸른빛이 창원왕의 피투성이 몸을 감쌌다. 창원왕은 십자가 위에서 날아서 내려오며 큰 웃음을 터뜨렸다.
석목의 안색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창원왕이 지금 발산하는 위압감은 당시의 그 무진 도인에 비해 더 강한 느낌이 들었다.
석목과 유안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상대를 제어하려는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큰 오산이었던 듯했다. 금제를 벗어난 창원왕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석목은 유안을 쳐다보았다. 유안도 때마침 그를 보았고,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는 순간 서로의 생각을 이해했다.
푸른빛 속에서 창원왕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새로운 피부가 돋아났다. 머리카락과 얼굴의 이목구비도 점차 회복되었다.
단 몇 번의 호흡 공법을 거치자 창원왕의 겉모습은 이미 회복되었다. 키가 점차 커지면서 온몸에 푸른 털이 난 원숭이의 모습이 되었다. 피부에는 주름이 뚜렷했으나, 푸른빛이 비치는 두 눈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눈앞에서 창원왕을 본 석목의 눈빛이 반짝였다.
창원왕은 비록 겉보기에는 엄청나게 늙었지만 자태에서 위엄이 느껴졌으며, 얼굴 생김새는 자신의 꿈에 나오는 흰 원숭이를 뒤따르던 네 요족 중의 원숭이를 닮았다.
석목은 비록 창원왕의 겉모습은 회복되었지만, 몸 안의 상처는 아직 완벽하게 낫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창원왕을 그가 혼자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어서 창원왕의 몸에서 푸른빛이 반짝하더니 몸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는 곧 푸른 옷을 걸친 백발의 노인으로 변했다.
백발노인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뼈마디에서 큰 소리가 났다.
그때 유안은 입을 열었다.
“창원왕 선배, 자유를 되찾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창원왕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몸을 돌려 석목과 유안 두 사람을 보았다.
유안은 창원왕과 눈이 마주치자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그 전에 창원왕의 두 눈 빛이 반짝였다. 그는 갑자기 두 팔을 들어 올리더니 석목과 유안을 향해 각각 한 손씩 내밀었다.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석목과 유안 두 사람의 앞에 파동이 일며 칠팔 장(丈)의 크기가 되는 거대한 손이 허공에 나타났다.
거대한 손바닥이 다가오기도 전에 거대한 위압감이 이미 광풍을 일으켰다.
석목과 유안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하지만 두 사람도 범인은 아니었다. 비록 창원왕이 갑자기 움직이긴 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속으로 대비를 하고 있었기에 즉각 반응할 수 있었다.
근처에 있던 야만족 강시 두 구가 유안의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커다란 소리와 함께 몸에서 회색빛을 내뿜으며 창원왕의 두 손을 향해 덤벼들었다.
희뿌옇게 빛나는 네 개의 주먹이 거대한 푸른 손바닥을 강하게 가격했다.
귀청을 찢을 듯한 큰 소리가 났다. 푸른색의 거대한 손바닥의 움직임이 갑자기 두 강시에 의해 멈추었다.
두 강시는 두 발이 땅 속 깊숙이 박힌 채 푸른색의 거대한 손바닥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그들의 팔 곳곳은 이미 찢어져서 누르스름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중에서도 각진 얼굴의 야만족은 방금 전 석목의 일격에 두 팔이 부러졌었다. 잠깐 동안 회복하긴 했지만 또 다시 부러져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두 강시는 물러서지 않고 희뿌연 빛을 내뿜었다. 그들의 몸이 푸른색의 손바닥에 의해 천천히 뒤로 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