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하늘 높이 치솟은 비밀 창고
석문 안으로 날아간 석목 일행은 깜짝 놀랐지만, 각자 몸을 추슬렀다.
석목과 유안은 석문으로 날아든 후, 비틀거리며 열 걸음이나 뒷걸음질을 쳐서 겨우 똑바로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유안의 두 강시는 땅에 부딪혀서 몇 번 구르고 나서야 비로소 똑바로 섰다.
황사 속 사람의 그림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창원왕이나 석목과 유안 모두 황사가 휩쓸고 지나간 뒤로도 다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석목은 몸을 추스르고 주위를 훑어봤다. 그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백색의 석문 뒤에는 큰 대청이 있었고, 그것은 앞서 봤던 대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못해도 백 장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사면의 벽은 석문과 같은 자재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에 빛이 보일 듯 말 듯 반짝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청 사면 전체에 금제가 걸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청 꼭대기도 하얀색 석벽으로 되어 있었는데, 마치 진짜처럼 보이는 거대한 별이 그려져 반짝이고 있었다. 그로 인해 대청 전체가 환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대청 한 가운데에는 삼 층짜리 금빛 제단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대청 주변에는 무수한 보물이 놓여 있었다. 각종 진귀한 광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는데, 이런 무더기가 공간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외에도 나무로 만든 선반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수많은 법기와 영기가 놓여서 각자의 빛을 내뿜고 있었다. 또 다른 선반 안에는 많은 약병이 있었다.
그리고 큰 항아리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밀봉이 되어서 속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농후한 약의 냄새로 보아 귀한 약재가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석목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지금껏 수없이 많은 보물창고를 보아왔다. 그러나 천오상회의 창고든 유풍곡 명월교의 보물창고든, 이곳에 비하면 그야말로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곁에 있던 유안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확연했다.
그때 황룡이 백색 석문을 통해 들어와서 그들의 앞에 내려섰다.
도도한 황사가 빠르게 수습되어 길쭉한 황색 연기로 변하더니, 점점 선명해지면서 노란 옷을 입은 중년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
노란 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는 몸매가 늘씬하고 얼굴이 희었다. 또 상당한 장신에 넓은 가슴을 가지고 있어서 선풍도골(仙風道骨), 즉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을 가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음산하고 간사한 빛이 어려 있었고, 이것은 그의 전체적인 분위기이기도 했다.
석목은 그 중년 남성을 보고 크게 놀랐다.
중년의 남성은 그저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창원왕보다 더 강했으며 큰 산이 압박하는 것처럼 숨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속으로 놀랐고, 한편으로는 의심도 들었다. 이 중년 남성은 천상계에서 온 것일까?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은 무슨 목적일까?
다음 순간, 그의 의심은 바로 해답을 얻었다.
“황룡!”
창원왕이 그 중년을 보며 이를 악물고 내뱉었다. 그는 눈에서 원한 가득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뭐라구요?”
석목과 유안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황룡도인이라는 것인가? 그럼 지금 밖에서 대전을 주관하는 사람은 누구라는 말인가?
노란 옷을 걸친 중년의 남자는 창원왕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 뒤에 대청을 돌아보는 그의 눈에서 마치 불꽃이 이는 듯했다.
그는 대청 한쪽에 있는 석목과 유안은 이곳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석목과 유안은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어떤 말을 꺼내거나 움직임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하, 능천의 비밀 창고가 뜻밖에 여기 있었군.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 창원왕, 당신네 요족들은 참 단순해. 수백 년 동안 지켜온 비밀을 내가 굳이 힘쓰지 않아도 순순히 알려주니 말이야. 하하하…….”
황룡도인은 크게 웃었다.
“흥!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네녀석이 삼백 년 동안 온갖 수를 다 써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지 않았나!”
창원왕이 대노하며 말했다.
“창원왕 당신이 기다렸는데 나도 당연히 기다릴 수 있지. 보게. 결국 이 문을 성공적으로 열지 않았나? 우리 같은 천위의 존재는 수련의 경지만 깊어지면 이깟 삼백 년쯤의 세월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황룡도인은 사방을 향해 두 팔을 펼치며 창원왕을 비웃었다.
“너같이 하찮은 도적은 내가 창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찾지 못했을 거다!”
창원왕이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하하, 어리석기는! 벌레 같은 두 놈이 능천봉에 잠입한 걸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가? 이전에 원신(元神)을 폭발시켜 나를 위협했을 때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었지. 그런데 오늘은 역으로 기회를 잡아서 너를 가둔 곳으로 그들을 들어가게 한 거다. 너는 예상대로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고 순진하게 생각해서 비밀 창고 입구를 쉽게 열어주었고. 하하…….”
황룡도인은 큰 소리로 웃었다.
창원왕은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가 여기 숨어 있을 때 밖에서 누가 대신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냐?”
석목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황룡도인은 고개를 돌려 석목을 보더니 냉소를 지었다.
“어차피 오늘이 네 제삿날이니 자비를 베풀어 알려주지! 그는 내 교우(敎友)에 불과하다. 어쨌든 여기는 요족의 성지이고 나 혼자 있으니 위험하군.”
황룡도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탐욕스러운 눈으로 중간에 있는 금색 제단을 바라보았다.
석목은 인상을 쓰며 자신도 모르게 창원왕을 바라보았다. 창원왕은 이곳에 전송법진(傳送法陣)이 있어서 능천봉 외부와 연결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창원왕은 곁눈질로 유안의 표정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당황한 기색 없이 흥분한 모습으로 제단 부근의 나무상자를 보고 있었다.
석목도 멍하니 그 상자를 바라보았다.
나무상자에는 수 촌 크기의 벽돌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떤 법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돌덩이 같았다.
유안은 석목의 시선을 느끼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는데, 유안은 갑자기 적의를 내비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석목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순간 그는 이전에 유안이 창원왕에게 추선대라는 걸 찾고 있다고 말한 게 문득 생각났다.
석목은 그 돌덩이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눈을 돌려 금색 제단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꼭대기의 붉은 빛에서 부문이 반짝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꿈속에서 본 장면을 돌이켜보니, 그 꼭대기가 바로 거대한 나무상자를 봉인해놓은 곳이었다.
석목의 몸속에서 기혈이 마치 소환을 당한 것처럼 조금씩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평정심을 회복하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석목의 귓가에 창원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의 목숨을 구하고 싶으면 나 대신 황룡을 막아주게. 외부와 연결되는 전송법진이 제단 위에 있지만, 그게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석목은 표정이 바뀌었지만 그것을 티내지 않으려 했다. 유안도 살짝 긴장했지만 주저하는 모습을 숨기려 애썼다.
“흥! 도망가려고? 꿈 깨라!”
황룡도인은 몸을 돌려 냉소를 짓더니 곧 제단 방향으로 일격을 가했다.
그를 겹겹이 에워싼 황사필련(*黃沙匹練:황사의 기(氣) 회오리)이 빛을 내더니 이삽십 장 정도 되는 노란색의 거대한 손바닥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산봉우리처럼 큰 노란색의 주먹을 만들더니 제단을 향해 내리쳤다. 제단을 단번에 파괴해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석목의 안색이 변했다. 황룡도인이 창원왕의 계획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거대한 황사 바람이 제단을 공격하려 할 때, 제단의 꼭대기의 봉인이 열리며 눈부신 흰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 빛은 빠르게 한데 뭉쳐져 재단을 휘감았다.
흰 빛은 약해 보였지만 황사 바람의 공격에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 빛은 거대한 황사 바람을 막아냈다.
황룡도인은 발끈했다. 그의 황사필련은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인 수련 끝에 만들어낸 법보로, 구곡황사(九曲黄沙)는 부드럽지만 강했고 변화무쌍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일격에 높은 산을 폐허로 만들 수 있는 정도의 힘이 있는데도, 작은 빛 하나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때 제단의 중앙에서 빛이 번득이며 한데 모이더니 희미한 흰 빛이 점점 선명해졌다. 이어 그곳에서 거대한 흰 원숭이 머리의 그림자가 비치면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금빛 눈동자를 가진 흰 원숭이는 차디찬 눈으로 황룡도인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듯한 알 수 없는 위엄이 느껴졌다.
황룡도인은 원숭이를 바라보며 한기를 느꼈다. 그는 곧 발을 구르며 뒤쪽으로 날아갔다.
황룡도인이 몸을 움직이자 흰 원숭이가 돌연 입을 벌렸다. 그러자 흰색의 음파가 뻗어나와 순식간에 황룡도인의 몸을 가격했다.
천위의 존재인 황룡도인은 몸에서 노란 빛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위기일발의 순간이 다가오자 노란색 빛의 방패를 만들어 몸을 보호했다.
쿠쿵!
흰색 음파가 노란색 방패를 가격하자 방패는 겨우 한두 호흡 정도 견뎌내더니 결국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눈 깜짝할 사이라도 황룡도인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가 두 손을 흔들자 구곡황사가 순식간에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이어 빛이 반짝이면서 구곡황사는 촘촘한 모래바람이 되어 그의 몸을 감싸 보호했다. 모래바람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놀라운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흰색 음파는 노란색 방패를 격파한 이후 계속해서 모래바람도 공격했다. 모래바람은 조금 흔들리기만 할 뿐 흰색 음파를 막아냈다.
하지만 곧이어 황룡도인의 몸이 크게 흔들렸고, 그는 뒤로 몇 보 밀려난 후 겨우 균형을 잡았다.
그 순간 황룡도인은 눈앞에 어둠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푸른색 손바닥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일으키며 살기등등하게 내려왔다.
“황룡도인, 내 창라대수인(蒼羅大手印)의 맛 좀 봐라! 죽어라!”
대청 한쪽에서 창원왕이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부르짖었다.
이어 창원왕의 옆으로 석목과 유안이 날아왔다.
석목은 붉은 빛을 내뿜으며 날개가 있는 붉은 원숭이 법상(赤猿法相)을 만들었고, 손에 든 적염대검으로 황룡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유안의 머리 위로는 천귀번의 핏빛이 뿜어져 나왔고, 금빛 해골이 깃발에서 날아올랐다. 해골의 이마에는 틈이 생겼고 그 안에 붉은 눈이 있는 게 보였다.
휙! 휙! 휙!
일고여덟 개의 굵은 핏줄기가 눈에서 터져 나왔다. 그 핏줄기는 허공을 지날 때마다 파동을 일으키며 황룡도인을 향해 용솟음쳤다.
창원왕의 거대한 손바닥이 노란색 모래바람을 휘어잡았다. 마치 쇠를 두들기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나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모래바람에서 금빛이 번뜩이더니 표면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푸른색의 거대한 손바닥에 의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창원왕, 죽고 싶어서 용을 쓰는구나!”
황사 뒤에서 황룡도인이 분노를 표출했다. 그의 몸에서 노란색 빛이 나오더니 곧바로 앞쪽의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모래바람이 번득이며 갑자기 사라지자, 이어 노란색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노란색 구름에서 무수한 금빛이 반짝이며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나더니, 흩어져서 대청의 절반을 뒤덮었다. 이것은 바로 조금 전 석실 밖에서 사용한 능력이었다.
“만리광사(萬里狂沙)!”
노란색 구름에서 황룡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원왕의 거대한 손바닥은 노란색 구름에 가려져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노란색 구름 속에서 석목과 유안의 공격은 모래바람만 일으킬 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석목과 유안, 창원왕은 공격을 멈추고 모래바람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세 사람은 모래바람의 위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 대책 없이 그 속으로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다행히 모래바람은 물보라처럼 격렬하게 소용돌이치기만 할 뿐 더 커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