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몸속에 화염이 들끓다
“창원왕,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석목이 창원왕을 보며 물었다.
창원왕은 눈을 번뜩이더니 무언가 말하려 했다.
그때 모래바람 속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한 줄기의 금빛이 번개처럼 날아와서 창원왕의 가슴을 찔렀다.
창원왕은 옆으로 피하려고 했으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공격을 온전히 피하지 못했다. 금빛의 줄기가 그의 왼쪽 어깨를 찔렀다.
창원왕은 비명을 지르며 입에서 선혈을 토해냈다. 그의 몸이 대청의 한쪽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순간 석목은 얼굴색이 변했다. 그 금빛 줄기는 금색 자갈이 사슬처럼 꿰어진 것이었다.
금색 사슬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창원왕의 몸을 뚫고 들어갔다.
펑!
이어 모래바람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굉음과 함께 금빛 자갈들이 터졌다.
그러자 사슬에 꿰인 창원왕의 몸 왼쪽에서 피와 살점들이 떨어져 나갔고, 그의 몸 절반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중상을 입은 창원왕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곧 다시 쓰러졌다.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놀란 석목과 유안은 모래바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며 두 방향으로 도망쳤다.
“도망치려는 것이냐! 이곳까지 온 이상 너희 둘은 죽어야 한다!”
모래바람 속에서 황룡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 두 줄기의 금빛이 각각 석목과 유안을 향해 다가왔다.
자신이 위험에 빠진 것을 알아차린 석목은 재빠르게 빛을 반짝이더니 불의 날개를 펼쳤다.
그렇게 날개를 펼친 석목은 불의 화신이 되어 민첩하게 방향을 전환했고, 빛의 속도로 멀리 날아갔다.
금빛 사슬 역시 번개처럼 빨랐으나 석목을 따라잡지는 못했다.
반면 석목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유안은 금빛 사슬에 곧 따라잡힐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 유안의 머리 위에서 금빛 해골 머리가 반짝였고, 그것은 그의 뒤를 보호하면서 입을 벌려 금빛 모래바람을 삼켜버렸다.
쿵쿵!
금빛 해골 머리는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격렬하게 흔들렸고, 그 안에서 금빛 모래가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이 해골은 무슨 물건인지 부서지지 않았다. 그저 금빛 모래에 의해 표면에 약간의 균열만 생겼을 뿐이었다.
금빛 해골은 반짝이더니 곧 천귀번(天鬼幡)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균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유안은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흔들어 법결을 펼쳤다.
천귀번이 핏빛으로 반짝이더니 유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쾅쾅!
다른 한쪽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석목을 쫓던 금빛 모래들이 터지면서 금빛 구름을 형성했지만, 그는 다행히 상처를 입지 않았다.
석목은 불의 날개를 접고 땅에 내려섰다.
그 금빛 모래는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동으로 터져버리는 듯했다. 다행히 석목이 재빨리 피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을 없애는데 왼손의 위력을 발휘해야 했을 것이다.
석목에게는 지금 일격을 가할 정도의 힘만 남아 있었고, 짧은 시간에 진기를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최후의 위기를 맞기 전까지는 힘을 쓰고 싶지 않았다.
석실을 가득 메운 모래바람이 중앙으로 모여 들더니, 빠르게 날아다니면서 다시 황사필련(黄沙匹練)으로 변했다. 그러자 황룡도인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제법 빠르군!”
황룡도인은 독기 가득한 눈으로 석목을 보더니 다시 공격하려 했다.
그때 윙윙거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황룡도인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더니 안색이 변했다.
창원왕이 쓰러진 곳에서 흰 빛이 일더니 흰색의 법진이 만들어 진 것이다.
“하하, 황룡 이 녀석! 법진이 제단 위에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지? 사실 진짜 법진은 여기에 있지. 어리석기는!”
몸을 뒤집으며 일어선 창원왕은 황룡도인을 바라보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죽으려고 작정한 것이냐!”
황룡도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석목을 치는 걸 포기하고 창원왕을 공격했다.
그가 주문을 외우며 손을 휘두르자 구곡황사가 긴 모래바람을 만들며 창원왕을 향해 날아갔다.
모래바람은 금빛을 발산하며 전기 불꽃을 일으켰고,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는 모습이 가히 위협적이었다.
전기 불꽃이 떠오르자 모래바람의 속도가 배로 빨라지면서 순식간에 창원왕 앞으로 날아갔다.
창원왕은 놀라긴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재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 핏빛이 떠올랐다.
곧 그의 몸에서 피와 살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더니 핏빛 안개로 가득 채워졌고, 몇 개인지 셀 수도 없는 피와 살이 모여 거대한 혈육 방패를 만들었다.
그 방패 위에는 원숭이의 형상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그것은 핏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우르르! 쾅!
긴 모래바람과 핏빛의 방패가 어마어마한 소리를 내면서 대결했다. 사방이 순식간에 금빛과 핏빛으로 물들며 돌멩이와 먼지가 사방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혈육 방패가 격렬하게 떨리더니 균열이 생겼지만 여전히 모래바람을 막아내고 있었다.
방패 뒤에 있는 창원왕은 몸이 완전히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가 미친 듯이 선혈이 쏟아지는 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핏빛이 순식간에 흰색 진법으로 빨려 들어갔다.
흰색 진법이 더욱 빛을 발하더니 그 위로 무수한 부적들이 떠올라 어떤 모양을 만들어내려 했다. 이어 창원왕이 방패로 변신해서 황룡도인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사실 그것은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황룡도인이 두 눈을 반짝이며 한 손을 들어 계속해서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모래바람이 금빛을 더 강하게 발하기 시작했고, 모래바람의 공격력이 더욱 강해지면서 혈육 방패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했다.
그 틈에 석목과 유안도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지막 기회인 만큼 실패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했으나, 창원왕이 진법을 발동한 쪽으로는 접근하지 않았다.
그때 길고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유안은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벽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그곳으로 날아갔다.
석목은 몸을 사라지 않고 금빛 제단으로 돌진했다.
방금 전 제단 위로 떠올랐던 흰 원숭이 머리의 형상은 그가 꿈에서 보았던 흰 원숭이가 틀림없었다. 그가 그렇게 구하려 애를 썼던 원숭이의 정혈이 바로 저 제단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혈을 손에 넣기만 하면 며칠 동안 힘들게 수련해왔던 구전현공(九轉玄功) 1단계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황룡도인은 모래바람으로 방패를 공격하면서도 석목과 유안을 놓치지 않고 살피면서, 다른 한 손으로 법결을 펼치고 있었다.
두 덩어리의 어둡고 노란 빛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고, 그 빛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더니 석목과 유안의 뒤에 나타났다.
빛은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두 사람의 등을 후려쳤다.
석목과 유안은 그 빛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노란 빛이 유안을 공격하려 할 때 그가 돌연 몸을 돌리자 노란 빛이 그의 가슴을 때렸다.
쿵!
이어 격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유안이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졌으나 몸에는 어떤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는 품에 벽돌 하나, 아니 둘을 하나로 합친 검은 벽돌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유안은 검은색의 벽돌을 손에 넣었고, 몸을 돌리는 동시에 두 개의 벽돌을 붙여 황룡도인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유안의 벽돌이 황룡도인과 허공에서 맞부딪히는 순간, 석목 또한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박감을 느꼈다.
석목이 앞으로 나가 금색 제단 근처에 발을 내딛으려 할 때, 조금 전 황룡도인을 공격했던 흰 원숭이 머리의 형상이 다시 나타났다.
원숭이 머리의 금빛 눈은 제단을 향해 돌진해오는 석목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석목은 마치 진짜 살아 있는 눈빛에 의해 주시당하는 것처럼 간담이 서늘해졌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석목은 이 원숭이와 자신의 인연이 깊다는 것을 알았지만, 서하대륙의 절세 요왕(妖王)이 갑자기 요족의 본성을 드러내서 자신을 죽이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황룡도인 같은 존재도 흰 원숭이를 당해낼 수 없는데, 자신의 미약한 실력으로는 일격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생각할 시간도, 물러설 곳도 없었다. 황룡도인이 날린 노란 빛이 허공을 가르며 그의 뒤를 바짝 뒤쫓아 왔기에, 한순간만 방심해도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흰 원숭이가 갑자기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그저 목숨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퍽!
석목이 제단 위로 떨어졌고, 흰 원숭이는 석목을 공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마음대로 금색 제단 위로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와 동시에 흰 원숭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석목의 뒤에서 들려왔다. 그 거대한 울부짖음은 황룡도인의 노란 빛까지 흩어지게 했다.
흰 원숭이의 형상이 석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금색 눈동자에 무언가 복잡한 기색이 살짝 스쳐갔다.
잠시 후 흰 원숭이의 형상이 옅어지면서 사라졌고, 허공에서 수정 같은 영롱한 핏방울이 석목의 이마에 떨어졌다. 그것은 빛을 내더니 이내 사라졌다.
그 정혈이 석목의 몸으로 흡수되자 금색 제단의 봉인이 해제되는 것 같았다.
원래 평평했던 제단의 중앙에서 굉음이 울리더니, 갑자기 돌을 쌓아 만든 석대(石臺)가 솟아올랐고, 금색의 어두운 줄무늬로 뒤덮인 큰 나무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상자의 표면에는 몇 장의 은색 부적이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복잡하고 심오한 주문이 새겨져 있었다.
석목은 나무상자를 향해 힘겹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의 기색이 역력했고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그의 피부는 거의 투명한 색에 가까웠고, 피부 속의 혈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혈관은 두 배는 굵어져서 흉악해 보였으며, 그 안에서는 선혈이 불꽃처럼 들끓고 있었다.
석목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온몸의 혈액이 반쯤 끓어오르는 듯했고, 천봉(天鳳)의 혈맥이 활성화되던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뜨거웠다. 마치 온 몸이 불타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이 뜨거운 화염은 아무리 들끓어도 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그의 몸속에 갇힌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동시에 단련시키고 있었다.
석목은 더 생각할 틈도 없이 석대 위에 있는 나무상자를 집어 진묘계(塵渺戒) 안에 집어넣었다.
창원왕과 황룡도인은 여전히 격렬하게 싸우는 중이었지만, 동시에 제단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었다.
이미 뼈만 앙상한 창원왕의 두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찮은 일개 인족 녀석이 어떻게 제단에 올라가서 백원요왕의 정혈을 흡수하고, 그러고도 몸이 파괴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황룡도인은 격노했다.
그는 많은 힘을 쏟아 먼 바다를 건너 서하대륙으로 들어왔고, 수백 년간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왔다.
그런데 결국 남 좋은 일만 한 셈이 된 것이다. 어디서 튀어 나온 건지도 모르는 하찮은 녀석에게 빼앗길 것이라고 어디 생각이나 했겠는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