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각자의 수단
“이놈! 나무상자를 내려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가죽을 벗기고 뼈를 가루로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주겠다!”
황룡도인이 소리쳤다.
이어 그는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두 손으로 법결을 만들기 시작했다.
쿵!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창원왕의 피와 살로 만든 방패는 거대한 모래바람의 매서운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와 함께 모래바람도 다 흩어졌다.
금빛 제단에 있는 석목은 발아래에 자신의 살점이 떨어진 것을 보았다. 그는 창원왕의 정혈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진묘계에서 병을 꺼내 주워 담았다.
창원왕은 현재 선혈이 낭자한 뼈대만 남아 있었는데, 혈육 방패가 파괴되는 순간 그의 입에서 핏빛이 나와서 흰색 법진 속으로 들어갔다.
흰색 법진이 진동했고, 이어 흰색의 부적이 공중에서 빙빙 돌면서 전송법진이 작동되었다.
그때 황룡도인의 조종하는 모래바람이 공중에서 휙휙 소리를 내며 돌았다. 모래바람이 창원왕을 단번에 죽이려 할 때, 뼈만 남은 창원왕의 몸이 흔들리면서 전송법진으로 빨려 들어갔다.
흰 빛이 반짝이더니 그의 모습은 곧 종적을 감추었고, 모래바람만 허공에서 맴돌았다.
황룡도인의 모래바람이 멈추자 전송법진이 내뿜는 흰 빛도 점점 희미해졌다.
석목과 유안은 이를 보고 안색이 변했다.
황룡도인의 매서운 눈빛이 사그라들더니 창원왕의 모습을 좇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는 곧 몸을 돌려 점점 옅어지는 흰색 전송법진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석목과 유안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흥! 너희 둘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오늘 여기서 아무도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특히 내 나무상자를 빼앗아간 녀석, 따끔하게 혼을 내주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룡도인은 소매를 휘둘러서 어두운 노란색 빛을 뿜어냈고, 그것으로 가까이에 있는 유안을 공격했다.
유안은 이를 보고 몸을 돌려 황룡도인의 공격을 피했고, 강시 두 구를 움직여 양쪽에서 황룡을 방해했다.
두 강시가 좌우에서 황룡도인을 향해 공격을 가했고, 이어 그들의 어두운 녹색 손톱에서 섬뜩한 빛이 번쩍이더니, 눈부신 회색 발톱이 나와서 황룡도인의 복부에 공격을 가했다.
“꺼져!”
분노한 황룡도인이 도포를 휘저어 거센 사람을 일으켜 강시들을 날려 보냈다. 하지만 강시들은 나가떨어진 뒤에도 몸을 일으켜서 다시 공격해왔다.
강시들의 속도는 결코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유안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앞에서 많은 공격을 막아주었고, 이는 황룡도인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다.
강시 하나가 다시 앞에 나타났을 때, 황룡도인은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잡아채고 다섯 손가락에 힘을 가했다.
우지끈!
강시의 머리가 깨지면서 검붉은 선혈이 녹색의 액체와 섞여 흘러나왔다.
황룡도인이 손을 휘두르자 그 강시는 짐짝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뒤 움직임을 멈추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자 황룡도인은 혐오스러운 듯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유안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강시만으로 황룡도인의 공격 속도를 늦추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유안은 재빠르게 몸을 옮기며 조심스레 곁눈질을 했다. 그러더니 한 보 뒤로 물러나서 검은 벽돌을 들어 올렸다.
그때 석목의 눈은 여전히 붉었고, 몸이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그는 유안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다.
“곧 죽을 마당에 무슨 속셈이냐? 절대적인 실력자 앞에서 너희 같은 버러지들은 그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황룡도인이 고성를 지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모래바람이 일더니 두 마리의 교룡이 되어 유안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남아 있던 강시는 이번에는 나서지 않았다. 어차피 황룡도인을 당해낼 수 없기에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앞으로 달려가던 유안은 갑자기 몸을 돌려 두 손으로 법결을 펼치더니,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황룡도인의 앞쪽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어 셀 수 없이 많은 뼈 새가 날아올랐다.
푸드덕!
새들이 날갯짓을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 뼈 새들의 몸 크기는 한 척 정도밖에 안 됐지만, 화살처럼 빠른 속도로 황룡도인을 향해 돌진했다.
황룡도인이 두 손을 비비자, 모래로 만들어진 두 마리 교룡이 그의 앞에서 선회하더니 이내 한 마리의 거대한 교룡으로 합쳐졌다. 이어 그가 몸을 재빠르게 흔들자 금빛이 반짝이며 온 하늘의 새들이 흩어졌고, 뼛가루가 사방으로 뿌려져서 마치 온 석실이 눈가루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이 따위 보잘 것 없는 재주를!”
황룡도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갑자기 굳어버렸다.
흩어졌던 뼛가루가 어느새 두 개의 손이 되어 황룡도인의 두 발을 잡은 것이다.
뼈 새가 나타나고 황룡도인이 뼈 새로부터 벗어나려 한 것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진 일 같지만, 사실은 정말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황룡도인은 노발대발하며 다른 공격 수단을 펼치려 했다. 그때 뻣뻣하고 차가운 몸이 그를 뒤에서 덮쳤다. 아까의 그 강시였다. 숨을 돌리기조차 힘든 상황에 자신에게 덤벼든 것이다.
강시의 몸에서는 여전히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순간 황룡도인은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석목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석목은 손으로 법결을 하고 공혼법련(控魂法鏈)으로 경신부(輕身符)를 강시의 몸과 연결했는데, 의외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어서 유안과 석목이 동시에 나지막이 소리쳤다.
“폭발!”
굉음이 울려퍼졌다.
황룡도인을 덮친 강시가 폭발하면서, 노란색 불빛과 푸른색의 번개가 뒤섞였고, 뱀처럼 가느다란 빛이 공중에서 떠돌다가 조금씩 사라졌다.
강시가 자폭하게 만든 것은 유안의 시폭술(尸爆術)이었다. 강시의 단전에 남아 있던 영력이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만들어낸 파괴력은 가히 놀라웠다.
폭발하는 와중에 노란색 불꽃과 푸른색 번개가 나타난 것은 석목 떄문이었다. 그는 강시에게 경신부를 사용하면서 고급 부적인 연환폭염부(連環爆炎符)와 뇌운풍폭부(雷雲風暴符)를 숨겨두었었다.
지계의 강시로 만들어낸 시폭술, 그리고 고급 부적 두 장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폭발했으니, 비록 천위의 강자라 해도 버텨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장내의 연기가 가시기도 전에 황룡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좋아! 지계의 애송이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넣다니! 내가 너희를 과소평가했군. 그런데 이제는 무슨 수로 나의 분노에 맞설 테냐?”
황룡도인이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옷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지만, 금색의 빛이 용처럼 그의 주위를 보호하고 있어서 몸에 큰 상처는 없었다.
석목의 뛰어난 시력으로도 그 노란색 빛이 모래바람 같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고, 그것이 영기나 법보인지, 아니면 다른 신통력인지는 분간할 길이 없었다.
유안은 황룡도인의 말을 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는 손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서 손톱 크기만 한 검붉은 돌이 나왔고, 다른 한 손으로는 검은 벽돌을 쥐고 있었다. 검붉은 기운이 돌에서 나와서 검은 벽돌로 빨려 들어갔다.
검붉은 돌의 빛이 조금씩 약해지고, 반대로 검은 벽돌의 표면에는 층층이 옅은 물결이 일었다.
유안의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고, 눈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석목은 이를 보고 놀라며 유안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손에 법결을 쥔 유안의 몸에서 푸른 빛이 나왔다. 그때 검은 벽돌도 같이 빛을 내며 유안 앞에서 떠돌았다.
석목은 눈앞이 침침한 느낌이 들면서 눈앞의 광경이 희미해졌다. 마치 호수의 수면 위에 떠 있고, 공기 중에서 파문이 일고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황룡도인은 곧 다시 노성을 터트렸다.
“이제 도망갈 곳은 없다!”
그의 고함소리와 함께 모래바람이 빠르게 유안에게 날아가서 그의 가슴을 때리려 했다. 그러나 유안은 몸을 피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면서 비웃는 듯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모래바람이 그의 앞에 도달했을 때, 유안은 물결처럼 뒤틀린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공간이 뒤틀리면서 모래바람은 유안의 옆을 비스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갑자기 물결이 출렁이는 공간에 일 장 정도 되는 구멍이 생기더니, 검고 어두운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어두운 구멍에는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이따금 미세한 빛줄기가 스쳤다. 그 빛줄기는 밤하늘의 유성처럼 재빨랐다.
유안은 갈라진 틈을 보더니 고개를 돌렸고, 십 장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석목을 쳐다보았다. 그는 음산한 웃음을 짓더니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검은 벽돌을 쥐고 틈 안으로 돌진했다.
유안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틈도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석목은 속으로 유안을 욕하며 재빨리 그 틈으로 따라 들어갔다.
황룡도인은 유안이 이미 달아난 것을 보고 분노가 극에 달했다. 석목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노란색 빛으로 금빛을 흡수하며 빠르게 석목의 뒤로 공격을 가했다.
석목이 그 구멍에 다다르기까지는 오 장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만약 황룡도인의 공격을 피한다면 그 구멍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피하지 못한다면 공격을 고스란히 맞아서 죽음을 당할 게 자명했다.
이런 위기의 순간, 석목의 등 뒤에서 불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그는 곧 붉은 형상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모래바람의 공격을 피했다.
유안이 달아난 어두운 구멍은 이제 거의 다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하! 너는 도망갈 수 없다!”
황룡도인은 냉소를 지으며 모래바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놀라운 속도로 석목에게 돌진했다.
두 사람의 거리는 백 장이 안 됐는데, 황룡도인의 속도대로라면 두세 호흡만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허공에 떠 있는 석목은 그 어두운 구멍까지 칠팔 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지금 구멍이 작아지는 속도대로라면 그가 급강하를 하더라도 시간이 촉박했다. 만약 억지로 들어가려 하다가 그 틈에 껴서 죽을 수도 있었다.
황룡도인은 석목이 이미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석목은 도리어 강하게 날갯짓을 했다. 그는 붉은 빛을 내며 아래로 내달았고, 곧 검고 어두운 구멍이 있는 곳에 도달했다.
그때 그 구멍은 이미 사발 하나 정도의 크기라 들어가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황룡도인은 기뻐했지만, 곧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석목의 새까만 왼손이 붉은빛을 내면서 그 구멍에 일격을 가한 것이다.
굉음이 터져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언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본래 사발 크기만 하던 구멍이 갑자기 벌어졌다. 그리고 석목이 주먹으로 계속 가격하자 그 직경이 수 척에 달할 만큼 커졌다.
석목은 왼손을 사용하는 바람에 몸속의 진기가 다 소진되었지만,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쏟아 부어 어두운 구멍속으로 들어갔다.
그때 구멍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황룡도인이 그곳으로 들어가려 할 때 다시 사발만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일개 지계의 무인 주제에 허공을 가르다니, 어떻게 감히!”
황룡도인은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가 두 손을 모아 기합을 지르자 입에서 모래바람이 쏟아져 나와서 그 구멍을 가격했고, 황룡도인은 그 구멍이 사라지기 전 빠른 속도로 안으로 들어갔다.